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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6권] (1607) 반체제 인사란 말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31 08:50
조회
1881

[범용기 제6권] (1607) 반체제 인사란 말
- 민주체제와 유신체제 -

‘체제’란 말이 났으니 말입니다만, 1973년 11월 5일에 서울 YMCA 다방 한구석에서 15인 연서 시국 선언이 발표되고 이어서 학생, 언론인, 문학인, 일부 교인 등이 각계에서 ‘자유’를 위해 기세를 올리게 됐습니다. 12월 초에 정계, 언론계, 학계, 교계 등의 원로 여러분을 YWCA 알로하실에 초청하여 유신헌법을 민주헌법으로 수정하기를 건의함과 아울러 ‘대통령’에게 면담 신청을 내고 그 회담을 기다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에 장준하 씨가 중심이 되어 100만명 서명 개헌청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국무총리는 김종필이었습니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국민과의 대화의 광장은 넓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반체제적인 언론이나 행동은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 각하 자신의 엄명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 엄명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참담한 유혈극이 벌어질지 모르니 지내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습니다.

74년 1월 4일에 박정희 대통령은 중대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반체제적인 경거망동은 절대 간과하지 않는다.”

그때 마침 명동 국립극장에서 민주통일당 전당대회가 열려 전국적으로 약 천명의 대표들이 모였고 그 대회 의사진행 전에 ‘서막’으로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필자도 그 강연회 연사의 하나로 초청되었었는데 그 때에 이 ‘반체제’ 얘기가 나와서 나는 ‘반체제’라면 ‘본체제’가 있을 터인데, 그러면 ‘본체제’가 무어냐? 하는 것부터 따져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민국’이란 것은 ‘민주국가’란 말입니다. ‘백성의 나라’입니다.

개화당운동 때부터, 독립운동자들, 3ㆍ1운동, 상해임시정부, 해방 후 자유당 정부, 민주당 정부 모두가 민주체제를 ‘불문율’하고 세워졌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3선을 시도하다가 4ㆍ19학생들의 민주 깃발 앞에 낙옆같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진정 민주질서에 의하여 선거된 민주당 정권이 민주한국의 기초작업을 거의 완료하려던 무렵에 일부 반역 군인이 군인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배반하고 정부에서 준 무기를 들고 새벽에 한강을 건너 중앙청을 점령하고 백성들의 정부를 군인의 정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서 그것이 ‘본체제’라고 내세웠습니다. 동시에 본래의 민주체제를 ‘반체제’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속담 그대로 ‘적반하장’입니다. 반체제 인사는 엄벌에 처한다고 선포합니다. “반체제자는 바로 너희다!” 하고 국민은 분노합니다. “엄벌에 처해야 할 자는 바로 너희다” 하고 외칩니다.

신문에서 떠들썩하고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궐기할 기세를 보이고 일반시민도 합세할 것 같으니까 1974년 1월 8일에 ‘박’은 긴급 비상조치령이란 것을 선포하고 3권을 혼자 걸머쥐고 법 ‘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헌법은 ‘유보’되고 국회는 해산되고 모든 정치활동은 금지되고 언론은 사전에 검열되고 국민은 독재자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밖에 다른 길이 없도록 된 것이었습니다. 당초의 군정 그대로입니다.

이런 본새로 군정 2년, 민정 9년을 지내고서도 오히려 권력욕은 지옥의 분화구 같이 그의 마음을 불붙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72년 11월에는 소위 ‘유신헌법’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계엄령으로 국민의 의사 발표를 봉쇄하고 불찬성을 언명한 사람은 구속하고 말단 공무원까지 총동원하여 국민의 주권행사를 ‘대행’했습니다.

이 때에 전주남문교회 은명기 목사는 “계엄령 하에서 국민투표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발언했다가 구속되고 그의 부인까지도 갇혔습니다. 투표날에는 계엄령이 해제되었습니다만 그것은 군인정부로서의 작전이 완료된 때였습니다.

그러면 유신헌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박정희 씨가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 또는 ‘한국에 적합한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발굴하려면 ‘유신헌법’을 검토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유신헌법’이 민주주의냐? 하는 것입니다.

[1] 민주주의란 국민이 나라의 주권자란 말입니다.

국민의 자유투표로 국회의원을 뽑고 그 국회의원이 국회를 구성하고 국민의 자유투표로 대통령을 뽑든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간접으로 대통령을 뽑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신헌법에 의하면 국회의원이 1/3은 대통령 자신이 지명하고 1/3은 박대통령을 지지하는 여당에서 차지하고 나머지 1/3은 ‘야당’이라고 하는데 그 ‘야당’ 국회의원도 박대통령의 묵인 없이는 입후보부터 해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입법부’인 ‘국회’란 것이 온통 박 대통령의 ‘시녀’로 격하되었습니다. 사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박대통령의 전령자인 ‘격’입니다. 박 대통령의 국회요 국민의 국회는 아닙니다.

‘사법부’의 판사, 대법원 판사까지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그러니까 사법부도 ‘박’의 사람으로 된, ‘박’의 ‘사법부’인 셈입니다.

‘행정부’는 물론 대통령이 행정수반이니까 박대통령의 권좌일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신헌법’은 ‘민주헌법’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독재를 합법화하기 위한, 대통령 자신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을 위하여 만든 대통령의 헌법입니다. 국민은 헌법에 있어서 Nothing입니다. 결국에는 국민투표에 붙이지 않았느냐?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공정한 의사를 물으려면 투표 전에 찬성과 반대의 양론이 자유롭게 충분히 국민에게 전달된 다음에 “당신은 어떻소?”하고 가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전 관공리를 동원하여 “통일을 위하여 유신헌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찬성 선전은 방방곡곡에 주지시키고 반대의사는 연설은커녕, 사석에서 수근거린 것도 유언비어 죄로 잡혀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 투표가 무슨 국민의사를 대표하는 것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2] 유신헌법에는 대통령 임기에 대한 아무 명확한 규정도 없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6년이라고 했습니다만, 재선, 삼선 등에 대한 조항은 없습니다. 6년 있고 나갈 수도 있을지 몰라도 평생이라도 하려면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3]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시킬 권한이 있습니다.

[4] 대통령은 국가긴급 사태에 직면했다고 인정할 경우에 긴급조치령을 선포하고 문자 그대로 3권을 완전 독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국가 긴급사태”란 것은 누가 판정하는가? 대통령이 그렇게 판정하는 것이요 국회에는 통고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명실공히 3권을 한 손에 완전장악한 독재자로서의 위치를 합법화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민주국가에서도 국가 비상시에 행정부 수반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의 결의를 거쳐 일시적 조건부로 허용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자기의 임무수행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여 사후 인준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5] 민주헌법체제는 법에 의한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합니다. Sports와 같습니다.

Sports에는 경기에 대한 규율이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렸다 해도 법대로 달리지 않으면 무효가 됩니다. ‘새치기’를 한다든지, 남을 걸어 넘어뜨리고 자기가 앞서 간다든지, 남보다 먼저 ‘골인’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든지 자기에게 유리할 대로 ‘심판’을 매수 또는 공갈했다든지 하면 그의 승리는 무효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은 벌칙에 따라 경기장에서 축출되든지 아주 경기금지를 당하든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은 경쟁자를 없애 버리고 단일 후보로 독주합니다. 김대중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희박하게 되자 김대중을 잡아 가뒀습니다. 납치라는 비겁 행위를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반대하거나 자기의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사람은 영장없이 잡아 넣고 변론도 있으나 마나로 ‘군재’에서 15년 종신 사형까지도 해치웁니다. 그리고서 소위 Strong man으로 어깨를 잽니다.

박정희 씨가 아무리 잘났다 해도 그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상대적입니다. 불완전합니다. 그의 위치가 대통령이라 해도 그는 인간으로서의 대통령입니다. 잘못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에게 비판도 받고 반성도 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해야 겨우 큰 과오없이 소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실한 대통령이라면 민주주의를 지원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박’은 자기 명령에 무조건 복종시키려고만 합니다. 국민은 불평할 뿐 아니라, 주권을 되찾으려 합니다. ‘박’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국민을 사찰합니다. 중앙정보부, 방위사령부, 경찰, 비밀경찰, 끄나풀 등을 동원하여 학원과 언론기관과 일반시민, 심지어는 교회집회에까지 숨어 들어 죄인잡기 운동을 벌입니다. 사냥꾼이 짐승 찾듯 합니다. 전 국민은 범죄인같이 기를 못폅니다.

명령과 복종계열만이 살아 날뜁니다. 군대 안에서는 그런 대로 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시민 사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가령 어떤 장교가 종로 네거리에서 오가는 시민을 향하여 “위로 갓!”, “돌아 우편으로 갓!” 하고 호령한다면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은 군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박’이 유신헌법을 만든 것은 법에 의한 경쟁을 거부하고 법 없이 자기 혼자서 뛰자는 독재헌법입니다. 그는 벌써 13년을 혼자 뛰고 톨랑톨랑 10년 넘게 뛰었으니 그게 무슨 구경거리겠습니까? 시시하고 싱겁다고 “나가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금살금 딴 데로 가버리는 사람, 놀려대는 사람 등등이 각처에서 야단입니다.

[6] 유신헌법에서는 대통령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잘못해도 책임지고 물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부하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7] 대통령은 돈이 무한 필요합니다. 돈이 부족하면 인간도 염가로 ‘떰핑’합니다. 일본 놈팽이들에게 한국 아가씨들을 여관 티켙에 붙여 넘겨주기도 한답니다.

[8] 유신헌법은 폭력으로 억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공갈, 협박, 금지, 매수, 조종, 사찰, 구금, 투옥, 장기징역 등등으로 꽁꽁 묶습니다. 너무 답답하다고 움직거리면 더 단단하게 묶습니다. 그러나 3천만을 그렇게 오래, 그렇게 지독하게 묶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9] ‘박’의 유신헌법은 한국인을 비인간화하고 한국역사를 위축, 후퇴,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한국의 재건을 위하여 목숨을 모험하는 민주운동 인사들이 궐기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개방국가기 때문에 국내만으로는 안됩니다. 국외에서도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합니다.

미국, 캐나다 등 민주동지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서독의 민주교포들은 더 어려운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북미주 동포들은 서독민주교포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더욱 꾸준하고 성실한 건투를 희구하며 승리를 기대합니다.

1974년 12월 7일 오후 5시
서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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