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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103] 傳記的으로 본 예레미아의 內面生活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18 12:17
조회
2161

[0103]

傳記的으로 본 예레미아의 內面生活

「落廳」
1933년 6월 10일

다윗王業이 바야흐로 기울어져 가는 저녁, 눈물과 피와 힘으로 짜내인 예레미아의 一生은 너무나 深刻하고 多端하였다. 그리하여 탄식없이 읽을 수 없는 것이 그의 豫言詩이다. 그러나 그의 豫言詩를 材料로 하고 系統 선 傳記를 쓰려는 것은 決코 容易한 일이 아님을 나는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제 未備하나마 뜻 두었던 것이니 써 이 大豫言者의 片影이나마 나타낼 수 있으면 幸甚일까 하고 붓을 든 것이다.

[1]

앗시리아의 平原에 감도는 低氣壓이 刻一刻으로 가나안福地를 向하여 나아오는 것을 유다의 一寒村 아나돗의 靑年詩人 예레미아는 거의 直感的으로 느끼고 있었다. 貴人의 피를 이은 그의 마음은 모르는 체하고 지낼 수 없었다. 다윗왕때로부터 내려온 貴한 家族的 傳統과 썩을 대로 썩은 現下의 國情과를 서로 比較해 보고서는 그 差의 너무나 현격한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先輩豫言者 特히 호세아의 불같이 뜨거운 豫言詩가 그의 가슴에 깊은 感懷를 일으켰을 것은 勿論이었을 것이다. 때때로 거친 유다광야를 거니는 그는 最後로 한번 우렁차게 외치고도 싶었을 것이나 그에게는 아직도 그렇게 自信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는 아직도 客觀的 權威者인 여호와의 召命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

[2]

때는 主前 626년 늦은 겨울 萬相이 다 자는데 혼자 깨인듯이 꽃피인 아몬나무를 바라보며 거친 유다 광야를 거니는 그에게는 갑자기 “너를 배안에 形成하기 前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胎에서 나오기 前에 내가 너를 聖別했으며 萬國의 豫言者로 내가 너를 任命하였다”(1:4,5)

하는 엄숙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젊은이인 그에게는 너무나 莊嚴하고 기대에 넘치는 召命이었음에 그는 억색(臆塞) 한 마음으로 辭退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손은 벌써 그를 붙잡고 놓지 않음을 어찌하랴.

[3]

‘쇠기둥’, ‘구리담’의 約束과 함께 그는 豫言者의 生活을 始作하였다. 當時 ‘庶民의 宗敎’인 바알, 아쉬타데 崇拜는 論理的 宗敎인 여호와의 예배까지도 極度로 타락시켜서 山위나 나무밑 가는곳마다 邪神淫祠, 거기서 떠드는 淫湯한 誦歌소리는 밤낮으로 이 豫言者의 귀를 괴롭게 하였었다. (2:2~3:23 參照)

靑年들에서 흔히 보는 節制없는 信念과 興奔을 가지고 그는 이 더러워진 백성에게 내릴 懲罰을 宣言하였다. 끓어 넘치는 가마같이 北方으로 부터 밀려오는 兵亂!

“들으라! 단에서 달려오는 斥候! 에부라임 언덕에서 오는 凶報의 前哨!
百姓들에게 警告하라 보아라 저들이 온다.
알게하라 예루살렘에!”

“내 창자여 내 창자여 오 내 괴로움이여! 오 내 가슴이여! 내 心臓이 너무나 뛰놀매
걷잡을 길 없구나
저 북소리 내 귀에 들리네
저 戰爭의 경종소리.”
(3:19)

〈註〉 스킨너(Skinner)는 이 詩와 그의 다른 유사한 시를 比較硏究한 結果 이 詩는 特히 過度의 興奔과 想像的 氣分을 나타냄을 指摘하고 따라서 極初期의 作임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 兵亂은 스구디아 侵略(626 B.C.)이었다고 한다. (Prophecy and Religion p. 44ff)

그는 이 風前의 燈火같은 自國의 運命을 보고 懲罰의 宣告를 내리면서도 속마음은 限없이 아팠을 것이다. 그리하여 상상컨대 다시 들밖에 나가 北으로 에부라임의 連山, 東으로 요단의 溪谷, 그 건너便 길르앗의 高原을 바라보며 깊은 감상에 잠긴 때 그에게는 ‘混沌’의 비젼(Vision)이 보였었을까 한다.

“내가 땅을 보았다. 그러나 아 混沌! 하늘을- 그러나 아 빛이 없더라.
내가 언덕을 보았다- 그러나 아 저들은 떨었다.
그리고 모든 山들은 몸부림치더라.
내가 보았다- 그러나 아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空中의 온갖 새들도 다 날아가 버렸더라.
내가 곡식밭을 보았다- 그러나 ‘사막’!
그리고 그의 모든 都市는 허물어져 버렸더라.”
(4:23~26)

‘混沌과 荒廢’ 이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는 一縷의 希望을 가지고 國家的 悔改를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예루살렘에 다니러 온 그는 于先 그 社會 각층의 實情을 探査하였다.

그는 어디서 하나 義를 行하며 眞理를 찾는 者를 만나 볼런가 해서 거리를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은 것은 오직 歷史的 事變을 通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攝理에 全然没覺한, ‘그 낯을 바윗돌 같이 굳세게 하며 돌아오기를 拒絶’하는 者들이었다. 그는 다시 발을 돌이켜 敎養있는 所謂 指導者層을 찾아 보았으나 그 亦是 조금도 다를것 없는 沒覺無道한 者들이었다. (5:14 參照)고 歎息하였다.

이렇게도 각 階級을 通하여 極度의 腐敗와 無能을 보였음에 그는 오직 홀로 街頭에 외치는 반향없는 소리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悔改하고 여호와께 돌아오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俗塵에 메인 인생의 귀를 울리기에는 너무나 유다른 말인가 한다.

[4]

이렇게 하기를 5년! 때는 主前 621년 봄 聖殿구석에서 모세의 옛 율법책을 發見했다는 所聞이 地方의 구석구석까지 퍼지게 되며 그때 유월절을 利用하여 一世 明君 요시아王의 主裁下에 全國的 會議가 열리었다. 그리하여 전고미증유(前古未會有)의 壯嚴, 崇高한 유윌절을 지키었다는 代表者들의 傳言은 곧 사람들의 한결같은 話題가 되었을 것이다. 그라고는 政府로부터의 疾風怒濤的 종교숙청운동이 일어나 聖殿의 淨化, 邪神淫祠의 破壞, 地方에 널려있는 여호와 祭壇의 破棄와 禮拜의 集中 그리고 高貴한 倫理的 生活의 提唱! 이런 偉大한 改革運動이 놀랄만치 迅速히 進行되고 있었다.

이 世紀的 改革運動을 본 예레미아는 果然 어떠한 態度를 가졌을까? 學者들 사이에 많은 興味를 일으키는, 아직도 歸結을 짓지 못한 問題의 하나이다.

그가 果然 이 運動에 直接參加한 與否는 未知의 일이라 할지라도 全然 傍觀的 態度를 取했으리라고는 到低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컨대 그와같이 熱烈한 預言者로서 그렇게 큰 宗敎運動을 그저 冷情하게 袖手傍觀했으리라는 것은 그의 性格上으로 보아서나 그의 預言者的 使命으로 보아서나 도무지 不合理한 推斷이라 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 運動에 贊意를 表했거나 或은 反對를 表明했을 것이다.

그가 運動에 贊意를 表했으리리는 것이 大多數學者의 말하는 바인데 이제 그 理由를 列擧한다면 (一회) 于先 이 運動의 根本的情神 적어도 바알 宗敎의 撲滅이라는 消極的 方面에 있어서는 예레미아의 情神과 符合되는 것이며 또 이 律法의 倫理的 宗敎的 敎訓도 範圍는 좁다 할지라도 決코 預言者의 敎訓보다 低劣한 것이 아니며, (二) 더군다나 그의 요시아王에 對한 높은 讚詞(22: 15, 16), (三) 621~608年까지에 그가 比較的 沈默을 지킨 것, (四) 改革運動의 中心人物인 샤반一家가 그에게 바친 꾸준한 忠誠(36:10~20) 이런 것들이다. 그가 決코 改革運動을 公公然하게 反對하지 않고 오히려 贊意를 表했다는 것을 暗示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뿐만아니라 그의 故鄕 아니돗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 理由도 亦是 그가 그 地方祭司의 直系이면서 그 地方의 여호와 祭壇을 破壞하는 데 直接贊同했다는 것을 憤激해 한 所行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그가 유다 모든 城邑과 예루살렘에서 傳播했다는 所謂 ‘이 언약’(This Covenant)(11:8)이 그때 宣布한 申命記原本이었다는 것은 그다지 不當한 推斷이 아닌 줄 안다. 勿論 이 部分은 예레미아의 自作이 아니오, 申命記的 加筆이리는 것은 文體와 內容을 보아 是認안 할 수 없는 事實이나 本是 예레미아書가 그의 書記로 있는 그리고 申命記運動과 密接한 關係를 가진 바룩의 手記한 것이며 예레미야의 自作이 아니라 할지라도 예레미아의 宣布한 事實에 照하여 그의 容許를 얻어 바룩이 스스로 써넣을 수도 있는 것이니 自作與否는 그다지 큰 問題될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모든 證左로 보아 예레미아가 改革運動에 參與했다는 것을 認定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가 그저 政府나 祭司長의 指揮를 받아 一個의 使喚처럼 움직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그의 性格上으로 보든지 그의 豫言者的 權威로 보든지 決코 妥當치 못한 推斷인 까닭이다. 생각컨대 이때에 그는 預言者의 權威로 이 運動에 對한 여호와의 是認을 宣言하고 그윽히 그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5]

그 本鄕 사람들의 可憎한 陰謀를 겨우 벗어난 예레미아는 沈默과 瞑想과 祈禱로 近十年동안의 고요한 生活을 이어 갔었다. 요시아王의 賢政과 宗敎改革의 運動에 그옥한 期待를 가지고 고요히 그러나 날카롭게 모든 경구을 살피면서 그는 마음조리는 沈默을 지켜온 것이다.

‘庶民의 宗敎’ 이것은 그렇게 容易하게 없어질 것이 아니었다. 도끼를 들어 그 나무를 베어 넘어뜨릴 수 있었으나 그 뿌리는 너무나 깊히 庶民의 마음속에 뻗히어 있었던 것이다. 改革運動은 期待하던 效果를 거두지 못하였다. 數없는 地方의 失業祭司들은 首都예루살렘으로 모여 들었다. 이 祭司群의 生活을 保障하려면 不得不 祭物을 많이 받아 들여야 할 것이며 祭物이 불어나려면 儀式의 必要를 高潮하고 律法과 聖殿에 對한 狂信的 態度를 助長하여야 할 것은 當然한 추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宗敎는 또 다시 儀式과 미신에 빠져서 그 道德的 生命은 窒息狀態에 들고 말았던 것이다.

[6]

예레미야의 瞑想이 이 宗敎改革의 隨落에 미쳤을 때 그의 가슴은 極度로 침울하였다. 申命記法典이 아무리 훌륭하고 여호와의 聖意에 符合된다 할지라도 因緑없는 百姓들은 마치 戰場에서 날뛰는 말처럼 걷잡을 수 없이 제 마음대로 달아나고(8:6) 간교한 書記官들은 그들의 거짓 붓을 들어 祭物의 種類만 添記하고 있다.

民衆은 날로 聖殿과 律法에 對한 미신으로 빠져 들어가고 欺瞞과 犯罪가 兄弟사이에 公公然하게 늘어가되 저들은 ‘토라(律法冊)가 우리에게 있으니 平安은 우리의 것이라’고 壯談한다.

聖殿은 바알의 祭壇을 代身하여 ‘物神’이 되고 律法은 바알을 代身하여 偶像이 되어간대도 過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고요한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는 預言者的 義憤에 못이겨 이렇게 부르짖었는가 한다.

“어떻게 너희가 말할 수 있겠느냐! 우리는 智慧있노라
여호와의 법전(Torah)이 우리에게 있노라고
보아라 書記官들의 거짓 붓이
이것을 거짓되게 하고 말았다.”

當時에 記錄된 여호와의 法典이라면 申命記밖에 없었을 것이며 이것이 예레미야가 申命記 運動에 對한 一種의 失望을 말한 것이라 함은 그리 不當한 論斷이 아닐 것이다.

[7]

이러한 危機에 므긷도로부터 悲報가 날라왔다. 다윗후에 처음보는 明君 요시야王은 棺속 옛사람으로 궁중에 돌아오게 되었다. 공포와 混亂, 음산과 미신, 首都의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웠다.

나훔의 니느웨에 對한 預言이 成就된 것을 본 거짓 預言者들은 이사야의 ‘시온 불가침’의 預言을 狂信하고 오히려 樂觀的 預言만 말하고 있었으나 참된 預言者에게는 오직 慘劇만 豫感되었었다.

悲劇의 王子 여호와 아하쓰, 새 임금 여오야김, 시온의 기울어지는 王業은 走馬燈같이 展開되었다. 그러나 事態는 오직 이 悲嘆의 預言者에게 무거운 짐을 하나씩 둘씩 더하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오- 내 머리가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샘(泉)되었던들!
내 百姓의 殺戮을 爲해
밤과 낮을 울고나 지낼 것을”

悲嘆이 그 極에 達한 때 그는

“오- 내가 저 사막에 길손의 居處나 가졌던들
차라리 내 百姓을 떠나
아주 가 버리고나 말 것을”

이 悲痛은 萬代를 通하여 뜻있는 이로 하여금 눈물없이는 읽을 수 없게 하는 深刻한 場面의 하나이거니와 그렇다고 그가 아주 주저앉은 것은 勿論 아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서광이 비치며 새로운 힘이 생기기 始作하였다. 이 말할 수 없는 苦痛은 새 眞理의 탄생을 爲한 괴로움이었던가 한다. 그는 이 申命記運動에 對한 ‘幻滅의 悲哀’랄까를 通하여 儀式主義의 아주 無意味한 것과 여호와 宗敎와 道德生活의 絶對不可分的 關係와 여호와와 그 禮拜者와의 사이에 있는 ‘言約’의 精神化에 한 躍進的 理解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8]

그에게는 다시 한번 일어나 싸움할 때가 왔다. 그는 聖殿門 어구에 서서 儀式主義와 聖殿狂信者들을 向하여 가장 날카로운 宣言을 내렸다.

“여호와가 말씀하시기를 이런 잘못 引導하는 말을 믿지말라 ‘여호와의 聖殿,
여호와의 聖殿, 여호와의 聖殿이 이것이라’고… 무엇
이란 말이냐. 도적질하고 殺人하며 姦淫하며 盟誓하며
바알에게 祭祀하고 그리고서는 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는 救援을 얻었다고 - 이런 가증한 일을
犯하려고! 너희는 내 집을 强盜의 소굴로 여기느냐”

이 勇敢한 挑戰은 勿論 貧心이 가득한 王과 祭司들이며 迷路에 든 狂信輩들의 激怒를 샀을 것이다. 特히 그는 아직도 預言者로서의 權威가 確立되지 못한 初期이었음으로 조소 능욕 비난의 소리가 公으로 私로 그에게 퍼부어졌을 것이며 어떤 者는 그의 첫 宣言인 北方으로의 兵亂이 成就 안된 것을 들어 증거삼아 非難도 했을 것이다.

[9]

이렇게하여 當時의 指導階級과 正面衝突한 그는 받은 것이 오직 凌辱과 冒瀆이었다. 東洋人의 軟한 感情을 가진 그는 또 다시 疑惑과 苦憫에 잠기게 되었다. 그가 믿는 여호와는 惡을 罰하고 善을 賞하는 全能하고 義로우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惡人의 勢力은 善을 누르고 뻗쳐 나가는 데, 오직 하나 여호와의 使者인 그는 홀로 웃음거리 밖에 되는 것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그의 마음의 振子는 멀리 그의 出生에까지 돌아갔다. 왜 내가 태어났느냐.

“너를 배안에 形成하기 前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그의 胎에서 나오기 前에 내가 너를 聖別하였다.”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아-얼마나 큰 祝福이냐. 그러나 지금까지의 生活은 어떠한가 悲哀, 嘲笑, 凌辱의 연쇄가 아닌가. (20:7, 8參照)

“‘咀呪’받아라 내 난날-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은
祝福에서 떠나라.”

“내가 오늘 너를 세워 - 鐵기둥 구리담이 되게 하리니 - 저희가 싸우나 이기지 못하리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음이니라.”

이것이 預言者로서 召命받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實狀은 어떠한가. 여호와의 말씀은 끊임없는 恥辱을 招致한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여호와는 自己가 모독을 받고 自己의 使者가 恥辱을 當하게 하시기 鳥하여 預言者를 세우셨는가? 萬無한 일이다. 그러면 차라리 預言을 그만두자. 그리하여 여호와에게 辱을 돌리지않고 그의 使者에게 부끄러움을 더하지 않고 百姓들에게 죄를 더하지 않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속이셨소이다. 여호와여! 그리고 나는 속았오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神으로 불타는 그의 內的 衝動은 마치 피어 오르는 숯불을 가슴에 담고 뼈속에 넣은 것같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렇게 자기 衝突과 矛盾에 苦憫하는 그는 여호와를 부르며 모든 惡法에 對한 복수를 懇願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正義感을 만족시키고 따라서 苦憫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自然人의 本能的 衝動을 苦執함으로 因하여 義의 문제를 解決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안될 일이다.

때가 지남을 따라 그에게는 다시 고요한 理性과 거룩한 양심이 恢復되었다. 그의 批評의 눈은 다른 사람에게서 떠나 自己에게로 옮기게 되었다. 果然 나는 絶對로 義롭고 다른 사람만이 不義한 것이었는가 나의 理性은 여호와의 秘義와 窮極의 目的까지도 解得할 수 있을만치 맑아지고 깨끗한가. 그리고 내 마음의 척도는 여호와의 마음을 잴만치 正確하고 또 거룩한가. 그가 自己 마음의 깊은 속을 고요히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謙遜하게 머리를 숙였다.

“무엇보다도 믿지 못할것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病들었나니
누가 能히 얄리오.”

마음을 살피고 생각을 시험하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라(17:10 參照)고 그는 謙遜하게 여호와앞에 꿇어 업디어 그의 祭壇위에 赤裸裸한 自己의 生活을 펼쳐놓고 祈願을 드리었다.

“당신은 나의 찬송이오매. 고쳐주옴소서 여호와여!
그리하면 내가 낫겠나이다.
구원해주옵소서.
그리하면 내가 救援받겠나이다.”

그는 이제 그의 性格과 私生活에 貴한 것과 賤한 것이 섞여 있음을 自認하였으나 豫言者的 公生涯에 있어서는 決코 私意로 한것이 없음을 여호와 앞에 呼訴하며 그의 憐爛을 求하게 되었다.

“내 입에서 나온말이 당신앞에 그대로 놓여 있소이다.
나에게 두려움이 되지 말아 주소서.
患難때에 당신은 나의 避亂處로소이다.”

이렇게 하여 겟세마네의 쓴잔은 지나갔다. 여호와의 慰勞와 憐憫은 그에게 다시금 이슬같이 내리었다.

“네가 萬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돌이키리라. 그리하여 내 앞에 서게하리라.
네가 萬一 값싼 것이 섞이지 않은
貴한 것을 말한다면
내 입같이 네가 되리라”

“내가 너를 이 百姓들 앞에 銅城같이 굳세게 하리니
저희가 너를 向해 싸울지라도
이기지 못하리라.”

[10]

自然의 衝動이 聖靈으로 揮化된 거룩한 人格은 참으로 銅城같이 움직임이 없었다. 그는 또다시 聖殿에 서서 罪惡으로 가득한 聖殿과 首都에 내릴 審判을 宣告하였다. (26:46)

祭司와 民衆은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하고 외치며 ‘一濟히 몰려들었다’(九절) 그러나 이제 그는 感傷的 詩人 노릇하기에는 너무나 굳세고 높았었으며 世人은 그의 敵노릇하기에는 너무나 弱했었다. 그는 고요한 그러나 確信에서 나오는 힘있는 목소리로

“보아라 나는 여기 너의 손에 있으니 너의 願하는대로 무엇이든지 하여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죽이면 한 무고한 피를 너희 머리위에, 또 이 都市에 더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하리라. 이는 眞實로 여호와가 내려보내셔서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해 들린 까닭이다.”(26:14, 15)고 對答하였다.

[11]

北方으로부터의 兵禍를 豫言한지 二十年, 아직도 그 成就를 보지못한 그는 거짓말쟁이. 믿지못할 豫言者라고 嘲笑와 凌辱을 밥먹듯 하고 있었다. 들리는 말은 “어디 여호와의 말씀이 있느냐 곧 臨하게 해 보아라”(17:14) 하는 愚弄의 소리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을 疑心하지 않았다. 때는 二十年을 지난 주전 605~604년 갈디아와 애급의 두 獅子는 앗시리아란 죽은 고기덩이를 가운데 놓고 갈게미쉬에서 最後의 決鬪를 試하였다. 그리하여 後者의 패주와 함께 北方의 끓는 가마는 마침내 地中海가로 넘쳐 쏟아지게 되었다. 北方兵禍의 豫言이 여호와의 말씀되기에 不足한 것이 무엇이냐? 그리고 聖殿과 首都가 滅亡 하리란 豫言이 妄發이라던 者들이 지금 어디 있느냐. 이때부터 예레미아는 得意의 豫言者이었으며 따라서 여호와에 對한 確信이 날로 더하고 國家將來에 對한 통찰이 더욱 明哲하게 되었다.

[12]

몰려치는 暴風雨가운데 있어서 그는 참으로 鐵住, 銅城같은 存在이었다. 不義 橫暴한 王을 책망하며 썩어지고 俗化한 祭司들을 꾸짖으며 自意로 豫言하는 거짓 豫言者들과 싸우며 귀머거리 같은 庶民들을 爲해 嘆息하며 淺見短慮의 政客을 敎導하는 피와 눈물로 짜내인 多端한 平生도 이제 허사였던가 주전 587년 反逆의 族屬유다는 北方으로 잡혀가고 여호와의 新婦같은 聖都는 荒廢한 옛터만 남기게 되었다. 暴風雨는 지나갔다. 막은 닫히었다.

[13]

그윽히 屬望하던 異國의 治者 그달리아가 미즈바에서 凶劒에 넘어진後 이 老豫言者의 靈的 經驗은 그 절정에 達했으니 곧 ‘새 言約의 豫言’이 그것이다.

“내가 내 法律을 저희속에 두고 저들의 마음속에 새기리라, 그리고 나는 저희의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 百姓이 되리라, 그때는 각사람이 서로 또 각기 그 이웃을 向하여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적은 者로부터 큰 者까지 다 나를 앎이라. 내가 저희 不義를 容恕하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리라”

[14]

이리하여 不純한 儀式的 國家的 宗敎는 道德的 靈的個人的 宗敎로 淨化되어서 그리스도의 길을 豫備하였다. 우리는 이제 神의 遠大한 經輪을 讚嘆함과 同時에 不世出의 大豫言者 예레미야의 一生을 앙모하여 마지 않는다.

[김재준 전집]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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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기 제2권] (50) 교권에 민감한 서울의 중견목사들과 한국신학대학 – 서울의 중견목사들 작전
장공 | 2017.08.21 | 추천 0 | 조회 782
장공2017.08.210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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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기 제2권] (49) 교권에 민감한 서울의 중견목사들과 한국신학대학 – 휴전에의 기류
장공 | 2017.08.21 | 추천 0 | 조회 482
장공2017.08.210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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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傳記的으로 본 예레미아의 內面生活
장공 | 2017.08.18 | 추천 0 | 조회 2161
장공2017.08.180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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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기 제2권] (48) 忙中閑 – 상철ㆍ신자 결혼
장공 | 2017.08.18 | 추천 0 | 조회 600
장공2017.08.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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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기 제2권] (47) 忙中閑 – 정대위 자리에 김정준 들어오고
장공 | 2017.08.18 | 추천 0 | 조회 474
장공2017.08.180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