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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2권] (68) 경동교회의 재건 – 경동교회 재건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30 09:46
조회
702

[범용기 제2권] (68) 경동교회의 재건 – 경동교회 재건

경동교회 건물과 기지는 원래가 천리교재단 소속이었으나 이미 건축된 건물은 2층으로 된 기숙사 뿐이었고 예배당 건축 예정지는 빈 터만인 공간으로서 말하자면 쑥밭이었다.

우리는 기숙사 2층을 넓혀서 약 200명 앉을 집회실을 만들고 거기서 예배했다. 회중이 갑작스레 늘어서 앉을 자리가 없게 된다. 좌석도 문제지만 건물 자체가 그 무게를 감당할 것 같지 않았다.

경동교회 내력을 말한다면, 해방된 해인 1945년 겨울에 송창근, 한경직, 김재준은 각기 자기 교회를 마련하고 거기서 설교하기로 했던 것이다. 송창근은 동자동 천리교 본부회당에서 선교와 목회를 주 목적으로 한 ‘바울교회’, 한경직은 영락정 천리교경성제일교회자리에서 지금의 ‘영락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이름은 ‘베다니교회’라 했다. 이북 피난민들의 마음의 보금자리라는 뜻에서였다. 그리고 지금의 경동교회는 제일 먼 장충동 1가에 있는 천리교 숙사에서 야고보 교회란 이름으로 내가 맡았다.

지성인들과 학생들을 위한 특수교회를 지향한 것이었다.

이 세 교회는 1945년 12월 첫주일 같이 전투를 개시했다. 설교 내용과 목회 방법도 그 특징이 같지 않았다. 송창근은 다정하고 재치있고 설교도 능숙하고 정치성도 있었다.

새 교인이 찾아오면 정답게 인사하고 이름을 묻는다. 꼬마 두 셋을 올망졸망 데리고 온 부부에게는 그 아이들 이름까지 묻는다. 다음 주일에 또 온다. 송목사는 그 아이들 이름까지 부르며 쓰다듬어 준다. 그 숱한 새 교인들의 이름을 단번에 기억해 버린다. 외로운 인간들이 위로 받고 마음 붙일 것은 사실이다.

한경직은 이름날 설교자다. 이북 피난민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그리고 거기서 안식처를 찾는다. 고향을 떠났지만, 거기서 ‘고향’을 느낀다. 피난 보따리와 함께 고향도 같이 온 셈이다. 고향을 ‘떠난’게 아니라 고향을 ‘옮겨’온 것이었다. 몇 달 안되어 서울서 제일 큰 교회가 됐다.

김재준은 ‘인텔렉츄얼’을 상대로 복음을 증거한다. 그 설교는 설교라기보다도 ‘강연’이었다. ‘인텔렉츄얼’은 비판적이다. 자기 ‘이성’(理性)에 납득이 가지 않는 한,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생활’을 본다.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는 예수의 말씀을 그들은 옳게 여긴다. 신약성경 가운데서 이 점을 가장 강조한 것이 ‘야고보’였다. “생활로 나타내지 못하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혀만 놀리면 뭣하느냐? 오히려 혀에 자갈을 물려라”, “어떤 형제가 그 날의 일용할 양식도 없는데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불리 먹어라 하고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 그 말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야고보 2:14-17).

그리고 야고보 5:1-6에 있는 부자에 대한 경고같은 몸서리 칠만큼 신랄하다.

말하자면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신앙’이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장공’ 자신의 주장이었기에 교회 이름도 ‘야고보 교회’로 된 것이었다.

마침, 강원룡이 월남하여 학생운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선린형제단’이란 Brotherhood를 만들고 거기서 합숙하며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천리교에서 두고 간 북과 비파 등 악기를 울리면서 ‘플랭카드’를 가슴과 등에 걸고 거리를 행진한다. 아이들이 모여든다. 주일학교는 그런대로 되어간다. 그러나 어른들도 모인다. 저절로 ‘교회’가 된다.

아직 학생티를 벗지 못한 강원룡으로서는 어른 에배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피난목사들을 청했지만, 설교가 그 교회의 특성에 맞아들지 않았다. 나는 그때 신학교육 개혁운동에 바빠서 틈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일 강단만은 맡아줘야 하겠대서 동자동서 장충동까지 아침, 저녁, 수요일밤, 식구들을 데리고 걸어갔다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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