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02-2125-0162
changgong@hs.ac.kr

장공의 글

[범용기 제4권] (9) 상한 갈대 – 될 번하다 안 된 것도 “은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16 15:31
조회
1031

[범용기 제4권] (9) 상한 갈대 – 될 번하다 안 된 것도 “은혜”

내가 바로 20대를 넘어선 때, 함북 경성도청 서기로 있는 내 이질(姨姪)로부터 나진항 토지구매 교섭이 왔다. 어떤 “만철”(南滿鉄道会社) 이사가 나진개발 설계도를 비밀입수한 것을 계기로 한 몫 보자는 욕심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그는 함북도청에 근부하는 내 이질에게 나진 토지매수를 위임했고 내 이질은 웅기있는 내게 부탁했다. 나는 유능한 젊은 나진 친구를 내세워 몇주일 안에 5, 6십만평 해변가 억새밭을 헐값에 샀다. 이동증명까지 깔끔하게 마치고 거간료도 톡톡히 받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뭐냐? 팔자에도 없는 토지거간이나 한 건 해주고 나딩굴어버리느냐? “바보같이!”

그래서 어느날 그 거간 동료 청년과 상의했다. “나진 뒷산, 널평한 완경사 초장이 ‘유휴국유지’로 버려져 있다는데 그걸 우리 두 사람 이름으로 임대차 계약을 해두며 어떠냐?” 했다. 수속은 그 청년이 맡아서 동장, 구장, 면장 등 관계관서에 벌찐 돌아다녔다. 그래서 계획대로 다 만들어 왔다. 후일에 “불하”할 경우에는 임대계약자에게 우선권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불하료도 싸게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이미 받은 합법적인 거간료를 밑천으로 급행열차처럼 서울 향해 달렸다. 때가 3.1운동 다음해라, 그 조수가 나를 밀어냈다고도 하겠다.

나는 여름 방학에 돌아왔다. 그 때, 내게는 “돈” 같은 게 문제될 수 없을 정도로 “고매(?)”했다. “돈”은 “금”이 아니고 “똥”이다 하는 식이었다.

나는 귀향하여 경흥읍교회를 예방했다. 위에 언급한 “나진” 청년은 그때 경흥군청에 취직해 있었다. 그 땅 임대차 명의인을 자기 이름 단독으로 하는데 동의해 달라고 한다. 말하자면 Co-Signiner로서의 내 이름을 빼고 자기 혼자 이름만으로 임대차 계약을 갱신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동안의 임대료도 자기가 단독으로 납입해왔고 그 액수도 적잖다는 것이었다. 내게는 그만한 내 몫을 단번에 추불할 능력도 없었다. “에따, 먹어라”하고 도장 찍었다. 그날 밤, 그는 푸짐한 술좌석을 마련하고 나를 초대했다. 나는 거절했다.

그 무렵 백두산 목재관계로 일약 함북의 재벌 반열에 끼어든 청진의 김기덕이 나진 땅을 매점하기 시작했다. 약삭빠른 이 나진 청년은 그 땅 임대차 권리를 상당한 고가(高価)로 그에게 넘겨줬다. 이 청년은 앉은대로 “돈벼락”을 맞은 셈이다. 그 결과로는 주색잡기에 패가망신이란 패가 붙고 말았다.

오랜 후일에 나는 미국유학에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일할 나이다. 잠시 “창꼴집”에 들렸다. 아버님께서 물으신다.

“너 뭣 하려느냐?”

“교육사업 하렵니다.”

“일본놈 교육 말이냐?”

“내 나름대로의 교육 말입니다.”

“너 그 때, 계약했다던 나진 땅은 어떻게 됐니?”

“그건 자진 포기했습니다.”

“일 하겠다면서 굴러온 돈을 쫓아버렸단 말이냐? 세상 물정을 알아야 일 할 수도 있을게 아니냐?”

그리고서는 일체 말씀이 없으셨다.

허기야, 미국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거액의 “애카운트”가 무조건 내 이름으로 입금된다! 아버님 말씀대로 “행운아”임에 틀림없겠다. 그러나 그 “행복”이 “축복”일지는 의문이다. 심상팔구는 나를 빠지게 할 “함정”이었을 것이다. “은혜”란 빈 마음에 돌입하는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다. 고생하며 일하는데 “은혜”가 있다.

[1981. 5. 4.]

전체 966
번호제목작성자작성일추천조회
공지사항
[귀국이후] (1) 머리말 - 범용기 속편
장공 | 2019.02.14 | 추천 0 | 조회 8394
장공2019.02.1408394
공지사항
[범용기 제6권] (1601) 첫머리에
장공 | 2018.10.29 | 추천 0 | 조회 8863
장공2018.10.2908863
공지사항
[범용기 제5권] (1)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설날과 그 언저리
장공 | 2018.10.01 | 추천 0 | 조회 8303
장공2018.10.0108303
공지사항
[범용기 제4권] (1) 序章 - 글을 쓴다는 것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9063
장공2018.04.1609063
공지사항
[범용기 제3권] (1) 머리말
장공 | 2017.10.10 | 추천 0 | 조회 9482
장공2017.10.1009482
공지사항
[범용기 제2권] (1) 머리말
장공 | 2017.08.02 | 추천 0 | 조회 9245
장공2017.08.0209245
공지사항
[범용기 제1권] (1) 첫머리
changgong | 2017.06.26 | 추천 0 | 조회 10667
changgong2017.06.26010667
539
[범용기 제4권] (11) 상한 갈대 – 몰두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740
장공2018.04.160740
538
[범용기 제4권] (10) 상한 갈대 – 難産(난산)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857
장공2018.04.160857
537
[범용기 제4권] (9) 상한 갈대 – 될 번하다 안 된 것도 “은혜”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1031
장공2018.04.1601031
536
[범용기 제4권] (8) 상한 갈대 - 空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1187
장공2018.04.1601187
535
[범용기 제4권] (7) 序章 - 원형(Prototype) - Korea의 원형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1530
장공2018.04.1601530
534
[범용기 제4권] (6) 序章 - 원형(Prototype) - 크리스챤의 원형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1994
장공2018.04.1601994
533
[범용기 제4권] (5) 序章 - 원형(Prototype) : 인간의 원형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2682
장공2018.04.1602682
532
[범용기 제4권] (4) 序章 - 자유라는 것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3470
장공2018.04.1603470
531
[범용기 제4권] (3) 序章 - “雜草(잡초)”의 단상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4465
장공2018.04.1604465
530
[범용기 제4권] (2) 序章 - 短章이라는 것
장공 | 2018.04.16 | 추천 0 | 조회 5701
장공2018.04.1605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