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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4권] (17) 상한 갈대 – 버려진 헌 신짝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16 17:51
조회
889

[범용기 제4권] (17) 상한 갈대 – 버려진 헌 신짝

“헌 신짝 버리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돌작밭, 모래밭, 바위틈, 흙탕길, 눈 속, 얼음 위를 “발바닥”이 되어 발바닥을 감싸왔다. 그러다가 기진맥진 낡았다. 벗어 팽개치고 새 신을 신는다. 헌신짝은 길가 어느 풀섶 속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지나간 가지가지를 되새긴다. 그리고 지금의 가지가지를 그것과 맞춰본다. “낡았으면 얼마나 낡았고, 싱싱하면 얼마나 싱싱한다?”, “해 아래에 진짜 ‘새것’이 있을까?”

65세 정년이라, 늙은 교수는 은퇴한다. “은퇴”가 반드시 “버림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흔히는 “헌 신짝” 대접을 받는다.

사실인즉 그 때쯤부터가 원숙한 “결실계절”일 것이다!

지금부터 약 40년전 이야기다. 어느 노인 목사님이 그가 오랫동안 섬기던 교회 사택에 있으면서 임시로 그 교회강단을 맡았었는데 젊은 새 목사가 위임돼왔다. 그것은 동지섯달 강추위 날이었다. 노인 목사가 있든 없든, 이 사택은 내 사택이라고 이삿짐이 마구 굴러든다. 늙은 목사는 할 수 없이 밀려나갔다. 그는 몇되박과 허주레한 봇다리 몇 개를 로터리 큰 길가에 옮겨 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부인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고 그림자만이 동무였는데 서뿌리 들어오시랬다가 청해 “지는”, “짐”이 될까봐 오라는 교인도 없었다.

“헌 신짝”은 길가에 외롭다. 그러나 할 말이 노상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잘 참았다. 그는 후일에 대한민국 부통령이 됐다.

옛날 어떤 이가 평지에 아홉길 산을 쌓아 올리는데 마감매치에 쓸 흙 한짐에 지쳐 그만 쓸어졌다. 산은 될뻔 하다 말았다. 되긴했지만 다 되지는 못했다. 그는 산밑에 버려진 “헌신짝”이 됐다.

만일에 어떤 젊은이가 있어 흙 한짐 지고 거뜬이 올라가 산 몰골에 마감을 맺어주고서 훨훨 제 갈길을 갔다면 그건 기특한 일이겠다. 그러나 그 젊은이가 너무 부풀어서 “자 내가 만든 이 산을 보시오! 이건 내가 만든 산이요!” 한다면 그 전 세대는 서운한 역정을 참기 힘들 것이다.

서울의 한국신학대학은 총회에서 버림 받은 “돌”이었다. 푸른 언덕, 푸른 숲 속에 하얀 배움의 전당이 섰다.

그 “모퉁이 돌”에 누가 뭐라고 쓸까? 나는 동지 섣달 길가에 외로이 버려졌던 교회의 “버린 돌”이 “한신대 모퉁이 돌”에 글씨를 쓰셔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신” 창건의 역사도 거기에 엉켜 덩어리가 됐다.

“匠人所葉之石(장인소엽지석) 成爲屋甬之首石(성위옥용지수석)”

“장인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에 요긴한 돌이 됐다”(베드로전서 2:6)

지금도 수유리 한신본관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다.

[197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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