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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1033] 4ㆍ19는 남는다 - 1972년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19 02:03
조회
854

4ㆍ19는 남는다
(요한 12:24-25)

유대교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물론 유대교에 개종한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뵙게 해 달라고 예수의 제자 빌립에게 청했다. 그래서 빌립은 동료 안드레와 함께 예수를 찾아가 그 말을 전했다.

헬라 사람들이 왜 예수를 뵈려고 했을까? 그 동기가 씌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지 제멋대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그들에게 대답한 내용으로 보아서 어느 정도 추리할 수는 있게 된다. 이 헬라인들은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도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모여온 수많은 유대인들의 예수에 대한 ‘까십’도 여러 가지로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헬라인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볼 때, 예수는 인류의 은인이요 결코 배척받고 죽음을 당해야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축제 중에 예수는 유대인들의 손에 잡혀 죽을 것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예수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로서 가능한 한 가지 길을 안출했다. 그것은 예수를 몰래 만나 이 위기에서 탈출시켜 유대 국경을 넘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교섭을 맡은 것이 이 헬라인들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내가 영광 받을 때가 되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그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예수가 죽지 않고 사는 것을 원하는 헬라 사람들에게 예수 자신은 죽어야 산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었다.

우리는 매년 4월이 올 때마다 4ㆍ19를 기억한다. 우리 한국에서의 민주역사는 짧다. 우리 역사는 민주보다도 전제 역사였다. 권위주의가 그 전통을 이루고 있다. 민주를 지향한 갑신정변도 수구당에게 실패했다. 그 후의 개화운동은 시기로 보아 너무 늦었다. 일제 시대는 전적인 암흑이었다. 그러나 1945년 8ㆍ15해방과 함께 남한만은 자유민주의 나라로 재쟁되었다. 3년간의 미군정시대를 지나 유엔 감시하에 부정 없는 총선거가 실시되고 자유민주 정권은 수립되었다. 그러나 첫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이 민주 한국보다도 자기의 장기 집권을 앞세웠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독재를 강화하여 ‘발췌개헌’이니 ‘사사오입’이니 하는 억지 정략으로 자유민주체제를 교살하고 형태만 남은 민주체제에서 다시 부정선거를 마음대로 꾸며 나갔다. 민주주의는 적어도 두 초석 위에 서 있다. 그것은 공명선거와 평화적 정권교체다. 그런데 선거를 부정으로 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유린해 버렸다면 민주주의의 설 자리는 없어진 셈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기회는 선거 때의 투표권 행사 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을 권력자가 제 욕심대로 조종하여 불법 부정한 선거를 치른다면 국민의 주권은 있으나 마나다. 모든 부정선거는 주권자에 대한 반역행위다.

이 때에 민주한국의 역사에 처음되는 피의 씨앗이 학생들에 의하여 심어졌다. 4ㆍ19학생혁명이 그것이다. 그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항쟁했다. 그들은 목숨을 던져 권력주의의 아성에 돌진했다. 흰옷 입고 동료의 시체를 나르면서 주검을 넘어 행진했다. 그들에게는 무기가 없었다. 오직 몸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는 전략이 없었다. 오직 정의가 있을 뿐이었다. 바리케트에서 탄환이 날아오는 대로 젊은 피는 민주한국의 역사에 심어졌다. 학생들이 그렇게 죽고 상하니 선생들이 나섰다. 선생이 나서니 시민이 나섰다.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대의 탱크가 나왔다. 그러나 해산할 줄 모르는 시민들로 모든 거리의 공간은 메워져서 탱크가 나갈 구멍이 없다. 이 인간들! 이 인간들은 탱크가 깔아 뭉개기에는 너무 많았다. 그리고 총검으로 무찌르기에는 너무 정의로웠다. 탱크도 정의와 자유의 친구가 되었다. 고립된 독재정권은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4ㆍ19의 의로운 피는 이 나라에 민주와 자유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오늘의 역사는 어떠한가? 민주를 향한 한국의 역사는 아직도 요원하다. 첫전통이 잘못 세워졌으니 그 물줄기가 그 방향을 흐를수록 수세는 더욱 강해진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역사의 법칙은 돌이킬 가망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권력은 짧으나 정의와 자유는 길다. 때로 숨어 흐르나 결코 죽지 않는다. 인간이 불의한 성공을 자랑할 때 하나님은 이를 심판한다. 인간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미래를 약속한다. 의를 위한 젊은 혼에게는 절망이 없다. 그들은 “죽었으나 믿음으로 지금도 말한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남은 자’로 남는다.

4ㆍ19의 젊은 혼들은 4ㆍ19탑 비석 속에 화석으로 남기에는 너무 약동적이다. 비석 속에 갇혀 제사 받기에는 너무 젊지 않은가? 거기 있는 무덤에 안주하기에는 너무 생명적이 아닌가? 4ㆍ19의 민주정신은 오고 있는 젊은 세대에 산 혼으로 맥박쳐야 한다. 무덤에서 나와 산 인간들 속에 혼으로 생동하고 혼으로 전승되어야 한다. 4ㆍ19의 사람들은 한국 민주역사에 영원히 ‘남은 자’로 남아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화 있으라, 거짓을 꾸미는 율법 학자와 바리새인들아,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저희가 예언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너희 조상들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종류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면하겠느냐”(마 23:29-33). 이것은 예수가 그 세대를 책망한 무서운 선고문이다. 이런 역사가 언제나 갱신될 것인가? 우리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책망해야 한다. 그리하여 ‘은혜로 택함받은 남은 자’로 우리 역사에 남아야 한다.

[197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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