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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1031] 4ㆍ19 정신 - 1972년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19 01:54
조회
797

4ㆍ19 정신

우리 생활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은 단체와 전체와의 관계입니다. 전체를 살리기 위하여 개체를 희생시키는 것이 소위 「전체주의」입니다. 그 전체주의는 불가피적으로 절대권을 가진 독재자를 요합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이 전체의 대표라는 것보다도 전체 자신이 됩니다. 「짐이 곧 국가다」, 「내가 곧 독일이다」 하는 식으로 됩니다.

개체를 살리기 위하여 전체를 희생시키는 것이 소위 「무정부주의」라 하겠습니다. 전체로서의 권력구조는 없을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개체위주의 말입니다. 그러나 그 개체가 악에로의 경향성을 불가피적으로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악정부도 무정부보다는 낫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사실상 무정부는 성립되지 못합니다.

개체의 자유를 살리면서 전체의 복지를 발전시키자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하는 시민이 합의에 의하여 자유하면서 복지사회적인 전체를 이룩하려는 체제운동입니다. 가능한 최선의 고안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나라를 건설하는 마당에서 자유민주체제를 채택한다는 것은 지극 당연한 의도라 하겠습니다.

4ㆍ19의 참 정신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유민주의 한국을 건설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나라는 어느 한 권력자가 독점할 나라가 아닙니다. 3천만 국민의 나라입니다. 말하자면 왕권은 군주나 독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전체 국민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국민이 나라의 최고 책임자를 뽑을 때 전 국민의 자유투표에 의하여 합의 여부를 판정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국민으로 말미암아 국민을 위하여 국민의 정부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행정실권이 어느 한 사람에게 위탁되면 그 한 사람이 악한 권력욕에 유혹되어 국민을 위한 자기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국민이라는 방향으로 국민을 강압ㆍ농락ㆍ기만ㆍ조종하여 국민주권을 횡령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행정ㆍ입법ㆍ사법의 3권분립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3권이 서로 견제하고 서로 감시하며 서로 조절하여 나라를 평화롭고 유효하게 다스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노정을 거쳐서 정상적인 민주정부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국민주권을 법에 따라 위탁받은 그 최고 책임자가 그 권력을 악용ㆍ남용 또는 오용하여 자기 집권의 항구화하고 민권을 탄압하고 사법부까지 자기에게 예속시키는 악마적인 횡포를 감행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국민이 총궐기하여 타도해야 하는 것이며, 간단없는 긴장과 투쟁으로 민주수호에 진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4ㆍ19는 이런 투쟁의 역사적 첫 사건이었으며, 금후에도 계속하여 싸워야 할 자유민주 국민의 선봉에 선 투사들의 절규였습니다. 4ㆍ19는 진행중의 사건입니다.

인간은 대체로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과거를 지향하여 현재에 안정하려는 타입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향하여 부단히 전진하려는 타입이라 하겠습니다.

4ㆍ19는 물론 후자에 속합니다. 과거를 지향하여 현재에 안정하려는 사람들은 기성 집권층의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전에는 혁명을 한다 하고 기성권력에 도전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집권한 다음부터는 이미 장악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장기화하는 데 몰두하기 때문에 미래지향형의 부단한 혁명운동에 대하여는 불안과 혐오와 기피 또는 공포를 느낍니다. 자기의 집권에 동요가 생길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적이 되고 안전제일주의가 되고 과거 미화정책이 되는 것입니다.

4ㆍ19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서도 대체로 같은 현상을 발견합니다. 4ㆍ19탑을 세우고, 4ㆍ19묘지를 만들고, 4ㆍ19 공원을 만들고, 4ㆍ19봉안전을 지어 4ㆍ19사건을 과거화, 미화, 지역화하는 것입니다. 기념한다는 것은 과거화하는 일입니다. 그 어느 때에 그 어느 사람들에 의하여 이런 사건이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들이었느니라 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지나간 사건이요, 그 인물은 과거의 인물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높이 모십니다. 그들의 혼을 진안합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시키고 평안히 잠들게 한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그들을 인간신으로 승격시켜서 그들의 혼을 봉안소에 모시고 거기서 우리의 참배를 받게 합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거기에 안주하여 거리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아니할 것이고, 지나간 자기들의 업적이 인정된 데 만족하여 다시는 설레지 않게 될 것이다 하는 방향입니다.

그러나 4ㆍ19사건, 4ㆍ19당시 희생된 젊은이들은 그런 대접을 생각한 일도 없으며 그런 것이 4ㆍ19 정신의 수확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4ㆍ19 탑 비석 속에 화석으로 남기에는 너무 약동적입니다. 봉안전에 위패로 앉아 있기에는 너무 실상적입니다. 그들은 그윽한 향연 속에서 제사를 받기에는 너무 젊습니다. 그들이 공원 무덤에 안주하기에는 너무 생명적입니다. 이런 행사에 대할 때 예수님의 신랄한 논고를 연상하게 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29-33).

예언자란 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회의 불의를 규탄하다가 해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집권자에게 해를 입어 죽은 다음에는 이 예언자들을 치켜올리고 그들의 무덤을 쌓고 비석을 세우고 해서 그 예언자들을 숭배하는 체 합니다. 그리하면서 자기들이 그 때 그 시대에 살아 있었더라면 예언자를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그들 자신이 예언자보다 더 큰 信者(신자)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장본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종류, 지옥의 자식들이라고 호되게 꾸짖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4ㆍ19를 미화하고 그들의 혼을 과거에 매장하려는 전략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비석을 세우고 기념한다는 그 자체보다도 그 배후의 정치적 흉계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4ㆍ19의 민주정신을 혁명과 결부시켜서 4ㆍ19혁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혁명이란 것은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자기 또는 자기 그룹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는 집권만 하면 당장에 유토피아를 실현할 것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번 정권 맛을 본 다음에는 그 정권유지에 정신이 팔려서 온전하게 비혁명이 됩니다. 다시 또 혁명을 운위하는 놈은 엄단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혁명은 다시 과거지향적인 현상유지주의가 되며, 자유를 위한 혁명이 자유를 탄압하는 정권으로 변신합니다. 민주를 위한 혁명이 독재를 위한 사동으로 타락합니다. 이념을 세우기 위한 혁명이 폭력만능주의로 횡포합니다. 자본산업사회의 모순을 시정한다던 맹약이 자기 그룹의 탐욕주의로 전락합니다. 부정부패를 일소한다던 그들이 사악 신악을 낳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폭력혁명이 유토피아를 가져온 실례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심한 속박과 잔학이 산출되는 것이 상례라 하겠습니다.

4ㆍ19는 이런 의미에서의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4ㆍ19는 집단수단으로서의 혁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기가 없었습니다. 다만 「몸」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략이 없었습니다. 다만 「정의」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피는 순수했습니다. 그들의 피는 민주한국에 씨앗으로 묻힌 것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혹역혹, 「바람을 심어 회오리 바람을 거두는」식의 혁명과 4ㆍ19는 혁명이라기보다도 의거입니다. 정권욕과 직결되지 아니한 혁명,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 정열입니다. 이것이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다만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싸워야 합니다. 폭력 아닌 의의 투쟁, 그것은 십자가를 연상합니다.

4ㆍ19사건에서 그들은 자유민주를 위한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거리에서 학원에서 혼으로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제사받는 위패가 아닙니다. 산 혼입니다. 지금 살아 움직이는 민주 청년학생들은 먼저 간 그들의 혼에 몸을 빌려 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당연히 빌려줘야 할 것입니다.

4ㆍ19의 참 정신은 한국 자유 민주화를 위한 온갖 진지한 노력 속에서만 발견될 것입니다. 그들의 깃발이 움직이는대로 민주한국은 행진할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민주역군들이기 때문입니다.

[197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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