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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4권] (103) 野花園餘錄(其四) - 인간과 이래민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9-27 09:37
조회
818

[범용기 제4권] (103) 野花園餘錄(其四) - 인간과 이래민

‘민족’이 있기 전에 ‘인간’이 있었다. ‘나라’가 있기 전에 ‘인간’이 있다.

해방(1947. 8. 15) 이후에 쏟아져 나오는 동북아, 특히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관계역사서들을 읽어보면 그 때에는 일본이란 나라 이름이 없었다. ‘나라’가 형성되기 전이니까 ‘이름’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은 상식이다. 다만 지방에 ‘추장’ 비슷한 권력자가 있었을 뿐이다. 중국에서는 통털어 ‘동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 두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편의상 ‘왜’ 족이라고 불렀다. 문화적으로는 지금의 ‘원시인’ 축에 들겠지만 ‘인간’으로는 인정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쟁파전 때문에 모두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게 지냈다. 위로 왕족이나 귀족으로부터 아래로 공인(工人), 기술자, 그 밑바닥에 깔린 서민층에까지 어딘가 새 하늘, 새 땅에 옮겨 살고 싶어졌다.

북은 만주나 연해주까지도 개척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고구려 등쌀에 살아날 껏 같지 않고, 중원이라는 대륙은 고도의 문화를 가진 ‘종주국’이니, 거기 섞여 뻐졌하게 행세할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해를 건너가면 정치적으로나 문화와 산업 방면에서 아직 황무지로 남아 있는 고장이 있다. 바로 눈썹 아래 대마도가 보인다. 미개하다지만 ‘인간’들이 산다. 국가라는 총괄적인 기구가 없으니 ‘역사’란 것도 없다. 거기 가서 개 나라를 세우자, 백제와 고구려는 같은 ‘부여족’이다. ‘신라’는 남내족과 북방족의 혼성족이지만, 이제는 같은 민족임을 자타가 의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형제끼리서 밤낮 아웅다웅 유혈극만 반복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저 좁디 좁은 동쪽 바다를 껑충 뛰어 건너 거기에 ‘신라’의 분국, 백제, 고구려의 분국을 세우고, 그 고장 본래의 인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 새 나라의 새 국민을 만들자. 그래서 ‘나라만들기’를 시작했다. 글을 가르치고 종교를 믿게 하고, 도교와 불교와 유교와 함께 그 문화를 전수했다. 고관대작도 되고 불교의 거대한 사찰도 세우고 대사님들을 본국에서 초빙해 오기도 했다. ‘나라만들기’ 공작에 영광과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수월하지는 않다. 나라 만들기 본거지를 구주(九州) 사국의 도서 지방에서 관서평야의 넓은 벌판에로 옮겼다. 더 안전하고 포근한 분지인 ‘나라’로 도읍을 옮겼다. 필자도 가봤지만 ‘나라’는 본국의 경주나 ‘서울’을 큰 테두리로 잡은 것 같다. 진짜 이래(移來)한 민족의 ‘분국’이랄 수 있었던 지금의 ‘고마우리’ 즉 고려촌과 그 지방 고시 야마도의 서울인 아스카 지방의 히노구마 17현은 한 두 집의 타성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가 한국 이래민이었다고 한다. 근년에 발굴된 고총도 ‘신라’의 고분과 같은 형태지만 그 부는 평야에 산재한 거대한 고분군은 왕권을 좌우하던 이래민 건물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라, 백제, 고구려 이래민이 만든 분국이었다는 실감을 갖게 한다.

‘신사’와 ‘신궁’이 간데마다 있고, 고려촌에서 고려신사가 있다. 그건 고향과 선조들, 특히 가문을 떠나 낯선 딴 나라에서 자자손손 뿌리박고 살려니 후손들이 조상없는 부평초 같이 천대받거나 ‘외족화’할 것이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제사지내기도 어렵고 오래 가노라면 흐지부지 저절로 없어지고 말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한 고장에 조상들 위패를 모신 사당을 짓고 일년에 한두 번 제전을 거행하므로써 조상숭배를 간소화한 것이라고 본다. 진짜 ‘나라 만들기’에 주동역할을 했던 큰 인간들은 ‘신궁’이나 ‘기념’ 사찰을 세우고 그 랫도리 인간들은 ‘씨족신사’로 만족했던 것 같다. 그들은 ‘민족’이란 의식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자기가 인간답게 살고 남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려고 새 땅을 찾아온 ‘인간’들이었다.

지금도 ‘이민’은 계속한다. ‘남한’은 이민 안시키고 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민’ 교육의 제1장은 ‘인간’주의에 대한 철저한 의식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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