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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941] 새 하늘 새 땅 / 1970년 12월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5-25 10:36
조회
611

새 하늘 새 땅
(요한계시록 21:1~7)

(1970년 12월)

지금 전 세계는 무언가 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히피니 비틀즈니 하는 젊은이들의 생활 양태는 그들이 옛 세대로부터의 단절을 제일 모토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새 것을 추구하는 정열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옛것에 안주할 수 없게 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이렇게 음산하고 부패하고 불순한 공기 속에 더 오래 견뎌낼 수 없다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갑니다. 사람 썩는 냄새가 이렇게 심하고서야 어떻게 인간성이 호흡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 합니다.

25년 전 경동교회는 좀 더 젊은 교회, 좀 더 새로운 교회, 새로운 인간들의 교회로 출발해 보려고 그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때의 대학생들, 젊은이들이 이제는 모두 50대의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어딘가 새로운 ‘혼’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을 ‘우리가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사람으로 창조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보라! 옛것은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새로워진다, 새것이다 하는 것은 크리스찬의 당연한 성격입니다. 크리스찬만이 아니라 소위 ‘학(學)’을 한다는 사람이나 수양을 한다는 사람이나 무언가 ‘참’을 탐구한다는 사람으로서 낡은 데에 안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자님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라’ 하며 제자들을 격려했습니다.

크리스찬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즉 그 피조물 자체가 새로워진다는 것, 그 실존 자체가 새로 지음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 스타일이나 새 방법이나 새 사랑이란 어떤 한 부분의 기능이 새로워진다는 것이 아니라, 실존으로서의 인간 자체가 새로 지음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영으로 난 자는 영이요 육으로 난 자는 육이니 다시 나야 하겠다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영의 사람’이란 이름으로 이 ‘새사람’을 호칭했습니다.

요한계시록 본문에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란 주격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모든 것’이란 것은 인간과 자연과 역사 등을 포함한 목적격입니다. 전면적·전체적인 변화입니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동양에서의 복고사상과 다릅니다. 이것은 미래지향형입니다. ‘옛것이 좋사오니’ 하고 되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낡아진 바탕이 새것으로, 불완전하던 것이 완전으로, 부분적이던 것이 전체적으로 완수된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온전하심과 같이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구약 이사야 예언서 65장 17~25절의 기록을 연상합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평화입니다.

여기서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이란 것은 그 바탕이 전적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말한 새 하늘, 새 땅, 새 피조물과 이사야가 예언한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그리고 중간 문학에 나오는 새 하늘, 새 땅 등이 모두 ‘변질’,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그런 것과 관련된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도 같은 의미의 내용일 것입니다.

새로운 바탕의 하늘, 땅, 예루살렘의 특성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장막이 인간들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위에 계셨지만 지금은 인간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인간들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 공동사회에는 눈물, 고통, 슬픔, 울부짖음 등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수 샘에서 자유로이 생명을 마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ㆍ개인ㆍ사회(자연까지 포함)의 삼각형의 세 점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선으로 이어져서 삼각형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되고, 그 속에 새 세계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요, 인간 역사의 이상입니다. 우리 교회는 언제나 이 세 점과 그 연결을 주장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란 정점을 절대로 애매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성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맨 처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주재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배반자인 인간들과 화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인간들 가운데 영주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관계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란 정점을 애매하게 하고서 기독교가 성립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근년에 과학기술이 현대를 지배하면서 하나님 문제가 모두 제외되었습니다. 적어도 그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에서는 자신을 철학화ㆍ종교화함으로 모든 형이상학을 형이하학으로 환산하여 사고하기 때문에 객관화할 수 없는 절대 주격인 하나님을 다룰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시험대 위에 눕지 않으십니다. 눕게 할 수도 없습니다. 시체 해부하듯이 해부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란 단어도 일정하게 정의를 내릴 만큼 고정된 단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은 영이시고 말씀이신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증언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그의 독생자가 하나님을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본 사람은 곧 하나님을 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그가 세상과 화해하시고 그 화해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맡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를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고, 예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란 단어를 경계할 것도 없으며, 하나님을 그렇게 모를 분이라고만 생각할 것도 없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 그리스도의 성격과 같은 하나님, 인간이 되신 하나님, 인간들을 사랑하시되 자기 목숨과 바꿀 정도로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증거하고 찬양하고 가르칩니다.

상상의 투영으로, 신비 속의 아지랑이같이 희미한 신이 아닌, 역사 안에 와서 우리 가운데 계셨고 지금도 역사 안에서 동시대적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애매하게 넘겨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를 밝혀야 합니다. 개인을 전체의 부분품이나 도구같이 다루는 어떤 권력에도 우리는 항거합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개인격을 교회에서 어느 정도 강조하고 있는지를 우리 다같이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생활 문제가 해결되고 지위도 있고 자녀 교육도 되고 건강하고 교회에도 나가고 거처도 마련되고 별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산다면, 그것으로 인간 문제는 다 해결된 것일까요? 중산층으로서의 자기 충족과 내 가정 주의에 안주하여 안일하게 문제성 없이 지내면 다 된 것일까요? 가난한 것만 문제고 넉넉한 것은 문제가 아닐까요? 고생하는 것만 문제고 잘사는 데는 문제가 없을까요?

우리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깊이를 더듬는다면 나 자신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순과 가치와 고민과 생의 의미에 해결 안되는 심연을 안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할 것입니까?” 하며 바울은 괴로워했습니다. 교회가 진정 이 마음 깊숙이에서 울려나오는 신음소리를 듣고 있는 것일까 의심스럽습니다.

셋째로, 사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 전체와 개체의 문제에 정열을 갖고 부딪쳐 왔습니다. ‘사회와 역사는 갈 곳으로 가거라. 나는 교회 안에 안전하다’ 하는 도피주의 신학을 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우리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해 가는 교회라고 외쳤습니다. 지금부터의 개혁교회는 사회와 역사에 책임지고 참여하여, 역사가 하나님 관계 에서 바르게 규정되고 바르게 수립되고 바른 방향으로 향상 전진하기를 촉구했습니다. 하나님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하나님의 삼각관계가 서로서로 생명선으로 연결되고 혈관처럼 핏줄이 흘러 돌아야 한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땅 위에 건립되고 운영되고 성장돼야 한다고 비전을 밝힙니다.

지금도 우리의 비전은 낡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의 설계도 안에 그려진 완성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골인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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