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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914] 그리스도와 인간 해방 / 1970년 12월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5-25 10:33
조회
587

그리스도와 인간 해방

《제3일》(1970년 12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여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맙시다.”(갈 5:1) 이것이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였다.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한 그리스도의 전생(全生)은 우리 인간들을 자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짧은 공생애(公生涯)에서 우리가 아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는 것이다. 사람은 몸으로 존재한다. 몸이란 물질만도 정신만도 아닌 생명의 구현이다. 질명이 몸을 먹어 들어가는 때, 인간의 괴로움과 위축됨과 삐뚤어짐과 소외당함은 오랜 병에 시달려 본 사람이면 다같이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이다. 병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간을 속박하는가? 시력을 잃어 암흑 속에서 평생을 지내는 사람,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 앉은뱅이, 중풍, 경련 일으키는 사람 등, 이런 병의 질곡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에 그는 대부분의 삶을 바쳤다. 신경병 또는 정신병이라는 질환은 더욱 악질이다. 소위 ‘돈 사람’이라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 당시에는 사귀 들렸다는 말로 표현되었는데, 예수는 그들을 정상적인 인간으로 고쳐주었다. 아주 실질적인 인간 해방이다.

[2] 인간을 걱정과 불안과 절망 등 실존적인 허무에서 해방시켰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또 나를 믿으라 하여 믿음으로 극복하게 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으로 ‘만무(萬無)’가 아니라 ‘만유(萬有)’를 확신하며 창조주와 함께 창조하는 기쁨을 갖도록 했다. 그래서 삶을 적극적으로 건설하는 활력을 갖게 했다. 속량주 신앙에서 신앙을 향한 의지를 발휘하여 이웃과 세계와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했으며, 인간에 대한 모든 악마 적인 세력을 축출하고 자유인의 탄생을 촉구했다. 정치적 압박과 횡포, 경제적 빈곤, 자연환경에서 오는 재난과 파괴, 전쟁, 국제적 알력, 인종차별 등등이 사랑하려는 의지의 강한 동력(動力), 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자유인의 활동에 의해 극복하도록 했다. 자유하면서 섬기는 인간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선생이면서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 ‘남을 살림으로 나도 살고, 남을 존경함으로써 나도 존경받는 사람’, 말하자면 인간을 이기적인 탐욕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사랑의 십자군으로 만드는 길을 걸었다.

[3] 인간을 율법 조문, 도덕적 규율 등의 판에 박힌 선악의 틀에서 해방시켰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고 했다. 선악의 규범을 초월한 사랑과 용서의 자유에서만 인간은 참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선인이 된다. “해를 선인과 악인에게 같이 비추어 주고 비를 선인과 악인에게 함께 내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 안에서만 인간도 완전 해진다.”는 것이었다.

[4] 그는 가장 완전한 인간 공동사회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다. 하나님과 개인과 전체적인 인간 사회가 세모꼴을 이룬 내용의 삶을 의미한다. 이런 사회를 이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낙망하거나 좌절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의가 이기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래지향적인 희망을 주었고 종말론적인 완성을 미리 말해 주었다. 신앙인은 좌절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외적인 조건에서 자유함과 동시에 자기 자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울은 “믿는 자에게 불가능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서 산다.”는 새로운 실존의식 때문이라 했다. “나는 가난한 데 처할 줄도 알고 부유한 데 처할 줄도 안다.”, “나는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 등에 나타난 바울의 자족감은 비생산적인 자기만족이나 부르주아적 자기 충족감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도 지배되지 않는 자유인의 자기 초탈감에 해당하는 것이다.

“돈도 이름도 쓸 데 없다는 사람은 처치 곤란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아니고서는 국사를 의논할 수 없다.”고 한 일본 명치유신 때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어느 정도 그런 방향에서 거리낌 없는 자아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생각된다.

[5] 죽음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예수나 바울은 죽음을 생물학적인 자연법칙에서보다 인간학적인 정신 문제에서 다루었다. 동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죽음을 다룬 것이다. 인간이 인간됨은 그 정신성에 있다. 하나님의 의, 인간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나라 등등은 그 가치가 죽음을 넘어간다. 그런 가치를 위해서는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 이상으로, 오히려 죽음이 그 가치를 더욱 드높여 준다는 것을 믿었다. 예수는 십자가를 응시하며 평생을 걸었다. 십자가는 그의 삶의 종점이 아니라 그의 삶의 초점이며, 그 생명의 분화구였다. 그의 삶은 죽음에서 영원한 불로 작열한다. 누추한 실패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바울은 ‘죽음이 생명에 삼킨바 되었다’는 말로 표시했다. 죽음이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역할밖에 할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예수가 인간을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해방시킬 뿐 아니라 죽음 자체에서 해방시켜, 죽음이 인간에게 권세로 임하지 못하고 다만 육체적 변천과정으로 남게 했다는 것은 인간 해방의 정상이라 하겠다.

[6] 부활은 종말론적인 사건이지만, 예수는 종말에서 실현될 새로운 인간 실존의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했다.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격과 그 성격을 자유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몸(‘영의 몸’이라고 바울은 말했다)을 갖게 된다. 여기서 인간 해방은 완성되고, 인간은 영원한 자유인으로 저주의 요소를 내포하지 않을 영광의 역사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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