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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1154] 장공칼럼 : 5ㆍ16은 역천의 행위였다 - 1977년 5월 16일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5-11 15:35
조회
606

長空 칼럼


5ㆍ16은 역천의 행위였다

순천자는 흥(興)하고 역천자는 망(亡)한다고 한다. 그것은 원리를 거스린 정권이 오래 못간다는 뜻이다. 원리가 무언가? 동양사상에서는 정치의 원리가 위민(爲民)과 “여민”(與民)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요 백성과 함께 하는 정치란 말이다. 백성에게 잘해주면 백성이 스스로 협력하여 나라일을 밀어주고 도와준다. 강제적이 아니라 자발적이다. 백성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무엇인가? 백성 하나하나에게 자유를 주고 그 사회생활에서 억지나 억울함이 없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죄지어 끌려가는 백성을 본 우(禹)왕이 그 뒤에 따라가며 울었다는 이야기라든가 칠년 대한(大旱)에 제관이 백성 중 한 사람을 제물삼아 기우제 (祈雨祭)를 지내려 한 때 , 백성을 위한 기우제인데 , 한 사람일망정 “백성”을 희생으로 죽일 수는 없으니 차라리 내가 내 몸으로 대신하겠다고 제단 앞에 죄수복으로 몸을 던진 탕(場) 왕의 태도 같은 것이 모두 진정 백성을 위하는 정치였다고 본다. 백성 하나하나의 인간됨, 그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자기 목숨으로 대신하려 하기까지 하는 정치 - 그것이 동양의 정치이상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주권은 임군이 갖고 있었기에 백성은 임군이 잘해주기만 바랄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어진 임금이란 하늘에 별따기였고, 대개는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 또는 악용하여 나라의 근본인 백성을 못살게 굴었으며 사회정의를 짓밟는 것이었다. 그런 흐름은 동서양이 크게 다른 데가 없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국교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적 인간관과 정의감이 땅에 매몰된 대로 썩을 수는 없었다. 인간존엄, 인간구원의 기쁜 소식은 다시 다시 부활해서 역사에 계몽과 개혁과 변질을 일으키곤 했다. 지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진영으로 갈라져 - 상극같이 되어있는 세계역사의 현실에서도 인간존엄 민권신장의 통일된 역사를 재건하려고 앞장서는 일꾼들은 주로 기독교도들이다. 물론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예언자적인 창조적 소수자들의 활동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따라서 불가피적으로 민주주의적 철학과 체제를 내세우게 된다. 개인자유와 사회정의를 구현하려면 민주주의적이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의 주권은 백성에게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라면 정부는 백성으로 말미암은, 백성의 정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독재자까지도 자기 체제에, 조작으로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민주주의”란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게끔 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본모습인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본류요 독재는 반동에 불과하다.

이제 한국의 예를 들어보자. 이승만 첫대통령이 노욕(老慾)이 발동하여 비민주적인 독재를 시도하다가 4ㆍ19 학생혁명이라는 민주주의 깃발 아래 무너졌다. 이승만의 하야선언은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린 막다른 골목에서의 비명(悲嗚)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인간”과 “민주정치”의 역사적 본류를 아는 “양식”이 암시되었다. “민의”를 존중한다는 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독재자도 아주 궁지에 몰렸을 때에는 그런 소리를 빌어 자기 패배를 성화(聖化)해 보려할지 모르긴 하지만.

4ㆍ19 혁명에서 민주당정권이 수립된 것은 어쨌든 “민의”에 의한 것이었다. 그것이 민의의 기대에 보탑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민의”자체는 유린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민의”는 곧 “천의”(天意)가 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민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민의” 에 따라 정권을 갈아댈 것이요, 민의 자체를 폐기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강점은 민주주의 자체가 완전하다든지 그 민주주의적 정권이 무결 (無缺) 하다든지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완전을 고칠 수 있는 여백이 언제나 남겨져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장면 정권이 약체였다면 국민에 의하여 좀더 기대되는 정권으로 교체될 것이며, 국민은 그만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승만 정권의 경우에서 이미 실증된 일이었다. 4ㆍ19 이후 학생들의 데모 사건이 너무 빈번하고 경망한 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타성”(慣性)이었고 학원정상화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과잉자유가 공산북한의 남침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은 자라등에 놀란 자가 솟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의 망상이 아니면 “역천”의 반역을 꿈꾸는 “도당”의 구호일 것이다. 민주당정권이 사회질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시민의 불안을 조장했다는 것, 경제재건에 자신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 등도 우유부단의 감을 더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마(亂麻)가 된 자유당 정권을 갑자기 떠맡은 지 9개월밖에 안되는 새정권에게 그런 거대 창업의 완수를 기대한다는 것은 국민으로서도 너무 조급한 태도였다고 하겠다. 사실 그들에게 경제계획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취약점에 쐐기를 박아 정부를 급습 점령한 소수반역군인의 행위는 나라의 질서로 보아 결코 용납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주권을 송두리째 탈취하여 자기의 사유물로 만들고 헌법을 폐기하고 정치행동을 금지하고 중요정치인을 투옥하고 “반역”에 대한 민주국군지휘관들을 장기징역에 처하고, 학원의 자유, 언론자유를 모두 박탈하고 모든 것을 소수반역군인의 “도당”인 소위 최고 회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게 했다. 국민은 언제 온전히 “괴뢰”가 되고 “박정희”라는 개인이 그 조종자가 됐다. 3천만이 일순간에 비인간화했다. 꼭두각시, 또는 허울좋은 노예가 됐다. 소수 추종자는 “편한 개팔자”를 누린다. 그러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학원의 학생, 사회지성인, 교회성직자, 자유언론인, 노동자 등등은 몇 해를 두고 참다참다 못해 이제는 목숨걸고 반격의 대열에 돌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는 세계적으로 고립상태에 빠졌다. 미국의 카아터 정권도 조만간 결정적인 행동을 취할 것으로 본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런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미군철수, 군수품판매제한, 경원과 군원의 삭감, 투자 대폭제약 등등만 하더라도 박정희는 궁지에 몰릴 것이 확실하다. 무작정 팽창일로로 나가던 “경제재건”이 갑자기 긴축되는 때의 부작용은 치명적인 붕괴증상으로 나타날 우려가 짙다. 인플레,, 실업자, 물가폭등, 소유물결핍 등등에서 오는 질환은 어떤 부분적인 질환이 아닌 것이므로 여기저기 고약부치는 정도로 치료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가 일반적으로 인심을 잃었기에 국민의 회생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도 없다. 결국 고액의 세금을 강제징수하고 KCIA등 사찰기관의 폭력으로 통어할 밖에 없는데 생존권에 위협받는 3천만을 무슨 수로 철통같이 누르고 묶을 수가 있을 것인지 암만해도 공산이 서지 않는다. 히틀러나 스탈린의 탄압방법을 쓴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은 단명하기 마련이다.

박정희는 극소수의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철없이 반정부운동을 한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면 왜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수십만명의 비밀 정보원을 동원하는가? 대수롭지 않는 일부 철부지의 장난이라면 왜 그런 것을 상대로 “법”까지 만들고 “긴급조치령”까지 발동하고 있는가? 그는 자기가 지은 죄가 있으므로 국민을 무서워하는 것이라 하겠다.

민심이 천심(天心)이니 “역천” 행위를 고만하고 하루 속히 “민의”에 순종함이 어떨까?

(1977.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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