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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911] 말씀을 새긴다 (9) : 가정 제일주의에서의 엑소더스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5-03 17:40
조회
624

말씀을 새긴다 (9) - 가정 제1주의에서의 액소더스 -

[마가 3:31-35(마태 12:46-50, 누가 8:19-21), 마태 19:1-12, 13-15, 누가 19:2-10]

낭만은 남녀애에서 꽃이 피고 가정에서 열매 맺는다. 그러니까 가정은 낭만을 항구화한 보금자리라는 의미에서 그 자체가 축복이라고 느낀다. 평생 행복이 깃들이라고 결혼주례자는 축복한다. 또 결혼당사자들도 그렇게 믿기 때문에 결혼을 성립시켰을 것이다.

신혼자의 낭만은 단 둘이서도 행복하다. 오히려 단둘이서라야 행복하다고 느낀다. 절해고도에서라도 둘이 같이 있으면 그것으로 즐겁다고 생각한다. 그 주위에나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드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신혼여행이 ‘허니문’(밀월) 이라고 불리었는지도 모른다. 신혼자의 꿈에는 호반이나 언덕 위에 아담하게 꾸며진 작은 주택이 그려진다. 그것이 자연과는 가깝고 인간들과는 외따른 고장이기를 바란다. 언제나 둘이서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지내자는 것이다. 서로가 상대방에게서 자기 만족을 얻고 그것으로 모든 욕구가 충족된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양극화 현상이 있을 리 없고, 권태도 좌절도 반발도 없을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인생의 날씨는 청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짐작은 한다. 그래서 무언가 닥쳐올 꽃은 날씨에도 첫 사랑, 첫 행복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하여 만반준비를 서두른다. 애기들 교육, 재난에 대한 보험, 그리고 내 아내, 내 자녀를 고생시킬까봐 돈을 벌고 저축하고 또 횡재도 하고 부패행위도 한다. 가족들이 남보다 호사하는 것이 자랑스러워서 고급 주택, 자가용, 사치 등에서 경쟁이 붙는다. 경쟁에 이기려니까 부정부패를 경쟁한다. 이런 식으로 발전하면 종착점이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볼 여유도 없어진다. 너무 바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틀어 말한다면 모두가 ‘내 가정 제일주의’(마이홈주의)로 집약된다.

피곤한 인생에게 가정이 소생의 보금자리기는 하지만 그것이 종착점일 수는 없다. 예수도 하나님 나라 일을 위하여 나사렛의 가정을 떠났다. 석가모니도 출가를 했다. 나라를 위해 출전하는 병사는 가정을 떠난다. 너무나 단호한 ‘엑소더스’(출애굽)다.

[마가 3:20-35]

예수가 병고치는 능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갖가지 병자들이 몰려들어서 예수와 그의 일행은 음식먹을 겨를도 없이 그 일에 분주했다. 예수를 모함하는 사람들은 예수 자신이 돌았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예수가 마귀왕에게 잡혀서 그런 권능을 행한다고 역선전을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악마는 자기 동료부하인 사귀를 내쫓을 정도로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여튼 예수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나사렛에까지 퍼졌으니까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예수를 만나서 억지로라도 집에 데려다 치료를 하려는 생각에서 예수를 찾아왔다. 예수의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거기 서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군중은 예수에게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드릴 말씀이 있다고 밖에서 선생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전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요? 여기 둘러앉은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이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내 형제고 자매고 어머니요” 했다는 것이다.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를 찾아온 의도가 어디 있다는 것을 짐작 못할 이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대답으로 면회를 사절했다. 그는 이제 메시아 왕국을 위해 집을 나온 사람이다. 혈육으로서의 관계는 신앙으로서의 관계로 지양되어야 한다. 예수의 신앙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혈육의 친족은 정신적 ‘이방인’이다. 그리고 신앙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나 윤리가 아니라, 영으로 거듭난 자의 산 경험이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때에도 그의 처와 아들이 석가모니의 제자로서 재연합됐다고 한다.

한 가정의 신앙문제에 있어서 부부 중 어느 한 쪽만이 신자인 경우에 신자가 신앙을 위하여 이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바울은 이런 내용으로 내답했다. 신자 측에서 신앙을 구실로 먼저 이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신하는 측에서 이혼이냐 신앙이냐의 앙자택일을 강요하는 경우에는 신앙 쪽을 택할 밖에 없다(고전 7:12-16) 하는 것이었다.

[마태 19:1-12, 13-15]

결혼과 이혼에 대하여 유대인 사회에서는 상당한 자유를 갖고 있었다. 그것도 물론 남자 측에서 하는 말이지만, 남자의 비위에 거슬리기만 하면 무슨 이유로든지 남자가 일방적으로 이혼장을 써 주어 아내를 쫓아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신명기 24:1). 그러나 예수는 “아니다” 하고 말했다. 창조의 원리가 일남일녀로 되어 있고 이 둘이 합하여 한 폼이 되는 것이 결혼인데 이미 한 몸이 되었으면 갈라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마가 10:1-2). 마태복음에서는 ‘음행한 까닭 이외에’라는 조건이 삽입되었다(5: 31, 32, 19:9). 그러나 원칙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상황(Situation)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예수는 윤리나 율법과 그 당시의 상황과의 관계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당신들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졌기 때문에 모세가 이런 법을 제정한 것이다”(마가 10:9) 하고 말한 것으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볼 때,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결혼이 그렇게까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제자들이 반문했을 때, 예수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하고 대답했다. 다만 하나님께서 허락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하늘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고 말했다. 이것이 자기 경우를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도 든다. 여기서도 결혼이 창조질서에 속한 것이지만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그것마저 거부하는 것이 더 높은 차원에로 올라가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귀절(마태 19:13-15)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얘기가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무조건 축복했다. “하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하고 말했다. 어린이에게도 원죄가 있다는 둥 하는 신학적인 얘기는 끼어들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가정에서의 어린이는 예수에게 무조건 축복받는 천국 백성이라는 점을 크리스찬은 엄숙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가 19:2-10]

세리 삭개오는 유대인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으로서 돈 모으는 데서 보람을 느끼던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고독하고 불안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이만은 나 같은 인간도 친구로 대해 줄 것 같다 하여 멀리서 보기만이라도 하고 싶어서 아이들처럼 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는 그를 불렀다. “오늘 네 집에서 유하련다” 하고 말하였다. 귀빈을 모시는 삭개오의 기쁨과 영광은 대단했다. 사림들은 죄인의 집을 찾아가는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예수는 오히려 흐뭇하고 기뻤다. 예수가 그 집을 떠나려 할 때 삭개오는 일어서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누구한테서 무엇이든 속여먹은 것이 었다면 그것의 네 갑절을 갚아주겠습니다.” 예수께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소. 저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오.”

삭개오는 사회에서 빈척받고 가정에 농성한 ‘내 가정 제일주의자’로 지낼 밖에 없었다. 로마의 세리라는 직업은 스스로도 긍지를 느끼는 직위가 아니었다. 동족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돈을 벌어서 내 가정이라도 잘 살게 해야 한다고 그는 수치와 소외를 참아가며 그 일을 계속했다. 그는 내향적인 가정을 꾸였다. 자기와 자기 가정을 빈척하고 멸시하는 유대인들 사회에 섞일 필요도 없고 그럴 의욕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자기와 자기 가정을 개방했다. 그의 관심은 밖으로 향했다. 그의 가정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자기가 억울하게 다룬 사람에게는 네 곱이나 보상해서 그와의 화해를 청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선언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 가정이란 것도 낭만주의적이고 자기 폐쇄적인 행복, 내향적이고 타계적인 신앙의 만족에서 맴도는 일이 많다. ‘마이 홈’ 주의가 하나님의 축복인 줄만 안다. 나라도 국민도 친구도 자기 자신도 팔아가면서 그 댓가를 내 가정에 쌓아 두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관심을 ‘내 가정’에 집중시키고 가정이 즐거우면 ‘또 다시 무엇을 요구하리오!’ 하는 식이 된다. 나라 일이 내게 무슨 상관이냐 한다. 독재자에게는 다시 없는 편리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단호했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라. 의에 주리고 목마름 같이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가정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의가 서게 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마이 홈’ 주의에서의 Exodus를 예수는 암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점에서 철저했다. 적어도 크리스찬 홈은 이 점에서 뚜렷한 바가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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