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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908] 말씀을 새긴다 (6) :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5-03 17:25
조회
833

말씀을 새긴다 (6) - 그의 나라와 그의 義(의) -

[마태 6:33]

본문은 사본에 따라 그 문구배열이 같지 않다. ‘그의 나라와 그의 義(의)’(א, 알렙), ‘그의 의와 그의 나라’(B),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K. L. W.) 등등 이다. 그러나 그 내용의 의미하는 바에는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성경 舊譯(구역)에는 “그 나라와 그 의”라 했으나 ‘그’가 아니라 ‘그의’인 것은 사실이며 개역에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로 되었고 새번역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로 되어 있다. 어느 사본을 따르느냐에서 번역이 달라진 것 뿐이요.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하는 본뜻에는 다른 것이 없다.

‘義’(의, 디카이오수네)란 단어가 마태복음에 일곱 번, 누가복음에는 단 한 번, 그리고 마가복음에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의’ 개념의 주류가 유대교 경전인 구약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에게 예수를 증거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 신앙의 주류인 ‘義’(의)를 더 많이 말하게 된 것이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세계인을 상대로 쓴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적인 전통을 일부러 도입하는 것을 삼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구약부터 상고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는 본호의 「말씀을 새긴다 (6)」에서 그 역사 관계에서의 줄거리를 기술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설명을 집약시키려 한다.

‘하나님의 의’란 것은 ‘하나님은 그의 본성상 의 자체시다’ 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만군의 야웨는 공평함으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신다”(이사야 5:16), “나(하나님)는 공평으로 줄을 삼고 의로 추를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은 곳에 넘칠 것이다”(이사야 28:17),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시편 7:11),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시라”(시편 50:6) 등등 - 하나님 자신이 그 본성상 의 자체시다. 하나님 곧 거룩이시다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 곧 의시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인편에 서신다. 하나님의 심판이 의인을 의인되게 하고 악인을 그 악에서 보복 받게 하신다. 인간은 시비선약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며 또 스스로의 불의 때문에 의를 왜곡시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재판으로 최종적인 의가 보장될 수는 없는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어야 하고 또 그는 역사의 심판자로 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의는 그의 본성과 목적에 일관되어 있으므로 그의 의를 믿는 데서 인간구원이 약속된다. 그는 이스라엘과 계약 관계에 들어가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고 했고, 율법과 규례를 선포하여 이것을 지키면 복을 내린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 계약조건에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일관하여 신실했으나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너희가 내 백성이기 때문에 실행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너희 편이다”하는 편애로 불의를 나타내는 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망국과 포로와 이산의 운명에 봉착했으나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의의 증거라고 예언자들은 선포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여러 가지로 이해하고 있었다. 제사장들은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고 믿었다. 그것은 후에 교조적인 율법주의로 발전했다. 지자들은 각개인 간의 사람됨이 바르고 선한 품격으로 되는 것을 의언이라 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도덕적인 내용을 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어떤 성문률이나 규칙, 제도, 사회적 권위 등등에 구속됨 없이 오직 인간권, 인간가치에 대한 즉각적인 인식에서 “Humanitarian Virtue Par excellence”, 곧 ‘초특상 인도주의’를 외친 것이었다. 그 대상은 개인이나 특정 종교권 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 신랄한 비판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등 각 부문에 미쳤으며 그 규탄의 대상으로는 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제사장, 부자, 상인, 거짓 예언자 등등이 모조리 걸려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 예언자들을 통하여 전승된 의를 상속 완성하였다. 그의 산상교훈에서도 “의 사모하기를 주리고 목마름 같이 하는 자가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이 다 그렇게 핍박 받았느니라”(마태 5:6, 10, 12)라고 했다.

그러면 예언자들이 부르짖은 의의 성격이 어떤 것이었던가? 우선 ‘의의 예언자’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아모스’의 예언을 주로 하고 다른 예언도 참작해 보기로 하자.

그는 인간을 학대하는 권력을 규탄했다. 그는 자국 내의 두드러진 범죄상을 이렇게 열거하며 외쳤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벌을 돌이키지 않으시리라.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언을 팔며/신 한 켤레로 궁핍한자를 팔고/빈자의 머리 위 티끌을 탐내고/겸비한 자의 길을 뒤툴어 놓기 때문이다”(2:6-7), “사마리아(首都) 산에 올라 그 성 안에서 되는 어지러움과 인간학대를 보라. 그 궁궐 속에는 포학과 겁탈이 쌓여 있다. 그들은 의를 잊었다”(3:10), “그들은 성문에 서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고/바른 말 하는 자를 싫어한다. 가난한 지를 밟고/밀(小奏)의 부당한 세를 걷어먹고…… 의언을 학대하며/뇌물을 먹고 궁핍한 지를 억울하게 판결한다”(5:10-12)고 했다.

그는 안일한 지도층을 규탄했다.

“화 있으라! 시온에서 안일한 자/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나라들 중에서 손 꼽히는 지도자/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아! ……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횡포의 자리를 가까이 하고/상아 침상에서 기지개켜며/양떼에서 어린 양/우리에서 송아지를 골라 먹고/비파에 맞추어 공허한 노래를 지절대며/다윗인 양 작곡을 하고/대접으로 포도주 마시며/귀한 기름 몸에 바른다./그러나 요셉의 수난에는 관심조차 없다”(6:1-6)고 했다.

그는 악덕상인들을 규탄했다.

“궁핍한 자를 삼키며/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너희는 말한다. 월삭이 언제나 지날까/우리가 곡식을 팔게!/안식일이 언제나 지날까/우리가 밀을 내게!/에바를 적게 하고/세겔은 많게 하고 거짓 저울로 속이고/은으로 가난한 이를/신 한 켤레로 궁핍자를 사자! 한다/이러구서 어찌 땅이 떨지 않겠느냐?/거민이 애통하지 않겠느냐?”(8:4-8).

그는 사치한 여인들을 책망했다.

“사마리아 산에 사는 바산의 암소들아/너희는 가난한 지를 학대하며/궁핍한 지를 압제하고/남편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 마시게 하라 하는구나!”(4:1-3).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했다.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게 늘인 목/정을 통하는 눈/아기죽거리는 걸음걸이/걸을 때마다 쟁그랑대는 발목방울!/그 날에, 그들의 꾸민 발목고리/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귀고리와 팔목걸이/면박과 화환/발목사슬과 띠/향합과 호신부/지환과 코걸이/예복과 겉옷/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손거울/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이런 호화가 모조리 박탈된다”(이사야 3:16-26) 고 했다.

아모스는 종교와 종교인들을 규탄했다.

“나(하나님) 는 너희 절기를 미워하고 멸시한다./너희가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겠다./너희가 드리는 살진 희생의 화목제물도 돌아보지 않겠다. 네 노랫 소리를 내 앞에서 그치라./네 비파 소리도 집어치워라”(5:21-23) 했다. 그리고 참 종교신앙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찾을 대상은 외부적인 의식이나 율법이 아니다. 야웨 하나님 자신이란 것이다.

“너희는 벧엘을 찾지 말며/길갈로 가지 말며/브어세바로도 나가지 말라/그리고 오직 나 야웨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5:4-6) 했다. 벧엘, 길갈, 브엘세바 등등은 역사적으로 연고 깊은 제단들이 있어서 순례자가 모여드는 고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헛된 의식종교를 떠나서 산 인격이신 하나님 자신에게로 오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신앙이란 것은 윤리적인 삶 자체를 말함이라 하여 “오직 공의가 대하같이 흐르고/정의와 진실이 줄지 않는 강물같이 흘러내리게 하라”(5:24)고 했다.

그가 외치는 정의는 자국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웃의 다른 나라들도 그의 예언에 걸려 들었다. 다메섹(시리아)은 길르앗 주민을 죄로 만든 타작기로 타작하듯이 압박했기에 그 벌을 받을 것이고/가사(해변 도시 국가의 하나)는 사로 잡은 사람들을 에돔에 팔아먹은 노예매매를 했기 때문에 벌을 받겠고/드로(페니기아)도 포로된 인간을 에돔에 팔았기에 벌을 받아야 하고 에돔은 잔인한 침략을 좋아하기 때문에 망할 것이고/암몬은 자기 국경 확장욕 때문에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인간 잔인을 감행했기에 하나님의 정벌을 받겠고/모압은 에돔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드는 인간잔인을 저질렀기에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질 것이며/유다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야훼종교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역시 징벌에 해당한다고 했다(1:3-5).

이상에서 우리는 문서예언자의 첫 사람인 아모스를 중심으로 예언자적 정의의 모습을 더듬어 봤다. 아모스는 약 800B.C의 사람으로서 거의 동시대에 그의 예언에 이어 호세아가 사랑의 예언자로 나타났고 그 후 예언운동은 황금시대를 이루어 궁중예언자 이사야(740 B.C), 거의 동시대에 농촌의 예언자 미가(726 B.C), 유다왕국이 기울어질 무렵의 예레미아(626 B.C), 포로 중의 예언자 에스겔, 포로말기의 제2 이사야 등등 예언의 거성들이 영원한 정의의 정의(正義)를 역사에 던졌다. 그들은 진실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었으며 의를 위하여 박해와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의는 하나님 자신의 선포라는 높은 차원에서 시작되어 개인, 사회, 국가, 세계 - 그리고 만물에까지 모조리 적용되었다. 그들은 의에 비추어 현실을 심판하고 또 미래를 바라보았다. 현실의 불의 그대로가 미래의 축복을 약속받을 수는 없었다. 불의는 미래의 정벌을 약속한다. 삶의 방향을 의에로 전향하는 때에만 미래의 용서와 축복이 약속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불의 때문에 좌절되는 것이 아니다. 의로운 하나님은 자신의 의를 인간역사 안에서 달성시키고야 말 것이다. 그래서 ‘메시야 예언’이 선포되었으며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나라가 역사 안에 오게 된 것이다.

예수가 말하는 의, 하나님의 의는 어떤 것이었던가? “너희의 의가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너희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하고 그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율법 학자와 바리새 사람들의 의는 율법조문을 지킨다는 외부적, 형식적인 의무 - 외적 권위에의 피동형적 ‘의’였다. 예수의 제자들도 그 정도의 의에 멈춘다면 그것은 천국의 자유하는 백성으로서의 의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의를 몸으로 증거하는 자유인, 자율인의 삶의 경험을 예수는 원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의는 사랑을 내포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덕적 완전을 의미한 것이며 인간의 의는 하나님의 완전함 같이 완전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마태 6:43-48). 그래서 그는 인간이 산다는 것은 이 목표를 향한 진행이라 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태 6:31, 33) 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핵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하며 먼저 할 일과 다음에 할 일을 질서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소유나 지위나 권력을 인간 자체 이상으로 중요시한다든지 물욕을 앞세워서 인간성 부패를 거두는 것 등등은 예수에게 있어서의 의의 倒錯(도착)이었고 심한 죄인간화하였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의는 철학이 아니라 삶 자체였으며 관념 속의 백일몽이 아니라, 목숨 건 전투였다. 의는 마음의 탐구가 아니라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옳다고 믿는 하나님의 의를 횃불처럼 자기 몸에 점화했다. 그는 몸을 태우면서 직접 쳐들어오는 기성 교권에 항거했다. 이유고 교권과 정권은 연합하여 그에게 십자가를 지웠다. 그는 말없이 그러나 용감하게 십자가 위에서 의를 완성했다 ‘의로운 사랑’ - 의를 완성하는 사랑을 그는 이룩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전생은 증죄의 제물이 되어 사랑하며 심판하는 하나님의 의를 완성했다.

그의 의가 그와 함께 역사의 토양에 묻혀, 부활하여 억만 배의 의의 열매를 맺는다. 지금 역사는 급변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제외하지도 무시하지도 지나가지도 못한다.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은 오직 인간을 위하여 신의를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시종 ‘광야에 외치는 소리’로 허공에서 돌기만 했다. 역사의 토양은 그들의 의를 배태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의 의는 역사 속에 새 동력이 되었다. 결국 이기, 탐욕, 비인간화의 역사 바퀴를 역으로 돌리고야 말 것이다. 우리도 그의 무게에 가담해야 한다. 현단계에서 우리에게 부가된 정의에의 짐을 담당해야 한다. 그것부터 먼저 구하는 것이 인간되는 순서며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서며 크리스찬으로서의 당연한 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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