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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0208] 성서 비판의 의의와 그 결과 - 1950년 5월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26 20:22
조회
760

[0208]
《십자군》 (1950년 5월)


성서 비판의 의의와 그 결과

근대 비판학이 성서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성서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비판에 대한 찬부양론이 있어 그 태도가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싫든 좋든 성서는 이미 철저히 비판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비판의 시대는 다 지나고 재건의 시대가 전개된 지도 벌써 오랜 지금에 와서 ‘성서를 비판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18세기에 잠든 립 밴 윙클이 아직까지 잠꼬대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여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니 극히 상식적인 범위에서 얼마 써 보내고자 한다.

[1] 그러면 우선 성서비판학이란 무엇인가? 그 의의부터 따져보기로 하자. 내쉬(Nash)는 “모든 사실의 자유 연구”라고 정의하였고 맥파딘(McFadyen)은 “온갖 성서 사실에 대한 자유롭고 경건한 연구”라 하였다. 비판학이란 연구다. 그저 피상적으로 읽어버리거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과 사실을 차근차근 따져가며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결론을 얻으려는 태도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로운 연구다. 전통적인 결론을 덮어놓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사실이 명령한다면 전통적인 것에서 떠나는 것도 사양치 않는 태도다. 또한 이것은 경건한 연구다. 계시와 구원의 사실이 담겨 있는 거룩한 책에 대한 연구인 까닭이다. 그리고 이것은 성서의 사실에 대한 연구요, 어떤 교리나 신조를 전제로 한 연구가 아니다. 객관적 사실을 실상 그대로 파악 하려는 것이요, 어떤 기성 교리 변증을 위한 사실의 도구화를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이 기성 교리를 변증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 사실에 즉하여 새 교리를 수립할 수도 있다.

성서비판학은 편의상 네 부문으로 나뉘어진다. 1) 본문 비판, 2) 언어 비판, 3) 문학적 비판, 4) 역사적 비판이 그것이다. 1) 본문 비판은 성경 본문의 여러 가지 착오를 현존한 제 사본과 역본을 절대 비판하여 가장 정확하리라고 판정된 결론을 채택하려는 학문이요, 2) 언어 비판은 성서에 사용된 난어와 난구를 언어학적인 면에서 비교 연구함으로 원저자의 의미한 바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주석학적 연구 부문을 말함이다. 3) 문학적 비판은 성서문학의 유래를 연구하는 것이며, 4) 역사적 비판은 문학적 비판과 병진하는 것으로서 그 문학을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의 관계에서 연구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이 네 부문을 둘로 대별하는 것이 보통이니, 즉 본문 비판과 언어 비판을 합하여 저등 비판이라 하고, 문학적 비판과 역사적 비판을 합하여 고등 비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등 비판에 있어서는 극단의 전통주의자들도 이를 인정하지마는 고등 비판에 있어서는 기쓰고 반대하는 사람이 아직도 더러 있다. 그린(W. H. Green)은 약 1세기 전에 『구약개론』을 쓰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본문 비판은 일정한 지적 원칙에 의하여 온갖 실증을 부지런히 수집한 후 충분히 음미하며 정확한 대로 회복시키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린은 전통 옹호에 열렬한 학자였으나, 본문 비판에 대하여는 이렇게 열심이었으며, 그 비판은 확증된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합리적 판단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언명하였다.

그런데 똑같은 원칙에서 이루어진 고등 비판에 대하여는 전연 몰이해한 혹평을 가하였다. “소위 고등 비판이란 성경 각 책은 그 책명대로의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믿음을 동요시키려고 꾀하고 있다”, “고등 비판은 절대 합리주의에 근거하여 영감을 부인한다”라고 운운한 것이다.

만일 고등 비판이 신자의 신앙을 동요시키기 위한 부단의 기도였다든가 절대 합리주의요 영감을 부정하는 주장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교회로서는 물론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2]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정당한 결론일까? 이제부터 우리는 이 점을 중심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우선 ‘고등 비판’이라는 말 자체에 대하여 오해가 많다. ‘고등’이라는 어의에 그 비판을 절대화하려는 인간의 교만이 표시된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고등 비판이란 저등 비판에 대조되는 의미에서 구별한 것이요, 그밖에 아무 다른 의미는 없다.

그러면 고등 비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서의 기원과 원형과 원저자의 의도 등을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은 성서 연구방법 중의 하나로서 어떤 철학적 전제를 가진 것도 아니며, 어떤 교리를 시인하기 위함도 아니요, 반대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러므로 맥코믹 신학교의 제노스(Zenos) 교수는 말하기를, “고등 비판은 전통적인 구설에나 새로 난 신설에나 전혀 무관심하다. 연구한 결과로 구설을 지지하게 될 수도 있고 신설로 대체할 수도 있다. 신(新)이고 구(舊)이고 간에 진실이 확인되는 대로 결론지을 것뿐이다.”(The Elements of the Higher Criticism)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고등 비판을 애초부터 파괴를 목적한 학문인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아주 보수적인 학자 미드(C. M. Mead)도 말하기를 “나는 고등 비판을 다만 괜찮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덮어놓고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우자의 소행이다. 진실한 비판이란 진리탐구의 필요적 표현으로서, 하면 할수록 더욱 진리는 빛나는 것이다.”(Christ and Criticism)라고 하였다.

성서뿐 아니라 기타 어떤 문학이든 간에 그 문서의 기원과 저자급 최초의 독자, 즉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환경에서, 무슨 목적으로 썼는가 하는 여러 점에 대하여 정확히 알지 못하고는 도저히 그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문학형식에 관해서도 그것이 역사인지 시가인지 또는 논문인지 예언인지 등을 판정하여야 그 원저의 의도한 바 내용을 옳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문서의 목적도 알아야 되는 것이니 가령 그 문서에 역사적 기록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순정 역사를 위한 역사인지 또는 교훈을 위한 역사인지를 분간하여야 그 책의 가치판단을 그르치지 않을 것이다. 교훈을 위한 역사기록이라면 그 기록 이 역사적으로 다소 부정확한 점이 있다 해도 그 책의 가치에 별로 손상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역사적 사실을 전수하기 위한 기록이라면 그 기록에 조금만 잘못이 있어도 그 책의 평가는 저하되고 말 것 이다.

이런 과제에 대하여 정확하게 연구하는 것이 고등 비판이므로 그것은 필요불가결의 학문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고등 비판은 ‘역사과학적으로 연구한 성서문학사’라고 말할 수 있다.

[3] 그러나 수천 년래 수다한 성자와 학자들이 성서를 탐독하고 연구했어도 그런 결론을 지은 적이 없는데, 하필 고등 비판학자에게 와서 그렇게도 다른 사실이 발견된다는 것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해를 보고 달을 보고 땅과 별들을 보며 또 연구도 해왔지만 결국 근년에 와서야 근본적으로 다른 천문학이 발견되지 않았는가? 창세 이래 미지의 세계를 근대 과학자가 그렇게도 혁명적으로 탐지한 것같이 근대 성서비판학자들도 미지의 세계를 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문예부흥이 문학과 과학에 관한 인간으로서의 흥미의 표현임과 같이, 종교개혁은 종교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흥미를 드러낸 것이다. 문학과 과학에 대하여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문예부흥이 생겨났고, 종교에 대하여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이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이 물결쳐 퍼지는 곳에 성서비판은 없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루터의 동역자요, 친구인 칼슈타트(Karlstadt)가 1520년에 발표한 논문 중에 모세오경에 대하여 말하기를 “신명기 마지막에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모세가 썼다고 볼 수 없으며 그 문체가 신명기 전체의 문장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다른 부분도 모세의 작이 아닐 것으로 인정되며, 따라서 모세오경 전부를 모세의 친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루터 자신에 있어서도 그의 구, 신약성서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태도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열왕기는 역대기보다 더 신빙할 만하다 하였으며, “모세오경이 모세의 친작이 아니란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였고,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전도서 등은 가필자의 손을 거쳐서 현존형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며, 시편의 부제와 연대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고 말하였다. 구약에서는 어느 부문에서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으며, 에스더 같은 책은 빼버리고 마카비서를 대신 넣었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말하였다. 이것은 오히려 지나친 고등 비판이 아닌가?

그러므로 고등 비판을 근대 독일 합리주의자나 영국 자연신론자 또는 신앙 타락자들의 소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무지를 광고하는 데 불과하다. 이것은 신교 정신의 당연한 발로로서 최초의 개혁자 자신에서부터 이어온 운동이다.

물론 그동안 그리스도교에 반대하는 자가 이 고등 비판의 무기를 반그리스도교적 활동에 이용한 일도 있었으며, 같은 경건한 비판학자들의 결론도 자못 불건전한 점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고등 비판학 자체를 배격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해부도가 명 외과의의 손에 쥐이면 난치병이 속속 치료되지만, 그것이 강도의 손에 쥐이면 살인도구가 되기도 한다. 해부도 자체의 가치를 부인하거나 명의 손에 쥐인 해부도까지 빼앗아버릴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거의 전부의 고등 비판학자들을 보면 그들의 주께 대한 충성과 진리에 대한 헌신과 동기의 진지함을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의 가장 위대한 대변자였던 오르(James Orr)도 시인하였다.(The Problem of the O. T., 7, 8)

[4] 근대비판학이 전통적인 학설에 변혁을 일으킨 중요한 부분을 소개 한다면 1)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같으시나 사람은 변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역량에 따라 하나님도 점진적으로 자기의 품격과 경륜을 더 완전히 계시하신다는 것 을 명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성서의 저자, 저작 연대 등에 관하여 전통적인 견해와 아주 달라진 것이 많다. 우선 모세오경이 모세의 친작이 아니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여호수아,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급 기타 제서의 저자, 저작 연대, 문서 유래 등에 관하여 전통적 견해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저자가 달라짐에 따라 성서 자체의 권위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가? 모세, 다윗, 이사야 등 유명한 인물이 영감에 의하여 썼다는 데서 성서의 권위가 서는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그 책들을 그이들의 저작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책 자체의 권위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그보다도 선결 문제는 예수의 권위에 손상을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는 오경이나 이사야나 시편에서 성구를 인용하실 때마다 마치 그 책들이 모세, 이사야, 다윗이 쓴 것과 같이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을 인용하실 때 그 책의 저자 문제를 마음에 두시고 말씀하신 일은 없는 줄 안다. 그는 그 인용구 안에 있는 종교적 진리를 활용함으로써 족하게 여기신 것이다. 예를 든다면 그가 제 오계를 인용하실 때에 마태복음 15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고, 마가복음 7장 10절에는 “모세가 말하기를……” 한 것으로 보아 어느 것이 예수의 말씀을 똑바로 기록한 것인지 몰라도 하여튼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만 드러나면 누가 쓴 것이든 간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의 글’이라면 ‘시편’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모세의 책’이라면 오경을 가리킨 것으로서 그것은 그 서책의 별명에 불과한 것이요, 독특하게 저자를 심중에 둔 것이 아니었고, 사무엘이라는 인명은 그대로 사무엘서에 대용되었고, 이사야라는 인명은 그대로 이사야서에 대용되었던 것이요, 역사과학적으로 그 저자를 규명하려는 의도는 전연 없었고, 또 그 시대에는 그럴 필요도 일반적으로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데이비드슨(W. T. Davidson)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가 구약에 대하신 태도는 종교적 교훈에 그 중심을 두셨고 저자, 저작 연대 등에 관해서는 전연 무심하였다.”(Hasting’s Dictionary of the Bible, vol. IV, 151)고 단언할 수가 있다. 그때 사람들이 그렇게 믿은 것을 예수님도 그대로 묵과한 것뿐이다.

[5] 그러면 그때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것이 잘못인 줄 아시면서 그것이 구원을 좌우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묵과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도 그때 사람과 같이 그것이 정말 그런 줄 알고 그대로 시인 한 것일까? 만일 성서 저자 문제에 대한 그 당시인의 소신이 역사과학적으로도 정확한 것인 줄로 생각하고 그대로 지냈다면 예수님도 무소부지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신성이 부인되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성서 기록 자체가 대답해 준다. 우선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그는 죄인을 속량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고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적ㆍ윤리적 원칙을 세우시는 데 용심(用心)하셨고, 과학적 지식 부문에는 용심하시지 않았으며, 동시에 그 방면에 있어서는 제한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써 그의 신성이 부정될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가 참인간이시라면 그가 배고프며 피곤하고 목마르고 한 것이 우리의 그것과 똑같은 현실이었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능력의 제한을 의미한 것임이 사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성에도 인간적인 제한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막 13:31)

그러므로 레이먼드(B. P. Raymond)는 “현대 비판학자들의 연구 문제를 그가 다 알고 있었다고 믿는 것은 그의 인간성의 현실을 애매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가현설(docetism)의 오류를 재연하는 것이다.”고 말하였다.(M. S. Therry, Moses and the Prophets, 191) 예수님께서는 그때에 벌써 오늘의 원자탄 공식을 다 알고 계셨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가장 부자연스럽고 비성서적인 망언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때에 그런 문제를 알 필요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셨으며 알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는 예수의 권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6] 그러면 이제 다시 문제되는 것은 이 고등 비판을 시인하는 성서가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설이 부정되지 않느냐 하는 그것이다.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에 대한 대답이다. 어떤 성서가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감동이 삼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함이요, 어떤 개인이 어떤 세대에 썼기 때문인 것은 아닌 까닭이다. 성경 중에는 히브리서와 같이 저자 불명의 책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책이 덜 영감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글씨를 한 자도 남긴 것이 없다. 그러나 4복음이 그것 때문에 덜 영감적인 것이 아니다.

영감은 또한 문학형식에 좌우되는 것도 아니다. 그 문학이 역사거나 비유거나 격언이거나 극이거나 시문이거나 영감은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문학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비판의 결과, 비유로 판정되었다고 해서 전보다 덜 영감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판에 의하여 하나님의 계시의 중심이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샌데이(Sanday) 교수는 말하기를 “내가 경험한 대로 고백한다면 비판학은 직접 초자연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요 결코 초자연에서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7] 만일 이상에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다수의 진실한 신도들 중에 아직까지도 성서 비판을 극력 배격하는 자가 있음은 어찜인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들의 전통을 애호하려는 감정이 이성적 판단을 왜곡시킨 까닭에 비판학에 대하여 애초부터 오해하고 드는 것, 2) 경건한 비판학자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사실의 수집과 판단을 그릇함으로 말미암아 본의 아니게 탈선된 결론을 내리는 것, 3) 어떤 비판학자는 가히 오만하여 신실치 못한 것, 4) 특히 안된 것은 비판학자 중에는 자기의 선입관에 지배되어 모든 발견된 사실을 그 관념에 부합되도록 설명하는 불경건을 감행하는 것이다. 즉 유물적 진화론, 자연주의, 과학주의 등에 영합하기 위하여 영감, 초자연, 기적 등을 될 수 있는 대로 부정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비판정신 자체를 모독한 것으로서 비판학의 최후의 소산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불긍하는 일부 인사들은 이 최악의 것을 들춰 가지고 비판학 전체를 정죄하는 까닭에 지극 불공평한 악선전의 주동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드라이버(Driver)의 말에 의하면, “성서 비판의 결과가 그리스도교 신조나 신앙에 충돌되는 일은 없다. 그것은 계시의 ‘사실’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계시의 양식(form)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게 한 것뿐이다.”(『구약개론』, 8, 9항)

성서가 비판됨으로 말미암아 그 진가가 상실된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종래의 불순한 진애가 일소되고 그 본질적인 것이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종래에는 사이비적 신학자들이 자기가 추상해낸 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편할 대로 성경을 왜곡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문학적, 역사적 비판의 결과 그런 불경건을 범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소위 우의적 해석이니 교리적 해석이니 하는 것 때문에 성경 기자의 본의가 무시를 당하는 일도 없게 되었다. 성경 인물들이나 사건들이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 앞에 뚜렷이 서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진정한 모습이 그림같이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문서편찬설에 의하여 성서 기록의 여러 가지 모순이 무리없이 해결되며 점진적 계시라는 입장에서 지적, 도덕적 또는 종교적 불완전성이 만족하게 설명되어 회의와 혼잡의 구실이 제거되었다.

그러므로 홀턴(R. F. Horton)은 말하기를 “일부 경건한 신도들이 그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고등 비판’은 사실에 있어서 성서 계시의 가장 유력 한 답변자였다.”(Revelation and the Bible, 61)라고 하였으며, 맥파딘은 말하기를 “성서 비판을 부인하는 자의 이론은 현대 역사적 해석학에 대항하기에는 전혀 무력하다. 그러므로 학도들이 계몽받는 대로 비판 부정론자는 자연 소멸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다.(O. T. Criticism and the Christian Church,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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