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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1141] 장공칼럼 : 한국역사와 학생 4ㆍ19 혁명

장공전집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4-19 02:09
조회
899

장공칼럼 : 한국역사와 학생 4ㆍ19 혁명

長空칼럼

한국역사와 학생(4ㆍ19혁명)

박정권에서 말끝마다 학생은 캠퍼스 안에서 공부나 할 것이고 사회나 정부에 대한 관심이나 비판 또는 발표 특히 데모를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특히 6ㆍ3사태 이후에 학생에 대한 그의 증오와 복수심은 첨예화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새 역사 창조에 있어서 학생은 언제나 그 역사의 선봉이었고 용감한 희생자였다. 3ㆍ1운동도 동경 유학생들이 첫봉화를 들었고 그 여파로 3ㆍ1독립선언서가 나왔으며 그 선언에 따른 시위 수난에 있어서도 학생들이 주요한 짐을 졌던 것이다. 4ㆍ19 민주회복 혁명에 있어서도 1960년 2월 하순에 대구에서 중ㆍ고등학생들이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는 슬로건으로 3ㆍ15 부정선거 음모에 첫 항거를 외쳤던 것이고, 그리고 3ㆍ15 선거에서 관권과 여당의 부정한 선거간섭과 조종이 노골화하자 마산에서 중고등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경찰과 충돌하여 경찰의 발포로 많은 희생자가 났다. 한달이 지나도록 학생과 시민을 사살한 경관에 대한 당국으로서의 처단이 없자 학생들 분노는 화산맥같이 폭발점을 찾고 있었다.

마침 그동안 행방불명 되었던 김주열 군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 그 소년은 물론 경찰에 의하여 살해되었을 뿐 아니라, 그 눈에 최루탄이 박힌 대로 있었던 것이다. 마산 학생들은 폭발점을 찾았다. 4월 11일에 그들은 봉기했다. 이것이 제2마산 사건이다. 그래도 서울은 잠잠했다. “서울 학생들은 썩었다”, “대학생들은 무엇하나”하고 시골의 중고등 학생들과 시민들은 경멸했다. 제2마산 사건이 일어난 만 일주일 후인 4월 18일에 서울의 고대생 3천명이 데모에 나섰고 4월 19일에는 서울대 각대학 총학생 약 1만명과 시내 전 대학생들이 총출동했으며 대광중고등 학생도 약 1천명 나섰다. 그들은 행정부의 무책임한 부패를 지적하고 구속학생 전원 석방, 학원자유, 절대보장 등등을 주장했다. 데모대열이 경무대에 접근하자 경찰의 무차별 발포와 계엄령 아래서의 군대의 충돌 등이 있었으나 학생들은 전진했다.

계엄사령관의 조정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학생면접 등등으로 수일을 지내고 4월 25일에는 대학교수단 258명의 시위가 있었다. 그들의 성명 내용을 보면

1) 마산, 서울 기타 각지의 데모는 주권을 빼앗긴 국민의 울분을 대신하여 궐기한 학생들의 순순한 정의감의 발로이며 불의에는 언제나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이다.

2) 이 데모를 공산당의 조종이나 야당의 사주(使嗾)로 보는 것은 고의의 왜곡이어서 학생들의 정의감을 모독하는 일이다.

3)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데모 학생에게 총탄과 폭력을 기탄없이 남용하여 공전의 민족참극을 빚어낸 경찰은 자유와 민주를 기본으로 한 대한민국 국립경찰이 아니라 불법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일부 정치 집단의 사병(私兵)이다.

4) 누적된 부패, 부정과 횡포로서 민권을 유린하고 민족적 참극과 국제적 수치를 초래한 현정부와 집권당은 곧 책임지고 물러나라.

5) 3ㆍ15선거는 부정 선거다. 공정선거에 의하여 정부통령을 다시 선출하라.

6) 그리하여 부정선거를 조작한 자, 학생살상을 명령한 자와 그 하수인, 공적지위를 이용하거나 관권과 결탁하여 부정축재한 자, (군, 관, 민을 막론하고) 등을 중형에 처하며 모든 구속된 학생은 무조건 석방하고 경찰의 중립화와 학원의 자유를 절대 보장하라.

7)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사이비 학자를 배격한다.

8) 정치도구화한 소위 문화인 예술인을 배격한다.

9) 학생들은 이성을 지키고, 이북의 선전에 이용되거나, 이남의 반공 명의를 도용하여 학생제군의 의로운 피의 대가를 정치적으로 악이용하려는 불순분자의 책동을 경계하라 등등이었다.

학생들의 핏값으로 민주질서에 의한 장면 민주정부가 수립되어 그 지반이 굳혀지려는 순간인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등 일부 정치 군인들이 무력으로 돌격하여 정부를 점령하고, 군정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헌법을 폐기하고 국회를 해산하여 국민의 주권을 박탈하고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며 중요정치인들을 감금했다. 그리고 수십명에 불과한 반역군인끼리서 “최고회의”란 “도당”을 꾸며 모든 국가 권력(3권)을 독점했다. 그 후에 다소의 탈바꿈이 있었으나 그 본질은 마찬가지인 군사일인독재로 오늘에 이르렀다. 5ㆍ16이후 16년, 4ㆍ19학생들의 의로운 피는 그 당시 교수단에서 우려한 바와 같이 “반공명의를 도용하여 학생들의 피를 자기들의 정권유지에 악이용하려는 불순정치인”들에게 더럽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4ㆍ19 묘지”를 꾸미고 자신들 주체로 4ㆍ19 기념식을 주최 진행시킨다. 그것은 4ㆍ19의 유해와 영령까지도 자기들이 연행하여 자기들의 옥사에 감금해 두려는 술책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독재체제에 의한 인권유린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반독재 민주운동의 선봉인 4ㆍ19학생 혁명은 종지부가 찍혀진 과거사가 아니다.

당장 우리 눈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며 그들이 타도하려는 독재체제가 완강할수록 그 싸움은 치열하고 그 기간은 길어지는 것이다.

4ㆍ19 당시에는 미국의 주한대사 마카나키가 민주편에 서서 두 번이나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가서 “당국은 국민의 정당한 불만에 응답할 조치를 위할 의무가 있다”, “미봉책을 쓸 시기는 지났다”, “정의를 선양하고 솔직 철저한 해결책을 취해야 한다” 등등 함축 있는 하야 권고까지 했었다. 군대도 발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학생들은 훨씬 더 고전하고 있다. 박독재는 학생과 시민과 교수와의 연락망을 온전히 단절시켜 전 국토가 한 감옥으로 변하게 했다. 미국 행정부는 미국 자본가들이 투자한 “노다지관”에서 손떼기 싫어서 은근히 박독재를 지지한다. 다국적 기업단에서는 그들의 유일한 조건인 “반공”이란 만능약이 박독재에게서 놀랄만큼 약효를 내고 있는 것을 기화로 그 암의 뿌럭지를 전신에 퍼뜨리고 있다. 지금은 사회의 중년층이 된 4ㆍ19 때 학생들도 대부분 건망증에 걸려 있다. 포위속에서 외롭게 고전하는 한국의 학생들 무엇으로 도울 수 있는지 애타고 안타깝다. 하늘이 주신 천재 시인 김지하는 무작정 감옥에 있다. 하늘에 별같은 양심의 사람들 목사, 신부, 교수들이 감옥에 있다. 그 가족들은 K.C.I.A. “감시” 아래서 기아의 선을 헤메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빛난다. 그들은 시대의 사람임과 동시에 영원하다.

그들은 사회인임과 동시에 진리의 별이다. 그들은 감옥의 수인(囚人)이면서 참자유인이다.

이런 말들은 “추상적”일지는 몰라도 “참”임에는 틀림없다. 악마는 횡행한다. “참”은 악마의 원수다.

그들은 거짓, 이간, 분열, 포위, 공갈, 연행, 고문, 투옥, 살해 등등 폭력으로 대결한다. 아주 구체적이다. 그래도 진리를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싸움은 계속된다. 지는 싸움도 그것이 진리인 경우에는 항복 거부에서 승리의 씨앗이 된다. 결국에는 학생이 이길 것이다.

3선개헌 반대운동 때의 한국교회는 아직도 “정교분리”의 신화에 취하여 잠이 깨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시 박형규 목사가 주간하던 “기독교 사상”(기관지)에서 전격적인 특집을 내고 “나와의 대담”이 길게 게재된 것은 기록적이었다. K.N.C.C에서 간단한 지지 성명이 있었다. 어쨌든 “투쟁”은 벌어졌다. 교회와 국가와의 상호관계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인 정당한 해명이 각처에서 요구되었다. 그 분계선이 어디쯤 그어지느냐고 묻는 기독학생, 신학생들도 많았다. 하여튼 한국 교회로서 몹시 생소하고도 난처한 과제에 직면한 셈이었다. 결국 교회 전체로서는 “삼선개헌”에 “예”도 “아니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예”한 셈이 된다. 그러나 국회는 그렇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개헌안을 국회에 내놓으면, 영락없이 부결될 판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바지 저고리” 국회의장 R씨를 시켜서 토요일 열두시가 지난 무럽, 이제는 아무 일정도 없는 일요일이니 나는 간다면서, 농성중의 의원들을 떠나 야밤중에 몇 사람의 같은 의원들을 데리고 나와 길건너 “제삼별관” 뒷문으로 숨어들어 불과 몇초 동안에 “통과”라 선언하고 새벽에 박정희 서명으로 삼선개헌안은 공포되었다.

철두철미 절도 행위였다. 국회가 절도당한 것은 민주주의가 절도당한 것이요 동시에 국민주권이 절도당한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인간”이 절도당한 것인데 인간을 구원한다는 “교회”는 멍청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가 어떻게 그런 젊잖지 못한 “투쟁”에 가담하느냐고 얼굴을 길다랗게 내리깔고 있었다.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내가 화평을 주러온 줄 아느냐 도리어 분쟁을 일으키러 왔다”, “내가 세상에 칼을 주러 왔다” 등등은 예수가 투쟁자란 것을 암시한다. 무엇보다도 그가 팔방미인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힐 때 환도를 뺀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 하면서 그 칼을 못쓰게 했다. 그러나 그 얼마 후 잡혀가면서 “돈 주머니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또 자루도 가지고 가라. 그리고 검이 없는 사람은 검을 팔아 검을 사라”(눅 22:35-37)고 했다.

이것은 전투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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