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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6권] (1636) 민족주의의 인간화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2-17 11:15
조회
982

[범용기 제6권] (1636) 민족주의의 인간화

한 민족 집단은 다른 민족 집단과의 경쟁에서 자기 민족의 유지와 강화에 만전을 다할 밖에 없습니다. 인구 팽창에 따르는 생활주변의 확대, 타민족의 침략 방지, 나아가서는 타 민족에 대한 정벌로 불가피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부족사회에서 부족연합사회로, 더 나아가서는 국가사회로 그 공동체가 넓어졌습니다. 넓은 구역의 질서를 유지하려니 통치기관이 필요하고 그 기관의 수반인 통치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도 만주와 북한 일대에 “고구려”가 생기고 남한에는 “백제”와 “신라”가 생겼습니다. 따라서 3국정립의 시대도 있었고 “신라”의 통일로 한반도가 한 나라로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위 신라의 통일에서 청천강 이북과 만주를 잃었으니 크게 자랑할 것도 못됩니다. 특히 “이민족”인 당나라와 합세하여 같은 민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니 민족도의로서도 떳떳하다 할 수 없겠습니다. 다만 고구려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신라까지 쳐먹으려던 당나라의 흉계를 알고 맞서 싸워 소정방의 군사들을 패잔병으로 도망치게 했다는 것이 신라의 자랑이라면 자랑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후 고려왕조를 거쳐 이조에 와서야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통일 한국으로서의 국토를 정립시켰습니다. 고려시대에 “윤관” 장군이 북청까지 여진족을 밀어버렸고, 이조시대에 김종서 장군이 두만강가에 6진을 개척하여 우리 민족의 “이민”역사를 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통일민족국가가 정립됐습니다. 판도에는 다소 신축이 있었다 해도 우리 민족 통일국가로서도 약 1300년의 긴 역사를 지냈습니다. 강대국들 틈에서 이렇게 “내 나라”를 세워 그 나라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발전시키노라고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애썼던 것, 얼마나 용감하게 침략국들과 싸웠던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환경에서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강대국들 꼭두각시 노릇만 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어른들 말대로 한다면 어떻게 지하에서 선열들 뵈올 면목이 있겠습니까?

지금의 현실이란, 1300년이나 통일돼 있던 우리 국토를 강대국들이 제멋대로 허리를 잘라, 미ㆍ소가 각기 자기들 발등상으로 만든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 자신들까지 강대국들이 추기는 대로 남과 북 동족끼리 눈을 흘기고 이를 갈며 “불공대천”의 원수인양 싸우며 미워하고 있습니다. 철모르는 아이라면 몰라도 5천년 자란 어른 민족으로서는 남보기 창피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치욕은 경술년 한일합방입니다.

일본은 대륙진출의 병참기지로 한국을 먹어야 한다고 임진왜란 때부터 벼르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를 아주 먹어버리기 위하여 일청, 일로전쟁까지 치렀습니다. 그때 초강대국이던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일본을 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번 다 일본이 이겼습니다. 그랬으니 이제는 한반도는 내꺼다 하고 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없어졌습니다만, 민족은 살아 있었고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빳빳한 기백이 없다고 할까! 어쨌든 청국, 러시아, 일본 등의 각축장에서 대체로는 기회주의자 노릇을 해왔습니다. 순국의사, 열사들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기울어지는 대국을 만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나라회복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항거는 계속합니다. 그러나 그 항거방법이 “2중구조”적입니다. 적응하면서 항거합니다. 겉으로는 적응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항거합니다. 합방 후 일본은 우리 민족의 “적응” 태세를 그대로 믿고 한국민족의 일본민족화를 강력하게 밀었습니다. 그러나 천만에 말씀! 우리 민족은 건재합니다. 5천년 뿌리깊은 생명나무가 딴 나무로 변질될 수는 없었습니다.

국내 국외의 우리 애국지사들은 일본과 싸웠습니다. 그들의무기는 “민족주의”였습니다.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이 총궐기하여 폭력으로 일인들을 도살하자고 했습니다. 그건 아마 때리고 달아나는 “게릴라” 전을 모두가 끈덕지게 하자는 말씀이었을지 모릅니다.

박은식 선생은 비폭력 불타협으로 일본에 맞서자고 했습니다. 두 분 다 열연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국권은 상실했지만, 민족은 살아있다는 신념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두 분의 광복방안을 실시할 만큼 우리 민족이 자각하애 행동할 수 있다면야 애당초 일본에 먹혔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국토가 둘로 갈라졌지만, 민족은 하나가 아니냐! Ideology가 다르다고 딴 민족이 되는 것은 아니잖느냐? 한 집안 형제도 생각이 똑같이 않지만 “형제”임에는 틀림없지 않느냐 합니다. 뒤에서는 서로 욕하고 미워한다 하더라도 만나면 반갑기만 한 것이 “동기기친”이 아니냐? 그래서 아마 7.4 공동성명에서 남북통일의 가능성을 단일민족이란 공통분모로 “클로즈 업” 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집니다.

이북의 집권자도 민족의식을 내세웠습니다. 그것이 전세계 공산화를 위한 “징검다리”로 일시 이용하자는 전략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만큼 그들도 “민족주의”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에는 공산주의도 민족주의 토대 위에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예표도 된다고 봅니다. 사실, 소련도 중국도 동구 여러 나라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남한에서는 북한의 동족을 “빨갱이”니 “북괴”니 하고 욕스러운 호칭을 “표준어” 같이 사용합니다. “반공”, “멸공”을 “국시”로 한다면서 동족에 대한 적개심을 조장하고 살육극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공산주의는 미워하지만 ‘공산주의자’는 미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란 인간에게서 유리된 공산주의는 한 추상된 개념에 불과합니다. “인격”이 아닙니다. 미워할 것도 사랑할 것도 없습니다.

“반공”, “멸공”이란 국시도 실존하는 인간 또는 인간 집단을 빼놓고서는 한갓 철학적 술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 박멸이란 말은 공산주의자를 살육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숙청”이란 것이 그런 것 아닙니까.

“민족주의”란, 어떤 집권자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 제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진흙”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민족의 유구한 과거에 뿌리박고, 현재에서 생동하는 생명적 공동체로서의 “주체”(Identity)를 규정하는 개념이랄 수 있겠습니다. 그 과거가 민족이 이 생명체 안에 연륜을 그리면서 한몸으로 자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과거가 숙명적으로 현재를 규정짓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그 취급해야 할 사건들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민족사는 유동적이면서 창조적인 작업에서 해석되고 이해돼야 할 것입니다.

과거는 계속 갱신의 여백을 가집니다. 현재는 과거를 창의적으로 지양하면서 자기로서의 연륜을 넓힙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 넘깁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의 민족역사가 오래면 오랠수록 그 유산도 풍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goal”을 역시 미래에 설정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편중하면 회고주의(anachronism) 또는 “국수주의”가 되기 쉽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박정희가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회고주의”에 의한 독재정권 보호각 조성의 시도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통할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는 한국의 왕조사를 자신의 “집권사”에 연결시키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는 “왕조사”임에 틀림없겠습니다. 왕조사적인 나라에서는 “임금”이 곧 “나라”여서 그 통치영역 전체를 “임금”의 재산으로 생각합니다. 국민의 운명은 임금의 “시정”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어쩌다가 선정을 베풀면 “황송무지”하다고 느껴 간 데마다 “송덕비”를 세워 찬양합니다. 그대신 “악정”을 베풀어도 할 수 없다고 체념합니다. 그런 성격의 역사전통 아래서는 대통령을 “왕”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잖아도 “왕” 노릇하고 싶은데 잘됐다고 스스로를 왕으로 변질시킵니다. 왕이라도 입헌군주나 전제군주의 위치를 넘어서 독재군주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국민은 정치에 있어서 “무존재”요 “비인간”입니다. 입은 있어도 말은 없습니다.

이런 암굴 속에서 지금의 한국민족은 과거에 씩씩하던 고구려의 민족정기를 잃고, “생존제일주의”의 Economic animal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족정기” 얘기가 났으니 말입니다만, 일본에 대한 한국민족의 태도는 비굴의 도를 넘어서 애교를 파는 창기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기생관광”이 정부 수입예산의 중요한 세입항목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옛날 인신매매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딸, 내 손녀를 놈팽이 왜인들 가슴에 능욕 대상으로 밀어 넘기고 돈 몇푼 받는 게 좋다고 바보같이 헤헤 웃는 꼴이란 말입니다.

“상탁하부정”이라고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이 더러울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정부 자체가 일본의 시녀인양 굽실거리니 민족 “정기”의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다가는 우리 민족이 스스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일본, 미국 등 강국의 “머슴살이”를 “감투”라고 뽐내는 “바보”로 낙착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 실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합니까? 이 답답한 몸부림이 학생들의 ‘데모’가 되고 성직자들의 “구국선언”이 되고 거기 따르는 “감옥행”이 되는 것입니다.

민주인사들은 현재를 비취는 “봉화”고, 미래에 넘겨줄 “불씨”입니다. 권력이 두들기면 작은 불꽃들이 튕겨날아 여기저기 불이 붙습니다. 더 몹시 두들기면 더 많은 불꽃이 뛰어 오릅니다. 그러나 그 한 분이 두들기지 않을 정도로 점잖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일시 평온할 것입니다. 외자기업체 덕분에 소수 인사들은 “편한 개팔자” 일지 모르지만, 꾀들 잘 살 것입니다. 그 대신 밑바닥 인간들은 굶주리며 허덕일 것입니다. “부자들아, 너희의 재물은 썩었고 너희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고 … 그 녹은 불과 같이 너희 살을 먹어버릴 것이다…. 너희가 너희 일꾼들에게 주지 않은 품삯이 소리지른다. … 너희는 이 땅에서 사치하고 호화롭게 지냈으며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했다”(야고보 5:1-6). 이런 존엄한 선언이 심판의 날을 고용주, 다국적 기업체들에게 가져올 것이 두렵습니다. “도살의 날”은 역사 안에 폭발하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들은 돈을 벌었으나 “인간”은 잃었습니다. 잃었다 뿐 아니라 죽였습니다. 그들은 폭풍이 휘몰려칠 때 알맹이 없는 겨와 같이 날려가 태워질 것입니다. 억울한 인간군상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다만 한 때 침묵할 뿐입니다. 민족의 알맹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를 사모하는 인간입니다. 소돔ㆍ고모라가 멸망한 것은 그 사회 속에 “의인”이 열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우리 민족의 과도한 보수주의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개인 자유와 사회정의를 제창해 왔습니다. 교회도 기독자도 마찬가지로 보수일변도였습니다. 감리교는 모르겠습니다만, 장로교에는 초대 미국 선교사들이 극단의 보수주의 신학을 무턱대고 또 집요하게 주입했습니다. 요새 듣는 대로는 최근에사 들어온 루터교도 보수주의 극을 지키는 “미조리시노드”라고 합니다. 신앙이란 자기 자신의 자유 선택을 깃점으로 하는 가장 엄숙한 인격적 선택이요 결단인데, 어떻게 남이 하라는 대로 받아들입니까? 가장 값진 진주를 사려는 사람이 어떻게 거간꾼이 선전하는 대로 생각없이 따릅니까?

“신학”도 “학”인데 비판 없는 학문이 어떻게 성립됩니까?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되려면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보장돼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둘로 갈라진 우리 민족에게는 두편 다 이것이 보장되있지 않습니다.

남한은 다소 낫다고들 합니다. 그거야 외자를 도입하려니까 돈 가진 나라들을 우대해야 일이 되니 그럴 밖에 없겠지요. 그뿐입니까? 우리나라에는 세계에 유례 없는 저임금 노동자가 갈다귀같이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는 값싸고 예쁜 아가씨들이 줄을 지어 외국인 호텔방에 티켓과 함께 제공된다. - 하고 선전합니다. 이렇게 되고서 민족정기가 숨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비인간화한 민족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드높일 수 있겠습니까? 이북의 우리 민족은 “기계”가 되었고 이남의 우리민족은 “애니멀”이 되었습니다.

통틀어 비인간화했습니다. 이렇게 만드는 독재자 자신들은 인간입니까? 그들은 “슈퍼맨”으로 자처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상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소망 없는, 멸망할 밖에 없는 민족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소돔ㆍ고모라에는 의인 열 사람도 없었다 합니다만, 우리나라, 우리민족에는 수백, 수천의 의인이 있어 자유와 정의를 선포하고 유치장에 갑니다. 형량을 끝내고 나오면 또 합니다.

그들 소수의 창조적 “의인”들이 우리 역사, 우리나라를 살리는 “참인간”들입니다. 그들은 민주인사들입니다. 우리민족은 왕조사를 계승해왔었습니다. 왕조역사는 민주인사들의 수난에 의하여 민중역사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땅 속에 묻혀 등이 터지고 겁지가 찢어지고 하는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싹트고 뿌리내려, 밝고 따스한 태양빛 속에서 무럭무럭 자랄 미래를 창조하는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잘했든 못했든, 남이나 북이나 모두가 우리 민족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외국에 옮겨온 사람들도 우리 민족의 일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겉모양은 변할지 몰라도 핏줄은 그대로입니다. 5천년 과거가 그들 심층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피는 피를 부릅니다.

북미주는 이런 이래민들이 만든 나라입니다. 비교적 자유하는 인간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족주의적 혈연국가입니다. 그런데 그 민족주의가 사실은 민족말살의 과정을 굴러내리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도마상 위에서 그들 식탁에로 진열되어 그들에게 씹혀, 그들 속에서 소화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민주화화 통일추진이 유일한 살 길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역사의 왕조 전승은 민중의 역사로 다시 쓰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은 종도 기계도 짐승도 아닌 존엄한 인간입니다.

우리 민족은 5천년 문화를 계승하는 문화민족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특권이 제민족의 통치자에게 유린되고, 식색위주의 외국인들에게 능욕되고 있습니다. 인간 존엄과 민권신장이 강력하게 전개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족주의가 인간화하고 대중화해야 하겠다고 외칩니다. 이것은 민족의 의무임과 동시에 교회의 본직이 됩니다. 인간 구원이 교회의 메시지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국내국외 우리 민족이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1979년 2월 10일
토론토 민건 2주년 기념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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