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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5권] (131) 輓章文記(만장문기) - 박원봉(朴元鳳) 목사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22 08:40
조회
948

[범용기 제5권] (131) 輓章文記(만장문기) - 박원봉(朴元鳳) 목사

박원봉 목사는 1958년 3월 15일 제17회 한신졸업생으로서 일찍 도미하여 프린스톤 신학에 진학하려 했었지만 여의치 못했다. 그래서 박정희 군사반란 직후, 내가 무슨 일로 도미했을 때에는 와싱턴에서 부스레기 ‘짭’을 줏으며 하루하루 살고 있었다. 때는 민주당 정권이 몰락한 직후여서 박정희 군정도 조마조마 불안해 하는 무렵이었다.

어쩌면 민주정부로 바로 잡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적 관측도 없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장면’ 정권 때, 주미대사로 있던 장리욱 박사도 아직 와싱턴 근교의 따님 집에 옮겨 정세를 관망한다고 들었다.

해방 이후, 유일한 합법적 민주정권이던 민주당 정부가 하루아침에 ‘쿠데타’ 반역 군인에게 넘어갔으니 그래도 분개할 줄은 알게 아닐까 싶어서 일부러 찾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한국장로교회에서 일종의 ‘이단자’로 정죄받게 되던 무렵에 때마침 ‘브루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성서 절대주의’는 ‘우상숭배’다 하고 정통주의자들과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을 비판한 프린스톤 신학교교장 ‘매카이’ 박사도 그 근처에 은퇴해 계신다기에 그도 예방하려 한 것이었다. 나는 그야말로 ‘촌계관청’(村鷄官廳)이라, 지리도 길도 모르고 교통수단도 없다. 박원봉 군이 자기의 헌 자동타에 태워갖고 나선다. 그도 초행이다. 촌 길이다. 지도에도 없는 포장 안된 ‘농로’가 많았다. 그때 와싱턴 교외에서 Store를 경영하고 있던 최순복 여사가 ‘선물’이라고 한국제 놋쇠 대야를 주어서 그놈을 보통 종이에 되는 대로 싸 갖고 왔다. 매카이 박사에게 드릴 예물이었다.

점심때 쯤에 결국 매카이 박사의 단칸 아파트에 찾아 들었다. 사모님과 두 분이 외롭게 살고 계셨다. 무척 반겨주신다. 사모님은 간단한 점심을 차리셨다. 매카이 박사님은 ‘매킨타이어’를 진짜 ‘떼불’이라고 정색하며 말씀하신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아 장리욱 박사 댁을 찾는다. 무던히 헤맸다. 아마도 열 번은 더 물었을 것이다. 어느 해변가 큰 저택이었다.

사위님이 꽤 좋은 직장에 취직한 것 같았다. 장 박사님 방은 서재, 응접실, 식당 등이 붙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물어봤다.

“장박사님은 민주당 정부에서 중직인 주미대사로 계셨는데 군사쿠데타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6ㆍ25 때 우리 군인들이 목숨걸고 싸워 침략군을 몰아냈으니, 군인들도 정권을 한번 잡아 봐야 하지요. 군의 고급 장교들은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지성인들입니다.”

나는 허탕친 느낌이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바로 내가 방문하기 전에 국군측 선전관이 설득해 버렸다고 한다. 미확인 ‘뉴스’니까 신빙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장박사는 국내흥사단 최고 책임자였고, 도산 선생 제자니까, 신의, 용기, 무실, 역행은 기대해도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사모님께서는 경동교회 초기부터 충실한 경동교회 교인이었다.

우리는 장박사님 댁에서 나와 박원봉 군의 수고로 늦게사 와싱턴에 돌아왔다.

원봉군은 와싱턴 지리에 밝았다. 와싱턴, 제퍼슨, 링컨 등의 기념각을 두루 다니며 순례했다.

‘한신’에서 수유리에 새 교사를 거의 준공했을 때였다. 적년 묵은 대장염, 이질, 위경련 등등이 총공격하는 바람에 나의 지친 몸은 쓰러졌다. 식음전폐다. 통증이 몸을 비튼다.

그때 서대문 적십자 병원 내과 차장으로 있던 조카 하용의 주선으로 일등 독방에 입원했다. 거의 석달 입원해 있었다. 위암으로 오진되어 한참 소동한 일도 있다.

나의 입원 중, 박원봉 군은 자주 문병 왔었다. 퇴원이 가까웠던 어느 날 그는 ‘진도개’라면서 귀여운 강아지를 안고 왔다. 병실에서 강아지 기를 수는 없으니까, 수유리 집에 갖다 놓았다.

내가 퇴원했을 때 그 강아지는 ‘중개’가 되었다. 진돗개는 아닌 것 같았다. 무럭무럭 자라서 곰같은 사냥개가 됐다. 이름을 곰이라고 불렀다. 뒷산에 돌아다니며 꿩을 물어온다. 제가 먹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바치는 것이었다. 물어올 꿩이 없어지자 그는 동네집 닭을 물어온다. 그리고서는 칭찬해 달라는 듯 쳐다본다. 동리에서 아낙네들이 우리집에 몰려와서는 닭 값을 물어내라고 욕설이다. 몇 번 물어줬다.

아낙네들이 우리집에 와서 고래고래 야료부리는 것을 본 ‘곰’은 손님만 오면 마구 대든다. 뒷덜미에 긴 털이 푸짐스레 자랐다. 곰만큼이나 큰 짐승이다. 그런 놈이 덤비는 바람에 손님은 질겁한다. 그래도 그건 위협이지 진짜 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느 때 안희국 선생이 들어오다가 물렸다고 한다. 우리 집터는 언덕 중턱을 앞뒤로 허물고 몇 길 높이 축대를 쌓은 터전 위에 겨우 매달려 있다. 하루는 내가 아침 일찍 나가보니 우리 ‘곰’이 앞축대 밑에 죽어 넘어져 있었다.

은용, 경용이 모두 어릴 때라 곰은 그들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나는 두 아들과 함께, 곰을 조촐한 가마니에 싸서 들것에 뉘여 뒷 언덕 제일 큰 소나무 밑 통모래땅을 깊숙이 파고 거기에 장사하고 돌을 모아 돌무덤을 만들었다. 우리 ‘곰’의 死因(사인)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어느 누가 고기덩어리에 독약을 넣어 덥석 삼키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속에서 불이 타니까 앞 시내에 물 마시러 간다고 그 높은 석축을 평지인양 뛰어내리다가 ‘운명’한 것이리라.

박원봉은 전부터 낯빛이 검은 축이었다. 오래 전부터 간장이 시원치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것이 만성 간염으로 십년을 계속했다.

그가 81년 9월 29일에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오랜 병고로 지치고 약해져서 손이 떨려 Sign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내가 대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만성간염으로 秋草(추초)처럼 시들 시들 말라가고 있습니다. 급성간염은 쉽게 났는 수도 있다는데요.

선생님 부디 건강하십시오.

81년 9월 29일 박원봉 올림

나도 위문편지는 여러 번 했지만 직접 병상에 찾아가지는 못했다.

원봉 목사는 82년 1월에 죽음의 선을 넘어 저리로 갔다. 지금도 금후에도 주님 모시고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의 친형 원호 목사가 동생 일까지 보살피며 지금도 건투한다. 미망인도 우리 졸업생이다. 건투한다고 들었다.

박원봉 목사는 거짓도 욕심도 없는 ‘천진’ 그대로의 인격이었다. 그리고 돕고 싶고 주고 싶어 못견디는 삶의 숨은 기록을 생명록에 써 넣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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