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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5권] (124) 동경에서 – 除夜(제야) 讀詩(독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19 08:36
조회
1102

[범용기 제5권] (124) 동경에서 – 除夜(제야) 讀詩(독시)

1982년도 오늘로 퇴장한다. 지루하게 걸려있던 역서장도 다 떨어져 나갔다. 늙은 아내는 옆방에서 잠들고 나 혼자 제 그림자를 깔고 앉아 밤을 샌다.

잠이 천리만리, 묵은 해 따라 달아났다. “당시집”을 읽는다. 맨 처음 눈에 뜨이는 것이 금삼(芩參) 715-770의 除夜詩(제야시)다.

東去長安萬里餘 故人那惜一行書
玉關西望腸堪斷
況復明朝是歲除

동으로 동으로
장안은 만리
친구여,
한 장 편지 아끼지 마소!

‘옥관’ 지나
‘서역’ 길
애끗는
슬픔인데,

내일 아침
이해도
除日이라네.

[註] - 芩參(금삼)은 南陽(남양), 지금의 河南省河陽市 사람,

출생지는 ‘강능’, 귀족출신, 744 AD에 進士(진사), 西北地方(서북지방) 節慶判官(절경판관), 765 AD에 西州省 壽州刺使가 되어 任期(임기) 끝나고 귀경 도중에 여관에서 客死(객사)했다. 그에게는 시가 많다.

그의 시 가운데는 이런 시도 있다. 못본체 지내기는 너무 절실하다.

走馬西來欲到天 辭家見月兩回圖
今夜不如何處宿
平沙萬里絶人烟

하늘 다은
서쪽 길
말타고 달렸네.

집 떠나 달 보니
두 번 다시 둥글었네.

오늘 밤은
또-
어디서 잘건가?

펼쳐진 萬里사막
인가라곤 없는데!

寒雨連江夜入員 平月送客禁山孤
洛陽親友如相問
一片泳心在玉壺

강물에 잇닿은
차가운 비 맞으며
밤 늦게사
吳에 들었네
이른 아침
벗 보내니
禁山만 외롭구려.
洛陽 친구들
내 형편
묻거들랑,
玉壺(호)에 담긴 얼음
맑더라 일러주오!

[註] 南陽(남양)에서 洛陽(낙양), 즉 그때 서울로 돌아가는 옛 친구를 보내며 지은 석별시.

東江(동강)은 빗발이 강물에 잇닿아 강물과 빗발이 하나로 어울린 광경.

隴西行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超錦喪胡塵
可燐無定河骸骨
猶是春閨夢愛人

맹세코 흉노를
소탕한다고
내 몸 돌볼
생각도 없었는데
五千의 장정을
호지땅에 잃었네.

슬프다!
해골만 딩구는
無定江 언저리
그들 모두
봄의 규수들
꿈에도 못잊는
“애인”일텐데!

[註] “농서행”은 노래 이름

“超錦”(초금)은 모피와 비단옷 몽고 사막의 밤 추위에 견디는 군복.

無定江(무정강)은 협서성 동북부에 있는 강. 내몽고에서 발원하여 楡林(유림) 서쪽 綬德 동쪽편을 흘러 ‘황하’에 합류한다.

‘농서’는 ‘서역’에의 통로로서 감숙성 서부라고 한다. 作者(작자) 陳陶(진도)는 846-860 大中年間에 亂(난)을 西山(서산)에 피해, 仙人(선인)이 됐다는, 平淡無(평담무) 晩唐(만당) 詩人(시인)이란다. 생년월일은 모른다.

王維(왕유)

桂魄初生秋露微 輕羅已薄未更衣
銀爭夜允殷勤弄
心怯空房不忍歸

초생달 떠올라
찬 이슬 촉촉한데
겹옷으로 갈아 입을
생각도 없이
밤새가며 ‘은쟁’만
타는 것은
빈방에 혼자 못들
겁심 때문이라오.

‘銀爭’(은쟁)은 은을 박아 장식한 거문고 종류의 악기. ‘殷勤’(은근)은 정성드리는 마음씨. ‘怯心’(겁심)은 겁에 질리는 심경.

作者(작자) 王維(왕유)는 699-759 AD 사람이라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15세에 이미 詩名(시명)이 높았고 18세에 大成(대성)한 천재 시인이다.

夜上受降樓聞笛 回落峰前沙似雪
受降城外月如霜
不如何處吹芦管
一夜征人盡望鄕

回落峯(회락봉) 앞 모래는
눈이랄까!
수항성 달빛은
서리 같구려!
풀피리 소리는
어디서 오는고!
싸움터 사나이들
고향 그려
밤 샐 텐데!

[註] 作者 李益(이익)은 748-827 AD의 사람

字(자)는 君虞(군우)란다. 감숙성 무위현 사람

中唐의 詩人. 李賀(이하)와 동족이며 풍류와 文才(문재)로 이름이 높아 진사, 집현전 학사, 待 御使 禮部尙書(예부상서)까지 한 벼슬아치. ‘才’(재)가 勝(승)하여 오만 불순하고 질투가 심했단다.

月夜

更深月色半人家 北斗閑干南斗斜
今夜便知春氣暖
蟲聲新透緣窓紗

깊은 밤 달빛
집의 반만 비추네
北斗七星 기울고
南斗가 비꼈네
오늘 밤 유난스레
봄기운 따스해.
碧紗窓(벽사창) 뚫고
벌레소리 스며드네!

作者(작자) 劉方平(710-?)은 河南(하남) 사람으로 절세의 미남자였단다. 20세에 文名(문명)과 山水畵(산수화)로 이름이 드높았다. 벼슬에는 초연하여 평생을 야인으로 지냈다.

西城(서성)에로 赴任(부임)길에
入京使(입경사)를 만나서

芩參(금참)

故園東望路漫漫 雙袖龍鍾淚不乾
馬上相逢無紙筆
遇君傳語報平安

동쪽 고향 길,
보기도 아득하오.
눈물 안 말라
두 소매 젖었소.
말 탄대로 만났으니,
조이 붓 없구려.
평안 하더라고
말이나 전해주오.

그는 여전히 邊境(변경)을 詩化(시화)한다.

隱隱飛矯隔夜烟 石磯西畔問漁船
挑花盡日隋流水
洞在淸溪何處過

아지랑이 저 편에
구름다리 떠 있네
돌짝 밭 서쪽 냇가
고기 배에 묻노라
복사꽃 진종일
시내따라 흐르니
어느 골에
무릉도원 있나요?

[註] 作者 張旭(장욱)은 675-750(?) A.D.의 사람으로서 소주(蘇州) 吳人(오인)이다. 詩想(시상)이 무궁무진하고 글씨는 草書(초서)의 名人(명인)이었다. 술 먹고서 고함질러 미친 사람 같았단다.

張祐

金陵津渡小山樓 一宿行人自可愁
潮落夜江料月裏
兩三星火是爪州

金陵(금릉) 나루터
小山樓(소산루)에 하루밤
쓸쓸도 하이
썰물 밀리고
살도 기운데
별이냥 반짝이는
강건너 가로등 -
저것이 파주(爪州)라네

[註] 作者는 河北省(하북성) 淸河(청하) 사람. 金陵(금릉)은 남경. 爪州(파주)는 장강 북쪽 강소성 양주(楊州)시. 江(강)은 양자강. 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心(심)

涼州詞(양주사)

葡萄美酒夜光杯 欲飮琵琶馬上催
醉臥沙場君莫笑
古來征戰幾人回

향긋한 포도주
야광배에 가득부어
마시고 떠나려니
말 윗 비파소리
어서 타라 성화네.

나 이제 취객 되어
모래밭에 누웠다고
그대여 웃지말게.
예부터 출정군인
돌아온 이 몇이던고!

[주] 作者 왕한은 산서성 태원(太原) 사람

710 AD에 진사, 直言極諫科(직언극간과)에 있다가 竝州長史駕部員外郞(병주장사가부원외랑) 등 벼슬도 했다. 그러나 성질이 호탕하여 고관 귀족들도 마구해 버리고 조금도 쭈볏하지 않았다. 술 먹고 사냥하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였다.

‘涼州’(양주)는 감숙성 무위현에 있는 서북국경수비의 요충지. 서하(西河)절도사가 주재하는 고장. ‘서장’은 포도의 명산지. ‘비파’는 ‘서장’ 유목민이 말 위에 앉아 연주하는 현악기.

後庭花(후정화)

煙籠寒水月籠沙 夜泊泰 近酒家
商女不知亡國恨
隔江 唱後庭花

밤 안개 찬 물에 끼고
달빛은 모래에 서렸다

‘진회’에서 하루밤
술집 옆에 머문다
강건너 妓女(기녀)는
‘후정화’에 흥겨웠네.

그것이 亡國간줄 모르고!

[註] 作者 杜牧(두목) (803-852 AD)은 재상가문 출신으로 字(자)는 牧之(목지)로 알려졌다.

진사, 감찰어사, 호주진사, 중서사인 등 벼슬아치였으나 나이 50에 영서했다.

용모가 미려하고 성질이 강직하여 국가대사를 논하는 마당에서 변론이 절실하고 호방하여 맞서기 어려운 위인이었다. 그의 作 : 「阿房宮賤」는 憂世(우세)의 名文(명문)으로 전해진다(唐才子傳).

‘後庭花’(후정화)는 南朝(남조) 최후의 왕조인 ‘陳’(진)의 宣帝(선제, 582-589 AD 在位)가 ‘王樹後庭花’란 제목으로 손수 작자, 작곡한 노래다. 그는 연락에 빠져 隋(수)나라에 망했다.

‘長空’(장공)은 16세 소년 때, 회령읍에 있으면서 한국 명필중의 한분이신 白松 池昌翰(지창한) 선생의 휘호하시는 곳에 가뵌 일이 있다. 그는 합방전에 무산군수로 계시면서 백두산 정계비 세울 때 한국측 대표중 한 분으로 활약하기도 하셨다. 내 백부님과 선친과도 깊은 친교를 갖고 계셨다.

그 어른이 위에 적은 “商女不知亡國恨……” 구절은 그 자신의 ‘恨’(한)을 대변한 구절이래서 즐겨 많은 후진들에게 남기신 줄 안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盡
輕丹已過萬重山

아침 일찍 떠났다.
채색구름 자욱한
백제성을 떠났다.

천리길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다.

좌우 언덕에는
원숭이 소리-

가벼운 배, 벌써
만겹 산을 지났다.

[註] “강릉”은 호북성

百帝城(백제성)은 四川省(사천성) 奉節縣(봉절현)에 있는, 漢末(한말)에 公孫述(공손술)이 세운 성이란다. 여기서 강릉까지는 300km, 1200華里의 下流(하류), 李白)(이백)은 安史(안사)의 亂(난)에 永王璘軍(영왕린군)에 가담했었기 때문에 流配(유배)의 선고를 받고 三崍(삼래), 坐山(좌산)까지 갔다가 도중에서 무죄사면의 통고를 받고 기분이 경쾌하여 다시 江陵(강릉)에로 돌아가는 길에 지은 시. 경쾌한 기분이 가벼운 배와 함께 흐른다.

李白

故人西辭黃鶴樓 烟花之月下楊州
孤帆遠影碧空盡
唯見長江天際流

李白(이백)이 黃鶴樓(황학루)에서 孟浩然(맹호연)을 廣陵(광릉)에 보내면서 지은 시.

‘황학루’는 湖北省(호북성) 武漢市(무한시) 武昌(무창) 언덕 위에 서있는 樓閣(누각). 강소성 양주시.

作者(작자) 李白(이백)은 靑蓮居士(청연거사)란 ‘字’를 갖고 있다. 出生地(출생지)는 甘肅省(감숙성) 千山嶺(천산령)이라니까, 四城出生(사성출생)이다. 少時(소시)에는 ‘蜀’(촉)에서 자랐다.

15세에 劍術(검술)을 닦고 來客(내객)들과 섞여 殺傷犯行(살상범행)도 저질렀다고 한다. 20세에 禮部尙書(예부상서)가 되었었으나, 오래잖아 珉山(민산)에 숨어 살았다. 25세 때에 일단 고향에 돌아가 옛 가정에서 아들 딸 낳고 살았었다. 다시 벼슬아치로 등용되기도 했으나 竹溪六逸中한 사람이기도 하다.

中國時文界(중국시문계)의 제일인자. 술에서 시를 마시고 시로 술에 취한다. 俗世(속세) 영광을 비웃으며 風月(풍월)을 읊었다. 그의 삶은 시의 噴水(분수)였다. 그는 시의 화신(化身)이었다.

隱者不過

賣島

松下間童子 言師採樂去
只在比山中
雲深不知處

일부러 隱師(은사)님 뵈러 갔다가 못만나고 지은 시.

소나무 밑에서
어린이에게 물었다.
“선생님 어디 계시냐?”

“약초 캐러 가셨어요.”

정령, 이 산 속에
계시긴 하렸마는,
구름이 깊어
그 고장 알길 없네!

[註] ‘어린이’는 隱師(은사)님의 使童(사동)

作者(작자) 賣島(매도)는 (779~843 AD) 字(자) 는 浪仙(낭선) 范陽(범양)사람이다.

과거에는 언제나 낙제생. 주머니에 돈 한푼 없이 천대고생. 시만으로 살았다. 그의 시는 難産(난산)이었다. 3년을 닦고 닦아 시 두편 얻으면 그 앞에 향 피우고 절하고 눈물 흘렸다고 한다.

長空(장공)은 여섯 살 때, 이 詩(시)를 나불 나불 외었다. 선친께서 벽장 문에 써 붙였기에 안 볼 수도 없고 안 읽을 수 없었다.

先親(선친) 따라 약초 캐러 다니기도 했었기에 인연이 깊다.

이제는 1982년 除夜(제야)도 다 갔다. 詩(시) 읽기도 고단하다. 그래도 ‘번역’은 내 솜씨라, 졸작이라도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原詩(원시) 밑에 적어둔다. 수필집에 끼어넣을 작정이다. 한자(漢字)가 질색인 인쇄소에서는 골치 아프겠지만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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