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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5권] (99) 동경에서 – ‘뱃폴’에 간다.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17 08:25
조회
644

[범용기 제5권] (99) 동경에서 – ‘뱃폴’에 간다.

뱃폴은 꽤 먼 고장이다. 2차대전 후 아카데미 운동의 발상지고 그 본부격인 ‘수양관’이 여기 있다. 차로 4시간 가다가 도중에서 한신동문인 박종화 동지 집에서 하루밤 쉬었다.

부부 모두 극진하게 친절했다. 그래도 내 몸은 내 마음을 치켜주지 않았다. 서독교포교회 여신우회 간부와 유지들이 오늘 저녁에 이 댁에 모였다. 그들 주동으로 각 가정에서 한 품목씩 차려온 한국음식을 종합메뉴로 둥글려 그 준비의 마감을 맺자는 것이다.

4월 30일 회의장소에서 폐회후 마감식사인 점심은 한국음식의 푸짐한 ‘진수성찬’이었다. 우리 동양족은 물론이었지만 백인들도 두 번 세 번 비운 접시를 다시 채우고 있었다. 즐거운 향연이었다. 나만이 미안스러운 ‘금식자’, 말하자면 ‘억지 수도승’이었달까?!

‘뱃풀’의 비공식 WCC 회의는 4월 28일 저녁에 시작하여 4월 30일 12시반에 끝났다. 서독이 회의장소니만큼 서독대표들과 협조자들이 많았고 일본서도 긴급회의, 일본 NCC 분들이 모두 자비로 왔다. 그 밖에 세계적인 학자, 동대교수 ‘사카모토’, 미국서 ‘그레고리 핸더슨’(한대선 박사)도 왔다. 한국에서 YMCA 연합회 총무 강문규, 홍콩의 인명진 등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UM의 박상증 사무국장이 총무격이고, 브라질대표 ‘카스트로’가 사회했다. 주요 강사로는 서독의 Sharft 감독, 일본의 Sakamoto 교수, 미국의 렌데슨 교수, 우리편에서 지명관 교수였다. 나는 폐회기도랄가? 기도형식의 폐회사랄까. 어쨌던 그런 종류의 마감매치를 맡아했다. 용어는 영어다.

회의기간에는 ‘좌불’(座佛)테세로라도 ‘엉덩이’ 무게를 제공할까 했는데 그것도 힘들어서 그냥 내 방에 누워있었다. 전세계 교회와 사회가 그렇게까지 한국교회와 ‘한국’이란 나라를 걱정해준다는 것은 Power Politics의 현실에서는 하늘나라가 임한다는 천사의 나팔소리 같았다. 적어도 그 서곡의 부드러운 ‘음파’(音波) 같았다. 그들은 자기나라 일같이 가능한 최선을 바칠 성의를 보이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는데 우리 한국인 참여자들이 다만 그들의 일원으로만 자처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오래 전부터 미국에 UM이 생기고 일본에 ‘민주동지’ 그룹이 생기고 독일에 ‘민건’, 캐나다에도 ‘민건’이 생겨서 각기 있는 고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잇다. ‘최선’이라기 어려우면 ‘차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끼리서 며칠 묵으면서 밤새가며 의논했다. 이념정립과 실천요항, 그 방법 등을 토의했다. 그 내용은 ‘비공개’다. 나는 그 모임에서 ‘개회사’랄까, 개회기도형식의 개회선언이랄까를 맡아했다. 그 후에는 여전히 내 방에 누워 있었다. 많은 동지들이 틈나는대로 내 방에 찾아와 위문했다. 열은 없지만 위장이 ‘쌀가마’같이 부풀었고 음식 들어갈 공간이 없으니 식욕이 있을리 없다. 그렇다고 배설되는 것도 아니다. ‘폐색사회’다. 나는 나이 80고개를 넘었으니 언제 이 젊은 동지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마감인사’들 같이 서글픔이 섞인다. 그러나 이렇게 유능하고 사무적이면서 자기철학과 신앙이 확립된 최고지성인들이 이렇게 ‘험블’하게 봉사하는 걸 보면서 소망중에 즐거워했다.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라는 자랑도 솟구친다. 모두 박사다. 박사 칭호가 없는 이도 ‘박사’ 동등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부인들과 함께 차 나르고 테이블보이 노릇하고 소제하고 ‘소사’처럼 심부름에 뛴다. 언제나 기쁜 얼굴이다.

지명관 교수는 “저런 분들이 있는 한, 민주운동에 실패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하고 자랑섞인 희열을 ‘독백’(獨白)같이 튕겼다.

마감 폐회 직전에 본국에서 이태영 박사가 와서 본국 소식을 전했다. 말하자면 ‘원탁회의’식의 ‘헤드테이블’에 나오자마자 걷잡을수 없는 통곡이 터진다. 이 박사는 한참 통곡하다가, 첫마디가 “본국은 온전한 암흑사회입니다. 캄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보고해 주었다. 그는 이번 미국의 드류대학교에서 열리는 ‘세계법학자대회’에 부군인 정일형 박사와 함께 ‘명예법학박사’ 학위 받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우리 모임에 들린 것이었다.

우리는 후에야 알았다. KCIA에서는 별별 공작을 꾸며 출국을 방해했단다. 주최측인 ‘세계법학자대회’에서는 매일같이 한국정부와 KCIA와 소위 ‘국회’와 ‘군부’에 긴급전보로 소낙비를 퍼부었단다. 할 수 없이 한국 군정에서도 개최직전에 출국허락이 났다는 것이다. 정일형 박사는 뒤늦게 혼자 출국이 됐으나 학위수여식에는 ‘휠체어’에 앉은 정일형 박사를 부인 이태영 박사가 밀며 단에 나가 둘이 가지런히 꿇어 앉아 명예스런 법학박사 학위를 부부 함께 받았다한다.

‘카터’가 학위 받을 때 보다도 더 열광적이었다는 소문이다. 우리 민족의 자랑이다. 부부 두 분이 동시에 나란히 앉아 최고 명예학위를 받은 예는 극히 드물었다 한다.

이태영 박사의 통곡 때문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곧 이어서 나의 간단한 ‘폐회사’가 있었고 축복형식의 기도로 마쳤다. 잔무는 통례에 따라, 사무국과 ‘실행위’에서 맡았다.

나는 회의장소에서 산회한 후에도 내 방에 누워 있었다. 누워서 뱃풀회의를 되새겨 본다. 내 몸의 괴로움보다도 참여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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