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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5권] (92) 동경에서 – 나라에 간다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16 08:53
조회
642

[범용기 제5권] (92) 동경에서 – 나라에 간다

4월 10일 – 우리는 1천 3백년 우리 민족 정기가 살아 움직이는 고려촌을 단 한나절에 달리며 보았다. 사실 그대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조급하게 차를 몰아 나라(奈良)로 달렸다. 동대사(東大寺)를 보려는 것이다. ‘나라대불’(奈良大佛)을 안치한 대찰이다. 보고 와서 내 기억을 되새긴다. ‘안내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미 대강 읽은 바 있는 김달수 선생의 『일본 안의 조선 문화』(日本の中の朝鮮文化』 제3권, 근강, 대화시대편(近江大和時代篇)을 다시 읽으면서 내 기억과 맞춰본다.

김달수 선생의 글은 물적 근거 없이 써낸 것이 아니다. 그는 고분, 신사, 사찰, 비석, 전설 등등을 역사 특히 ‘문화사’와 맞추어 간다. 설명이 친절할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눈으로 보고 발로 밟으며 순례한 기록이다.

그 당시의 백제와 신라는 일본 건너오는 것을 외국에 망명하거나 이주해 온다는 기분으로 온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조선땅의 외연(外延), 또는 미개척지대라고 본 것이 아닐까? 특히 문화적으로는 계몽되어야 할 고장이고 종교적(특히 불교)으로는 선교해야 할 땅이고 정치적으로는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할 요건으로 관제(官制), 직위(職位), 온갖 법령이 갖추어져야 할 나라라고 보았다. 그래서 소위 성덕태자(聖德太子)의 ‘대화개신’이 열매로 나타난 것이라 한다.

지성(知性)으로나 기술로나 비교가 안될만큼 월등한 이 도래인(渡來人)들은 사회제도와 질서가 바로 잡히는대로 경제계에나 정치계와 종교계에서나 특권층으로 성장하였다. 지방에서의 호족(豪族), 중앙에서는 고관 대작, 불교에서의 대승정 등등이 그들 손에 쥐어진다. 그들은 황실(皇室)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 왕권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본은 통털어 그들 세상이 됐다는 얘기다.

지금도 남아 있는 ‘왕총’(王塚) 같이 무시무시하게 큰 고분들은 그들의 선산(先山)인데 지금까지 확인된 고분만으로도 72기라 한다.

우리는 지금 ‘나라’로 달린다. 나라(奈良)는 경주나 서울과 비슷한 분지(盆地)다. 그러나 그 복판이 하도 넓어서 둘러싼 산들이 구름가에 아득하다.

‘나라’란 말은 한국말로 국가라는 뜻이다. 동대사(東大寺)의 불상(佛象)은 나라의 대불이라는 ‘루샤나 불(盧遮那佛)’이다. 동대사는 일본 총국분사다. 그런데 이 동대사 자체를 지은 로오벤과 행기가 모두 조선 도래인 후예란다.

이 지방 전체를 ‘야마도’라고 하는데 왜국을 일컫는 한국말이다.

‘야마도’(大和)는 원시 일본이 ‘국가’로 탄생한 고향이고 일본에서 가장 오랜 문화지대며 정치의 중심지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막혀서 자위(自衛)에 편하고 가우데를 흘러 대만에서 들어가는 대화천이 대륙문화의 수입로가 된다. 당시의 조선도래에 한(漢) 씨와 진(眞) 씨가 있었는데 벼슬아치로 국방에 힘썼을 뿐아니라 미술, 공예, 종교, 음악, 산업에 있어서도 주역을 담당했었다. 그들의 지배하에 있는 이주민은 갈성(葛城) 지방에 산성국(야마시로구니)을 본거지로 삼고 재정의 실권을 잡았다.그래서 나아오까(長岡), 평안조(平安朝)의 천도(遷都)를 가능케 했다. (김달수, 상게서 120면).

나라조 말기(奈良朝末期)까지도 서울이었던 ‘나라’와 그 근방에는 도래 조선족이 인구의 8, 9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민족의 ‘분국’이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사원, 궁전, 호화주택, 시가, 일본제 불상, 불구(佛具), 정원, 못 등등이 모두 그들 솜씨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어쨌던 우리는 동대사에서 나라대불(大佛)을 보았다. 좌상이다.

총 신장 : 53척 5촌
머리 길이 : 16척
눈 길이 : 3척 9촌
귀 길이 : 8척 5촌
코 길이 : 1척 5촌
엄지손가락 길이 : 5척 4촌

도래조선족 솜씨라면 그들 뱃장도 어지간하다고 감탄한다.

동대사(東大寺) 자체의 구조도 거대하다.

사슴과 비둘기 떼가 길에서 먹이를 달란다. 돈 몇푼 주고 길가 매점에서 셈베(煎餠) 한 봉지 산다. 사슴들은 예절이 바르다. 달랄 때에는 고개를 갸우뚱 경례를 하면서 쳐다본다. 귀여워서 안줄 수 없게 된다. 아무리 부지런을 피워도 그것으로 배부를 수는 없겠다. 아마도 일부러 배를 곯게 해서 그 연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비둘기 떼는 수백수천인 것 같다. 땅콩부스러기 한 봉지 사서 잔디밭이나 길에 뿌리며는 모두 모여 쪼아먹기 경쟁이다.

억조중생을 일시동인하는 ‘불타’의 자비가 공덕으로 그들에게 미치는 것일까?

우리는 나중남 목사 선도로 천리교 본부를 찾았다. 신도들이 천리교 제복을 입고 경을 올리며 마루와 낭하를 닦는다. 먼지 훔친다는 뜻보다도 종교적 근행(勤行)이다. 꿇어앉아 정강걸음으로 잡념없이 이 일을 한다. 주로 중년여자들이다. 남자들도 얼마 있는데 그들은 긴 빗자루로 쓸고 ‘모올’로 슬슬 훔친다. 그것도 ‘근행’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리 순진한 표정들이 아니다. 장난끼로 그러는 것 같았다. 거대한 궁전이다.

근행을 마친 사람들은 본당에 모여 꿇어앉아 절하고 송 읽고 손뼉치고 한다. 수십체 크고 작은 건물들이 낭하복도로 이어진다. 부지런히 복도를 걸으면 어느 건물에든지 갈 수 있다. 모두 동양식 목조건물이다. ‘천리교’는 한 왕국이고 본부는 ‘대궐’이다.

법륭사는 시간이 늦어서 문이 잠겼다. 그만큼 저물었다. 부랴부랴 차를 몰아 대판교회로 갔다.

오후 6시반부터 대판교회 청년들과 대학 고급학년 학생, 대학원에서 학위공부하는 분들이 나를 환영하는 뜻으로 한식점에서 만찬을 차렸다. 지성인들이다.

나는 거기서 민족주체성과 세계성에 대해 소감을 얘기하고 언어와 문화, 학문 등등에 있어서 각기 그 이주지의 언어를 쓸 수 밖에 없으나 민족공통어로서 ‘한국어’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대족이 망국 3천년동안 세계에 흩어져 제각기 그 나라 말을 썼지만 구약성서가 히브리말이고 ‘시나고그’에서 그 본국말을 별도로 가르쳤기 때문에 세계 1차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에 옛나라를 재건할 때 어려운 히브리어를 산 언어로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고 일렀다. 모국어와 모국사랑을 일체화할 수 있기 바란다고 해 두었다. 반대의견은 없었다.

그리고 현대에 있어서도 한국문화, 미술, 예능, 음악 등등에 있어서도 문화의 왕국으로 세계에 공헌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히브리 민족 커뮤니티가 ‘회당’, 즉 ‘시나고그’였던 것 같이 우리 민족 커뮤니티로서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당이 있다는 것도 우리의 강점이다고 일렀다.

몸 ‘컨디숀’이 시원치 않다. 오재식 동지는 피곤을 풀어드린다고 몇 번이고 ‘싸우나탕’(한증목욕탕)에 간다. 숨막히는 뜨거운 골방에 벌거숭이로 앉아 땀벼락을 맞는다. 없던 때도 부풀어, 밀면 때 투성이다. ‘때’라기보다도 늙어 말랐던 겉가죽이 벗겨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엑스트라’로 안마도 받고 다시 탕에 잠겼다가 ‘샤워’실에서 소낙비를 맞으면 ‘기분만점’이다. 그리고나서 반침대에 누워 다리뻗고 쉰다. 아예 한잠 잤으면 했지만 잠은 안온다. 이건 언제나 오재식 군의 대접이었다. 나는 몸 컨디션을 정상화할 욕심으로 오군에게 싸우나를 강요하기도 했다. 확실히 몸은 풀린다. 그러나 그때 뿐이다.

일본 대도시에서는 ‘전철’(電鐵)이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것 같다. 출퇴근 시간의 붐빔이란 장관이다. ‘시부야’나 ‘신쥬꾸’ 역의 사람홍수는 해일(海溢)이랄까? 마구 덮어 밀어닥친다. ‘인산인해’란 전통적인 표현은 어떤 광장에 가득찬 인간무더기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전철’ 구내의 인간은 폭좁은 제방에 강물이 꽉차 흐르는 ‘인강’(人江)이라 하겠다.

그만큼 산업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데마다 ‘소바’(일본국수), ‘우나기 덤부리’(장어덧밥), ‘오스시’(생선초밥), 좀더 고급이란 것이 ‘요세나베’(스기야끼 비슷한 것) 등등이다. 나는 ‘소바’, ‘초밥’ 따위를 주로 먹었다. 생선회를 많이 즐겼다. 교포교회에 현역으로 목회하는 한신출신 10여명이 한국식 불고기 ‘파아티’를 열어주었다.

지명관 교수와 식사자리를 같이 하며는 가짓수가 붓고 ‘마사무네’(정종), ‘도꾸리’가 이엄이엄 빈다. 취기가 돌면 뱃장이 커진다. 대화도 무궁무진, 기염이 불길을 올린다. 나도 울분이 발산되어 ‘이태백’이나 된 것처럼 소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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