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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5권] (91) 동경에서 – 고려촌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16 08:50
조회
714

[범용기 제5권] (91) 동경에서 – 고려촌

우리는 바로 그 언저리에 자리잡은 ‘고려촌’으로 갔다. 광막한 무사시노(武藏野) 벌판을 꽤 높은 언덕이 둘러막았다. 거기에 고구려 이래민이 집단으로 정착했다. 산 이름도 고려산, 강 이름도 고려천, 다리 이름은 고려교, 주민 거의 전부가 고려라는 성씨다. 지형이 ‘부여’와 흡사하다. 고려천은 자갈돌밭을 어루만지며 맑게 흐른다. 낙화암과 같은 바위벽을 백마강 같은 고려천이 몸으로 부딪치며 흐른다. 강가 절벽 밑에서 부여에 간 기분으로 사진을 찍었다. 바로 그 위에 고려촌이 서 있다.

고려촌에는 고려산 성천원(聖天院)이란 절이 있는데 말사 45개를 가진 ‘본산’이다. 약광(若光)의 셋째 아들 성운(聖雲)이 고구려에서 가져온 관희천(觀喜天) 불상을 안치한 절이고 못가 울창한 노송숲 사이에 순 조선양식의 13층 중석탑(重石塔)이 서 있다.

약광(若光)이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탈출한 노정(路程)은 대략 아래와 같다.

그는 고구려에서 직접 동해를 질러 원강탄(遠江)에서 동으로 이두해(伊豆)를 지나 사가모(相模)에 상륙했다. 거기에 머물며 개하 이사까(化粧坂)에서 화수교(花水橋)까지 이르는 대자촌 고려지(高麗地)에 저택을 짖고 살았다.

일본 왕실에서는 소문을 듣고 ‘고기시’ 한국말로 ‘왕’이란 고어(古語)로 그를 칭호했다. 그 당시의 대 선진국인 고구려의 왕자를 왕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당연한 예의다. 약광은 고구려 마감임군인 보장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후 14년만에 준, 갑, 상, 양, 총, 상, 야(駿, 甲, 相, 兩, 總, 常, 野) 등 7국에 거주하는 고구려인에게 무사시노의 일부를 할양하여 ‘약광’의 ‘왕토’로 삼았다. 약광은 거기서 군장(郡長)으로 있다가 오오이소(大津)를 떠나 지금의 고려군(高麗郡)을 창설했다. 그러나 오오이소 사람들은 약광의 왕으로서의 높은 덕을 사모하여 중봉에 고려신사(高麗神社)를 창건하고 그 산밑에 왕궁을 세우고 고려왕의 영(靈)을 제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고려왕의 무사시노 이래(移來)는 고구려 멸망 후 40년 되는 해였으므로 약광도 늙어 백수가 휘날리는 덕스러운 왕자의 풍모로 원숙했다.

그래서 그와 관련됐던 지방민이 그 덕을 사모하는 ‘신사’를 짓고 그를 주신(主神)으로 모신다. ‘신사’ 이름은 ‘백수신사’라 했다. ‘흰수염 신사’란 뜻이다.

고려촌에는 ‘고려’씨 족보가 자상하게 보관되어 자손이 대대로 수보(修譜)한다.

고려촌 ‘고려’씨로부터 뻗어나간 성씨들은 고려, 고려정(鄭), 정상(井上), 신전(神田, 구등(丘登), 강등(江藤), 강상(江上), 본소(本所), 화전(和田), 길천(吉川), 대야(大野), 가등(加藤), 복천(福川), 소곡야(小谷川), 아부(阿部), 금자(金子), 중산(重山), 무등(武藤), 지목(芝木), 신정(新井) 등등이다.

약광이 독립된 고구려 마을을 창설한 이유는 거기서 고구려인으로서의 주체성을 자자손손 북돋아 사실상 고구려나라를 일본 안에 심고 때가 오면 위대한 조국 고구려를 회복하는 주역을 담당하려는 건국설계의 터닦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다.

그는 문화적으로 후진인 일본나라 개발과 국가형태 구조에 나섰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불교계의 대승정급에 앉기도 하고 정계에서 고관대작을 지낸 분들도 많고, 대정대신 자리에 오른 이들도 있어 일본 건국에 있어서 정치, 경제, 도덕, 종교, 문화 등 ‘나라 만들기’ 운동에 주역을 담당했다.

반나벌 밖에 발을 멈추지 못한 나같은 방랑길손으로서의 직감적인 그리고 감명 깊은 인상으로서는 그들이 1천 3백년 긴 세월을 나라 잃은 민족으로 이역에 살면서도 자기들의 민족적 주체성을 자랑스럽게 지켜왔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그들의 ‘옮겨옴’을 받아들인 일본에 창조적인 거대한 공헌을 사심없이 전승시켜 놀라운 문화의 나라로 육성했다는 폭 넓은 사랑이었다.

그들 고구려 공동체는 약광이 세상 떠난 후에 그의 맏아들 고려가중(加重)이 전해 받았고 다음대는 고려홍인(弘仁), 다음은 고려청인(淸仁) 등등 이렇게 자자손손 전승하여 제57대가 고려흥환(興丸), 그리고 당대는 고려흥환의 맏아들 고려명진(明津)인데 제58대요 제59대 현사(現司)는 명진의 맏아들 고려증웅(橙雄)이다.

고려흥환(제57대)이 아들을 고국에 순례하러 보낼 때 부탁삼아 한시를 지어 송사(送辭)에 대신한 시구를 소개하고 나의 고려촌 순례기를 끝내려 한다.

比去春風客路餘 社頭櫻樹抹丹霞
沙趨故里齊何物
一朶祖宗遺愛花

봄바람 부는데 나그네길 멀구나!
사당머리 벚나무 붉은 노을 꺼진다.
너 가는 옛 마을서 무엇 가져 오려나
조종님들 사랑하던 꽃 한송이 그립다
[필자 졸역]

딴 나라에 옮겨 와서 본래의 ‘민족얼’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나라의 문화, 경제, 정치, 산업, 국토개발 등등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이민사회의 귀감이다.

“Lest We Forget”의 정신으로, 거기 주민의 ‘성’은 모두 ‘고려’(‘고마’라 발음한다)요, 시냇물은 고려천이고 거기 걸린 다리는 고려교다. 성천원(聖天院)이라는 기념사원이 서 있고 고려신사가 있어 사제가 신관노릇을 한다.

그 근처에 ‘고송총’이 있다. 전체 판국이 ‘부여’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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