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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5권] (87) 동경에서 – 다시 대판으로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10-15 08:28
조회
571

[범용기 제5권] (87) 동경에서 – 다시 대판으로

- 대판성의 인상 -

‘오오사까’(大阪)에 갔다.

김덕성 목사 교회당 객실에 자리잡았다. 이 교회당도 ‘다목적적’인 건물이다.

교포의 생활 거점(據點)이다.

그 교회 청년인 김성원 님 안내로 ‘대판성’을 구경했다.

역시 ‘풍신수길’의 작품인데 서양식 성보(城堡)에 동양식 성루(城樓)를 5층으로 얹어놓은 높이 약 390척의 대작이다.

축성법도 한국이나 중국 것과 같지 않다. 관서 평야에는 돌도 흔한 축이 아닌데 그 집채만한 바위들을 어떻게 까서 실어왔는지 생각하면 상식밖이다.

결국 서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해골’의 기념탑이다.

성 바깥을 둘러 판 ‘해자’(濠)도 깊고 넓고 맑다. 성 안에도 작은 규모의 내호(內濠)들이 있다.

‘풍신수길’은 왜 이렇게 성 쌓기와 해자 파기에 신경을 썼을까? 역시 독재자인 그 자신의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섬나라에 밖으로부터 딴 나라가 쳐들어와 대판까지 침입할 것을 걱정했다기보다도 불평 있는 ‘다이묘오’들이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성루(樓)로서 위신을 과시하고 ‘성채’로서 실력을 보인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잠시 해자 가에 서 있었다.

꽤 큰 고기들이 모여 온다.

색깔 다른 잉어떼가 모이를 찾아 사람 앞에 모인다. 오리도, 기러기도, 원앙도, 그리고 백조들도 모인다.

이건 풍신수길이 거처하던 궁궐이다.

굵직굵직한 부하들을 불러 회의하는 오오히로마 大廣間(대광간)도 있다. 때로 임군의 칙사(勅使)가 나오는 경우에도 단위에 히데요시(豊臣)가 두툼한, 황금빛 방석 위에 앉아 어깨를 잔뜩 재고 도사려 앉는다. 칙사는 단 아래 꿇어 앉아 두 손 모아 칙서함을 올린다. 왕권만 찾아내 쓰고 왕위(王位)는 긴급용을 신탁(信託)해 둔 그의 전략도 참고가 될 거다.

나오는 길에 종묘(宗廟) 비슷한 방에 모셔진 그의 초상화를 보았다. 얼굴 생갬새는 전형적인 왜형(倭形)이다. 미남도, 호남(好男)도, 젊잖은 왕자풍(王者風)도 찾아볼 구석(隅)이 없다. 그러나 괴이하여 접근하기 무섭다. 괴상하고 험상스럽다.

나는 언제였던가 서울 국립박물관에서 태조대왕 이성계의 초상화를 본 일이 있다. 그의 얼굴도 괴상하고 험상스러우나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이 담겨있음을 느꼈다. 비슷한 인상을 풍신수길에서 받은 셈이다. ‘풍신’의 키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없다. 작달막 했다는 게 전해지는 말이다. 앉은 키는 남과 다를게 없었겠지!

그래도 ‘뱃장’은 커서 아예 중원을 먹는다고 임진란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는 길만 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한다. 그리하여 상륙만 제대로 하면 두 달 안에 우리나라를 먹고 연방 북경을 먹고 ‘천황’을 북경궁궐에 옮겨 모시고 자기는 양자강 이남까지 급진(急進)하여 남부지방을 평정하고 거기에 ‘대장군 막부’를 세워 치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단다. ‘길’을 빌린다는 것은 갈 때 못 먹으면 올 때 먹겠다는 수작이니까, 호락호락 길 내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어쨌던 이충무공의 제해권 확보 때문에 계획은 다 틀려버렸다. ‘풍신’의 그런 흉계를 명나라가 몰랐을리 없다. 자칫 하다가는 자기 나라 안에서 싸우게 될 테니, 이 참에 변방, 요샛말로 ‘위성국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출병을 해야 한다고 대군을 동원했다. 그 동안에 풍신수길과 덕천(德川家康)의 건력싸움이 내란으로 번져서 몽땅 철군하고 말았다.

‘풍신’의 작품인 ‘대판성’을 보면 그의 그런 뱃장도 짐작이 간다. 국민의 절반이 강제노동에 징용됐단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국경 전체를 둘러막는 식이었는데 ‘풍신’의 ‘대판성’은 서양의 보루(Citadel)격이다. 한 고립된 요새(要塞)다. 성 모퉁이 돌들은 집체만씩이나 한 ‘외바위덩어리’인데 평야에는 그런 바위가 없었을 것이고 결국 죽어난 건 농민, 졸개, 천민들이었을게 분명하다. 만 사람의 마른 뼈 위에 한 장군의 영화(榮華)가 좌정한다. 하여튼 명치혁명의 성공과 아울러 풍신의 ‘궁궐’은 이궁(離宮)으로 등록됐다. 그리고 지금은 공개된 박물관으로 변했다.

우리는 그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대판교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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