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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3권] (247) 北美留記 第六年(1979) - NY에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3-26 16:04
조회
862

[범용기 제3권] (247) 北美留記 第六年(1979) - NY에

1979년 11월 3일인가 상철과 나는 N.Y.로 갔다. UM 주최 대(大) 시국강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UM 사무국장 김정순 동지가 만반의 준비를 진행시킨 것이었다.

11월 4일(일) - 만하탄 교회에서 예배하고 오후 5시부터는 UM 주최 대시국강연회가 Flushing 소학교 강당에서 모였다.

연사는 함석헌, 김상돈, 나, 그리고 김중태였다.

함석헌은 여기서도 “쾌이커”의 내적광명(Inner Light) 을 설명하고 있었다. 두 시간 이상 얘기한다. 늙은이가 원고도 없이 강연이라고 하노라니 얘기가 쳇바퀴를 돈다.

다음이 내 차례인데 내게 배당된 시간은 다 지나간지 오래다.

슬그머니 부화가 난다. 나는 민중민주주의를 내용으로 준비했는데 아주 요약해서 10분동안에 마쳤다.

“인테리”가 민중 속에 들어가 “인테리민중”이 되고, 민중이 인테리와 한몸되어 “민중인테리”가 되야 한다. 학생층도 “인테리”다. 인테리의 첨단일지 모른다. 그런데 학생운동에 자신들을 국한시키려는 것 같다.

“우리는 기성세대를 불신한다….”는 4ㆍ19전통을 자랑한다. 노동자 계층과도 제휴하려 하지 않는다.

“일반시민은 가겠거든 가라, 우리는 학생기(旗)를 지킨다.” 6ㆍ3 사태 때도 그러했다. 그때 함석헌과 나는 투석전에서 “상이학생”으로 입원한 서울대학 학생들을 방문했었는데 냉담한 표정이었다.

문간에 집결해 대기하는 학생부대를 찾아 “우리 늙은 세대가 일을 잘못해서 학생들에게 누(累)를 끼치게 됐으니 미안하오. 잘들 해주시오!” 해도 학생들은 무표정, 무인사였다.

감옥에 갇혀있는 학생들을 방문했을 때에는 제법 인사성있게 대했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기쁩니다. 우리 걱정은 마시고 계속 민주운동을 지도해 주십시오. 저희도 나가면 또 하겠습니다….”

함석헌과 나는 학생들 돌팔매에 맞아 머리, 가슴 다리 등에 상처를 입고 입원중인 경관들을 방문했다. 그들을 방문하는 시민들은 모르긴하지만 없는 것 같았다. 직계가족이 간호하고 있었다.

“얼마나 괴로우시오. 참으로 안됐습니다…”하고 문병한다.

“감사합니다. 저희들 학생들 심정을 몰라서 그러겠습니까? 어찌못해 그러는 것입지요! 용서하십시오!”한다.

그는 치안국경감인가 되는 꽤 높은 직위의 사람이라 했다.

며칠 안되어 서울대 법과대학 학생들과 극소수의 고대생들이 풀려 나왔다. 학생회주최로 석방 축하 Party가 종로회관에선가 열렸다. 노장측으로서는 함석헌, 이병린, 나, 장준하, 지학순, 계훈제, 송원영 등등이 초대됐던 것 같다.

석방환영 Party는 인상적이었다. 감옥안에서의 생활상 같은 것도 아주 신사적으로 보고 된다. 석방될 때의 서약을 지킨다는 심사에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정수일”이 사회했다.

기독학생들은 달랐다. 그들은 신앙양심에서 우러난 “고백”에 따라 주체적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그들의 본영(本營)은 교회다. 그 무렵만해도 경찰에서 교회 내부에까지 손대지는 못했기에 기독학생들의 전략, 또는 작전참모 장소로 교회당은 유용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반학생들도 급하면 교회당에 몰려들었다. 신앙에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방공호”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모두 총력전이 아니면 개별격파의 위험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학생 운동의 민중화는 반드시 이루워져야 한다.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

이건 69년 얘기니까 10년 전 일이다. 그러나 지금에도 돋보이게 달라진 데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79년 11월 4일 N.Y.에서 열린, “박정희 제거 이후”의 첫 강연회에서 나는 “인테리의 민중화”를 다시 강조한 것이었다.

어쨌든, 강연회는 성공적이라고 UM사무국 관계자들은 자랑스레 말하고 있었다.

11월 5일(일) - 2PM에 교회본부에서 7인위원회원과 다른 동지들이 합석하여 광범위한 “뉴스”와 토의사항을 검토하고 대책을 강구했다. 마치고서 나는 악수작별 – 최우길 장로 집에 갔다.

11월 5일(월) - 5PM에 N.Y. 지구 한신동창들이 최우길 집에 모였다. N.Y. 지구 한신동창회가 결성되고 신성국 목사가 회장으로 수고하게 됐다.

총무는 김영호 목사다. 첫 사업으로 장공기념도서관에 신간 서적들을 사 보내기로 했다. 장학금도 보낸단다.

11월 7일(수) - 최우길 집에서 혼자 쉬었다.

7PM에 김홍준 부부, 임순만 부부, 김정순 부부가 나를 중심으로 한식점에서 만찬을 나누면서 “뉴스”와 의견교환을 했다.

금후의 본국정세가 어떻게 변천되든간에 “박”의 총살은 우리에게 울분발산의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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