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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3권] (127) 北美留記 第三年(1976) - 감옥에 김영민을 방문하고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10-25 08:16
조회
484

[범용기 제3권] (127) 北美留記 第三年(1976) - 감옥에 김영민을 방문하고

4월 21일(수) - 오후 12시 15분에 홍동근 목사가 들렀다.

김상돈, 차상달, 홍동근, 나 네사람이 홍동근 차로 약 2시간 달려 Chino감옥에 달려 갔다.

김영민을 면회하려는 것이다.

넷이 다 면회신청을 냈었는데 넷이 다 허락됐다.

면회실에서 약 1시간 기다렸다.

4:30P.M.에야 영민이 나타났다.

유리창 구멍으로 낯을 보며 얘기한다.

나, 김상돈, 차상달, 홍동근, 넷이 각기 30분 이상 얘기해도 그만두란 말이 없다.

영민군은 건강하고 명랑하고 사고나 판단이나 언어에 아무 지장도 없다.

지금 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하다 들어왔노라고 했다.

내가 먼저 면회를 했다.

나는 주로 본국소식과 경동교회 소식을 전했다.

차상달은 이 기회를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독서하고 사색하고 저술까지 하라고 권한다.

홍동근도 애굽에서의 “요셉” 같이 되라고 한다.

김상돈도 고난에 지지말고 용감하게 싸워 이기라고 격려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요셉과 같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민”은, 경동교회 창설장로인, 김능근 교수의 맏아들이다.

그는 경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 동란 때에 미군에 편입됐다.

미군이 휴가로 교체되어 귀국할 때, 그는 미국유학이란 특권으로 제대되어 도미했다.

미국서 대학에 다녀 봤으나 사정이 어려웠ㄷ.

그는 취직했고 예쁜 북구라파 처녀와 결혼하여 자녀를 기르며 행복했다.

그는 “산ㆍ바아바라”에 이주했고 부인은 국민학교 교사로 착실하게 가계를 꾸려나갔다.

“산ㆍ바아바라” 시에서 교육위원 선거가 공고됐다.

그는 이에 입후보했다.

원래 “산ㆍ바아바라”는 대서양을 처음 건너온 미 건국 당시의 청교도들 촌이어서 ‘양반’자세가 대단했다.

그런 고장에서 김영민은 감히 입후보 수속을 해치운 것이다.

득표수가 당선 line에까지는 못갔지만 수십명 입후보자 중에서 제16번에 해당하는 표를 얻었다.

젊은이들 표가 집중됐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소망을 걸어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양반님들은 분개하며 두려워했다.

“이 건국시조들의 마을에 노랑원숭이 녀석이 어느 한 구석에 숨어 살아도 영광일텐데 감히 교육위원 자리까지 노린단 말이냐? 고이한 놈 같으니라니……” 말하자면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동리에도 경찰은 있다.

그러나 이 양반님들의 눈밖에 나면 붙어 있기도 어렵고 승급도 잘 안된다. 그래서 양반님들의 시위대 비슷하게 된다.

하루는 영민이 자동차를 몰고 간다.

아직 어둡잖으니가 “헤드라잇”을 켜지 않았다.

경찰은 차를 세우게 하고 문초를 한다.

“경찰에게 반항한다”고 경찰은 영민을 끌어내린다.

영민은 구속영장을 보이라고 했다.

“구속영장이 필요없다”고 대든다.

영민은 키가 9척 같은 “거인”이다.

경관의 따귀를 갈겼단다.

잡혀서 경찰서에 갔다.

시말서를 쓰고 무사히 됐다는데 잘 모르겠다.

경찰은 “노랭이”에게 따귀를 맞았다는 것 때문에 앙심을 먹보 벼른다.

이 양반촌에, 해군제독으로 있던 늙은 부부가 자그마한 집을 갖고 은퇴해 산다.

이제는 너무 늙어서 노망기가 있다.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런데 하루는 “노파”가 어떤 인도인에게 가택침입을 당했노라고 선전한다.

키가 유난히 크고 낯이 검고 인도인 복장을한 중년남자였다는 것이었다.

현관에 들어와 무얼 사라고 권하길래 필요없다고 거절했더니 신발 신은 대로 마구 들어와 노인네를 구타했다는 루머였다.

이 말 들은 경찰은 다짜고짜로 “영민”을 구속했다.

그 시간에 영민은 거기 없었다는 알리바이가 성립되는데도 불구하고 영민을 내놓지 않는다.

양반님들이 모두 배심원이기 때문에 “억지공사”로 영민에게 종신징역(?)을 선고했다.

L.A.에는 한국인이 10만이나 산다고 한다.

한인회에서 대회를 열고 “이것이야말로 인종차별이오 인권유린이다.”고 대대적인 성토문을 산포하고 “영민”돕기 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고등법원에 상고하고 그 비용을 위해 모금운동을 일으켰다.

홍동근 목사가 주동했다고 들었다.

양반님들도 노랑원숭이들이 만만찮다고 보았는지,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심리감정(鑑定)을 지시했다.

의사는 “이상없다”를 선언한다. 그러나 좀더 안정과 정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병감”에 옮겼다.

우리는 그 병감에 그를 방문한 것이었다.

부인인 스웨덴 여성은 문자 그대로 “현모양처” 타입이라고 한다.

소학교 교사로 봉직하며 남편의 옥고를 나눠진다고 했다.

나는 그 경험담을 책으로 엮어 출판하라고 권했다.

그도 “그러겠노라”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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