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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3권] (124) 北美留記 第三年(1976) - 기독학자회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10-23 08:06
조회
575

[범용기 제3권] (124) 北美留記 第三年(1976) - 기독학자회

3P.M.에 회비 25불내고 회원으로 등록했다.

학자회에는 매년 충실한 “개근생”이었기에 거의 다 구면 친구들이다.

7P.M.에 만찬을 나누고 그 자리에서 개회선언에 이어 경건회와 Reception Party가 있었다.

밤 1시까지 끝없는 환담이 샘물처럼 솟구친다. 나는 1시 30분에 잤다.

4월 9일(금) - 8:30A.M.에 조반, 9:30A.M.부터 경건회에 그리고 Presentation, 토의가 일사천리다.

연구논문 발표가 학자회의 주목적이다.

Banguet Speaker로서는 Sinnott 신부였고 이어서 민혁당 사건 영화가 상영됐다.

그리고서는 Hall에서 칵텔 Party다.

4월 10일(토) - 회의 속개

Hotel에서 9A.M.에 조반 먹고 경건회 후에 본회의를 계속한다.

임원 선거 결과는
회장 – 선우학원
부회장 – 이상철
서기겸 회계 – 김동수
고문 – 김재준, 김성락

4:00P.M.에 맥코믹신학교 “포에딕” 교장 주도로 동교 강당에서 열린 Penal에 잠시 방청객으로 앉아 봤다.

연사는 시노트 신부, 이승만, 문명자, 동원모 등이었다.

이목사와 나는 중도에서 나와 고 김관식 목사의 막내따님 김유선 여사를 예방했다.

고 황광은 목사 미망인이다. 자녀들을 건사하며 굳세게 자활하고 있었다.

시카고 출발 1시간반 후에 토론토 공항에 착륙하여 Taxi로 이목사 집에 안착했다.

나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모임과 이 모임에서 인연이 다은 인상의 片影들을 주워 “모자이크”를 만들어 본다.

(1) 학자들의 강연은 진지하고 알찬 학문의 열매들이다. (2) 허풍을 치면 즉석에서 드러난다.
(3) 어느 정도 정치권력에서 Detach되어 있다.
(4) 어용화는 학자를 오염시키는 독까스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번에 김유선 여사를 만난 것이 나의 큰 기쁨이었다.

김유선은 고 김관식 목사의 막내따님이다.

김관식 목사님은 내 본 고향인 두만강 가 경흥읍교회에서 3년 목회했다. 경기태생으로 영어가 능했기에 캐나다 유학생 제2회로 선발되어 토론토대학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프린스톤 신학교에 옮겨 대학원에 다니면서 프린스톤 대학 Semitic Language과 겸수하고 Master칭호를 받았다.

귀국하자마자 함흥 영생중고등학교 고장으로 선임되었다.

해방후에는 서울 동자동 한국신학 구내 사택에 계셨다. “한신”에서 접수한 귀속재산의 하나다. 말하자면 천리교에서 쓰던 주택이다.

김관식 목사님은 사모님을 여의고 독신으로 계시다가 동자동에서 재취하여 새 살림을 시작했다.

재취한 새 사모님은 비교적 젊으신 40대 Lady였는데 김목사님은 그해가 환갑년이었다. 신혼살림은 진실로 “사랑의 보금자리”였다. 깊은 연애 생활이었달까!

그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새 젊은이들을 보면 연애는 젊은이들의 - ‘독점특권’인줄 아는 모양이야! 늙은이는 연애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 내 또래가 되야 연애의 깊은 맛을 알게 되는 거야….”

돌아가신 어머니를 핏줄닿는 “내” 어머니로 모시고 한동안도 그 사랑의 맥박을 잊어본 적이 없는 귀염둥이 막내딸 “유선”은 슬펐다.

그녀는 바로 그해였던가 다음해였던가 이화대학을 졸업했다. 졸업식에 부모님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느지막해서 “유선”은 졸업생에게 주는 화려한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신학교에 나 만나러 왔다.

현관에서 꽃다발을 내게 안겨 주면서 눈물이 글썽했다.

나는 그 순간에야 “유선”의 심경을 약간 살필 수 있었다. ‘아무리 바빴어도 내가 졸업식장에 가 봤어야 하는건데……’ 가슴이 아팠다.

유선은 우리 졸업생 황광은과 결혼했다. 더할 나위없는 좋은 배필이었다. 행복했다.

그러나 황광은은 봉사욕에서 오는 과로와 지병들이 겹쳐서 먼저 갔다.

유선은 그 동안에 주어진 자녀들을 거느리고 시카고에 옮겼다. 꽤 큰 Store를 경영하면서 힘찬 생활의 투사가 됐다.

이것이 내가 만난 때까지의 기록이다. 그 후의 일은 모른다. 어쨌든, 항해의 풍파는 극복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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