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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의 글

[범용기 제3권] (99) 北美留記 第二年(1975) - 시카고에서 제2회 “민통총회”

범용기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10-19 07:58
조회
386

[범용기 제3권] (99) 北美留記 第二年(1975) - 시카고에서 제2회 “민통총회”

8월 15일, 17일까지 시카고에서 “민통” 총회가 열린다.

나는 8월 15일 열시 십오분에 토론토 공항을 떠나 열한시에 시카고 공항에 내렸지만 안내인이 없어서 애먹었다. 친절한 50대 흑인 택시 운전사 덕분에 총회 장소인 시카고 교외 North Shore Hilton Hotel에 내렸다.

8월 16일 – 오전 중에 “민통” 총회 예비회담에서 Agenda는 Tentative하게 통과됐으나 L.A. 지방위원회에서의 그 내부 불화사건을 총회에 제소한 것 때문에 의사 진행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L.A.에서 김상돈씨 등이 만든 “민주국민협의회” 중요간부 중 몇 사람이 “국민회의의 재가없이 L.A.의 ‘민통’지부를 결성하고 그들이 대표로 이 총회에 왔으니 그들의 대표권 박탈 뿐 아니라 징계처분에 넘겨 제명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L.A. 민통지부 결성할 때, 축사한 민통 부의장 최석남 장군도 징계제명하자고 한다.

우리는 양편의 진술을 공청했다. ‘제명’ 소동까지 일으킬 대단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상돈의 주장은 강경했다. 그는 적든 크든 “부정에는 타협하지 않는다”고 고집했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모임이다. 민주주의는 목적보다도 방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이 독재자의 명분임을 우리는 진저리나게 알고 있다.

우리가 지금 우리 회원들 중의 몇분을 징계할 밖에 없다고 하자. 그러나 그 징계결정은 민주주의적 방법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 “풀로어”에서 손들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인민재판”이오 민주재판은 아닐 것이다. 기어코 징계하려면 재판부를 설정하고 양측 변호인도 세우고 당사자들의 충분한 진술을 들은 다음에 재판부에서 판결하여 그것을 총회에서 다시 인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상돈을 위시한 L.A. 대표들에게는 이런 누그러진 생각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싫으나 즐거우나 “상돈”편에 서도록 돼 있는 것 같았다. 결사의 자유가 허용된 민주체제에서 그들을 “제명”한다면 “L.A. 국민회의”에서나 할 것이지 “민통”에까지 들고 올 필요는 무어냐 싶어져서 일반회원들의 심경은 그리 즐겁지가 않았다.

중앙위원회가 여러번 모였다. 중앙위원회는 이사회와 비슷한 구실을 맡은 결의기관이기에 발언권이 있다. 제시된 타결안은 아래와 같다.

(1) 이 사건은 본질상 L.A. 지방 위원회 자체 안에서 해결할 문제에 속한다. (2) 피의자 두 분은 본 총회 석상에서 L.A. 국민회의에 대하여 진사함과 아울러 3개월 “근신”할 것.
(3) 이미 조직된 “민통” L.A. 지방위원회는 합법적인 민통단체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된 L.A. 국민회의 관계는 1975년 12월까지에 쌍방이 동지적인 우의를 존중하여 평화롭게 해결하여야 한다.
(4) 이 사건은 원래가 L.A. 국민회의가 자체 내에서 해결돼야 할 성질의 것이므로 금후의 진행 책임은 L.A. 국민회의에서 맡아 실천할 것. 등등이었다고 기억된다.
(5) 최석남 장군건은 총회석상에서 “진사”하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최석남은 시종 침묵, 한마디 신상발언도 하지 않았다.

이 중앙위원회 결의안이 Floor에서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김상돈 주도하에 있는 L.A. 국민회의 측에서도 승낙했다.

이 이려운 총회순서 진행중에 사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의장 동원모가 담당했다.

임원선거에서 내가 또 의장이 됐다. 나는 안 한다고 버티었다. 그러나 “민통”의 내부정돈을 위해서는 한 “텀” 더 수고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렇잖으면 또 난맥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그때 기록서기로 있던 S.F.의 송성근은 “민주주의 탈 속에서 독재하지 마시오”하고 고함쳤다. 상돈도 추춤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폐회사에 언급했다. “상돈”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고집” 또는 “독재”로 오인되기 쉬우나 나는 “우정”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 김상돈은 일장 연설을 하고 회원전체가 원형으로 손 잡고, 장지원 여사의 발의로 “나의 살던 고향”을 울면서 불렀다. 그리고 이정선 목사(L.A.)의 울음 섞인 기도로 산회했다.

주최측인 시카고 최명상 부의장은 마치 죽었다가 “부활”한 “민통”인양 마감 기쁨에 울먹였다. 실지로 대부분의 사회를 담당한 동원모 부의장의 냉철한 의사진행에 깨어질뻔한 난국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기억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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