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 및 강연

"독도, 잊을 수도... 잃을 수도 없는 섬"

기념강연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2-12 10:20
조회
677

사단법인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이하 장공기념사업회)에서는 장공 김재준 목사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음력 9월 26일, 양력 11월 6일) ‘장공탄생기념강연회’를 진행해 왔다. 2017년, 제20회를 맞이한 장공탄생기념강연회는 한국의 기독교와 사회가 오늘의 시대에 어떠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미래의 새로운 시대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장공 김재준 목사는 말년에 성서적 사상에 근거하여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미래의 희망을 자주 언급하였다. 이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바탕으로 출발해야 한다. 장공기념사업회는 장공 김재준 목사가 주장했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오늘의 현실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논의되어야 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검토하였다.


동북아의 평화는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장공기념사업회에서는 동북아 시대의 평화라는 커다란 주제를 설정하고 어떠한 관점에서 그것에 접근할 것인가를 논의하던 중에 한일관계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였다. 한일관계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양국의 입장의 차이가 있는 것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문제시 된 것들은 많지만(위안부, 강제징용…) 이번 강연회에서는 그동안 지루하게 진행되어왔던 ‘독도 문제’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장공기념사업회는 ‘독도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 지난 2017년 11월 6일(월) 오후 7시에 독도학회 회장이자 독도 문제 전문가인 신용하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를 모시고 “독도영유권 문제와 동아시아 평화”라는 주제로 기념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본 글은 이날 강연에서 강조되었던 내용을 요약하며, ‘이 정도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는 알고 있어야 하겠다’라는 사실을 제시하려고 한다.


# 감정이나 상식에 머물러 있는 한국인의 독도 인식


가까운 이웃이면서도 역사적으로 가장 멀게만 느껴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한때 일본의 침략과 식민 통치를 받은 역사적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친일’은 ‘매국’이라는 단어와 동일시 되어왔다.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역사적인 문제 중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극히 상식적으로만 접근해왔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독도’가 우리의 땅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국제사회에서는 가끔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몰상식한 현상이 전개되기도 한다. 일본이 언제부터인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다케시마)로 주장하기 시작했고,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까지 제정해서 그 날을 기념하고 있다.


우리의 땅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대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시간이 흐른 오늘날, 세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독도’라는 지명은 슬그머니 ‘다케시마’로 고쳐지고 있다. 누군가 독도를 동해바다의 ‘외로운 섬’이라고 노래했듯이, ‘독도’는 지금 동해바다에서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외롭게 파도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의 국민들은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하면 일단 흥분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행동이나 의지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감정적이나 상식의 수준에서 독도 문제를 대해왔기 때문에 다양한 외교적인 로비를 벌여온 일본이 보기에는 잘하면 독도를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독도에 대해서 일본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독도가 사람이 사는 섬으로서의 활용면에서 유용한 섬이 아니라 풍부한 천연 지하자원의 보고이며 군사적 용도로 매우 유용한 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독도에 대해서는 한번쯤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지난 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합의를 졸속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국제적인 여론 압박의 차원에서 상당한 부담감을 떠안게 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위안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간의 관계에서 합의나 협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조차도 모르고 ‘대충 이정도면 이해하겠지…’라는 안이한 판단을 했던 것이다.


독도에 대해서는 감정적이거나 상식의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독도가 우리의 소중한 영토이고,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명백한 근거를 알고 있어야 하며, 또한 그것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 독도, 역사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영토


역사적으로 독도는 우리나라의 영토였다는 사실이 국내의 문헌과 일본의 문헌에 소개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이사부라는 장군이 512년에 우산국(울릉도)을 점령했고 자연스럽게 독도도 신라의 영토로 편입이 되었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 이후 줄기차게 우리나라가 실제적으로 지배해온 섬이라는 사실이 다양한 문헌 속에 소개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독도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이기 때문에 함부로 접근하는 것을 막았고 통상적으로 외국의 영토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인 ‘도해면허’를 발급했다. 그래서 울릉도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는 ‘죽도도해면허’, 독도에 접근할 수 있는 ‘송도도해면허’를 발급했는데, 이것은 명백히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외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사진 설명 : 1696년 1월 28일 일본 도쿠가와 막부 장군과 관백이 번주들이 모인 자리에서 울릉도·독도를 조선영토롤 재확인 결정하고 일본어부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죽도도해면허’와 ‘송도도해면허’가 취소된 회의록 일부.]


1693년에 조선인 안용복(安龍福)이 일본의 본토에 가서 막부의 고위관료 앞에서 당당하게 ‘독도’가 우리의 땅임을 주장했다. 그런데 안용복은 일본으로 하여금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조정에서는 안용복이 한일관계를 망치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하여 귀양을 보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진설명 : 1696년 1월 일본측이 울릉도·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하고, 일본인의 울릉도·독도 출어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음을 조선측에 알려온 전달서.]


일본은 그 이후 지속해서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사실을 존중했다. 한 예로 1832년에 하지 우에몽이라는 일본인이 독도와 울릉도에 갔다 온 사실이 1836년에 발각되자 그를 처형하고 허락없이 독도와 울릉도에 접근하는 것을 경고판까지 세웠다.



[사진설명 : 1839년 독도·울릉도 도항금지 경고판. (시마네현 하마다 향토자료관 소장).]


이후 일본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국의 지도를 근대적으로 작성하려는 시도 가운데 독도와 울릉도를 일본영토에 포함시킬까를 고민하던 일본의 정부는 그 이전까지 조선과 일본의 외교문서를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독도와 일본은 일본과는 관계가 없음을 명백히 선언하였다(1877년 3월 20일).



[사진설명 : 1877년 일본 태정관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라고 판단하여 “울릉도와 그 외 일도 독도는 일본과 관계 없는 곳” 이므로 일본 지적에 포함시키지 말라는 결정을 내무성에 내려보낸 태정관 공문서. (일본국립공문서관 소장, 자료: 신용하 교수)]


# 독도, 국제법상으로 명백한 우리의 영토


1900년에 접어들어 대한제국은 일본인이 울릉도에 불법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자, 프랑스계 영국인 라포트(E. Laporte)가 포함된 ‘국제조사단’을 구성하여 조사한 결과 1900년 10월 25일 칙령 제41호를 포고함으로써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국제적으로 고시하였다. 이때에 일본은 어떠한 반대나 다른 의견이 없었으며, 칙령 41호가 발표된 10월 25일을 우리나라 민간단체는 ‘독도의 날’로 삼고 있다.



[사진설명 :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수록한 『관보』. 1900년 울릉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하는 행정구역으로 울도군을 설치한다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게재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 이후에 일본은 슬그머니 독도를 무주지(주인이 없는 땅)로 전제하고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국제법상으로 칙령 제41호가 존재하는 한 그것을 뒤집을만한 근거자료 하나도 내놓지 못했고,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한반도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이후 연합국최고사령관은 구일본제국이 이웃나라 영토를 침략하여 빼앗은 모든 영토를 원주인에게 반환해주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연합국 최고사령관은 연합국최고사령관지령(SCAPIN) 제677호를 발표하여 제주도, 울릉도,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선언하였다.



[사진설명 : 연합국최고사령관이 SCAPIN 제677호의 부속지도로 작성해서 한국과 일본의 영토를 구획한 지도. 독도를 ‘TAKE'로 표시하고 한국영토에 명료하게 부속시켰다.]


일본이 다시 주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연합국이 설정한 영토에 대해서 승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때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미국에게 독도를 미군의 레이더 기지 및 기상관측소로 제공하겠다며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이것에 넘어간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생각해서 독도를 일본에게 넘기려고 했지만 다른 연합국(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결국 6년 전 연합국 최종결정(연합국최고사령관지령 제677호, 1946년 1월 29일)에 의거한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내용은 1951년 일본의 중의원과 참의원이 비준하면서 국제법상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패망이후 일본이 재독립하는 과정에서 자기들 스스로가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라고 인정한 것이다.



[사진설명 :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합국의 대(對)일본 강화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 매일신문사가 1952년 5월 25일 총 616쪽의 해설서인 『대(對)일본평화조약』을 발행했는데, 이 해설서의 부속지도인 『일본영역도』에서도 울릉도와 독도(竹島)를 조선영토로 표시하였다.]


# 독도를 손쉽게 차지하려는 일본의 술책 : 국제사법재판소


양심적인 일본인이라면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군국주의적 세력은 호시탐탐 독도를 자신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술책 중의 하나는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는 것이다.


1954년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 :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회부하자고 제안했으나 우리 정부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전달하였다.


일본 정부의 제의는 사법절차를 가장한 또 다른 허위의 시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갖고 있으며, 한국이 국제제판소에서 이 권리를 증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한국의 주권 침탈은 1910년까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1904년 일본은 강압에 의해 체결한 ‘한ㆍ일의정서’와 ‘제1차 한ㆍ일협약’으로 한국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획득하였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의 최초의 희생물이다. 독도에 대한 비합리적이고 끈질긴 주장은 한국 국민들로 하여금 일본이 다시 한국 침략을 시도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한국 국민들에게 있어 독도는 단순히 동해의 작은 섬이 아니라 한국 주권의 상징이다.


당시(1954년) 우리 정부가 전달하였던 상기와 같은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계속해서 독도 문제에 대해서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진위를 가리자고 우리를 자극한다. 당당하면 재판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내리자는 주장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역사적으로, 국제법적으로 자신의 영토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제사법재판이 시작되면 양측이 동일한 위치에서 재판이 시작된다. 이미 100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해 50을 소유하는 것으로 될 것이고, 0을 소유하고 있던 일본은 재판이 시작되는 순간 50을 소유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재판이 시작될 것이다(국제적 분쟁이기 때문에). 최종 판결은 15인의 재판관 중에서 투표로 결정되는데, 그 투표에 ‘국력’과 ‘로비’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엄연한 우리의 영토를 눈 뜨고 그냥 일본에 넘겨주는 꼴이 될 것이다. 한때 이것을 잘 모르는 우리나라 국회에서 새해 예산을 편성할 때 ‘국제사법재판소 비용’까지 책정하는 헤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 독도를 소유하고 있다면 지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독도는 엄연히 우리의 땅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후 한국 정부와 외교부가 미미한 대응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일본은 대대적인 국제 로비 활동을 벌여왔다. 이러한 일본의 노력은 오늘날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작성되는 세계지도를 보면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어 일본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일문제를 자세히 모르는 국가들 중에는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고 일본의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독도를 지키려는 의지는 실천적인 부분은 많이 아쉬움을 갖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 부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방문하기 전에 미국의 국무성에서 활용하는 지도에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어 부시 방한 반대 데모까지 일어났던 적이 있다. 그때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라이스는 ‘미국 내에서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에서 제외시킨 지도의 수정 및 재발방지에 대한 우리나라의 외교적 요청’에 대해서 지도의 수정은 가능하지만 재발방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대답한 바 있다. ‘국제법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대한민국의 의지가 약하다!’라는 것이다.


# 마치며 : 장공 김재준 목사의 ‘국토사랑’과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장공 김재준 목사는 국토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국토를 사랑한다는 것은 국민 전체가 저절로 품는 순정입니다. … 우리가 독도를 갖고 일본과 승강이를 벌인 일이 있습니다마는 그 섬은 사람 안 사는 작은 바위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그 바위뭉치 하나 때문에 전쟁도 사양치 않는다는 심정이 생깁니다. 그것은 이해보다도 국토 사랑 때문입니다. … 우리가 독도를 일본에 판다거나 제주도를 일본인이 무상 출입하는 자유항으로 밀매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매국으로 규탄될 것입니다.”(장공전집 제18권, ‘국토애’)


우리의 땅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면,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 또한 자연스러워야 한다. 아쉬운 것은 오늘날 우리 나라가 과연 일본의 술책에 대비하여 독도를 지키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이다.


또한 장공은 ‘현명한 통치자’에 대한 글에서(장공전집 제18권)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면서 일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그곳의 왕은 사랑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찬양하며 영원한 생명 안에서 자유롭게, 평화롭게, 즐겁게, 질서 있게, 사는 것입니다. 폭력 정치, 탐욕 경제는 스스로의 심판대 앞에서 이를 갈며 통곡할 것입니다.
나는 일본이 이런 국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를 염원합니다. 일본인은 영리합니다. 자기 살림은 빈틈없이 잘합니다. 그러나 평천하의 도량에는 의심스러운 데가 있습니다. 남에게 줄 줄 모릅니다. 줄 의무를 느끼지 못합니다. 동남아는 가까운 이웃이지만, 일본의 도움을 제대로 받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소위 대동아 전쟁 때에 일본은 동남아의 주민을 짓밟았습니다. 그러나 사과했다는 회개의 심정은 없습니다. 만주를 먹고, 중국을 침략하고, 가는 데마다 학살했지만, 중공이 강해지자 상품거래가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전쟁중에 백만 단위로 학살한 사건을 거저 넘길 수 없게 됐습니다. 일본 수상이 사과하러 갔습니다. 가서 했다는 말은 “미안했습니다”였습니다. 거기에는 회개의 심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의 원점을 자기들 국가 이기주의에 두고, 스스로 돌이키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행동을 통해서 진정한 미래의 동반자로 동북아의 평화 시대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모습을 보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생기며, 그렇게까지 하면서 남의 나라 영토를 빼앗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에 몰두하는 일본의 국가적인 수준이 여전히 20세기 초반의 제국주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