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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17회] 장공의 자유론 / 이오갑 교수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7 12:56
조회
1372

[제17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08년 10월 9일(목) 오후 5시 - 7시

장공의 자유론

이오갑 교수
(그리스도대학교, 조직신학)

[1] 들어가는 말

한국신학대학의 끄트머리에 들어가서 수유리 임마누엘 동산을 들락거리다 나오기만 한 것 같은 처지의 내가 장공 김재준 목사님에 관해 뭔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외람되고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 극구 사양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 더군다나 이미 많은 연구를 한 스승들이나 선배 목사, 학자들이 쟁쟁한데 그분들 앞에서 실적도 없고, 독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발표한다는 것이 분수 없는 일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사양하지 못했던 것은 결국 지금이라도 장공을 배우고 익혀서 그 정신과 세계를 이어가라는 선생님들과 동문들의 명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다닐 때 한신의 개교와 기장의 역사를 배우면서 장공 김재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기는 했으나 직접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어서, 캐나다에 생존해 계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인물이라는 실감은 없이 단지 역사 속의 인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981년인가 장공을 보았을 뿐더러 그분의 말씀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서대문에 위치한 경서교회를 다녔는데, 장공이 귀국하여 우리 교회에 말씀을 전하러 오신 것이다. 키가 작고 조금 마른 체구에 평범하고 검소한 양복을 입으셨다. 말씀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로 시작되는 고린도전서 12장의 본문을 가지고 교회의 각 지체가 서로 협력하고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라는 요지였다. 평범한 내용이었고, 어투나 어조도 평이하며 조금 느린 듯 띄엄띄엄 말씀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나는 저분이 장공 김재준 목사님이라고 우러르며 열심히 들었다. 그래서인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새롭게 마음에 다가와서 감동이 되었고, 지금도 그 말씀과 장면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하나는, 경서교회에서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바자회를 할 때 장공의 글씨를 여러 점 받아다가 표구해서 내놓았던 적이 있다. 바자회에 전시된 장공의 글씨들을 많은 사람들이 장공이 쓴 것이라며 감탄하며 소장하고 싶어했다. 나도 관심 있게 보았고, 문외한이라 평가할 수는 없지만, 한문 붓글씨를 꾸밈이나 멋 부리려는 기교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잘 썼다고 기억된다. 지금 같으면 한 점을 샀겠지만 당시는 한신을 갓 졸업한 청년전도사에 불과했던 터라 능력이 없었다. 장공은 멀리 캐나다에 살면서도 서울의 한 교회가 건축한다는 사정을 알고 귀한 글씨들을 보내주셨던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우리는 그의 교회 사랑의 크기를, 특별히 기장교회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짐작하게 된다.

각설하고, 나는 장공을 한 마디로 자유의 사상가라고 본다.1) 물론 한 인물의 수십 년에 걸친 삶과 사상의 전체를 단 한 마디로 잘라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옳은가 하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볼 때 가장 대표적인 어떤 하나로 표상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그 인물을 아주 특징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장점도 없지 않다. 동시대인들과 비교해서, 김교신이 조선혼의 사상가이고, 이용도는 신비주의자이고, 함석헌은 씨의 사상가이고, 장준하는 민족과 반독재의 투사라면, 장공은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나는 그가 “자유의 사상가”라는 것이다.

1) 참고. 이오갑, “자유의 맥락에서 본 장공 김재준의 삶과 사상”, [신학사상] 141호, 2008년 여름호 7~37. 이 글은 이 논문에서 장공의 자유의 사상적인 면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상당 부분 중복된 내용이 있음을 밝힌다.

그만큼 그의 삶은 자유로 점철되어 있고, 사상의 중심에도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이해 그리고 적극적인 주장이 들어있다. 사실상 많은 학자들이 장공의 그런 측면을 간과하지 않고 드러내고 또 설명하기도 했다. 가령 박봉랑 박사는 장공의 근본정신을 “자유와 겸허”에서 찾았고, 그의 신학을 “자유의 신학”이라고 불렀다.2) 전경연 박사는 장공의 가장 중요한 공로로서 “신앙과 신학의 자유를 확보 실천한 일”로 꼽았으며,3) 김정준 박사는 장공을 “보수와 진보 어느 하나에 자기 발을 붙이지 않는 진보적 보수주의, 보수적 진보주의 사상을 글귀마다 펴나가는 폭넓은 진리의 탐구자, 신앙과 윤리, 교회와 사회, 신학과 철학, 전통과 혁신의 테두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유의 탐구자, 이런 진리와 자유에서 높고 깊으며 폭넓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4) 그러나 장공이 자유라는 독특성을 가진다고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고 언급했다고 해도, 사실 장공의 자유론을 다룬 본격적인 그리고 독립적인 연구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여기서 자유의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의 자유사상이 정작 무엇인지에 대해서 등한시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그래서 그의 자유사상을 본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2) 박봉랑, “시대가 요구하고 하나님이 선택한 예언자”,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 [장공이야기],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41~42. (이하 [장공이야기]). 3) 전경연, “신앙과 신학의 자유를 실천하고 확보하신 분”, [장공 이야기], 372.
4) 김정준, “장공 전집 간행에 부치는 글”, [김재준 저작 전집], 제 1권 논문,(서울: 한국신학대학 출판부, 1971), 1. Cf. 황성규, “장공 김재준 목사의 삶과 사상, 그리고 그의 영성”,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편, [장공 김재준의 신학세계],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6. 15. (이하 [신학세계]), 그리고 정종훈, “장공 김재준의 신학여정과 생활신앙의 기독교윤리”, [신학세계], 317. 그 외에도 문익환 목사는 장공의 영전에 바친 시에서 “자유가 좋아서 기독교인이 되었고…기독교의 사슬마저도 끊어버리고 자유를 선포하셨고…(종래는) 자유의 황무지를 갈아엎는 보습”으로 묘사했다. 문익환, “큰 스승이시여 - 장공 김재준 목사님 영전에-”, [장공 이야기], 393. 이해동 목사는 “그 분이야 말로 타고난 자유인으로서…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아니오’를 말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스스로 쟁취하고 유감 없이 누리고 가신 우리의 큰 스승”이라고 했다. 이해동, “참 자유인으로 살고 가신 큰 스승”, [장공 이야기], 223.

이 글은 장공의 그 자유사상을 이론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특징과 의의를 밝혀보려는 목적을 갖는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장공은 신학자로서 성서와 신학의 전통 안에서 자유를 보았다. 자유의 문제는 신학의 주제라고 할지라도 사실 많은 학자들이 다루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장공은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신학자의 면모를 갖고 있지만 역시 구약학자로서의 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자유라는 조직신학적인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관해 많이 언급하고 설명했다는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그만큼 그가 자유에 대해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자유의 신학적이고도 교회적인 필요성을 깊이 인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장공의 자유론은 어떤 것일까? 그는 자유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말하는가? 그 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장공의 자유론의 근거

장공이 자유에 대한 이해와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기독교를 통해서였다. 그 자신이 기독교 안에서 자유를 체험했고,5) 기독교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기독교 진리가 자유를 핵심으로 한다는 점을 확신했다. 그래서 장공의 자유론은 그 기반을 기독교 신학과 그 근거인 성서에 두고 있다.

5) 류장현, “김재준의 생활신학의 원리와 구조”, [신학세계], 210~211.

장공에 따르면, 기독교 자체가 “인간 자유를 위한 종교”이다. “기독교에서 자유를 위한 정열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불 꺼진 재와 마찬가지일 것”이다.6) 그 이유는 성서의 모든 책들이 “결국 자유를 위한 사건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가령 “출애굽기는 노예에서 자유에의 기록이며 사사기는 유목민족들 또는 가나안 토착민들의 침략과 압박에서 자유를 얻으려는 고투의 기록이었다. 열왕기도 그랬다. 그리고 바벨론 포수생활에서의 해방의 노래, 모든 불법과 죄악과 횡포에서 백성을 자유케하려는 예언자들의 외침, 그리고 신약에 와서는 그런 외부적인 의미에서보다도 더 근본적인 인간 자체의 내적인 자유, 즉 인간성을 그 존재에서부터 파괴하는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게 하려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곧 성서의 모습이다.”7)

6) 김재준, “기독교와 인간자유”(1973), [장공 김재준 논문 선집] (장공 김재준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편)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298, 이하 [선집]으로 표기하며, 김재준의 글은 저자명 생략함. Cf. 천사무엘 “근본주의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김재준’”, [신학세계], 43, 7) “기독교의 기본 문제”(1955), [선집], 212~213. 인용문은 원래는 “입니다” 식의 구어체임.

장공은 자유의 근거를 이와 같이 성서 전체에서 찾지만,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는 역사적 예수에게서 발견했다. 장공은 기독교를 쉽게 “예수를 닮으려는 종교”로 규정한다.8)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닮아야 한다. 기독교가 자유의 종교인 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가 자유의 회복자이고 수호자이며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8) “한국교회의 기독교화”(1971), [선집], 152.

장공에 따르면, 예수는 아주 구체적으로 버림받은 자들, 정죄받은 자들, 가난하고, 억압당하고, 고통당하는 자들, 병자들을 자유케 했다. 장공은 50년대에 발표한 “기독교의 기본문제”에서 말한다. “그는 자기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선교의 첫 선언을 선포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갇힌 자를 놓아주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주의 복된 해를 선포하기 위함이라.’ 이것은 결국 인간 자유의 선언입니다... 예수의 선교활동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병 고치는 일에 사용하였습니다. 질병은 주로 몸의 병입니다. 사귀를 내쫓는다는 것은 정신적 신경적 질환입니다. 어쨌든 질병 때문에 그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예수는 그들을 인간으로 회복시켜 건강한 인간으로 정상적인 사회관계에서 버젓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인간 속박행위에 항거하여 소위 율법의 질곡에서 인간들을 자유하게 했습니다.”9) 장공의 그런 예수에 대한 시각은 70년대에 들어서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예수는 인간을 찾았다. 인간은 상실된 상태에 있었다. 병든 육체 때문에 신음하는 인간들을 수없이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질병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썼다. 율법주의적 종교 밑에서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종교에서 버림받은 대중들을 찾았다. 그는 그들에게 죄의 용서를 선언했다... 그는 인간들 중에서도 죄인, 세리, 윤락한 사람들, 가난한 자, 병든 자, 인간들 측에서 쫓겨난 나환자, 불구자 등등 소외된 인간들을 더 많이 찾아 그들을 새 인간으로 변혁시키는 일을 하였다.”10) 예수는 “바리새파나 사두개파, 에세네파, 경건파 등 그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구약성서의 본원과 본류를 파악하고 그것을 자기 몸으로 완성한다는 데 까지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적인 것을 사랑 안에서의 자유로, 폐쇄적인 것을 개방에로, 민족적 특권의식을 세계적 봉사의무에로 예언에서 성취에로 전향시킨 것이었다.”11)

9) “기독교와 인간자유”, [선집], 300~301. 10) “한국교회의 기독교화”, [선집], 154~155.
11) “개혁교회의 재개혁 방향설정”(1974), [선집], 159~160.

그런 역사적 예수에 근거한 기독교의 신앙이나 역사는 모두 자유의 역사이고, 그 자유를 위해 투쟁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 2천년사는 진정한 자유를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교리적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 율법의 속박에서 인간은 자유하다는 것을 그 주축으로 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했다... (기독교는) 인간성을 온갖 질곡에서 자유케 하는 은총의 종교”이다.12) 이런 기독교를 장공은 다른 데서 “자유하는 산 인격으로서의 예수의 종교”라고 부르기도 했다.”13)

12) “한국사에 나타난 신교 자유의 투쟁”(1966), [선집], 383. 13) “한국교회의 기독교화”, [선집], 152~153.

그러나 장공은 때로 성서나 기독교의 역사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일반적인 역사도 “자유의 역사”라고 확신했다. “일반역사를 더듬어 볼 때 역사의 기록은 결국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 또는 자유를 잃어버릴까 무서워서의 투쟁기록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14) 장공은 또 “역사라는 것은 시간 안에서, 자유하는 인간이 어떤 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생의 공허를 메우려는 활동의 결과”15)이며 “자유하는 인간만의 무대”로서 “인간 자신이 인간을 인간화하는 것”이라고도 표현했다.16) 그러나 장공은 그런 일반역사와 자유와의 상관관계를 깊이 있게 살피지는 않는다. 오직 그 역사는 기계적이거나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개방적인 것이어서, 크리스천의 참여로써 하느님의 섭리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법의 운행과 같이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역사의 궤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반드시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유물변증법이 적용될 정도로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역사에는 예측 못할 결과가 오는 것이다... 역사에는 자유하는 하느님이 주시는 기회가 언제든지 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17) 그처럼 장공은 일반 역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와 크리스찬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있을 뿐, 그 자체의 사관이나 철학으로써 장황하게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장공의 자유론의 근거는 역시 기독교 신학과 신, 구약성서, 특히 역사적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4) “기독교의 기본 문제”(1955), [선집], 212~213. 15)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1959), [선집], 362.
16) Ibid., 369.
17) Ibid., 370~371의 문장들을 문맥에 맞게 재구성했음.

그렇다면 장공은 자유를 어떻게 보는가? 자유는 그의 신학 속에서 어떻게 설명되고 다뤄지는가? 그 점을 차례로 살펴보자.

[3]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자유와 타락

장공에 따르면, 인간은 태초부터 이미 자유로운 존재였다.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로 창조되었고, 그 주체, 그 자유를 하나님은 보존하기를 원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은 자유하는 주체다. 하나님도 그 자유에는 손대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억압 또는 말살될 때에는 그 인간이라는 그 자체가 비인간화되고 물건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18)

18) “역사참여의 신학”(1971), [선집], 396.

그러나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고려돼야 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구성적 특징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영적이고 자연적인 이원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자연적으로는 자연 질서 안에 내재하여 그 법칙에 묶여 있다. 그래서 인간이 자유라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장공은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자유’의 문제를 논구할 때 모든 다른 문제를 논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를 규정해야 바로 된다는 것을 우선 전제로 말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크리스천 인간학에 있어서 인간은 그 구성에 있어서는 이원적이란 것을 말합니다. 인간적, 영적인 면으로는 자연질서를 초월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내재적 생리적으로는 자연질서 안에서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 관계를 계산에 넣지 않고 인간을 보는 때에는 일원적으로 되며 따라서 심리적 화학적 자연관계에서만 규정짓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인간이란 것은 자연계에서의 심리적, 생리적 파동과 반동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요 다른 아무 ‘독자적’인 결단을 할 수 있는 ‘인격’은 아니게 됩니다. 따라서 자유는 없는 것으로 됩니다.”19)

19) “기독교의 기본 문제”, [선집], 213~214.

그러므로 인간이 자유를 잃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자기 스스로 절대적인 독립, 혹은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일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제 손으로 제 터전을 ‘세상’에 빠트려 파괴하는 셈입니다. 마치 대해에 떠가는 배에 탄 사람이 ‘자유’한다고 배에서 뛰어나가면 물에 빠질 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 같이 자유한다고 금단의 열매를 먹은 때 그들에게는 사망이 왔습니다.... 무신론은 인간의 절대자유를 주장한 결론입니다.”20) “인간의 절대자유를 주장한다면 각 개인이 그 자신의 권위가 됩니다. 제가 제 법이 됩니다.”21) 따라서 인간이 자유를 회복하는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되찾고, 그에게 순종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는 정치적 전제에서, 경제적 빈곤에서, 노동의 고역에서, 무지의 미망에서, 혼란과 무질서에서 자유함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안에서 하느님께 순종하는 때에만 옳게 성취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이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자연법칙을 가장 잘 알아, 가장 잘 순응하는 때에 가장 자연계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느님 관계에 있어서도 하느님의 뜻에 가장 잘 순종함으로써만 가장 큰 자유를 받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22)

20) Ibid., 215 21) Ibid, 216.
22) Ibid, 217~218.

인간이 그렇게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영적인 면 혹은 영성을 잃어버리고,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혹은 물질적인 관계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맑스나 니이체의 무신론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히틀러나 스탈린의 전체주의, 공산주의, 탐욕적인 자본주의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그런 것들의 결과는 “자유의 상실”, “비인간화”, 또는 “자승자박의 노예화”이다.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합니다. 논리니 사상이니 하지만 그것은 다 사회의 생산과 분배 여하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역사는 유물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도 ‘자유’는 없게 됩니다.”23)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구조, 주의라는 틀 속에 인간을 밀어넣어 그것으로 마치 과자를 과자틀에 박아 내듯이 동일형으로 주조하여 다량생산하려고 했습니다... 크게 말해 우리 인류는 오늘날 두 큰 그물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공산주의라는 그물이고 하나는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그물입니다... 하나는 ‘주의’란 것을 신전에 앉히고 인간을 거기에 종노릇하도록 강요합니다. 거기에 노예화하지 않는 자는 숙청이란 방법으로 마치 쓰레기 버리듯 제거해버립니다. 또 한쪽에서는 돈이란 것을 우상으로 신전에 앉힙니다. 그래서 ‘돈벌이’가 생의 dynamics요 목적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인간은 상품목록이요 재산계정인 것입니다. 인간 물상화는 인간상실로 나타납니다. 그러고 보면 전 인류는 두 큰 그물 속에서 모두가 비인간화해 가고 있으며 결국 전체가 비인간화하고 말게 되어 있습니다.”24) “인간은 이기주의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므로 사회계약설이니 다수의 의사이니 하는 것도 무난히 악용합니다. ... 그리하여 하느님에게서 독립하여 절대자유한다는 인간의 종말은 자승자박의 노예로 화하는 것입니다.”25)

23) Ibid, 214. 24) “기독교와 인간자유”, [선집], 302.
25) “기독교의 기본 문제”, [선집], 216.

그렇다면 자유를 상실한 인간은 결국 비인간화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그렇게 희망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인간이 타락한 존재로서 그렇게 범죄의 노예가 되고 죽음의 운명이 되어야 할까? 인간은 파괴된 인간성과 왜곡된 자유로써 이룩하는 모든 문명이 “절화문명(折花文明)”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다시 받아들이고 스스로 피조물의 유한성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 즉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특별한 자신의 경륜을 갖고 계신다. “(자유하지 못한 즉 본성적인 인간은) 타락한 존재여서 범죄성의 종이 되어 있으며, 죽음의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조자인 유한한 인간으로서 운명에 항거할 수 없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종국을 예측할 수 없었다... 도대체 피조자가 창조주 구실을 하려는 데 그 근본 병통이 있다. 우주와 인생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제외하고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모든 데서 소위 ‘절화문명’ 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역사가 그대로 하나님의 계시인 것은 아니지만 역사 안에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다. 그것은 성서 기록에서 발견된다. 이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그이로서의 경륜을 가지고 계시다.”26)

26)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선집], 369.

[4] 그리스도를 통한 자유의 회복과 성령 안에서의 자유의 삶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경륜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을 구속하는 것이었다. 장공은 구약으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역사 자체가 인간을 자유케 하는 구원의 역사이지만, 특히 그 결정적인 계시와 성취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신구약성경을 믿는 마음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는 거룩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만나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을 구속하시려는 그의 경륜과 성취를 보게 된다. 더군다나 그리스도를 믿는 때 우리는 육신을 이룬 ‘말씀’과 인격적으로 사귀게 된다... 문자나 의식으로서의 양식에 사로잡힌 율법이 아니라, 영적 인격적인 복음의 자유로서의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말씀’이다.”27) 여기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이룬 말씀이며, 사람들은 그를 믿음으로써 인격적인 사귐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외아들과의 사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고, 동시에 자유의 회복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 자유는 하느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피로 증거해주신 자유, 인간에 대한 최후의 속박인 죄와 죽음에서까지 자유하게 하는 자유(입니다.)”28)

27) “축자영감설과 성서무오설에 대하여”(1950), [선집], 96. 28) “기독교와 인간자유”, [선집], 303~4.

그리스도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이미 구조적이고 우주적인 악의 세력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예수의 인간 자유운동은 인간을 그 근원적인 포인트에서 노예화하는 인간 이상 하나님 이하의 악마적인 세력자를 정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오늘로 말하자면 구조악이라든지 비극에서의 불가피한 운명이라든지 자기를 신화하여 압제와 횡포를 일삼는 독재권력이라든지 유사한 독재집권자부터 제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자들을 고쳤다. 그것은 육체적 파괴세력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운동이었다.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경제적, 사회적 속박에서 인간을 해방한 것이다. 그는 죄의 용서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그것은 도덕적, 율법적인 강박에서 인간을 자유하게 한 것이다. 그는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회복이며 갱신이다. 이것을 그는 영으로 거듭난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인간 존재의 최후의 적인 죽음을 이기고 그 자신이 부활체로 나타났다. 이리하여 그는 인간을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시켰으며 종말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을 그리스도 자신의 부활체와 같은 영의 몸을 입은 영원 자유하는 인간으로 나타나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29)

29) 김재준, “해방의 신학”, [제3일], 12호, 10~11. 강신석, “한국 교회사의 맥락에서 본 김재준의 사상”, [장공 사상 연구 논문집], 127~128.

그래서 신자의 삶이란 다름 아닌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가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함으로 얻은 자유로써 진리의 길을 묻고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사는 신앙생활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그가 우리 죄를 밝혀 심판하심과 동시에 그 죄를 속량하신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의 심정과 이성을 밝히셔서 주 앞에서 다시 얻은 겸손한 자유로 진리에 대하여 질문하며 탐구하게 한다.”30)

30) “한국교회의 신학운동”(1960), [선집], 237.

그런데 장공의 자유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장공이 자유를 성령과 관련지어 설명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단지 자유의 수혜자가 아니라 자유의 주체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단지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시켜주고 베풀어준 자유의 대상자가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자유로운 인격으로서 선택하고 결단하는 자유의 주체자이며 행위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성령이 죄인 속에 들어와서 그를 다시 창조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은 성령의 죄인들에 대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이고 변혁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려는 그이로서의 경륜을 가지고 계시다. 그것이 하나의 ‘드라마’와 같이 일반 역사 안에서 연출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간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것부터 변혁시키는 ‘프로’를 진행시켰다. 하나하나의 인간이 우선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그 근본에서 돌이켜져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사람’으로 새로 지음 받아 인간성의 거듭남을 입어야 한다.”31)

31)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선집], 369.

성령의 그런 능력으로 새로 지음 받은 사람은 ‘영의 자유인’으로서 새 존재가 되어 그 어떤 노예적 속박도 거부하며, 더 나가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을 깨닫고 감격하며 자유로이 혹은 자발적으로 윤리적 삶을 선택한다. 장공은 복음적 윤리를 설명하면서 말한다. “성령이 내 맘에 들어와 나를 감화시키고 나를 다시 창조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신다는 방향입니다... 그 때의 윤리적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실이요, 나 자신의 행위의 열매가 아닙니다. 내가 행한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은혜의 감격에서 행하는 것이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권면하신다’는 실감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의 자유인’으로서 새 존재가 된, 또는 되어가고 있는 인간은 고정적, 추상적, 계율적인 조항에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신학이나 규정된 도덕률이나 교훈이나 자연법이나 소위 지상명령이나 간에 거기에 예속되지는 않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 것도 판단을 받지 아니 하느니라(고전 2:15).”32) “그러면 영의 자유인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말입니까? 초대교회의 소위 무법을 시인한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바울의 말과 같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에 비추어 선택하는 것입니다.”33)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윤리나 도덕은 어떤 강제나 의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유인의 자발적인 결단과 선택에 의한 것이다. “애당초부터 인격적 자유에서 출발하여 ‘영’의 재량 아래서 상호관계 됨을 참작하여 작정한 기독교 도덕행위였기 때문에 융통성 있는 자유결단과 자유실천으로 시종하는 것입니다. 영의 자유가 자유하는 생명의 선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34)

32) “한국교회 윤리생활의 재검토”(1962), [선집], 115~116. 33) Ibid., 117.
34) Ibid..

[5] 자유의 완성: 아가페적 사랑과 역사참여

장공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그 자체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 혹은 목표를 갖는데, 그것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의 종도 아니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한 루터의 긍지는 자유인의 영광입니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자유인처럼 아름다운 인간상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생성에는 언제나 하늘의 후광이 감돕니다.”35) 즉 자유는 스스로 사랑을 위한 봉사의 삶으로 이어지며, 바로 거기에서 자유가 비로소 완성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35) “기독교와 인간자유”, [선집], 305.

그런데 장공에게서 그 사랑은 개인적인 자선이나 선행을 넘어서서 ‘역사’ 또는 ‘세상’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복음의 전달과 무조건 앞서 베푸는 거룩한 사랑, ‘아가페’의 실천으로 인하여 성령의 역사 안에서 되어지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다. 크리스천은 역사에서 도피하지도 않고 역사에 몰입하지도 않는다. 그는 영으로 다시 난 인간으로 역사 이상인 하늘나라에 속하면서 역사 안에 있어, 역사를 그 하늘나라, 즉 ‘구원사’의 전형에 의하여 조성해가는 것이다.”36)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기까지 사랑한 것은 세상(요3:16)이었다. ‘세상’이란 것은 인간들이 사는 모든 영역의 총칭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역사란 것은 인간들의 모든 사건들이 연출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세상에 오셔서 세상 사람들을 찾아다니시고 그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봉사하셨다... 그는 ... 다만 몸으로 직접 인간들을 찾아 그들을 섬기고 가르치고 병 고치고 사랑했을 뿐이다.”37) 그래서 장공에게서 그리스도교는 역사를 자유케 하고 해방하는 사명을 갖는다. “그리스도교는 다시 영의 자유로운 창조에 의하여 역사를 해방하려 한다.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며 역사 안에서 종교적 힘을 도입하는 자유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38)

36)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 [선집], 369~370. 37) “한국교회의 기독교화”, [선집] 157.
38) “역사 안에 임한 그리스도-그리스도교에서의 역사 이해” [저작 전집], 1, 382, 손규태, 307 재인용.

그런데 그 역사는 보편적인 구원사만이 아니라 바로 한국 역사이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유를 얻은 “우리”는 한국 역사를 책임지고, 그것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공은 단언한다. “우리는 이제 이 한국을 우리의 소재로 받았다. 우리는 한국 역사 안에 그리스도의 속량의 역사를 조성하며 한국 역사를 그리스도의 천국 역사로 변질시키는 업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39) 장공은 한국 역사를 절박한 위기의 역사로 파악한다. 즉 시급한 사랑과 참여가 요청되는 역사인 것이다. “한국은 세계 역사의 위험지대에 놓여있다... 교회의 자가 반성과 회개가 절박하게 요청된다. 더군다나 정치, 경제 등이 위기에서 방황하고 국민은 빈곤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다. 이북의 동포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자유를 누려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기반 없이 건전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 기독교인의 봉사할 무대는 넓고 그 역할은 얼마든지 다양하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는 응답에 용감해야 한다.”40)

39)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1956), [선집], 108. 40) “전후 한국교회 20년사 비판”(1965), [선집] 141.

[6] 양심의 자유

특기할만한 것은 장공의 자유론이 단지 신학이나 기독교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도덕이나 민주주의 혹은 인권에 대한 확신 속에서 나타나고 발전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양심의 자유에 관계된 부분으로서, 장공의 자유론은 특히 이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한국사회와 학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장공이 활동했던 20세기 중후반까지 한국의 신학계와 교계에는 양심의 자유, 즉 신앙과 학문의 자유가 미비했다. 당시는 성서의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신학과 교회를 지배했는데, 그들은 동시에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교권에 복속시키는 정통주의자들이면서 교권주의자들이었다. 장공이 해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연구와 발표, 교육활동을 시작했던 것은 그런 풍토속에서 였다. 자유롭고 비판적인 학문훈련을 통해 형성된 장공의 신학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결과 1953년에는 한국장로교총회로부터 “목사직 파면”을 당하게 된다.

장공은 그런 근본주의자들과 교권주의자들의 오류와 폐해를 매우 심각한 문제로 파악했다. 그들은 신자들의 양심과 신앙을 유린함과 동시에 기독교를 노예의 종교로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 불쌍한 오십년 이래의 교회지도자들이 선교사 제위로부터 배운 것은 정통신학의 주입과 그에 대한 맹종밖에는 없었다. 자유도 비판도 없었다. 그러므로 인격적이라고 할 것이 못되며 따라서 학문도 성립되지 않았고, 진리도 천명되지 않았다. 습관화된 전통이 신앙의 탈을 쓰고 교권을 전횡하여 이성과 양심을 유린하는 암흑시대를 조성한 데 불과하였다.”41) 그 결과는 무엇인가? “신앙의 중심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떠나서 기록된 문서로서의 인격 아닌 성경으로 옮겨졌으며, 그 때문에 영의 종교가 책의 종교로, 인격의 종교가 물상의 숭배로, 자유하는 복음의 종교가 노예화하는 율법의 종교로 전락하게 된 것이었다.”42) 장공은 그런 교회의 역사를 ‘얼’이 없는 것으로 탄식한다. “한국교회 50년이... ‘한국’ 기독교사냐 하는 데는 너무 ‘얼’이 없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비판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주입’과 ‘추종’이 있었을 뿐이다.”43)

41)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 [선집] 103. 42) Ibid., 102.
43)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 [선집] 99.

장공에 따르면, 신학이나 성서학도 학문으로서, 그것의 성립과 발전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비판과 연구가 보장되어야 한다. “비판학이란 것은 ‘연구’다. 그저 피상적으로 읽어버리거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기록과 사실을 차근차근 다져가며 가장 정확한 객관적인 결론을 얻으려는 태도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로운’ 연구다. 전통적인 결론을 덮어놓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사실이 명령한다면 전통적인 것에서 떠나는 것도 사양치 않는 태도다.”44) “무슨 학문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신학에 있어서도 ‘신신학이냐 무신학이냐’의 양자 택일이 강요된다. 학문한다는 것은 날로 새롭게 탐구하는 과정에서의 공작인데, 새로 탐구할 것이 없다면 그것으로 학문은 사멸한다. 한국에서도 진정 신학을 하려면 날로 발전하는 새 신학에 자기를 개방하여 진지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이에 대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어느 누가 어떤 신학 내용을 채택하든지 간에 우선 신학 자체에 대한 개방적이고 상대적인 태도부터 수련해야 할 것이다.”45)

44) “성서 비판의 의의와 그 결과”(1950), [선집] 47. 45) “개혁교회의 개혁”(1970), [선집] 146~147.

그래서 장공은 전통주의자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그들이 배타적인 데 반하여 우리는 협동적이며, 그들이 주입적인 데 반하여 우리는 비판적이며, 그들이 통제적이요 억압적임에 반하여 우리는 자유인 것이다. 우리의 이런 태도가 위험하다고 느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위험을 떠나서는 참된 의미에서 인격적 신앙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유, 자주, 비판, 진취 등 독립적 활동이 없이 역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46)

46)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 [선집] 106.

그처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철저한 신념을 가졌던 장공은 그가 주도했던 조선신학교의 설립에 부쳐서 이렇게 천명했다. “(1)우리는 조선교회로 하여금 복음 선포의 실력에 있어서 세계적일뿐 아니라 학적 사상적으로도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게 할 것. (2)그러하기 위하여 우리 신학교는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찬을 경하여 자율적으로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하도록 지도할 것. (3)교수는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 없이 충분한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신학의 제 학설을 소개하고 다시 그들이 자율적인 결론으로 칼빈 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함에 이르도록 할 것.”47)

47) “편지에 대신하여”(1948), [선집] 67.

여기서 “(2)...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하도록 지도할 것”과 “(3)...칼빈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의 부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선신학교의 학문적 방향이나 목적을 지나치게 복음적 신앙이나 칼빈신학에 제한한 것이 아닌가 라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자유로운 연찬을 통하여” 그리고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 없이... 자율적인 결론으로”라는 전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덧붙여 말하면 장공은 개혁신학자로서 칼빈의 신학의 노선을 따랐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자유로운 지적 여정의 과정에서 얻은 것이었음을 고백했다. “저가 칼빈신학을 수호하는가? 나도 그러하다. 나는 칼빈이 주창하였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 여러 신학자의 순수한 학적 양심을 두드리다가 결국 칼빈의 문하에서 내 신앙의 지적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48) 또한 그는 자신이 칼빈의 입장에 서 있지만, 그것 역시도 넘어설 수 있고,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한국교회는 정통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참 전통은 16세기의 칼빈 신학에의 고정이 아니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몸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과 생애와 심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칼빈, 루터, 바울 등은 어느 각도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 뿐이다.”49) 이렇게 볼 때, 장공이 주장하는 양심의 자유의 폭은 매우 넓고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48) Ibid., 81. 49) “개혁교회의 재개혁의 방향설정”, [선집], 168.

더 나가서 장공은 양심의 자유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허용된다고 보았다. 즉 기독교가 믿고 포교할 자유를 가지듯이 다른 종교들도 동일하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신교 자유는 기독교만 가지는 특권이 아니다.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다 같이 누리는 권리요... 그렇다면 타종교들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도 명실공이 자유, 평등의 입장에서 서로 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신교의 자유를 십이분 존중하면서 피차 성실한 친교와 정직한 대화를 교환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의무라 생각된다.”50) “우리나라도 국교가 없으므로 모든 종교가 동등하며 자유인 것이다.”51) 장공의 이런 신념은 배타적이고 독선이 지배하던 당시의 정황을 고려한다면 매우 개방적이며, 또한 우리나라의 신앙,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진일보한 것으로서, 의미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50) “한국사에 나타난 신교 자유의 투쟁”, [선집], 382. 51)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는 가능한가”(1964), [선집], 406.

결과적으로 장공의 양심의 자유는 우리 근대사에서 그를 “자유의 사상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큰 업적을 세우게 했다고 평가된다. 그 점에서 양심의 자유는 그의 자유론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공이 주장했던 ‘양심의 자유’는 구체적으로 한국신학대학과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설립을 통해서 한국교회와 신학에 발전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축자영감설을 되풀이 하는 근본주의의 지배를 벗어나서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세계교회와 신학과 교류하게 된 것이나, 신학교 교수들이 자유로운 연구와 발표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교회를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 목회자들도 강단에서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설교하고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 장공이 가르치고 세워놓은 양심의 자유 덕분이었다.52)

52) Cf. 김경수 목사의 평가. “장로교 총회가 모이면 이단 시비로 수라장이었다. 그 때는 칼 바르트도 폴 틸리히도 불트만도 한국 장로교에서는 이단자였다. 고등비평이니 성서의 문서설이니 양식비평이니 하는 것은 입밖에도 내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조선신학원에서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신학의 자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수신학자들의 공격 목표는 언제나 김재준 목사님이었다... 한국신학대학은 세 가지 깃발을 들고 나섰다. 첫째, 신앙의 자유, 둘째, 양심의 자유, 셋째, 신학의 자유가 그것이었다. 한국교회가 축자영감설에서 벗어나 세계교회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국신학대학을 중심으로 한, 신학적인 선각자 김재준 목사의 예언적인 목소리 때문이었음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한국 교계에 반짝이는 별”, [장공 이야기], 27.

둘째, 장공의 양심의 자유는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장공은 60년대 이후 국민의 언로를 막고, 양심의 자유에 따른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했다. 그는 6,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요한 지도자들 중의 일인이었다. 주지하듯이 민주주의는 집회, 결사, 출판, 언론, 표현의 자유를 그 핵심으로 하고, 바탕에는 인간의 양심의 자유가 놓여있다. 장공의 민주화 투쟁을 그가 가졌던 인간의 양심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떼어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또한 장공이 이전 30여 년간 교회와 신학계 안에서 양심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투쟁의 연장선이고 귀결이라 할 수 있다.

[7] 장공 자유론의 평가와 의의

장공의 자유론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이 이미 언급하고 평가한 바가 있다. 대부분 비슷한 평가를 내리고 있으나 일부 엇갈리고 상반되기까지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특히 장공의 자유가 내적인 것이냐, 외적인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나타난다. 즉 장공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자유가 주로 내면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자유인지, 아니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면에서의 자유인지가 논란이 된다.

먼저 손규태교수는 장공의 자유가 일차적으로 종교적인 자유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것은 장공이 민중들을 유대교적 율법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킨 예수로부터 자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손교수의 이런 관점은 장공 신학의 배경을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억압과 탄압이라는 관점으로 파악한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손교수는 말한다. “장공의 복음 이해, 즉 그리스도 이해에 의하면 예수는 일차적으로 유대교의 율법 종교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나아가서 모든 종류의 정치적 사회적 성적 억압과 굴레에서 인간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여 사랑과 평화 가운데서 살게 하는 분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그것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일차적으로 인간을 종교로부터 해방하는 일에 전념했다. 장공은 이로 인해 한국의 보수주의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박해를 받고 교단으로부터 추방되었으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한국신학대학과 한국기독교장로회를 통해서 해방하는 종교를 시작했고, 나아가서 이러한 기독교적 신념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자신의 몸에 하나로 결합시켜 헌신함으로써 이 한국 교회의 참된 스승이 되시고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53)

53) 손규태, “장공 김재준의 복음 이해와 한국 민족”, [신학세계], 313. 물론 손교수는 장공의 자유가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외적인 자유를 포함하지만 역시 일차적인 것은 내적인 종교적 자유라고 보았다. 299~300.

반면에, 천사무엘교수는 장공의 자유가 내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외적인 면에 더 치중함으로써 균형을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재준이 제시한 자유란 한마디로 죄의식이나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인 인간의 내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외교 등의 자유를 포괄하는 인간의 외적인 자유도 포함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체험한 인간은 그리스도에 대한 보답으로서 이 땅에서의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유에 대한 김재준의 이러한 사고는 그로 하여금 가난과 물질을 초월한 청빈의 삶, 불의에 맞서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삶,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삶, 두려움 없이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삶 등을 살게 했다. 또한 그의 자유에 대한 사고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인간의 자유란 ‘보수 신앙인’들이 주장하는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적인 것도 포함한다는 것을 일반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계몽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인간의 외적인 자유에 대한 강조는 정치적, 경제적 억압에 항거하는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유관은 인간의 내적 자유보다 외적 자유를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균형을 잃고 있다.”54) 이런 평가는 장공의 역사참여, 사회적 실천과 반독재 투쟁을 부각시키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하지만, 장공의 자유론이 과연 외적인 데 치중되어 있고 균형을 잃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

54) 천사무엘, 43, 45.

사실 천교수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은 아니지만, 여러 학자들이 장공의 자유의 “균형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먼저 김경재교수의 평가를 인용한다. “김재준은 자유란 인간이 되는 근본조건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에서 ‘하나님 형상’의 핵심적 본질 또한 ‘자유’라고 본다. 그런데 인간이 이 ‘자유’를 잃으면 그 자유를 헌정한 대상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그 대상이 정치적 이념이든, 돈이든, 권력자든, 종교적 교리이든, 성스럽다는 성직 제도나 교회 조직체이든, 일체의 것은 인간을 비인간화시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기독교교리에 충성하는 또 하나의 종교 교리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 자유인은 이제 지난 날의 혈육적인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삶을 스스로 버리고 ‘헌신과 사랑’의 자유를 향유한다. 김재준이 일평생 싸운 선한 싸움의 동기는 ‘복음의 자유’를 다시 회복해, 교권주의나 율법주의나 국가 지상주의 등에 노예가 되었었거나 어떤 이념이나 조직체계에 종속되어버린 인간을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의 자유인’으로 복권시키기 위함이었다.”55) 류장현 교수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그 자유는 유교적 율법주의에서 해방, 정죄의식에서 해방, 죽음과 심판의 무서움에서 해방, 성령의 내주와 그 내주에서 오는 영의 즐거움에 대한 확신, 그리고 권력에서 자유, 물질적 소유에서 자유, 공포와 죽음에서 해방이었다.... 참으로 그는 자유하는 영의 사람으로서의 낭만정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장공은 이 자유의 체험을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하지 않았으며 인간혁명과 사회개혁으로 확대시켰다. 그것은 자유를 사랑으로 완성하는 일, 곧 개인 윤리가 사회윤리로 발전하는 사랑의 발전 형태이다...56)

55) 김경재, [김재준 평전, 성육신 신앙과 대승 기독교], 서울: 삼인, 2001, 110. 56) 류장현, 210~211.

장공의 저술을 전체적으로 볼 때, 역시 그의 자유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단 “기독교와 인간자유”에 나오는 이런 글은 그의 자유가 자유의 양면을 모두 살리면서 동시적으로 강조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요컨대 그리스도는 인간 자유를 주목적으로 하고 선교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자유라는 것은 외적인 조건에서 오는 자유를 무시한 소위 내적 자유만을 말함이 아닙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 자유는 하느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피로 증거해주신 자유, 인간에 대한 최후의 속박인 죄와 죽음에서까지 자유하게 하는 자유이니만큼 그 자유를 잃고서 삶의 의미와 긍지를 지속할 수는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인은 진정한 자유사회를 갖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추구합니다.”57)

57) “기독교와 인간자유”, [선집], 303~4.

그처럼 장공의 자유에는 내적인 자유와 외적인 자유가 균형을 이룬다. 그에게서는 내적인 자유를 획득한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들의 외적인 자유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유로운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은 타인을 고통과 불행과 억압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에 참여하게 한다. 그래서 기독교의 자유는 단지 내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적이고 사회적인 자유를 포함하고 함께 추구한다는 것이다.58) 장공의 자유는 그런 균형을 가진 잘 정리되고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8) Cf. “기독교의 기본 문제, [선집], 216~217.

그러나 장공의 자유론의 특징을 단지 그런 ‘균형적 완성’만으로는 다 잘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장공의 자유론은 내적인 자유만큼 외적인 자유를 잘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적인 자유는 매우 역사 참여적이고 실천적인 것으로서 장공의 사상을 특색 있게 한다. 장공은 외적 자유를 이론이나 구호로써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회적 실천을 위한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그래서 장공은 그 자유로써 기독교의 역사참여의 신학, 혹은 사회 윤리학을 세웠다. 장공의 참여신학이나 윤리는 한국의 사회와 역사를 변혁하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루기 위한 초점과 구체성을 가진 것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장공의 그런 자유론은 30년대 후반부터 교권주의자들의 억압으로부터 교회와 신학을 해방하는 투쟁으로 나타났으며, 60년대부터는 군사정권의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위한 참여와 투쟁의 기반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그의 자유론은 한국의 교회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부언하자면, 장공의 자유론은 동시대의 한국기독교가 거의 대부분 내적인 심령의 자유, ‘예수 믿고 천당 가면 된다’는 식의 역사도피성의 자유만을 주장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즉 장공의 자유론은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한국기독교, 저 세상적이고 도피주의적인 한국 기독교를 끌어내서, 사회와 이웃의 고통을 보게 하고, 사회의 불의한 세력과 투쟁하게 하는 사회 참여적이고 책임적인 기독교로 향하게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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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갑 교수

한신대 졸업(신학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
프랑스 IPT/몽뻴리에신학대학 졸업(조직신학, 신학박사)
그리스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