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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34회] 장공 김재준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 이정배 교수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8-31 10:09
조회
2308

[제34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14년 9월 18일(목) 오후 5~7시

장공 김재준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 우주적 그리스도와 생명권 정치학의 시각에서-

이정배 교수
(감신대 / 조직신학)

들어가는 글

장공 선생님에 대한 앎이 일천한 사람이 그분에 대해 글을 써 발표한다는 것이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과분한 기회를 어찌 감당해야 좋을지 모를 일이다. 대학시절 뵈었던 민중 신학자들, 안병무, 서남동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많은 글을 읽었고 논문을 쓴 적이 있기에 낯설지 않으며 강원용 목사님의 경우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일로 관계했기에 익숙해졌으나 정작 그분들의 스승인 김재준 박사님은 시간적으로 너무도 멀고 큰 어른이란 생각에 지금껏 글 한 편 접해 보지 못했던 까닭이다. 평소 한신 출신 선후배 신학자들, 특별히 김경재 선생님으로부터 장공의 신학적 깊이와 넓이를 전해 듣고 감동했음에도 학문적 게으름 탓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송구하다. 감신에 재직하면서 그분에 대한 좋은 기억하나를 갖고 있다. 한국 최초의 조직신학자인 정경옥 교수가 1950년대 신학문제로 감리교단에서 시비되었을 때 장공께서 그를 당신의 조선신학교로 두 번이나 불렀고 정경옥이 그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는 사실이다.1) 당시 부르고 응하는 일이 성사되었다면 저희 감신은 정경옥 박사를 잃었을 것이고 두 신학교의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 듯싶다. 교파를 상관치 않고 학자를 사랑했던 장공의 인물됨이 너무도 크다 할 것이다.

1) 정경옥 박사께서 남기신 유명한 말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신앙에서는 보수이나 신학함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자다.”

벌써 오랜 일이지만 1901년 생(生)인 네 분의 한국 신학자들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 역사적 의미를 물은 적이 있었다. 함석헌, 김교신, 이용도 그리고 長空 김재준이 바로 그분들이다. 이들은 이 땅의 기독교를 위해 하늘이 낸 사상가, 영성가들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이들의 문제의식에서 다시 출발할 수 없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란 말도 회자된다. 그들로 인해 1930년대 이후 최소 한 세대 동안2) 이 땅의 기독교는 사상적으로 풍성했고 서구와도 변별될 수 있었던 탓이다. 그간 필자는 공교롭게도 장공을 제외한 세 분들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기회로 논문 몇 편을 쓴 적이 있었다. 정작 장공 김재준 박사님의 경우 내적으로 조우할 계기가 없어 글 한편 제대로 읽고 사유치 못했다. 이는 분명 토착화 신학자, 생명 신학자로 불리는 필자의 직무유기라 하겠다. 당대의 인물로서 장공만큼 민족의 문제에 천착했고 사상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이긴 했으나 기독교의 우주적 지평에 관심했던 신학자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하여 오늘 이 자리가 그간의 게으름을 속죄하는 기회여야 하겠으나 제반 사정으로 장공의 사상적 궤적을 옳게 파악치도 못한 상태로 임했으니 여전히 죄스럽다. 혹시라도 장공 선생의 글을 더욱 열심히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안팎의 여건이 다시 주어질 경우 본 글을 기초로 장공의 사상을 다시 펼쳐 낼 것을 약속하며 졸고를 시작한다.

2) 이중에서 이용도와 김교신은 각기 33세, 44세로 세상을 떠났으나 이들은 저마다 ‘영적 기독교’, ‘조선적 기독교’라는 사상적 유산을 남겼다. 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기독교를 토착화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이정배, <한국 개신교 전위 토착신학연구>, 기독교서회 2003, 50-97

처음 필자에게 주어진 제목은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론을 현대 철(신)학자들의 생태 정치학적 개념으로 풀어 재해석해 보라는 것이었다.3)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하여 장공 전집 목록을 찾아보았으나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 외에 정작 ‘우주적 사랑 공동체’를 주제로 한 글은 짧게 쓰여 진 두세 편에 불과했다. 문제의식은 오래되었으나 1980년 대 이후 표면화된 주제였기에 의당 그의 사상적 편력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4) 하지만 장공의 사상의 발전적 과정에 문외한인 필자로서 짧은 글 속에 농축된 장공의 신학사상을 파악해 내는 것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글이 되게 하려면 상상하는 것보다 분석이 앞서야 했다. 현대적 생태 정치이론으로 장공의 논제를 해석하기 이전에 어떤 과정과 맥락에서 본 개념이 도출되었는가를 살펴야 마땅했던 것이다. 짧은 시간에 결코 용이치 않았고 역부족이었으나 필자는 이 작업을 아주 단순화시켰고 그 바탕에서 ‘범 우주적 사랑 공동체‘란 말을 풀고자 노력했다. 어떤 신학적 배경에서 본 주제가 생기(生起)했는지도 알아야 했으며 그것이 지닌 의미와 한계를 오늘의 시각에서 명백히 들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서 필자는 ‘우주’. ‘사랑’. ‘공동체’란 세 개념을 분리해서 생각했고 이를 엮었던 신학적 관점을 찾고자 했으며 그 발전 방향이 공동체(민족)로부터 사랑, 우주로 진행된 것을 밝혀 보고자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들어난 장공의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론을 최근의 시각에서 짧게나마 비판적으로 살필 것이다.

3) 특별히 필자가 번역한 다음의 책이 거론되었다. J. 리프킨, <생명권 정치학>, 이정배 역, 대화출판사 1996. 참조 4) ‘범우주적 사랑 공동체’란 개념은 이전(1981년)에 간헐적으로 사용되다가 1983년에 이르러 내용이 집약되었고 임종 한 해전인 1986년에 거듭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 주제에 대한 장공의 문제의식이 1948년부터 지속되었다는 것이 장공 연구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장공 사상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치 못한 필자로서 이들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겠으나 인생 후반에 이르러 장공 사상이 일정부분 지평확대된 것에 방점을 두고자 한다. 초반에는 이웃종교들과의 관계도 생각할 여지가 적었고 ‘우주적 그리스도’란 말도 사용할 처지가 아니었던 탓이다. 김경재,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관하여’, 1. 김희헌, <하나님만 믿고 모험하라>, 너의 오월 2013, 201. 219. 특히 본 책의 각주 36참조.

[1] 장공의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속에 담긴 제반 신학적 요소 분석

한국인일 경우 노년에 이르고 더욱 외국생활을 했다면 대개는 자연을 그리워하며 동양경전에 마음을 빼앗기는 법이다. 역사의식을 갖고 험난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자연을 벗하고 싶고 모성적인 우리의 사유에 익숙해지는 것이 노년의 실상이다. 장공 역시도 앞서 말했듯 인생 후반기로 접어들며 역사와 이념 문제보다도 민족과 자연 그리고 생명을 주제로 많은 글을 남겼다. 물론 대학자로서 장공은 인생의 전/후반을 관통하는 신학적 틀과 맥을 갖고 있었으나 다루는 주제만큼은 분명 달라졌고 넓어졌으며 고백적이었다. 이 점에서 임종 몇 년을 앞두고 설교형식으로 발표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란 글은 김경재 교수의 역설대로 장공 신학의 결정체이자 총괄개념이라 말할 수 있겠다.5) 이른 시기부터 교회의 공동체성에 관심했으나 육(肉)의 지평을 세상(역사)이라 상상함으로 그 지평을 넓혔고 지금은 우주의 차원에서 공동체를 성찰하고 있는 까닭이다. 공동체성의 근간을 성육신에서 찾았고 그를 추동하는 원리가 사랑이었기에 기독교 공동체, 곧 ‘하느님 나라’는 뭇 차이를 횡단하는 더 큰 보편성을 지녀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장공의 신학적 입장도 조금씩 달라졌다. 정통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진보적 新정통주의 신학 노선을 취한 장공이었으나6) 후기에 이르러 그 색조가 옅어졌을 뿐 아니라 일정 부분 그 틀을 벗어났고 빗겨나 있다는 판단이다. 인간의 역사와 하느님 역사를 달리 보지 않은 탓에 인간의 자연적 성향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바르트를 비판한 본회퍼를 닮았으며 자연자체를 신학적 주제로 삼은 것 역시도 아시아적 경험과 유사한 까닭이다. 한국의 토착 종교들에 대한 비판적 평가 또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일 것이다. 여하튼 본 장에서는 짧게 쓰인 두 편의 글이지만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말 속에 담긴 장공의 신학적 주제, 개념들을 찾아 낼 생각이다.7) 이를 통해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의미와 한계가 오늘의 시각에서 밝혀질 것이고 이에 이르는 장공의 신학적 궤적을 일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5) 김경재, 앞의 글, 1-2. 6) 바르트와 니버가 장공 신학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재준 전집> 1권, 한신대학교 출판부, 1992, 375-376 참조.
7) 이하 내용은 각주 4에서 언급한 83년, 86년에 썼던 두 편의 설교문에 근거하여 필자 나름으로 재서술한 것이기에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각주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이들은 <김재준 전집> 18권, 528 이하에 실려있다.

무엇보다 장공은 기독교를 하향적 종교, 곧 성육신의 종교로서 그 본질을 파악했다. 이것은 90도 상승의 세계를 말하는 플라톤 철학과 다르며 이사(理事), 사사무애(事事无涯)의 세계상을 지닌 불교와도 변별된 것으로 세상을 사랑하되 세상과 같지 않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함축하는 말이다. 따라서 세상 안에서 세상(역사)을 위해 사는 것이 교회의 책무이나 그 본질은 위(하늘)로부터 규정되어야 한다고 장공은 보았다.8) 일체의 인간적 정치행위와 교회의 일은 같지만 달라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교회가 근시안적 눈을 갖고 동족을 원수로 보며 조국분단을 기정사실화하는 현실을 임종 가까운 시점까지 안타까워했었다.9) 역사를 변혁시키지 못하는 기독교(교회)는 성육신에 대한 이율배반이자 자기모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편의 설교 속에서 장공은 세상, 곧 이 땅의 의미를 역사뿐 아니라 지구, 자연으로 확대시켰다. 유일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장소인 지구공동체에 대한 자의식이 명백해 진 것이다. 곧 성육신으로 인해 지구는 타락한 공간(정통주의) 이 아닌 낙원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지구 공동체의 거주민인 인간은 의당 이 곳을 지속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청지기인 것이 분명하다. 사람들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거둘 것과 동물을 피체로 먹지 말라(창9;1-7)는 것이 神의 새 명령인 탓에 충분히 그리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장공이 인생 후반기에 자각했듯 자연을 사사화(私事化)했고 대상(물질)화 시킨 탓에 사실적 종말의 위기에 처했기에 이 땅을 다시 성육신의 현실태, 하느님 영광을 알리는 아이콘 되게 하는 신학적 과제를 기독교인들에게 부과했다. 지구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 역시 장공의 글 속에서 발견된다. 이는 종래처럼 울타리 치는(엔클로저) 지표권 정치학이 아니라 생명의 관점에서 우주를 보는 새 정치학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8) <김재준 전집>, 16권, 173 이하. 9) <김재준 전집>, 18권, 533-534.

하지만 이것은 아직 현실이 아닌 소망의 미래일 뿐이다. 장공에게 부활은 이런 우주적 차원의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가 이 땅에서 이뤄진다는 믿음의 원형적 실상이었다. 그가 빌립보서 3장 10절10)을 본문삼아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설교한 것은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였고 이 땅의 교회가 세워야 할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장공은 이런 공동체를 상하, 좌우 그리고 동서남북 어디로도 뻗친 통전된 공동체라 하였다. 단순히 위/아래의 구조로만 이해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 생명에 참여하는 길이라 여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정통주의의 틀과 변별된 장공의 우주 생명론을 접할 수 있다. 종래 서구적 기독교가 율법/복음의 도식대신 우주적 차원, 곧 동서 인류의 문화 종교적 유산을 포괄하는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의 틀거지를 지녔다면 현실이 오늘과 같지 않았을 것이라 믿은 까닭이다. 부정일변도 였던 동양종교에 대한 이해가 이전과 점차 달라졌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장공의 최후 설교에서 기독교 사랑과 유교의 인(仁)을 중첩시켜 이해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 같다.11) 결국 장공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고린도전서 13장으로 풀어 역사화 시키고자 했다. 미래를 현실로 이끌기 위해서 ‘사랑’이란 에토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공동체가 성육신의 형식이라면 사랑이 그의 구체적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10) “나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나는 내 목표를 잡았다는 것도 아니고, 완전하게 됐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려가는 것뿐입니다.” 11) 실제로 1986년 10월에 행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란 제하의 두 번째 글에서 장공은 仁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임종 직전의 설교임을 기억한다면 그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장공은 성서가 말하는 사랑을 통해 다음의 세 형태로 그 의미를 각인시켜 풀어냈다. 우선은 사랑의 현실화를 위해 그것이 필히 물질로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神이 인간이 되어야 했듯 사랑이란 추상체는 물질로서 구체화되어야 옳다는 것이다. 굶주린 사람이 있는 한 사랑은 없다는 것이 바로 JPIC의 신학적 주제였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생태적 파괴가 현존하는 한 기독교적 구원(정신)이 요원하다고 선포했던 것이다.12) 이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결코 나뉠 수 없다는 판단이겠다. 둘째로 장공은 사랑을 선택적 가치가 아닌 합일적 차원(완전)으로 이해했다. 이념, 계급, 성별, 종교들 차이가 여기서는 존재치 않는다는 확신이다. 선악초자 하느님 사랑 속에서 그 자리가 없다고 본 것이다. 장공이 仁에 대한 공자의 풀이, 곧 ‘仁者 愛之理 心之德’를 좋아했고 이를 사랑의 본뜻이라 여긴 것도 같은 맥락이리라. 仁의 토대가 되는 유교의 성선설 역시 장공이 내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다. 셋째로 장공에게 사랑은 우주 진화의 원리였다. 샤르뎅의 정신화되는 물질개념을 받아들였던 장공은 그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직관한 것이다. 神이 인간이 되었으나 물질(육체)로만 머물지 않고 다시 정신(靈)이 되는 것이 생명 진화의 법칙(우주적 그리스도)이라 하였다. 그가 인간의 자유를 그토록 중시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자유 속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장공의 확신이라 하겠다.

12) JPIC를 발의한 공로로 C. F. 폰 봐이젝커가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행한 연설의 핵심 내용이다. 전문은 다음 책에 실려 있다. 이정배, <토착화와 생명문화>, 종로서적 1992. 참조.

장공에게 이런 진화의 산물인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결국 확대된 그리스도의 몸,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체와 다르지 않다. 만유를 통전시켜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이 되신 분’(All in All)이 바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란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스스로 이웃이 되고자 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실천(삶)을 필히 요청한다. 현실 교회란 이렇듯 사랑의 지경을 넓히는 역할을 해야 제격이다. 사랑의 범위를 전 우주적으로 넓히는 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이자 우주적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며 우주의 진화에 참여하는 삶일 것이다. 이 점에서 장공은 세계적 차원의 선을 행하는 인류 공동체, 즉 국제연합과 같은 역사적 기구를 신학적으로 크게 의미 지웠다. 일조일석에 될 일이 아닌 탓에 세상 속에 출현한 공동체는 땅위에 임하는 하느님 나라와 유관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장공을 바르티안이 아닌 오히려 본회퍼의 세속화 신학과 연계지울 수 있을 듯하다. 함께 독일 국가사회주의에 맞섰음에도 불구하고 본회퍼는 인간의 역사적 생성물(문화)을 긍정적으로 이해했던 탓이다.13)

13) 실제로 본회퍼에겐 루터의 두 왕국설에 대한 비판으로서 가정, 사회 등 인간 공동체를 ‘은총의 대상’혹은 ‘교회의 조각“으로 여긴 흔적들이 많다. 이는 바르트의 자연신학에 대한 거부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정배,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2017년 종교개혁 500년을 앞둔 한국교회를 향한 돌들의 소리>, 동연 2013, 68-69. Theologische Realenzyklopaedia, Bd.18, Walter de Gruytler 1989, 139 이하.

이상과 같이 살펴본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장공의 비전은 분명 저 세상적 천국사상에 익숙한 한국 교회의 인습적 신앙관과 동이 서에서 멀 듯 달랐다. 이는 모두 성서(역사) 비평학에서 비롯된 소신이기도 하겠으나 성서를 자유의 보고(寶庫)라 여기며 그를 영적으로 독해한 신앙의 열매라 할 것이다. 하느님 주신 자유를 갖고 세상을 달리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기독교이자 교회인 것을 확신했던 탓이다.14) 이어지는 두 번째, 셋째 장에서는 이렇듯 ‘우주 생명적 사랑의 공동체’에 이르는 과정에서 장공의 신학이 부분적으로 변화되고 달라졌으며 확대 심화된 과정을 몇 개의 주제로 나눠 살펴 볼 생각이다. 민족, 이웃종교, 자연(생명)에 대한 관심이 그 핵심에 자리할 것인 바, 이를 공동체의 지평확대 차원에서 서술해 나갈 것이다.

14) 존 캅, <영적 파산-행동을 요청하는 예언자의 외침>, 박만 역, 한국 기독교 연구소 2014. 1-15.

[2] 신학적 주제로서의 민족’- 장공의 민족론’, 그 보편적 전개

보았듯 장공에게 있어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민족에 대한 복음적 이해를 토대로 확장되고 심화된 개념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적시했다. 민족과 복음의 관계 해명 없이 보편적 주제가 명시될 수는 없는 법이다. 여기서 민족이라 함은 정치적 차원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도 함의해야 옳다. 물론 현실 정치적 측면이 장공에게 앞섰겠으나 후자적 관점 역시 논외로 취급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본장에서는 민족(종교)에 대한 장공의 신학적 독해를 배워야 할 것이다.

장공의 최초 활동시기를 가늠할 시, 민족문제가 중심일 것이란 상상은 어렵지도 틀린 것도 아닐 것이다. 일본이 주입한 열등사관을 영웅사관으로 맞섰던 민족주의자들이 있었던 반면 이들 저항적 민족주의 경향과 달리 소위 ‘문화적’ 민족주의자들도 없지 않았다. 함석헌의 ‘뜻의 존재론’이 대표적 경우이겠으나 장공 역시 기독교와의 접목 속에서 민족문제를 종교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으니 다를 수 없겠다. 해방과 함께 이후 한국 상황이 군부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점철되었으니 장공의 신학적 삶은 민족의 역사와 언제든 함께할 뿐이었다. 이를 손규태 박사는 민족을 향한 장공의 목회(민족목회)라 칭했으니15) 이를 교회 공동체의 일차적 지평 확대라 하겠다. 이렇듯 민족과 종교의 일치는 장공의 복음이해로부터 비롯하는 바, 그것이 바로 성육신 사건이다.16) 성육신이란 그에게 종교가 아닌 인간을 우선시하는 신비였다. 종교의 노예였던 인간을 자유케 했고 인간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겼던 종교가 바로 육화된 신을 말하는 기독교(복음)란 것이다. 그렇기에 소위 ‘인간적’ 종교라는 것이 장공이 민족에게 주려는 문화적 차원이라 하겠다. 따라서 민족의 그리스도화는 장공에게 있어 정치적 독재와 교회의 교권주의에 반한 자유의 극대화, 곧 평등성이란 말로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17)

15) 손규태, ‘장공 김재준의 복음이해와 한국민족’, <민중 신학자료> 제 7권, 한국 신학연구소, 109. 이는 본래 유동식 교수의 평가라 한다. 유동식, <한국 신학의 광맥>, 다산글방 1981, 165 참조. 16) <김재준 전집> 4권, 154-159.
17) <김재준 전집> 2권, 거지반 본 책의 전 내용이 이런 주제를 담고 있다. 주로 1950년대 전후로 쓰여진 글들이다.<김재준 전집>, 4권, 157.

하지만 이 시기 장공은 민족을 기독교로 개조하는 것이 목표였다. 따라서 장공은 ‘뜻’의 종교로 탈바꿈한 함석헌보다는 ‘조선적 기독교’를 꿈꿨던 김교신을 더 닮아 있었다.18) 제종교가 이끌었던 민족 역사에 기독교적 힘-靈-을 도입하여 종말론적 새 차원을 민족에게 선사하는 것을 복음의 책무라 여긴 것이다.19) 이것이 바로 자유였고 독립이며 자주였으며 新자아로서 주체성이었다. 함석헌이 말한 생각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며 스스로 함의 정신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주인 노릇했던 옛 종교들에 대한 아쉬움이자 얼(주체성)빠진 민족정신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다. 함석헌과의 친분에서 비롯했는지 모를 일이나 장공의 역사관은 상당히그를 느끼게 한다. 고구려의 멸망과 신라의 삼국통일을 대비시킨 것이나 사대주의와 숙명론 그리고 계급주의를 타파해야 할 민족의 과제로 삼은 것도 유사하다. 무엇보다 낙랑장송에 휘감긴 칡덩굴로 민족의 사대성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전율을 느낄 만큼 그렇다.20) 장공에게 정몽주를 향한 이방원의 칡덩굴論은 주체성 상실의 전형적 모습이었을 것이다. 성육신 신비(사건)가 칡덩굴 같은 민족정신 속에 누룩처럼 작용해 자유혼을 회복시켜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을 장공은 전적(역사)구원이라 했다.21) 이는 로마서의 핵심을 대속(속죄)론이 아닌 화해론으로 보는 최근 성서신학의 동향과 대단히 유사하다.22)

18) 오히려 장공 속에서 함석헌과 김교신의 양면을 모두 보았다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19) <김재준 전집> 1권, 382.
20) <김재준 전집>, 12권, 81, 385.
21) <김재준 전집>, 12권, 438-445.
22) M. 보그, 크로산, <바울의 첫 번째 서신들>, 김준우 역, 기독교연구소 여기서 화해론은 참여적 속죄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주로 민족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유불선과 같은 토착종교에 대한 평가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여타의 신정통주의 신학자들과 달리 장공은 신앙유비(Analogia entis)의 논리를 적용시키지 않았다. 토착종교에서 긍정적 요소를 보았기에 선교사들의 이분법적 태도에 공감치 않은 것이다.23) 물론 장공이 재래종교와 기독교를 부분과 전체의 관계로 인식하긴 했으나 현대세계가 하나를 원하는 상황에서24) 이들 간의 대화를 필연적 과제로 인식했던 것이다.25) 배타주의나 단절론(참/돌 감람나무) 대신 이웃종교들 역시 온전케 하는 급진적이며 포괄적인 유일신론(radical Monotheism)을 선호한 것도 사실이다.26) 세상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신 하느님께서 결국 동서양 모두를 품으실 것을 장공은 믿었고 이것이 말년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논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27) 필자의 눈엔 이 역시 민족에 대한 기독교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앞선 종교들과의 협력을 요청했던 함석헌과 중첩된 듯하다. 장공이 3.1 운동의 역사 및 그 앞날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썼던 것이 이를 웅변한다.28) 4.19에 관한 언급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3.1 독립선언을 말했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필자에겐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만큼 장공에겐 종교간 협력에 대한 필요가 컸고 독립선언서에 담긴 공동체적 지향성이 보편적이라 느꼈던 탓일 것이다.

23) <김재준 전집>, 18권, 97-98. 24) 김재준 전집>, 7권 339-342.
25) <김재준 전집>, 18권, 97. 여기서 장공은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는 반드시 읽어야 될 책으로 명시했고 ‘삼일신고’ 같은 것은 기독교를 민족종교로 정착시킴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책이라 천명했다. 따라서 재래의 진리와 기독교 전통을 習化시키는 건설적 태도를 종용하였다. 원불교에 대한 호감도 상당할 정도로 표출되어 있다.
26) 김경재, 앞의 글, 6.
27) <김재준 전집>, 7권, 37 이하 내용.
28) 주로 <김재준 전집> 18권에 집중되었으나 그 외에도 12, 14, 15, 16, 17권에도 한 두 편씩의 글이 실려있다.

실제로 3.1 운동에 대한 그의 글에서 우리는 말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 땅의 종교들이 함께했던 3.1운동을 장공은 사랑과 희생을 실현한 민족의 번제물이라 하였다.29) 그를 민족의 부활을 위한 십자가로 본 것이다. 왜냐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한 주체적 국가를 이루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그 자체로 기독교적이자 진리로 여겼던 탓이다. 하여 장공은 3.1 운동을 단순히 독립운동만이 아닌 진리운동이라 하였고 남북의 허리가 잘려있는 한 그것은 완결된 것이 아닌 진행형이라 믿었다. 이런 선상에서 장공은 남쪽의 군부 독재와 북쪽의 공산독재를 동일하게 비판했고 그것을 신앙고백적인 차원에서 이해했다.30) 이점에서 장공에게 정교분리란 오로지 교회적 이기주의의 산물일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교회가 인간(민족)해방을 위해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와 같은 체제를 연구, 검토할 수 있어야 할 것을 바랐다.31) 이 땅에서의 정치의 민주화, 인간화를 이루는 것을 장공은 복음의 토착화로 여긴 것이다.32) 이렇듯 자유와 평등을 위해 종교의 벽을 허문 3.1 운동의 유산을 장공은 70년대의 민주화 투쟁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교회만이 아닌 전 국민적, 종교적 운동으로 번질 것을 바란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한 한국교회의 고난을 세계교회의 보편적 고통이라 여기며 ‘한 몸’사상을 발전시킨 것도 대단히 의미 깊다.33) 결국 이런 생각들이 연륜과 함께 무르익어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서 보편성을 지향토록 한 동인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29) <김재준 전집>, 18권, 315. 317. 30) <김재준 전집>, 11권, 208.
31) <김재준 전집>, 11권, 211.
32) 이점에서 장공은 16세기 북구 자유경제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탄생, 성장한 신교가 가난한 빈민이 절대다수인 70년대 한국적 토양에서 성장, 결실할 수 있을까를 반문했다. <김재준 전집>, 11권 212.
33) <김재준 전집>, 11권, 216-217.

[3] 장공 사상 속의 자연생명론-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다른 한 요소

이렇듯 장공 사상 속에는 시종일관 민족과 역사의 문제가 신학적 주제였고 자유와 평등이 복음의 내용이었으며 이를 이루는 것을 기독교의 토착화라 본 흔적들이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빈도수는 많지 않았으나 이른 시기부터 창조와 생명 그리고 자연을 주제로 썼던 것도 사실이다. 본 주제의 글들이 생애 마지막 시기에 집중적으로 다뤄졌지만 앞선 것들과 내용면에서 큰 차이는 없었다. 자연, 생명의 주제가 역사적 격동의 세월을 살면서 정치적 주제에 묻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생애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장공이 역사와 우주(생명)를 통전시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었으니 이는 후학들에게 신학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위해 그의 기독론이 비록 현대 신학적인 상세한 설명은 없었으나 우주적 그리스도로 언명된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라 할 것이다. 민족의 그리스도化를 넘어 우주의 그리스도化가 장공의 신학적 비전이 된 탓이다.

장공은 남과 북의 전쟁이 종료된 직후 이전 글감과는 달리 과학과 종교를 주제로 소논문을 발표했다.34) 인류의 역사가 종교와 과학간의 갈등을 말하고 있으나 장공은 과학 역시 기독교 정신과 무관치 않음을 역설하며 오히려 과학주의의 폐해를 적시한 것이다. 물질만을 실재로 여기며 감각을 통한 인식을 절대시하는 인식론적 독단을 경고했다. 현상 배후의 원인과 실체를 배제하는 과학주의는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과학으로 철학까지 독식하려는 소위 과학철학의 등장에 신학적 제동을 걸고자 했다. 사물의 원인, 실체, 목적 등은 철학이나 종교의 영역인 것을 천명하며 과학이 현상을 기술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35) 하지만 진정한 자연철학은 사실의 세계를 넘어 가치의 차원을 발견하는 것으로서 장공은 화이트헤드에게서 이런 범례를 찾았다.36) 神의 시원적 목적을 전제하며 창발성을 통한 귀결적 본성으로 하느님을 개방시켰던 탓이다. 따라서 장공은 하느님 없이는 인간, 우주 그리고 시간도 없다고 확언하며 기독교의 자연신학적 측면을 다음처럼 정리했다. 우주는 상호 의존적인 통일체이나 되어감(becoming)의 상태로서 목적과 방향성(가치)을 지니며 인간 지성과 교감한다는 것이다.37) 여기서 하느님은 이런 목적 지향적 우주를 통일체로 이끄는 ‘Supreme Mind’로 언표 되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 뿐 아니라 전 우주적 구원을 성취할 것이라는 장공의 고백적 증언이기도 했다. 여하튼 이 짧은 글에서 우리는 생애 마지막에 꿈꿨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맹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종교와 과학간의 대화가 신학의 핫 이슈가 된 오늘의 시점에서도 장공의 종교/과학 간 대화이론 역시 시대 적합한 공명(consonance)론의 차원이라 여겨도 좋을 것이다.

34) 이 시점이 1953년 10월이다. 그렇다면 6.25 전쟁이 막 종료된 직후일터인데 당시 이런 글이 나온 것이 생경할 정도다. 아마도 과학 무기의 살상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장공은 본고에서 자연철학까지 언급하며 내용을 심화시켰다.<김재준 전집>, 3권, 29-34 35) <김재준 전집>, 3권, 31.
36) 특별히 장공은 화이트헤드의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에서 이런 예를 보았던 것인데 그 시점이 이르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37) <김재준 전집>, 3권, 32-33.

이후 이어지는 글에서 자연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핵심이 되었다.38) 자연에 대한 과학주의적 환원을 거부한 만큼 있는 그대로 자연을 神과 동일시하는 범신적 동양의 자연관과도 구별할 목적에서였다. 장공에게 自然은 저절로 그러한 자존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종교화란 그에게 낯 설은 주제였다. 왜냐면 자연은 하느님 피조물일 뿐인 까닭이다. 하느님 없이는 자연도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하느님이 자연이 아니듯 그의 모상인 인간 역시도 자연이상의 존재란 것이 장공의 신학적 판단이었다. 자연의 관리자로서 부름 받은 인간이기에 자연과의 동격화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자유 없는 자연보다는 범죄 할 자유가 있는 인간이 훨씬 위대하다는 것이 장공의 생각이었다.39) 인간의 잘못으로 자연이 망가졌으나 인간이 참으로 자유 할 때 타락한 자연의 회복 역시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바라 믿었다.40) 생태계의 파괴란 결국 인간의 자유롭지 못한 증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학대란 인간학대 만큼이나 좋지 않은 것으로서 자연을 그리스도 사랑의 범주 안에 두는 것이 기독자의 과제라 하였다.41) 자연을 학대하면 그 화가 인간에게 되돌려진다는 부메랑 현상을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이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하는 중에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란 말을 재차(59년) 사용하였다.42) 이처럼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관한 신학적 구상이 갑작스런 생각이 아니긴 했으나 이 경우 문제가 없지는 않다. 시대적 한계로 인해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자연의 능동성, 창발성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탓이다. 마지막 장의 주제이겠으나 지표권을 넘어 생명권(Biosophere)이 중시되며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우주 속에 수억 개가 있고 그리고 신생대로부터 생태대로의 탈주가 언급되는 현실에서 神觀은 물론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역시 종전과 달리 언급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공이 우주 자연을 ‘사랑’ 안에 포함코자 한 것은 우주적 그리스도, 곧 성육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따라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란 결국 ’우주적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름 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

38) <김재준 전집>, 4권, 470 이하 내용. 39) <김재준 전집>, 4권, 471.
40) 시편 8편, 로마서 8장 이하 내용 참조.
41) 장공은 시종일관 우주적 차원의 구원이 인간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은 것이다. 이점이 장공의 강점이면서도 약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 이유는 마지막 장에서 구체화시킬 것인 바, 장공의 성육신이해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김재준 전집>, 4권, 155.
42) <김재준 전집>, 4권, 473, 각주 4. 45 참조.

1980년대 이르러 장공은 생태계 파괴의 심각한 실상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신관-절대타자-탓에 자연이 脫신성화되었으나 그것이 물상화, 객체화로 이어져 자연파괴가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43) 이로부터 장공은 이전과 달리 자연을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관찰했고 그를 느끼기 시작했다. ‘개똥벌레’, ‘물과 숲’, ‘구름과 바람’ 그리고 ‘낙조(落照)’와 같은 주제로 단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장공은 자연을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공간으로 보았고 이전처럼 양자 간의 철저한 분리를 경감시켰다. 神께서 당신이 지은 세상을 보고 ‘참 좋다’고 말씀했다면 이 세상에서 그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라 생각한 것이다. 다윈 진화론 역시도 결국 창조 신비 자체를 건드릴 수 없는 한 자연의 신비를 찬양하는 작품이라 여겼다.44) 인류가 자연의 신비를 찬양하기보다 정복코자 할 때 인류 및 자연의 총체적 비극이 도래할 것을 예견하며 장공은 인간에게 청지기성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이 경우 이전과 달리 ‘겸손한’이란 한정사가 붙어 있었다. 인간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로되 그 정도를 종전처럼 강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일컬어 소위 ‘강한’ 인간원리에 견줘 ‘약한’ 인간원리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란 개념이 조금씩 변화된 형태로 다른 내용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45)

43) <김재준 전집>, 15권 111-113. 44) 김재준 전집>, 15권, 112.
45) <김재준 전집>, 15권, 113. 대략 이 시기가 1981년 6월경인 것 같다. 각주 4. 42를 참고하라.

이로부터 장공에게 자연 지키기는 ‘생명운동’이란 더욱 보편화된 말로 표현되었다.46) 그만큼 자연이 장공에게 일상적인 주제가 되었음을 적시한다. 자연 생명이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에게도 있음을 자연스레 긍정하였던 것이다. 일체 생명이 하느님과 연관(관계)된 탓에 본질에 있어 모두가 차별 없이 신성하다고 확신했다.47) 심지어 풀과 나무도 생명의 환희를 즐길 권리가 있다고 믿을 만큼 그렇게 말이다. 그럴수록 장공은 인간에게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을 神을 향한 최악의 범죄라 여겼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자연을 맘껏 존귀하게 여기면서 인간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귀하다는 맥락에서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장공의 관점변화를 읽고자 한다. 자연의 신학적 위치가 종래와 달라진 것이다. 동시대적인 생태적 감각을 갖고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향한 신학적 토대를 쌓아 갔던 탓이다. 그럼에도 장공에게 하느님은 창조적 존재였다. 인간 및 우주의 역사를 전혀 달리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전능자란 확신은 영원한 그의 몫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 형상을 회복하고 자연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우주적 구원, 사망이 생명에 삼켜진 그 순간에 대한 확신이 장공을 사로잡은 신학적 실존이었다.48) 하지만 이런 확신은 삶의 마지막 순간 토로한 우주적 그리스도를 향한 감(感)을 담보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의 마지막 언급을 부여잡고 의중을 확대시켜 생각할 여지는 필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46) <김재준 전집>, 17권, 7. 47) 김재준 전집>, 17권, 9.
48) <김재준 전집>, 17권, 14.

[4] 우주적 그리스도의 빛에서 본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와 생명권 정치학

이상에서 보았듯 역사, 구체적으로는 토착종교들을 포함한 민족(정치)개념과 자연(우주) 생태계의 두 요소를 아우르며 이를 창조적으로 지양시킨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장공에게 있어 교회의 궁극적 과제였으며 이 땅에서 이뤄져야 할 하느님 나라의 실상이었고 영생이란 종교적 표상이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바였다.49) 혹자는 이를 부활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靈體)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50) 그만큼 우주의 총체적인 질적 변화의 비전을 담고 있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역사 초월적인 것으로 보기에는 그 꿈은 시대 요청적인 것으로 구체적이며 현실적이었다. 교회가 그것의 거점이 될 것을 주장하는 장공에게서 필자는 역사적 실상에 대한 갈망을 읽었다. 앞서 말했듯 필자는 장공의 신학사상을 바르트보다는 본회퍼의 시각에서 읽고자 했었다. 인간 노력의 결과물들 일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전자와 달리 후자는 세속성(혹은 자연신학)을 부정하지 않았고 비종교적 방식으로 기독교를 이해코자 했던 탓이다. 이점에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자유와 복음이 등가였듯 복음의 비종교적 해석이라 할 수 있겠고 역사 속 실현이 그의 역사 초월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보다 장공에게 중요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51) 물론 이것이 역사 속의 가시적 무엇과 동일시되기는 어렵겠으나 그 실상을 지금 이곳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장공의 본심이라 믿는 탓이다. 따라서 이것은 정치사상적 그리고 우주 생태적 틀을 아우르는 통전성을 적시한다고 보아야 옳다. 그렇기에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위로부터 아래로의 개념(초월주의)인지 혹은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구조(현실주의)인지에 대한 논쟁을 무의미하다.52) 이것이 본래 하느님 나라와 견줄 수 있는 어휘인 반면 ‘하느님’은 앞의 것과 ‘나라’(공동체)는 나중 것과 어울리는 개념쌍인 까닭이다. 장공이 자유를 강조했으며 거듭 겸손한 청지기성에 무게를 둔 것도 이런 생각을 후견할 수 있을 듯하다. 장공에게는 神이 인간이 되는 것(성육신)과 인간이 다시 靈이 되는(부활) 사건이 더불어 중요했던 것이다. 이는 장공이 성육신을 우주적 그리스도로서 지평 확대한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제 3일(the third day)’의 의식(소망)에 근간한다.53) 그가 이 이름으로 잡지를 발행한 것은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대단히 의미 깊다.

49) <김재준 전집> 18권, 528-532 내용 참조. 50) 김동환, ‘김재준의 정치사상’, <신학사상>(164집 2014/봄), 142-143. 김경재, 앞의 글, 2-3. 여기서 김경재는 이것이 ‘죽음 이후에도 영생한 몸으로서의 인간의 거주 공동체’인 것을 강조했다. 장공이 자유주의 신학자가 아닌 것을 변증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는 전통적인 천당개념과는 달리 역사의 궁극적 목적(텔로스)을 적시하나 우주적 변화의 비전을 사후세계로 연장시키는 것에 방점을 두는 것이 장공의 본뜻이었는지는 재고할 여지가 있다. 오히려 트뢸치의 말처럼 ‘피안은 차안을 위한 힘(Die Jenseitigkeit ist kraft der Dieseitigkeit)이라는 차원에서 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51) 필자는 복음을 ‘자유’와 동일한 의미로 보는 장공에게서 비종교적 해석학의 맹아를 볼 수 있었다. 그가 개개인을 ‘인간 성전’(교회)으로 보는 것도 자유가 복음의 본질이며 지유의 실천이 교회의 과제인 것을 강조할 목적에서였다고 생각한다. 인간 주체성으로서의 자유를 장공에게 있어 하느님도 어찌할 수 없는 특권이라 하였다. 자유인은 불가능을 정복한다는 것이다. <김재준 전집>, 3권, 124-129
52) 김동환, 앞의 글, 144-145. 여기서 저자는 장공에게서 新정통주의에 반하는 인본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옳은 판단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본회퍼의 비종교적 해석을 통해 이런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손규태, ‘장공 김재준의 복음이해와 한국민족’, <민중 신학자료> 7권, 한국 신학연구소, 125-126.
53) 김희헌, ‘장공 김재준의 생애와 사상’, <한국 신학의 선구자들>, 김희헌, 박일준 펴냄, 너의 오월 1984, 157-161. <김재준 전집>, 12권, 88 이하 내용 참조.

1)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토대로서 우주적 그리스도의 범()재신론적 이해

장공에게 있어 ‘제3일’이란 예수께서 십자가로 인해 죽었다가 부활한, 즉 죽음으로부터 삶을 얻은 극적 반전의 사건이자 기간을 일컫는다.54) 악의 정점에 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아니오’ 가 바로 무덤을 열어젖힌 부활이었으며 죽음으로부터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장공에게 있어 세 번째 날은 기독교의 존재이유였고 역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이자 토대였기에 이를 기독교인의 영적 정체성이라 여겼다. 이 3일은 예수마저 음부에 있었던 시기로서 그의 하느님 나라(정의) 비전이 조롱받았고 이를 따르던 이들의 절망과 좌절이 극에 달했으나 그로부터 생명이 움터 영원이 이 땅에 심겨지는 종말론적 때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제3일’의 영성(신앙)은 하느님의 부재와도 달랐고 결과론적 승리를 찬양하는 안락한 (기복)신앙을 보장할 수도 없었다.55) 오히려 지난(至難)했으나 궁극적으로 사망(불의)을 무화시킨 생명, 곧 부활의 믿음에의 참여가 ‘제3일’ 영성의 본질이었다. 역사 및 우주 곳곳에 하느님 공의를 뿌리내려 그 힘을 사방팔방으로 펼쳐야 할 존재가 바로 ‘제3일’의 영성을 지닌 기독교인의 운명이자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장공에게 세상(우주)은 결정적일 수도 그렇다고 마냥 비결정적 일 수도 없었다. 하느님의 뜻(정의)이 역사와 우주 속에 관통해있으나(창 9:1-7) 그와 공명치 않는 것이 현실(롬 8:18-25)인 탓이다.56) 따라서 온갖 피조물들이 탄식하는 현실세계 속에서 생명의 몸짓을 통해 하느님 뜻(정의)을 이루는 것이 신앙인들의 (미래적)과제로서 하느님 나라를 땅에서 이루는 일이었다. 장공은 신앙인들이 그의 나라를 땅에서 이룰 때까지 망가진 세상을 인내와 침묵 속에서 긴 호흡으로 참아낼 것이라 하였다.57) 이런 기다림에 응하는 신앙의 양식이 이 땅에서의 생명(공의)의 싸움일 것이며 그를 행하는 근거가 바로 성육신이었다. 육화란 하늘과 땅이 통했다는 가장 확실한 성서적 증거였던 탓이다. 하지만 이런 신앙여정은 예수생명마저 삼켜버린 음부와 같은 현실에서도 지속해야할 지난한 모험일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다는 것이 ‘제3일’의 의식을 강조한 장공의 신학적 이유였다. 이는 피조물의 탄식에 응답하는 절대적 사랑, 역사와 우주를 관통하는 ‘하느님의 義’ 곧 ‘우주적 그리스도’를 복음이라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 인용문이 이를 명백히 적시한다. “우주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산 우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생명이 현실화 하지 않으면 우리와 상관이 없다..., 우주에는 말씀이 가득 차있다. 우주 만상 자체가 다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이 육신을 이뤄 우리에게 거주하기 전에는 참 구원은 오지 않는다.”58) 여기서 핵심은 여전히 우주에 가득 찬 하느님 말씀의 육화 여부이다. 그의 육화 없이 그리스도가 새 세상의 첫 열매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역시 존립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3일’의 의식은 제 뜻 버려 하늘 뜻 찾아 세상을 새롭게 하는 즉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신앙적 토대로서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깊이 연루될 수밖에 없다.

54) <김재준 전집>, 9권 289. 55) 김희헌, 앞의 글, 160.
56) 언급된 두 성서본문은 신약성서학자 E. 케제만을 원용하여 필자가 찾은 것이다. 케제만은 창세기와 로마서의 두 본문을 상호 연결지울 때 하느님 뜻(공의)이 잘 밝혀질 뿐 아니라 기독교인의 책무가 명시될 것이라 보았다.
57) <김재준 전집>, 4권, 534.
58) <김재준 전집>, 1권, 184. 김희헌, 앞의 글 158 참조. 필자는 여기서 우주적 그리스도를 발견했다. 본 진술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행해진 것으로 장공이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갖고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겠으나 그리 해석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진술이 그의 생애 말기에 주로 행해졌다는 필자의 논지도 다소 수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각주 4번 참조.

물론 장공 스스로 ‘우주적 그리스도’란 개념을 즐겨 사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59) 단지 후기로 갈수록 우주 속의 일체 존재를 사랑하여 한 공동체로 인식하는 것을 강조했고 그런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명명했기에60) 그에게서 성육신 개념의 지평 확대를 보는 것이 결코 무리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장공에게서 그리스도의 몸은 인간과 우주, 민족과 세계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생명을 일컬었으며 하느님 사랑 안에서 만물이 靈(정신)으로 변화하여 자유케 되는 상태와도 충분히 비견될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믿는 그리스도는 교회는 물론 세상을 넘어 온 우주를 품어 속량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의 존재(all in All)였다.61) 이런 이유로 장공의 성육신론을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으로 풀고 이를 범재신론과 연관시키는 작업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62)

59) 토론토 연합교회에서 행한 1983년 1월 16일자 설교문 2쪽 참조.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김재준 전집>에서 이 설교문을 발견치 못했다. 여기서 장공은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란 말을 처음 사용했던 것 같다. 60) 앞의 글, 3쪽.
61) <김재준 전집>, 18권, 528-532.
62)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장공의 신학적 사유을 우주적 그리스도론과 범재신론의 틀에서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 짧게 제시할 생각이다. 이하 내용은 주로 Ilia Delio, Christ in Evolution (New york: Orbis books), 2008에서 배운 것이다.

주지하듯 초기 기독교는 장공이 그랬듯 부활을 중시 여겼다. 부활을 통해 예수는 하느님 현존을 영적으로 매개할 수 있었고 따라서 자신의 역사성을 넘어 종말론적 우주와의 연결고리를 갖게 된 것이다. 예수 안에서 발생한 부활로 인해 인간과 우주의 미래, 곧 우주 자체의 전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었다.63) 초대교회의 우주적 그리스도 이념은 총괄 갱신론(Recapitulation)으로 이어졌고 여기서도 구원은 죄로부터 해방만이 아니라 전 우주의 새로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우주적 그리스도 이념은 한 인격 속의 두 본성이론으로 기독론을 축소시킨 니케아 공의회이후 기독교 역사 속에서 희미해졌고 급기야 어거스틴은 자연과 은총 두 영역을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탈각시켰다.64) 하여 향후 신학이 어거스틴이 아닌 이레니우스(총괄갱신론)와 더불어 새롭게 시작할 것을 주문한 신학자도 생겨났다.65) 전 생태계의 위기 속에서 神的 구원의 힘이 인간 뿐 아니라 자연에게도 미쳐야 함을 말할 목적에서다. 이점에서 신학자들은 진화론을 우주적 그리스도와 접목시켜 이해하기 시작했고 장공 역시 말년에 이르러 이런 궤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성육신과 창조론을 통합시켜 전 우주 만물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현을 보고자 했던 탓이다. 전술했듯 장공은 우주적 그리스도라는 말을 사용하기 까지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변화시켜 왔다. 자유를 강조한 만큼 인간 청지기성에 의존했던 그였으나 점차 그 강도를 줄여가다 자연의 능동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우주적 그리스도란 말로 ‘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설명코자 했던 것이다. 물론 그가 세상의 중심을 약자에 두고 인간의 역할(자유)에 전적 의존하는 탓에 관계적 사유에 기초한 생태적 세계관과 변별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생각이 점차 이에 근접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할 만하다. 이는 장공에게서 범재신론(Panentheism)의 흔적과 노력을 보려는 시각과도 연루된다. 일반적으로 장공의 신학사상을 신정통주의 노선에 입각한 초월신관의 틀에서 조명해왔다. 그의 성육신 사상이 인간 자유를 위한 절대적 근거가 된 것도 실상 초월신관의 반영이라 하겠다. 이렇듯 초월신관의 역사화로 인해 숫자적 ‘하나’에 집착한 피안적 하느님 이해와의 차이를 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장공이 다소라도 자연의 정신성을 인정하는 한 인간의 자유에 초점을 둔 성육신 사상은 확대 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점에서 니버의 급진적 ‘급진적 유일신론’ 역시 장공의 변화된 관점을 담기에 다소 어색하다.66) 물론 급진적 유일신론이 만유를 초월하면서 만유 안에서 활동(창조)하며 만유를 지탱, 유지하는(엡 4:6) 신적 존재에 대한 확신을 담고 있으나 그를 종교개혁 원리나 상호주체적인 삼위일체론과 같게 보는 한67)차이를 횡단하는 보편성을 띨 수 없을 뿐 아니라 현대 과학이 인정하는 자연의 창발성 역시 담기 어렵다. 반면 우주적 그리스도는 神뿐 아니라 창조된 실재(자연)들 상호간의 관계 및 영향 나아가 일치를 함의할 수 있다.68) 여기서는 인간 뿐 아니라 자연 역시도 神과 더불어 공동창조자가 될 수 있는 탓이다. 이점에서 ‘나는 우리이기에 나다’(I am because we are)라는 아프리카 적 사유로 인해 숫자적 유일신론이 극복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69) 신이 본래 다양성(We:Multiplicity)을 본질로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이 세상의 몸으로 육화되었다는 것은 결국 만유(다양성)와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본질을 들어낼 수 있다는 범재신론의 표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성서학자들 역시 범재신론과 성서적 실재관의 유사함을 주저치 않고 역설하는 중이다.70) 필자 보기에 ‘철저 유신론’과 ‘범재신론’은 뜻하는 바가 같을 지라도 강조점에 있어 초월(전능)과 내재(관계)에 각기 방점을 찍는 한에서 변별되어야 옳다. 하여 필자로서는 장공이 스치듯 언급했던 ‘우주적 그리스도’를 후자의 시각에서 살필 필요가 있었다. 이하에서는 생명권 정치학의 담론을 빌어 이들 신학적 개념을 좀 더 구체화시킬 생각이다.

63) 우주찬가와 기독론을 연결시킨 빌립보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비전을 말한 골로새서,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의 화해을 노래한 고린도 전서 그리고 전 우주를 구원하는 중심으로서의 에베소서의 교회론 등이 구체적 실례이다. 이정배, <빈탕한데 맞혀놀이-多夕으로 세상을 읽다>, 동연 2011, 303. 64) 어거스틴은 당대의 사회적 혼란을 해결할 목적으로 이전까지 인간의 자유(금욕)를 위해 긍정적으로 활용되던 창세기 본문(1장-3장)의 해석방향을 부정적으로 바꾸었다. 인간 타락, 원죄의 본문으로서 뿐 아니라 자연타락의 실상을 오히려 읽어낸 것이다. 일레인 페이걸스, <아담, 이브, 뱀-기독교 탄생의 비밀>, 류점석 외, 아우라 2009, 1장과 6장의 내용을 보라.
65) J.A. Lyons, Cosmic Christ in Origin & Teilhard de Chardin(London: Oxford Univ. press, 1982), 9-10. 대표적 학자로는 루터파에 속한 지틀러(Sittler)를 들 수 있겠다.
66) H. Richard Niebuhr, Radical Monotheism and Western Culture(Harper Torch books, 1960), 24-37. 김경재, <이름 없는 하느님>, 삼인 2010, 26 이하에서 재인용.
67) 김경재, 앞의 글, 6-7. 여기서 삼위일체는 주로 몰트만의 ‘페리코레시스’ 개념을 지칭했다.
68) 인도 신학자 파니카는 이를 ‘인간원리’ 대신 ‘그리스도 원리’라 칭한다. 그러나 철저 유신론은 아직 ‘인간원리’에 머문 듯 보인다. I. Delio, 앞의 책, 157.
69) L. C. Schneider, Beyond Monotheism-A Theology of Multiplicity, Abindgdon press 2008, 15-104(1부 내용). D. 그리핀, <위대한 두 진리-과학적 자연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종합>, 김희언 역 2010. 참조. 본 명제를 근거로 생태학적 논문을 발전시킨 필자의 글 역시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속에 실린 논문, “유일신론으로부터의 탈주 그리고 성육신의 재구성:생태학적 성례전”(319-336)을 보라
70) 마거스 보그, <기독교의 심장>, 김준우 역, 한국 기독교연구소 2009, 108-117.

2) ()재신론의 시각에서 본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생명권 정치학과의 연계 속에서

우선 J. 리프킨의 <생명권 정치학>을 언급하는 이유부터 언급해야겠다. 주지하듯 이 책은 생명(권)을 정치의 주제로 삼은 것으로 신학의 틀 자체를 변혁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71) 이전의 정치학이 주로 현재의 세계지도가 적시하듯 지표권(Geopolitics)을 주제로 삼았다면 과학사가인 리프킨에게 있어 정치란 지구적 차원의 생명현상을 발생시키며 좁게는 생명의 종이 서식하는 공간(생명권)을 개념화하고 종의 분포도에 따라 공간의 경계를 재구획하여 그 경계를 지켜내는 일이었다.72) 왜냐하면 생명권(Biosphere)속에서73) 인간 이상으로 생명을 유지, 존속시키는 자연 고유한 능력, 곧 그의 창발성에 대한 경이로움을 보았던 탓이다. 이렇듯 정치를 생명의 지평으로 확장시킨 리프킨의 관점은 역사와 민족에서 우주, 자연(생명)에로 신학의 영역을 확장시킨 장공의 시각과 닮았다. 더욱이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장공 말년의 확신은 범재신론의 세속적 표현인 ‘생명 중심주의’와도 교감할 수 있고 또한 아시아적 종교성에 대한 그의 지속적 긍정 역시 리프킨의 결론인 ‘생명권 의식’과 충분히 맞닿아 있다. 이는 결국 장공이 사랑을 우주 진화의 원리로 본 것과 유관한 것으로서 생명권 정치학과 우주적 그리스도를 함께 논할 수 있는 근거라 하겠다. 여기서 필자는 다음 세 시각에서 장공과 리프킨 간의 상호 교차적 의미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생각이다.

71) R. 류터, <가이아와 하느님>, 전현식 역, 2002 이대 출판부.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여성신학과 그에 따른 정치 신학적 관점이 리프킨의 영향 사 속에 있음을 각주에서 여러 차례 밝혔다. 72) J. 리프킨, 앞의 책, 418 이하 내용.
73)대략 여기서 말하는 생명권이란 대륙붕에서부터 40마일 가량 수직 상승된 총체적 공간으로서 여기서 지구상의 일체 생명현상이 발생된다. 이런 생명권의 시각에서 종의 서식지를 중심하여 지도를 다시 그리고 그 경계를 확보하여 공유지를 확장하는 정치적 행위를 리프킨은 생명권 정치학이라 했다. 한마디로 기업형의 근대 국가론을 넘고자 하는 시도라 할 것이다.

우선 정치적 영역의 지평확대가 눈에 띤다. 장공이 현실 정치를 넘어 우주 생명에로 눈을 돌렸듯 리프킨 역시 생명권을 정치의 새 차원으로 수용했던 탓이다. 하지만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이전과는 다른 정치행위에 근거되어야만 했다. 생명권을 정치의 장으로 삼았던 리프킨처럼 장공의 공동체는 민주화 투쟁을 넘어 반생명적, 반생태적 현실과 치열하게 대면해야 했던 것이다. 리프킨은 무엇보다 전 지구가 강대국들에 의해 쇼핑 상가화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74) 지구의 모든 것이 상업적으로 엔클로지化(enclosing)되는 초(다)국적 기업의 실상에 주목한 것이다. 지구 공유지 즉 땅, 바다, 하늘을 넘어 유전자는 물론 심지어 전자파마저 독점하여 전 지구를 단일 시장화하려는 지표권 정치학에 맞서 지구 생명권 개념을 확보코자 하였다.75) 이를 위해 육류소비를 줄이는 일에서부터 핵에너지의 포기는 물론 종 다양성을 지키고자 하였고 그로써 궁극적으로 엔클로져化된 지구 공유지 일체를 회복시키고자 했다. 이는 결국 지구공간을 생태적 시각에서 범우주적으로 재창조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으로서 장공이 꿈꿨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이상과 다르지 않다. 앞서 장공을 본회퍼의 신학적 자리에서 보았던 탓에 그 공동체는 의당 역사 속에서 구체화 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한 정치적 행위 역시 이전과 달리 우주적 차원, 생태적 함의를 지녀야 옳다. 이점에서 필자는 도처에 만연된 소위 ‘위험사회’76)를 야기시킨 낭비사회의 극복 방안77)을 장공에게서 기대한다. 인간의 청지기성(책임)을 거듭 강조해왔고 그것으로서 자연 생태계를 지키려 했기에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식민화된 ‘생명’을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민주화의 영역을 넓혀가는 도상에서만 실현 가능할 것이다. 주지하듯 우리는 효율성에 근거하여 성장을 추구하고 그로써 안정을 얻고자 하면 할수록 더 이상 부(富)가 아닌 위험을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78) 이는 오로지 인류의 근대화가 성찰적이지 못한 탓이다. 낭비를 조장하는, 일명 버리기 위해 만드는(made to break) ‘계획적 진부화(Obsolescence)’라는 자본주의적 마성에 함몰된 것이다.79) 성장을 위해 상품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버려져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어야만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 존속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컴퓨터의 수명을 3년으로 결정짓는 장치가 생산 공정 자체 속에 들어가 있을 정도가 되었다.80) 이는 성장을 위해 소비사회의 악순환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써 자연 생태계를 치명적으로 파괴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 결함을 삽입하는 계획적 진부화는 욕망을 부추기는 광고를 통해 지속되는 바, 인간을 오로지 소비자로 전락시켜 생명파괴의 악역을 담당케 한다. 이런 정황에서 민주화를 위한 장공의 정치의식은 자연생명과의 형평성, 곧 생태적 정의를 염려하는 방식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그의 삶 후반에 더욱 도드라진 청지기성의 강조는 향후 근대성의 한계를 적시하고 폭로하며 치유하는 성찰적 영성과 맥을 같이 할 일이다.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생명권을 정치의 장으로 삼았던 리프킨 사유와 중첩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74) J. 리프킨, 앞의 책, 1부 내용, 특별히 94-156 참조. 75) 위의 책, 108-121.
76) 울리히 백, <위험사회>, 홍성태 역, 새물결 2006, 역자 서문 참조.
77) 세르주 라투슈, <낭비 사회를 넘어서>, 정기현 역, 민음사 2014. 참조.
78) 울리히 백, 위의 책, 20-21.
79) 세르쥬 라트슈, 위의 책, 22-23.
80) 심지어 현대인의 필수품인 핸드폰의 주기가 1년으로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여하튼 매년 제 3세계로 수출되는 폐 컴퓨터가 1억 5천만대에 이르는 바, 이들 속에 포함된 중금속, 수은, 니켈, 카드뮴, 비소, 납 등의 유해물로 수입국의 자연, 사람들이 생태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앞의 책, 32.

다음으로 우리는 리프킨이 강조하는 자연의 창발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장공이 언급한 우주적 그리스도의 시각에서 함께 논의될 주제이다. 앞서 필자가 급진적 유일신론보다 범재신론의 틀에서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해코자 했던 것과 무관치 않다. 물론 장공에게서 현대과학이 밝히는 자연의 창발성을 온전히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부분 자연에게 정신성을 인정한 것은 그에게 영향 주었던 신정통주의 사조와는 전혀 이질적이었다. 이는 동양적 삶의 에토스가 말년의 삶속에 농익어 나타난 결과라 하겠다. 아울러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보았던 한에서 자연(우주) 역시 살아있는 유기체로 이해될 여지는 충분하다. 우주 역시 그리스도 몸속에 포함되어야 할 구체적 생명인 탓이다. 그렇기에 장공의 자연관은 향후 과학의 연구 성과를 창조적으로 수용할 여지를 남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필자는 정치적 영역의 확장, 곧 생명권 정치학을 위한 전거로서 리프킨이 강조하는 자연의 유기체성, 정신성의 측면을 강조할 필요를 느낀다. 자신의 책에서 리프킨은 이에 대한 구체적 예로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러브록의 견해를 다음처럼 원용했다.81) 우선 열대 우림 지역에 정주하는 흰개미를 비롯한 미생물들이 배출하는 년 간 100톤 정도의 메탄이 대기 중 산소를 가감하는 충분한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주목하였다. 대기 속의 메탄이 성층권에 이르러 산소와 만나 물과 수증기로 분해되는 방식으로 거듭 생산되는 산소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들 흰개미가 배출하는 메탄이 없을 경우 산소밀집도가 일 만년 이내 1%정도 증가되어 지구를 불바다로 만들 확률(개연성)을 급속하게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82) 대기 중의 산소비율이 21%로서 지난 4억 만년 간 항상성을 유지해온 것도 자기 조직화하는 우주의 정신성 탓임을 강조할 목적에서이다. 이처럼 지구 공동체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오로지 생명체와 생명체, 생명체와 무기체 간의 상호 연관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구적 차원의 경제적 활동이 생명권 자체의 항상성을 깨트린다면 지구가 사실적 종말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83) 이점에서 인간을 우주적 생명이라 명명하고 자연의 탈(脫)마술화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는 결코 성사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우주적 그리스도에 상응하는 인간론이자 자연관으로서 신학적으로 필요 막급한 과제라 하겠다. 우주적 생명으로서의 인간의 자기이해로부터 자연이 새롭게 발견될 때 비로소 생태적 민주화, 곧 생명권 정치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장공의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심하는 것은 이렇듯 자연의 정신성, 脫인간 중심주의의 가능성을 보았던 탓이다.

81) J. 리프킨, 위의 책, 382-383. 82) 지난 4억 년간 태양은 더욱 뜨거워졌고 많은 태양 빛으로 인해 지구상에서 광합성 작용이 활발해진 탓에 산소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으나-만약 산소 비율이 1% 높아질 경우 지구상에 화재 날 확률이 60% 상승된다고 한다- 옴살스런 지구의 작용으로 인해 자동 조절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간 중심주의 만으로 지구생태계를 유지, 존속시킬 수 없음을 적시한다.
83) 칼 프리드리히 봐이젝커, <시간이 촉박하다>, 이정배 역, 기독교서회 1987 서문 참조.

마지막으로 필자는 장공의 사랑 개념을 리프킨의 ‘생명권 의식’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사랑은 앞서 밝혔듯 하느님 사랑과 인간사랑 나아가 생명(자연)사랑을 아우르는 총괄적 개념이었다. 한국 교회가 보이는 배타성과는 동이 서에서 멀 듯 무관한 것으로서 온 우주를 품는 하느님 마음의 표현이라 해도 좋겠다. 더욱 그가 우주적 그리스도를 말한 것은 우주를 품고자하는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우주적 공동체에 대한 사랑은 장공에게서 결코 둘이 될 수 없었다(不二). 심지어 그가 한국 고유한 문화까지도 포함하여 사랑의 공동체를 주장한 것은 우주를 품는 그리스도, 그의 영성에 대한 확신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84) 결국 장공에게 우주적 사랑 공동체는 물질로 표현된 성육신과 다르지 않았으며 이는 식민(자본)화된 공간을 탈(脫)하여 사랑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재 정위하는 정치적 작업과 무관할 수 없었다.85) 장공은 지금 예수가 하느님이었기에 유일한 성육신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인해 매 시간과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었기에, 세계의 변두리는 물론 그리고 자연에 이르기 까지 神性을 확장시켰기에 유일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86) 이를 일컬어 하느님 나라의 현실화라 하거나 사랑의 물질적 측면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87)이점에서 필자는 장공의 사랑과 생명권 정치학의 전제인 우주적 의식과의 상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주지하듯 우주적(생명권) 의식은 소유를 지속적으로 추동하는 죽음의 본능(Tanatos) 과는 상극적 개념이다. 따라서 이는 일명 치유적 의식이라 불리기도 하는 바88), 기독교의 죄에 대한 구원의 의미를 함의한다. 우주생명으로부터 철저히 일탈된 근대적 주체에게 생명현상을 창발하는 전(全)지구적 관계성을 회복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은 무엇보다 자기 몸의 생체시간이 지구행성의 회전과 생명권의 순환적 리듬과 유관함을 숙지해야 옳다.89) 효율성에 근거, 진보 이념을 고착화시킨 자본주의의 시간 제국주의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까닭이다. 이점에서 물리학자 장회익의 말은 유익하다.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으로서 우주적 생명은 인간이 그 역할을 옳게 수행함으로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차적 정신기능을 지닌 우주적 주체를 이룰 수 있다”90) 이렇듯 인간의 바른 역할을 위해 리프킨은 프로이드 심리학을 빌어 인간의식의 치유를 도모한다. 이는 프로이드(무의식)를 거치지 않고서는 인간 의식과 관계된 구원의 문제는 실상 요원한 탓이다.91) 이는 JPIC의 난제가 해결됨 없이 기독교 구원을 논하는 것의 허구성을 질타했던92) 상황과 결코 무관한 발상이 아니다. 프로이드를 따라 리프킨은 인간역사를 개인의 내력에서처럼 생명본능과 죽음본능 간의 경쟁적 차원에서 보았다. 전자가 통합과 통일성의 경험을 적시한다면 후자는 자율, 분리의 경험을 이름 할 수 있다. 자신을 대상으로부터 분리시켜 소유욕을 극대화시키는 죽음본능이 바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에토스란 것이 리프킨의 지론이다.93) 인간의 소유욕이 근원적 통일성을 망각한 인간 삶의 표현, 곧 죽음본능의 다른 측면이란 발견은 인류 미래를 위해 참으로 뜻 깊다. 이처럼 죽음의 본능이 극한 상태에 이른 지금 근원적인 생명본능을 ‘의식적으로’ 새롭게 추구하는 것, 즉 관계성과 통일성의 체험 회복, 곧 사랑의 재 의미화가 오늘 우리에게 절실해 졌고 그를 위한 종교의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인간 의식을 우주적 생명에로 고양시키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뜻이자 종교의 본질에 속하는 바, 장공이 한국 종교와 문화에 깊이 관심한 것도 결국 통전적 공동체를 위한 염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장공이 끝까지 잡으려 했던 목표, 곧 우주적 생명공동체는 이처럼 天地人의 일체 관계성이 회복된, 죽음본능이 지배(역할)하지 못하는 이 땅에 임하는 하느님 나라 모습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사망이 생명에 삼킨바 된 현실일 터 그리스도가 그 첫 열매인 것을 역설한 장공의 의도였다.94) OECD 국가 중 인간 욕망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평가된 작금의 현실에서 기독교 강대국인 이 땅 교회들의 무용론이 일층 공론화되기 전에 과학적 세계관, 이웃 종교들의 가치를 수용하여 장공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로 남아있다.

84) <김재준 전집>, 7권, 312-313. 심지어 장공에게서 ‘토착화’ 혹은 ‘토착화 신학’이란 말까지 언급된 것을 특별히 감리교 신학자로서 크게 유념할 필요가 있다. 85) C. Keller & L. Schender(eds), 198 이하내용.
86) 이정배, <고독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상상하라- 2017년 종교개혁 500년을 앞둔 한국 교회를 향한 돌의 소리들> 334 참조.
87) 김희헌, <하나님만 믿고 모험하라>, 220-221.
88) J. 리프킨, 위의 책, 372-378.
89) 앞의 책, 388-401.
90) 장회익, <과학과 메타과학>, 지식 산업사 1990, 223
91) 이것은 우리시대 영성심리학자인 켄 윌버(Ken Wilber)의 발상이다. 이정배, <켄 윌버와 신학-홀아키적 우주론과 기독교의 만남>, 시와 진실 2008, 67-112 참조.
92) 이것은 JPIC를 발의한 공로로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자리에서 봐이젝커가 그를 수락한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 말을 정확히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정의, 평화 그리고 생태계 파괴가 고쳐지지 못하는 한 기독교 정신의 구현은 요원하다.”
93) J. 리프킨, 위의 책, 402-412. 463-472.
94) <김재준 전집>, 17권, 14.

짧은 마무리

이상으로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장공이 시종일관 꿈꿨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개관하고 그것을 J. 리프킨의 생명권 정치학의 시각에서 발전적인 제안을 시도했다. 긴 시간을 들여 장공의 전집을 두루 읽고 난 후에 감당할 작업이었으나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읽은 탓에 오독의 소지를 난길 것 같아 송구하다. 그럼에도 장공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참조했기에 크게 잘못된 부분은 없을 것이라 믿고 오히려 필자는 앞선 작업들과의 변별력에 주목하였다. 조금이라도 장공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논의하는 것이 외부자의 한 공헌이라 생각했던 탓이다. 본고를 정리하며 필자가 새롭게 찾은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기여한 장공을 보는 시각이 주로 4.19에 편중되었던 것에 비해 필자는 장공 신학 및 그의 정치적 의식의 지평확장을 위해 오히려 3.1 독립에 근거한 장공의 글에 중점을 두었다. 글의 양 역시도 3.1 독립운동에 대한 성찰을 담은 것이 4.19 혁명을 주제로 한 것보다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필자는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지닌 통전성의 맹아를 찾을 수 있었다.95) 또한 장공의 공동체 비전이 시종일관 철저했던 것으로 보는 시각에 반해 필자는 다소간 차이를 인지했다. 인간과 역사 그리고 사회에 집중했던 장공의 생각이 우주, 자연에로 완만히 선회한 것을 보았던 까닭이다. 그가 우주적 그리스도란 신학적 개념을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용한 것은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충분한 여지를 남긴 것이라 여겼다. 이런 이유로 장공의 신론을 철저 유일신론(redical monotheism)의 틀거지에서 이해하지 않고 범재신론과의 유사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장공을 신정통주의 신학의 반열이 아닌 본회퍼의 시각에서 읽고자 한 것도 필자의 의도적 만용에서 비롯했다. 현실 속에서 하느님 나라와 등가적인 가시적 제도와 조직을 필요로 했고 그 가치를 중히 여긴 본회퍼가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현실화 시킬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단지 정치적 영역의 확장, 민주화 지평의 우주 자연적 확대를 위해 말년 장공이 언급하기 시작한 ‘자연의 정신성’을 침소봉대한 것도 오독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의가 생태학적으로도 확립될 수 있기 위한 해석학적 편견이라 가늠해 주었으면 좋겠다. 옛 신학자였음에도 과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지였던 장공이기에 그가 현존했다면 그리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 판단했던 탓이다. 장공의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리프킨의 생명권 정치학의 빛에서 확대 해석한 것이 향후 장공 연구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며 졸고를 마감한다. 장공에 대한 글을 읽게 했으며 그의 생각을 가슴속에 평생 담고 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 장공 기념 사업회에 깊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95) 필자는 이를 민중뿐 아니라 민족의 문제를 아우르려 했던 장공신학의 포용성 때문이라고 보았고 나아가 그것이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논할 수 있는 근거라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