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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강좌 제21회] 민중신학에서 본 장공 김재준의 진리론 : “하나님만 믿고 모험하라!” / 김희헌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7 16:46
조회
1906

[제21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10년 4월 8일(목) 오후 5-7시

민중신학에서 본 장공 김재준의 진리론 : “하나님만 믿고 모험하라!”

김희헌 박사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 조직신학)

[I] <장공전집> 독서 후의 단상

“1934년 평양에서 선교 50년 기념 축하식 전……그것은 과거 50년의 ‘약력’을 억지로라도 좋게 꾸미려는 ‘의례’이기는 하였으나 금후 50년의 새 세대를 건설할 하등의 젊은 이상도 박력도 없는 말하자면 하나의 수선스러운 ‘장례식’ 기분이었다.……‘조선 신학교’는 참된 의미에서 ‘조선’ 교회의 산파역을 맡은 역사적인 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출발당초부터 건전과 신중을 기한 것이었다.……조선 교회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사대사상이나 의타주의를 시정하여야 할 것을 절감하였다. ‘하나님만 믿고 모험하라!’하고 늘 외치는 것이었다.”1)

1) “미국장로파 선교사와 한국장로교회”(1950년경),『김재준전집』(이하 명기 생략), 2:261~63. (이후로는 제목을 특별히 알릴 이유를 갖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곤, 인용처를 본문에 기입함)

몇 달 전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표 의뢰를 받고, 대학원 시절에 목돈을 들여 장만하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읽지 못하고 오랫동안 묵혀둔 <長空전집>을 읽을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장공의 글 가운데 많은 대목이 마치 오늘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심지어 60여 년 전에 쓴 글이 마치 오늘을 살고 있는 듯할까? 이것은 장공의 혜안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두 세대가 지나도록 사상적 진화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교회에 대한 탄식이다. 이 탄식에서 이 글의 기저에 흐르는 질문이 뛰쳐나왔다. 그 동안 한국교회는 무엇을 자신들의 기독교 진리라고 여기며 추구하여 왔는가? 신앙인을 최고의 헌신으로 이끌 수 있는 매력적인 기독교 진리는 과연 어떻게 형성되는가?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는 (신)학도/신앙인들의 삶의 리듬은 어떠해야 하는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타고 흐르는 고민이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아니 장공의 신학적 후예라는 기장교회는 장공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는가, 아니면 장공의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II] <장공의 진리론> 연구에 활용된 세 가지 관점/방법론

이 글은 장공 김재준 목사가 한 평생을 추구해갔던 진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또 장공이 진리를 추구해갔던 태도와 관점이 어떠했는지를 밝혀, 그의 <진리론>에서 오늘의 사람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려는 글이다. 이전 시대를 살다간 장공의 진리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을 당시의 역사적, 지적 배경에 비춰보며 평가해야 정당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고증학을 넘어서기 위해 장공사상이 지닌 <오늘의 의미>에 집중할 것이고, 오늘날 사용되는 해석학적 관점과 기준으로 장공사상이 지닌 특징을 재해석하여 살려내려고 한다.

우선 장공사상을 분석/파악할 방법론을 확정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진리론(a theory of truth)을 구성하는 작업에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진리론의 다채로움에서 오는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논해 온 수많은 사상가들이 1)무엇을 진리(참이)라고 할 수 있는가? 2)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3)진리로 규명된 사실, 명제, 상징, 사건 등은 보편적(universal)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등의 질문에서 다양한 입장을 취하였다. 진리론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실 자체가 첫 번째 물음에 대해 하나의 답변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글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물음에 대한 장공의 이해를 서술해 가면서, 이를 통해 이 글의 핵심주제인 첫 번째 질문 즉, 무엇이 참인가? 장공은 무엇을 기독교 신앙의 진리로 보았는가? 하는 문제에 접근하려고 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현대해석학이 주목하는 두 가지 일반주제인 <진리규정의 준거점, 두 번째 주제>에 관한 문제와 <진리주장의 상대성과 절대성, 세 번째 주제>의 문제라는 서로 다른 각도/관점에서 접근하여 장공의 진리론이 지닌 특징을 전체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를 지닌다. 먼저 두 번째 질문 즉,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해석학의 역사에 등장한 두 가지 서로 대별된 흐름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진리의식이란 객관적 실재(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리킨다. 하나의 명제( 또는 담론, 서술)를 참(true)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명제와 그 명제가 가리키는 실재(사물, 사건) 사이에 올바른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나의 명제를 진리로 규정할 기준을 <실재와의 상관성>에서 찾는 관점을 지닌 진리론을 가리켜 <상응이론,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이라고 하는데, 이 방식은 (기독교) 진리론의 가장 오래된 전통이다.

그러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1781> 이후, 근현대의 진리론은 전혀 다른 방향을 걷게 된다. 칸트는 <실재, the real>와 상응하여 진리로 여겨질 수 있는 형이상학적 <지식, knowledge>이 형성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인간경험의 대상이 되는 사물은 <현상, phenomena>일 뿐, 사물 그 자체의 <본질, noumena>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칸트는 현상과 본질 사이에 있는 <궁극적인 인식론적 간격, the ultimate epistemic gap>으로 인해, 사물의 <본질>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진리를 도출하는 작업이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2) 이성의 한계를 규명한 칸트의 철학은 이로써 진리론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이제 진리란 명제와 객관적 실재 사이의 상응성에서 찾을 수 없고, 개별 진술의 진리성은 그 자신이 속해 있는 담론구조 안에서 얼마나 일관성(consistency)을 지니면서 동시에 전체담론의 포괄성(comprehensiveness)을 형성시키는데 얼마나 기여를 하는가에 따라서 판가름된다는 이해를 낳은 것이다. 다시 말해, <상응이론>과는 달리, 진리란 경험하는 주체가 축조해가는 명제들 사이의 전체적인 일관성 유무로 판단되어져야 한다는 <정합성 이론, Coherence theory of truth>이 탄생한 것이다.

2) Immanuel Kant, Critique of Pure Reason, trans. Norman Kemp Smith (London: Macmillan and Co., Limited, 1953), B xxvii, 310, 311.

진리론에서 <정합성 이론>은 칸트 이후 철학활동의 주류를 이루며 각 방향으로 흘러들어갔다. 계몽주의 이후 기독교 신학 역시 칸트의 이성비판을 흔쾌히 수용하여 기독교신학의 전통을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주류의 흐름을 형성해가는 만큼 <전통>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소위 기독교 전통신학은 진리가 실재(사건, 역사, 세계)와 어떤 (생생한)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고 또한 실재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탐구하기보다는, 기독교 진리(로 여겨지는 명제)가 어떻게 서로 모순되지 않고 교의학적 체계를 일관되게 세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하였다. 그리고 신학적 진리로 여겨진 도그마를 실재(역사적 현실)에 적용하는 행위에서 진리를 따르는 삶의 의미를 찾았다.

기독교 신앙이란 이름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주장들 가운데 어떻게 참과 거짓을 가릴 것인가 하는 <진리규정의 준거점> 문제에서, 장공은 칸트 이후 기독교 신학의 주류를 형성하며 소위 <전통신학>이란 이름으로 군림해 온 <정합성>의 진리론을 거부하고 전복한다. 장공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1:226)가 되기 위해서는 진리를 파악하는 주체가 “자기를 속이는 관념”에 의존하지 말고, “성령의 생명 샘이 솟아 넘쳐흘러 이웃과 세계 인간 사회 속에 생명 강이 대하를 이루게 되는 풍성한 생명말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공에게 기독교 진리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는「로고스」로서의 말씀” 자체에 있지 않고, 오직 “[역사 속에서] 인간화한 말씀”이다.3) 따라서 우리는 장공의 진리론이 지닌 첫 번째 특징을 역사와 우주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실재에 주목하여 진리를 파악하는 창조적인 신학방법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도그마로 역사적 실재를 재단했던 전통신학의 바리새주의를 비판하고, 실제 사건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기 위해 신학작업에서 <도그마로부터의 사상의 자유>를 철저히 강조했던 장공의 근본입장이다. 이러한 장공의 <상응론>적 진리파악 방법은 기독교 신학에서 오랫동안 잊혀진 전통의 복원이요, 또한 실제 역사 속의 민중현실에 주목했던 민중신학의 기본입장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산 말씀” (1946년), 1:232.

장공의 진리론을 파악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신학작업에서 가질 수 있는 의미와 교훈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점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현재 탈근대주의(postmodernism)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상과의 대화이다. 탈근대주의란 1970년대 이후 거의 대부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핵심구상으로 정착하였지만, 그 자연철학적 맹아는 뉴턴 물리학이 무너지던 20세기 초반부터, 그 역사철학적 출발은 E. 트뢸취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트뢸취는 역사라는 지평 위에서 전개되는 모든 활동의 상대성(relativity)과 다양성(plurality)을 강조하였다. 역사 속에 등장한 하나의 개체(individuality)는 결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말이다. 트뢸취는 기독교 신학 역시 “심오한 내적경험의 증거”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일 수 없고, “단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만, only for us” 절대적 진리로 수용될 수 있다는 역사적 상대주의(historical relativism)를 내세웠다.4)

4) Ernst Troeltsch, “The Place of Christianity Among the World Religions” (1923), in Attitudes towards Other Religions, ed. Owen C. Thomas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9), 86.

트뢸취가 주장한 상대주의는 분명히 절대주의를 신봉한 근대주의적 인식론의 종말을 의미했다. 근대이성은 하나의 진리 (a truth)가 어느 시대/문화에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 universality>을 지닐 수 있으며, 주체의 주관의 범주를 넘어 <객관성, objectivity>을 지닐 수 있는데, 그 까닭은 모든 평가와 판단행위의 기초가 될 만한 하나의 항구적인 <토대, foundation>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기독교 신학에서 그 토대란 때로는 <전통, tradition>이란 이름으로, 때로는 <계시, revelation>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트뢸취는 전통 역시 역사적 상대성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요, 계시 역시 보편적 동의를 이끌 절대성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트뢸취는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 absolutization of one truth> 했던 근대주의의 망령을 추방시켰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후의 탐구활동이 <모든 진리를 상대화, relativization of all truths>하는 탈근대주의의 병폐 즉, 아나키즘적 혼란과 진리(탐구)를 사소한 (혹은 사적인) 것으로 여기는 이성의 냉소(cynicism)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큰 과제 또한 남겼다.

시기적으로 장공은 근대의 자유주의 사상이 지닌 성과와 폐해를 동시에 체감하던 시기에 신학수업을 하였기 때문에 트뢸취의 역사적 상대주의 사상이 지닌 강약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공은 그 시대 대부분의 신학이 또 다른 이름의 (신)정통주의 신학으로 회귀하던 방향과는 다른 포물선을 그리며 사상활동을 하였다. 그것은 상대성을 승화시킬 통일성(unity)에 대한 추구요, 절대성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와 모험”을 중시하는 정신이었다. 분명히 장공은 동터오던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학문적으로 향유하지는 않았다 (못했다). 그러나 장공이 1953년 이후 줄곧 주장하였던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통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을 담아내려 했던 사실은,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하지도 않고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이에 창조적인 길을 내려는 21세기의 진리구도자에게 뚜렷한 빛이 된다고 하겠다.5)

5)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개념은 “문명인과 문화인”이라는 1953년 11월의 글(3:253)에서부터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장공의 진리론을 다루는 이 글은 제목에 붙어 “민중신학에서 본”이라는 전제를 만족시켜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러나 <長空기념사업회>로부터 온 이 “요청”이 한편으로는 난감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 글은 장공사상 가운데 민중신학의 스펙트럼을 통해 걸러진 것만을 제한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민중신학에서 본 장공의 진리론”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민중신학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필자는 민중신학이 기독교 신학 중 하나의 특수한 방법론에 입각한 신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에게 민중신학은 자신의 고유한 전제(premise)를 만족시키기 위해 특정한 해석학을 추론적으로 발진시키는 연역적 신학도, 민중현실이란 구체에서 일반적 신학원리를 도출하여 강변하는 귀납적 신학도 아니다. 민중신학은 기독교 신앙의 본래적 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자기시대를 꿰뚫을 보편적 신학사상으로 표현하려는 한국신학을 의미한다. 분명 <민중신학>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민중신학은 영광의(금관의) 예수가 아닌 <민중적 예수>를 희망하고, 죄와 탐욕의 무리가 아닌 <예수적 민중>을 길러내는 실천을 중시한다. 또한 이러한 기대를 교회주의라는 협소한 울타리를 넘어서 역사와 우주적 지평으로까지 의식적으로 넓혀가려고 한다.6) 문제는 민중신학만이 이러한 신학적 관심사를 자신의 저작권(copyright)으로 독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병무처럼 예수의 민중성을 그려낸 (외국)신학자들이 적지 않다. 서남동이 관심했듯이 신과 혁명이 통일된 <예수적 민중>에 관심했던 한국학 연구자와 시인이 적지 않다. 민중신학은 특수한 단일논리에 대한 충실성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렇듯 혼성적(hybrid) 요소를 자기 안에 창조적으로 수렴하여 시대를 이끌고 갈 정신으로 꽃피기를 희망할 뿐이다.

6) 최근 민중신학자 권진관은『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동연, 2009)이란 책을 냈다. 민중신학의 관심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제목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책의 방법과 관점과 내용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의 민중신학 연구자마다 (부분적으로) 다를 것이다.

오늘날 민중신학은 <민중>이라는 주제에 대한 철저한 관심만으로 그 가치를 주장할 수 없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상황에 놓인 모든 사상의 운명이다. 민중신학은 자신의 민중중심적 관점과 민중지향적 실천을 통해 성서의 지혜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증언하고, 그것으로 동시대의 영혼을 매료시켜 끌어가는 힘에서 살아날 것이다. 이 글이 <장공의 진리론>을 “민중신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장공의 진리론이 어느 지점에서 오늘 우리의 시대에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III] 장공이 본 진리: 창조적 역사와 맞선 자유정신이 길러낸 지혜

“크리스천에 있어서도 강점이라면 역시 신앙이 추상화한 기관의 신조에 머물지 않고 몸으로 되어 사는 신앙인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리를 증거한다는 것도 다만 가르친다거나 선포한다거나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리-말씀을 밥 먹듯 잘 씹어 먹어서 그것이 내 혼에 소화가 되어 내 말로 외쳐질 때에 증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하느님 말씀, 예수님 말씀이 진리라 해도 그 말씀이 통째로 들어갔다가 통째로 나온다면 말씀의 설사병 환자가 될 것이 아닐까 싶다. 빌리 그래함은 말끝마다 ‘The Bible Says’를 내세우는데, 예수께서는 아마도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막10:21) 하시지 않을까 생각한다.”7)

7) “장공 칼럼(8), 난세를 사는 사람들,” (1979년경), 12:148.

기독교 신앙은 역사 속에서 화육된 말씀에서 진리를 본다. 장공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된 그리스도 사건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면, 그 말씀을 구하는 기독교 진리 역시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생생한 생명력을 지녀야할 것이며, 또 반대로 기독교의 진리를 논하기 위해서는 역사가 길러내는 창조적 사건에 주목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역사적 실재와 그 실재 속에서 새롭게 움터오는 것들을 외면하는 진리 주장들 즉, “‘절대무오’라는 어새(御璽)와 ‘축자영감설’이라는 시위대로 그 궁궐을 방위하는” 신앙체계(2:17; 12:166), “바래새적 율법주의로 타락”한 교리주의(1:226; 2:31, 111; 5:9),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고 맘몬 신을 부활시킨 성공적인 교회주의”(2:148, 312; 12:187) 등은 기독교 진리를 외면한 것으로 여겨진다. 장공에게 이러한 정통주의 신학의 주장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 지식 체계 자체를 우상화한 결과로 자기 허망에 빠져……자기 마음 안에서 자기의 종이 되어버린……교리적 노예”의 자기진술에 불과한 것이었다.8)

8) “교리와 신앙: 정통의 도취” (1946년), 1:273.

정통이란 권위에 의존하여 기독교 진리를 말하는 태도를 가리켜 “정통적 이단”(2:31)이라 비판하고, “교묘하게 위장한 실제적 인본주의”(1:273)로 거부하였던 장공의 평가는 세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 장공에게 기독교 진리는 단순히 신학하는 <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세계(우주)를 이해하는 <근본 사유체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앞서 밝혔듯이, 칸트는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을 비판하고 그 한계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실제 세계와의 <상응관계>에서 획득된 새로움의 요소로 주체가 지닌 인식론적 한계를 교정하고 넘어서는 방식이 아닌, 이성이 지어낸 이론체계의 <일관성> 이외에 진리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이렇게 명제들 사이의 <정합성>으로 진위를 판단한다는 것은 주체(이성)가 설정해놓은 전제(전통 또는 교리)에 대한 충실성을 척도로 진리를 논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정합성>의 진리 인식론은 세계(우주)가 반복적 질서를 지닌 비창조적 사물들로 구성되어있다는 뉴턴식의 정태적 질서의 존재/우주론을 전제할 때에 가능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통주의 신학 역시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우주의 창조부터 종말에 이르는 완벽한 계획을 가진 (그래서 스스로 불변하는) 신에 의해서 우주가 창조된 후 더 이상의 새로운 창조가 전개됨이 없이 운행된다는 이해를 가진 이신론적 세계관을 전제한다.9) 이러한 세계관은 진리를 구성하는 내용이 이미 확정되었고, 새롭게 첨가되면서 이전의 진리관념을 변경시킬 요소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따라서 기독교 진리는 정태적 세계의 질서를 표현하는 명제들 사이에의 교의학적 일관성을 구성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9) “총회에 보내는 말씀” (1950년), 2:33. 이 글에서 장공은 “정통신학은 순수한 그리스도교가 헬라사상에 중독된 첫 산물”이라고 평가한다. 구체적인 서술이 없기 때문에 판단의 자료로 삼기는 어렵지만, 다른 글들과 비교해 볼 때, 장공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헬라사상”이란 역사적 창조성과 절연되어 있는 신을 그렸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판단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사상을 차용하여 기독교신학의 “정통”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만약 우주가 질서를 뚫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창조적인 실재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달리 말해 신이 역사와 우주에서 끊임없이 창조의 사역을 계속하여 새로움을 탄생시키고 있다면, 진리란 주체가 지어낸 이론의 내적 일관성(coherence)의 체계에 모두 담길 수 없는 것이요, 오직 새롭게 탄생하는 외적 실재(사건)와의 조우를 통해 얻어진 것으로 항상 새롭게 표현되어야만 하는 요청을 받게 될 것이다.10) 장공이 신학과 교리의 본성을 “날마다 자라는 생명운동을 전제로 한 유기적인” 것으로 보며, “고정주의적인, 외적인 보수, 정지된 시스템”으로 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이유이다.11) 장공은 유기체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살아 약동하는 세계를 해명할 진리를 파악하고자 하였고, 진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삶 자체가 생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장공은 이렇게 말한다.

10) “과학과 종교” (1953년 5월), 3:30-34; “크리스천의 창조의욕” (1954년 2월), 3:299. 장공은 뉴턴적 우주론에 입각한 근대의 “과학주의”를 비판하며 “사물의 원인, 실체, 목적 등”을 새롭게 변화와 창조성의 관점에서 파악한다. 화이트헤드의『과학과 근대세계』를 인용하여 “상호의존하는 cosmos,” “becoming” 즉 생성을 우주적 활동의 기본단위로 보는 “상승적 질서, 가치의 성취, 목적성과 창조적인 synthesis, 우주만물은 마음의 세계와 교통하고 협동”한다는 유기체적 세계관을 표현한다. 장공이 “화이트헤드의 계속적인 창조-과정(process)”의 개념으로 “인간의 창조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사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다른 글에서는 샤르댕의 진화론을 도입하기도 한다: “우리는 진화론적인 과정에서 하나님의 창조 지혜를 더듬는 것이 더욱 심원한 창조이해라고 느끼게 된다.” “인간의 모순과 역설과 고민과……” (1970년 8월), 9:265. 11) “그리스도교의 특징” (1955년 초경), 4:4.

“어쨌든 교회인들이 그리스도의 발랄한 생명의 원천에 접하지 못하고 어떤 기성규격 안에서의 기성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크리스천이 될 수 없는 것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통교리라면 그만이고 감히 거기에 도전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사는 종교, 산 종교, 살리는 종교인데, 그 삶을 정체시키고 위축시키고 질식시키는, 다시 말해서 생명을 죽이는 그 사람들이 진짜 이단일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신학이 3백 년 전의 소위 정통신학을 일점일획도 다름없이 그대로 답습해야 한다면, 20세기의 현대인을 17세기의 처방전으로 고치려는 것과 비슷하게 됩니다. 적어도 그런 의사가 있다면 낙오자임에는 틀림없겠습니다. 생명은 창조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적인 기독교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섭취하여 끊임없이 새 생활을 창조하는 것입니다.……기독교는 미래를 창건하는 종교입니다. 생동하는 자유인이라야 참 기독교인일 수가 있습니다.”12)

12) “삶의 창조와 기독교” (1954년 8월), 3:351~55.

장공에게 <자유정신>이란 “생명으로 가득 찬「산 우주」”(1:184)를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써, “생명의 종교”(1:226)인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자, 생명을 지닌 인간의 본성이다.13) 기독교 신학은 “양심의 자유”에 입각한 “자유로운 진리탐구”를 바탕으로 해서만 전개될 것이며, 이 자유를 억압하는 교리주의는 “복음의 자유를 표방한 개신교 안에 바리새적 율법주의”를 심는 “경건한 살인”일뿐이라고 장공은 신랄하게 비판한다.14) 장공에게 자유를 질식하는 교리주의란 “자기 머리속에 그어진 국경선”을 따라 움직이는 무지요(2:172), “미신으로 침윤”하는 지름길(4:178)로 평가된다. 이와는 반대로 자유정신이란 “자기안전 제일주의에 농성하여 구차스런 생존”(12:159)을 구하기보다, “제 손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데서 희열과 자랑을 느끼는” 생명의 본성에 속한다.

13) “자유인은 불가능을 정복한다” (1953년 6월), 3:124. 장공은 자유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주체성”을 “하느님도 어쩌지 못하는 특권”으로 보았다. 14) “양심의 성서적 위치” (1952년), 2:111~12; “경건한 살인” (1952년경), 2:127~28.

장공은 세계를 생명으로 가득 찬 <산 우주>로 보았고(1:184), 인간의 자유정신 역시 우주적 생명의 봉우리에서 피어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진리는 “추상이 아니라 삶의 길이요, 객관적인 보편체계가 아닌 생명적인 진실”로 이해되었다.15) 장공은 이것을 “인간화한 주체적인 진리”(4:51), “자기 자신의 인격적 음미”(5:9), “자유인으로서의 신념”(5:91), “생활신앙”(12:157) 등의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이는 진리의 근거를 주체에서 찾는다는 칸트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리는 오직 창조적인 역사 속에서 자유정신이 스스로를 발양하여 길러낸 지혜로만 표현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장공은 이렇게 “자유하는 주체로서의 능동적이고 사회적이고 상황적이면서 창조적인 경우에만 건설되고 약진하는”(12:157) 신앙의 자세로 역사와 우주적 생명이 불붙는 점을 응시함으로써 기독교의 진리는 형성되고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15) “진리ㆍ길ㆍ생명” (1955년 6월), 4:51.

장공의 진리론은 생동하는 세계와의 맞섬과 참여, 거기에서 길러지는 육화된 지혜를 바탕으로 전개되었다. 장공에게 <참>이란 이성 활동만을 매개로 삼는 “냉정한 관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16) 이러한 진리의 파악방법은 칸트 이후 전통신학이란 이름으로 군림해 온 기독교 신학의 방법론을 뒤엎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관념들, 예를 들어 전지전능한 신의 속성, 신-인으로서의 그리스도 등의 고전적인 관념들로부터 연역하여 교회의 삶과 역사의 변화를 해명하려 할 때, 교회의 신학은 역사적 생동감을 말살하며 스스로의 논리체계에 갇히고 만다. 기독교 신학이 진리를 얻었다 함은 오직 역사와 우주의 창조적인 과정 속에 참여하여, 그 창조적 과정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뿐이다. 장공 스스로도 지식에로의 농성보다는 실천(praxis)적 지혜를(1:129), 학문적 체계보다는 역사와 세계의 삶 속에서 얻어진 생명을(1:232), 구원을 향한 초연보다는 평화를 쟁취하려는 투쟁에서(3:41-3, 10:232-5), 진리를 파지하고 살아가려고 하였다.17) 이러한 태도는 장공의 시대를 뒤이어 세계적인 신학지평에서 등장하였던 신학들(정치신학, 해방신학, 상황신학, 민중신학 등)의 새로운 비전을 앞서 산 것이라 하겠다.

16) “지식인의 미망: 지식의 편중” (1946년), 1:269. “행동을 떠난 냉정한「관찰」로서만 진정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미망이다. 제3자적으로 관찰해서 얻는 지식보다도 실제생활에 부딪치며 그 대상의 생명과 교제하는 중에서 얻는 지식이 얼마나 더 참된 것인가는 우리가 누누이 경험하는 바다. 거리에 민중 속에 빈민촌에 실제로 부딪쳐가며 얻는 지식이 상아탑에 농성한 학자의 지식보다 얼마나 더 실질적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7) “복음과 평화” (1972년 8월 15일), 10:232-35. “<투쟁>이라는 단어는 교회인의 사전에서 제외되다시피 되었다.……<무사주의>는 거짓 평화이며 악마가 먹이는 마약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오히려 그것을 <평화>라 하며 그 마약의 꿈 속 나라를 동경한다.……무정열, 무관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냐? 하는 태도가 물이 바다를 덮듯이 사회를 덮고 있다.……안정된 중산층으로 구성된, 이른바 대교회에서 노동자 문제나 실업자 문제, 부정부패 일소문제, 정치권력의 악용문제 등등이 구체적으로 취급된다면 모두 질겁을 한다.……그래서 언제나 무사태평이지만 그것은 사자의 평안이요 산 평화는 아니다. 그리고 그 대신으로 개인적, 주관적인 평화 경험이라는 영적인 도취를 권장한다.”

참과 거짓을 가를 수 있는 기준을 추상적인 (기독교) 관념에 대한 충실성에서가 아니라 실재와의 맞섬과 참여에서 가려내려 하였던 장공의 진리론은 한국신학을 교리의 포로상태에서 탈출시킬 길을 열었다. 그러나 진리를 (관념들의 정합성에서가 아닌) 실재와의 <상응성>에서 찾는다는 말은 진리판단의 <촉발점>에 관한 주장이지, 그것 자체가 진리주장의 <보편적 정당성>에 관한 옹호는 아니다. <하나의 진리주장(명제)이 실재와 상응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은 <그 진리주장이 실재의 모든 것을 입증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명제와 실재의 <상응성, correspondence>을 <상관, correlation>이 아닌 <일치, identity>로 오해하는 경우, 하나의 명제가 그에 상응하는 실재의 모든 것을 입증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로 입증될 수 있다는 절대주의로 귀착한다. 이러한 인식론적 절대주의는 근대이성의 기본 특징으로, 또 다른 차원에서 기독교의 전통신학이 신학적 도그마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차용하곤 했다. 장공사상은 이 문제 즉, 역사적 실존에 아로새겨진 한계상황에 대해 민감했다. 역사적 실존의 한계를 지닌 인간이 결코 전체 진리를 포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진리추구를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장공의 대답을 살펴보자.

[Ⅳ] 장공의 진리정신 : 자유정신의 모험과 신앙

“헛되고 헛되어 허무중의 허무로다 모든 것이 오직 헛된 것뿐이로다. 그러면 그[전도자]는 이 인생관이 당연한 결론이라 하여 이에 그대로 주저앉은 비겁한 일종의 허무주의자였던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탐구를 더하고 관찰을 더하여 오직 실재를 찾아 순례의 걸음을 이어나간 용감한 진리의 탐구자였다. 그는 경험과 관찰을 통하여 오직 현실 그대로의 인생을 응시하려 한 것이었다. 세상의 비겁타약한 학도들은 진리를 탐구하는 마당에 있어서 좀더 명료한 사색을 원한다는 것보다도 아예 사색의 중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까닭에 혹은 재래의 전통적 독단에 의거하여 스스로 안일을 탐하여 혹여 독단만을 가지고 사색이 자유를 탄압하여 조금이라도 전통에서 벗어난 생각이면 모조리 부도덕 혹 위험시하는 사례가 불황매거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교인은 이렇듯 정궤에서 벗어난 전도자의 「허무철학」을 그의 가장 진지한 진리탐구의 기록으로 인하여 정전 중에 편입할만한 사상적 아량을 가진 자들임을 기뻐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 허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세계에서 실재를 사모하여 형극의 길을 더듬고 있다.”18)

18) “실재의 탐구: 전도서를 읽음” (1934년), 1:36~7.

장공의 진리정신의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포스트모던 사상이 어느 지점에서 근대주의를 넘고 있는지를 살피고 이와 비교하는 필요하다. 탈근대주의가 관심해 온 상대주의(relativism) 사상에는 근대이성의 독선을 치유할만한 깊은 교훈이 있다. 간략하게 보면, 근대이성이 절대적 진리를 주창하고 그것이 <보편성>을 가지며 모든 사유체계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할 때, 탈근대 이성은 세계 안의 진정한 <다양성, diversity>을 말하며 근대적 독선을 고발한다. 근대이성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드러난 진리의 <객관성>을 말할 때, 탈근대 이성은 모든 사상과 신념이 특정한 상황에 <의존, dependence>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탈근대의 상대주의는 <다양성>과 <의존성>이라는 두 가지 내적원리를 기둥으로 삼고, 하나의 진리는 일정한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 하나의 사고 패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19) 근대이성의 눈으로 보면, 진리의 상대성과 다양성이란 하나의 체계 안에서의 내적 불일치(discrepancy)일 뿐이다. 따라서 근대이성에 사로잡힌 전통신학은 그 불일치를 깨뜨리기 위해 하나의 주장(dogma)을 절대화하는 전투성을 강화시켰다. 그러나 깨어난 탈근대의 이성에게 진리의 상대성이란 다른 주장을 허용할 아량의 증진을 요청할 뿐이다.20) 여기엔 근대이성의 제국주의적 폐해에 주목한 탈근대 이성의 자각이 담겨있다.

19) Joseph Runzo, Reason, Relativism and God (New York: St. Martin’s, 1986), 245~47. 20) “신념: 철학적 인생론” (1966년경), 7:382-3. 장공은 그리스도인의 신념이 절대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의 신념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것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어서 아무리 신앙에서 우러나온 신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절대 무오한 신의(神意)로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어떤 영원불변하는 진리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모든 정황에 복종을 명령한다든지 그 권위로 모든 경우의 모든 행위를 평가한다는 생각은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모든 진리는 그 적용될 역사적 정황과의 관련에서 그 시행의 적당성(relevance)을 찾음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진리로서의 실효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근대적 자각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것은 상대주의가 스스로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될 비극으로써, “어떠한 관점도 (보편성을 주장할만한) 특권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떠한 기술도 스스로를 참(진리)이라고 말할 기준을 갖고 있으며, 어떠한 가치평가도 (객관적으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논리다.21) 이러한 상대주의의 내적논리는 탈근대사상을 회의주의(skepticism)로 이끌었다. 무엇이 진리이고, 어떤 진리주장이 이 상대적 세계 속에서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가? 이 질문과 함께 이전 시대와 우리 시대가 탄식한다.

21) Rom Harre and Michael Krausz, Varieties of Relativism (Cambridge, MA: Blackwell, 1996), 3.

장공은 인간 실존이 안고 있는 한계와 동터오던 상대주의의 시대에 대답하고자 하였다. 대부분의 교회신학이 교권이라는 버팀목과 교리라는 안전에 의존하여 창조적인 역사가 빚어내는 실재의 도전을 회피하며 안일한 평화를 구가할 때, 그는 실재와 맞서며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행위를 진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려 한다. 장공은 자기 관념을 절대시하며, 그 관념이 분출하는 열정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나 자신은 학(學)을 위한 <학>의 사람으로서 <학>을 했노라 자부해 본 적이 없다”고 겸손해 한다. 그는 역사가 창조적이되 창조된 것은 상대의 굴레를 벗을 수 없다는 <전도자의 철학>에 공감하였다. 따라서 창조된 것(실재, 관념)이 스스로를 과장하여 진리를 모두 소유한 것처럼 행동하는 정통주의, 교리주의, 교회주의를 끝없이 공박하였다. 창조적인 세계 안의 모든 것은 창조적인 과정 안에 있을 뿐, 어느 하나가 전체 진리를 표현하거나 소유할 수 없고,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운동에서 필요한 것은 <영감어린 모험, inspired adventure>이지 완벽한 체계의 구축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계 안에서 태어난 것은 상대적일 뿐이다. 어느 한 진리주장이 “균형을 잃은 열정(ill-balanced zeal)”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궁극의 지위에 올리는 행위에는 항상 “강조의 왜곡을 통한 거짓”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까닭이다.22) 그렇다면 인간은 유한 속에서 탄식할 뿐인가?

22) Alfred North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Free Press, 1933), 267. 장공은 균형을 상실한 자기주장의 강조를 <치사한 싸움>에 불과한 것으로 보며 이렇게 말한다.“「나는 무신론자다」「하나님은 죽었다」「하나님을 죽여 버렸다」 운운한다 할지라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치사한 싸움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그 자신이 그 말보다 다른 실상을 지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현존 그리스도교를 미워한 니이체의 심경 속에서도 아래와 같은 절실한「하나님 갈망」이 있었음을 볼 때 우리는 놀랍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와 그리스도교 신앙” (1960년경), 5:51, 55 참고.

이 질문에 대해 장공은 종교의 본성에 관한 문제로 답을 한다. 장공에게 종교는 “변치 않는 영원의 소식을 변하는 시간 안에 전하는 것”(3:25)으로 이해된다. 한편으로 종교는 “하나님이 개인과 역사와 우주를 구원하여 그 안에서 대조화를 이루게 하는 신적인 생활운동”의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운동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대책”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23) 따라서 종교적 진리를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화”(3:59)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과 심정으로”(5:9)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 둘의 조화 즉 “활동과 안식, 금세와 내세, 항구성과 변천성, 신앙과 행위, 타력과 자력, 예정과 자유 등의 두 <극성>이 서로 긴장하면서 전진 발전하게 하는 생산적인 양극성(productive polarity)”을 살아가는 것에 종교적 현실이 존재한다.24)

23) “인간생활과 종교” (1953년 3월), 2:342. 24) “인생과 종교” (1952년 11월), 2:290. 종교의 “양극성”에 관한 장공의 견해는 다른 글에도 많이 나온다. “그리스도교는 위대한 종교다.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 왔다 하는 것은 말하자면 도무지 서로 합할 수 없는 두 극단이 서로 통하여져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벌써 기적이다. 이 두 극성이 서로 잇대어 긴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는 발전한다.” “그리스도교의 양극성” (1952년경), 2:207.

따라서 종교적 삶이란 “상대주의와 결정론”이라는 양극단, 다시 말해 유한한 역사의 비극에 안주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교리와 전통에 대한 맹목에 사로잡힌 열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또 그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방관적 냉소주의”로 초탈하는 것도 아니다.25) 이러한 극단 혹은 방관의 삶이 기독교의 신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손쉬운 선택에 머무른 안일이요,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제일 큰 원수인 <凡庸, Mediocrity>”에 그치기 때문이다.26) 장공은 기독교 진리정신이 그 본성을 잃을 때 극단을 즐길 뿐이라고 말한다:

25) “사상의 귀일” (1947년), 1:280. 장공은 다른 글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사상자, 학도들도 너무나 상투적인 미해결의 반복에서 냉소자가 된다. 그들은 자연주의적 결정론과 인격주의적 자유론과의 사이에 끼어 인생을 비웃으며 소망을 조소한다. 사상성이 결핍한 사람들은 오늘에 닥치는대로 후려 먹고 출세하자, 내일은 내일로 족하다! 식으로 뻔뻔스럽다.” “새 힘을 얻으리라” (1955년 6월경), 4:84. 26) “믿음 없는 세대여!” (1953년경), 3:264~266. “신앙의 본래 모습은 힘차게 能動的인 것이며 戰鬪的인 것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알지 말라 도리어 칼을 주러 왔노라’ 이런 명령은 결코 安全第一에서 생겨 날 수 있는 말씀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제일 큰 원수는 ‘凡庸’ Mediocrity이다! 신앙은 평범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非常한 것을 戰取하려는 모험이다. 百尺竿頭에 또 한 걸음 내디디는 전진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언제나 위기를 내포한다.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은 나이 한 세기도 못되어서 벌써 온전히 늙었나 두렵다. 이 침체하고 고루하고 幻想을 잃은 직업종교인, 전통맹신자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이 믿음 없고 패역한 세대여’하고 책망 하신다.”

“졸렬한 자유주의가 궤도 없는 광분을 조장하여 질서를 깨뜨리고 정의에 역행하는 인심의 혼란을 가져오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공정과 자유 없는 「질서」를 강박하여 인간성의 질식을 초래함으로서 보복의 쾌감을 만족시키려 한다.”27)

27) “생장고(生長苦)” (1952년경), 2:130.

극단의 삶을 사는 자들은 야성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무기력하다. 거기엔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도, 反생명을 제거하는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문화인이니, 종교인이니 하는 데서는 야성적인 것이 거세를 당한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기력형」의 분장이다. 그런데 요새 문화는 이「야인」들까지도「무기력형」으로 개조한다. 그는 온건하지만 준엄하지 못하다. 따스하지만 불붙지는 않는다. 호면의 파란 혀가 뱃전을 보드랍게 핥아주는 화선에서는 귀공자 노릇을 하지만 노도를 밟고 서서「잔잔하라!」호령하는 기백은 시들었다. 미목이 수려하지만 가시에 찔린 자리는 없다. 손길의 부드럽지만 못자국은 없다. 동정은 하지만 구원은 못한다. 이런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을 세대는 없을 것이다. 현대적으로 세련된 예수에게는「거치는 돌」,「찌르는 가시」,「무는 이빨」이 제거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교회도 양적으로는 풍선처럼 부풀면서도 주역은커녕 막간역도 못하는 평범한「관중」밖에 못되고 있다.”28)

28) “무기력형” (1962년), 4:242. 장공이 스스로를 성찰한 글에서 비슷한 심경을 고백했다. “학교를 하노라고 고생고생 하다가 그것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힌다고 안정하는 순간, 거기서는 예언자의 환상이 사라지고 학자의 상아탑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기서 산출되는 인물들은 재치 있고, 예리해서 면도칼 같이 다루기에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면도칼은 역시 면도칼이어서 남의 수염이나 깎았지 그것으로 장작을 패거나 소를 잡을 수는 없다. 예언자와 학자가 의좋게 서로 어울려 서로의 부족을 보충해 간다면 학원의 풍경은 놀라울 것이다. 이 둘이 한 인격 안에 구비된다면 물론 더 훌륭한 교육자라 하겠다.” “원근” (1962년), 4:244.

장공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불안, 공포, 초조 등을 이유로 종교에 들어온”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고 봤다. 신앙이 신앙일 수 있는 것은“「빛의 아들」로 활보하는 공명정대한 명랑성 속에서” 자랄 때다 (4:247). 이 신앙을 가진 사람은 “종교적 관념에 속지 않고”(1:226) “그리스도 상(像)보다는 그리스도를 보고자 원하며”(5:427), “하늘이 무너진대도 그 무너진 하늘의 틈바구니로 말없이 뾰족이 치밀어 오르는 삶의 힘으로 믿음을 구성”(3:366)한 사람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모험하는 사람”(4:484)이다! 이 모험은 자기 자신의 권위에 기초한 절대자유는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독립한 절대자유는 자승자박의 노예”로 결말을 맺기 때문이다.29) 그렇다고 신앙이 “절대 무오한 신의(神意)”(7:382)라는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규범에 근거할 수도 없다. 기독교 신앙은 “사랑과 겸허” 속에서 자라고 “자유”에서 숨 쉬는 신념인 “숭고한 고독”(7:391)을 피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고독을 딛고 하나님을 향해 나서는 모험일 수밖에 없다.30)

29) “그리스도와 자유” (1955년경), 4:20. 30) “憧憬” (1962년), 4:263. 장공은 이 모험의 정신을 여러 곳에서 “젊음”과 “청춘”으로 표현한다. “잔잔히 흐르는 골 물의 마음, 그 마음속에는 온 계곡을 뒤흔들 일 만길 폭포의 꿈도 있을 것이며 아득한 바다 만 갈래 물결에 어울려 춤출 포부도 있을 것이다. 돌 틈에 싹튼 애숭이 풀잎에도 전 우주의 정기가 풍겨있고 진흙 속에 뒹구는 도토리 속에도 대 상수리나무의 가능성이 감추어 있다. 꿈꾸는 자, 위대한 동경과 약속에 사는 자! 그의 이름은 「젊은이」다. 티끌 속에 묻히면서도「새 하늘 새 땅」의 약속에 기뻐하며 병과 죽음에 시달리면서도 영광의 몸을 덧입는 환상(vision)에 사는 자, 그 불굴의 젊은 꿈이 이 강산에 타 올라야 하겠다.” 그 외에 다음을 참고하라. “건설적인 항거” (1956년 10월경), 4:360;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1970년경), 9:160.

장공은 기독교 신학이 모험의 진리정신을 동반할 때 “치열한 지식운동”(4:178)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운동은 정통신학과 교리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교를 인격적인 데서 관념적인 데로, 영적인 데서 율법적인 데로, 자유하는 데서 종 되는 대로 이끄는 우상숭배”(4:4)를 타파하는 운동이다. 여기에 교회의 사명이 있고, 신앙의 참 뜻이 있다. 장공은 교회를 “전우주적 생명기구의 돌출부요 흡반이자, 새 생명 창조의 성소”(1:232)로 보았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새 문화가 발생, 성장, 결실하도록 그 창조의 역할을 담당”(5:382) 하는 사명을 가진다. 기독교 신앙의 거처인 성육신의 교리 또한 이 세계 속에서의 진정한 해방을 가져오는 것 즉, 창조적인 사랑의 정신이 이 역사와 우주세계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31) 장공은 스스로 치열한 지식운동을 벌이며 기독교 신학을 재해석 할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윤리적 삶의 왜곡된 모습까지 비판한다.32)

31) “성육신” (1955년 12월), 4:155; “창조하는 종교” (1967년경), 5:274. 장공은 “성육신”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계시」라면 인간 이상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상상합니다. 그래서 계시에 대한 인간의 말이나 행동에는 경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계시가 인간 이상의 말씀이긴 하지만 인간 이외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인간에게 알려지기 위하여 인간적인 내용과 인간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신학을 기독교 교리를 해명/옹호하는 방향이 아닌, 역사적 구원과 해방의 문제로 해석하려는 쪽으로 발전시켜가는 흔적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탄의 실태” (1955년 11월), 4:146;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업” (1955년 11월), 4:149; “성신과 신비경험의 諸相” (1956년 3월), 4:198~204; “그리스도와 세계: 제50회 총회를 마치고” (1965년), 7:243; “교회와 세계” (1966년 4월), 7:410~11. 32) “한국교회 윤리생활의 재검토” (1962년 11월), 5:417-22. 장공은 한국교회의 윤리적 행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1) <제사문제>는 청교도적 율법주의에 젖은 선교사들의 과오로써, 윤리적 경중을 가리지 못한 위선으로 비판하며, 2) <주초문제>는 계명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자제력과 사교생활의 필요에 따르기를 권하고, 3) <타종교>와는 “존경과 이해와 사랑으로 대화의 길”을 열 것을 주장한다.

장공은 역사 속의 어떠한 진리주장도 절대적 보편성을 지닐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생각은 한편으로 상대적인 것(신학체계나 교리)을 절대화하려는 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비판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상대성에 길들여져 냉소주의로 몰락해가는 정신에 대한 비판이다. 장공은 기독교 신앙이 올바른 진리정신을 획득하여 종교로서의 본성을 살아갈 때, 절대주의에 농성하거나 상대주의에 항복하는 극단을 살아가지 않고, 신앙 안에서 참된 모험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 모험은 실존적인 인간의 (불완전한) 신념에 근거한다기보다는, 사랑과 자유 안에서 숨 쉬고 자라나는 모험이다. 그 모험은 고독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지만, 또한 영원한 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허무한 것에 굴복하지 않는 삶 즉, “중립도 타협도 아닌 대조화”의 이상을 잃지 않는 모험이다.33) 절대주의에 빠지지 않을 <전적인 개방성>과 상대를 넘어설 <대통합의 이상>을 보듬고 진행되는 진리정신의 모험은 “정통과 이단을 초극한 생명에의 접선”(5:390)이라 할 것이다. 이 <생명에의 접선>에서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궁극적 비전이 피어오른다.

33) “신앙생활의 조화” (1940년), 1:138. “대조화”의 정신은 1953년의 글에 처음 등장한 이후 그의 핵심사상이 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형성하는 골격이라 하겠다. “문명인과 문화인” (1953년 11월), 3:253 참고.

[Ⅴ] 진리정신과 삶 :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향한 전진

“이제부터 하느님 자녀 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상실된 낙원인 이 땅을 하느님의 정원으로 회복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머물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업이요, Vision입니다. 이것은 지구만이 아니라, 전우주적인 스케일의 건설 사업입니다.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이 큼직한 비전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쩨쩨한 문제 갖고 옥신각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전 우주에 적용되는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교회는 이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의 거점입니다. 전진기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것은 범우주적인 사랑의 공동체란 뜻일 것입니다.”34)

34)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1983년 1월 16일 설교), 16:349, 352~3.

우리 시대에 만연한 새로운 사회사상적 병폐 가운데 하나는 사회변혁을 향한 희망의 동력상실이다. 특히 참혹한 민중현실에 대한 외면을 묵인하고, 사회의 <공동선>을 향한 목소리가 개인윤리의 심리지평으로 소멸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상적으로는 <공동, common>과 <보편, universal>이라는 가치에 대한 포스트모던 사상의 과도한 의심이 거들고, 실제에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윤리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인간의 존엄에 관한 의식이 이기주의의 무기가 되고, 개인의 자유가 (고통의 현실에로의 참여요청에 대한) 묵비권의 보루가 된다.35) 상대주의는 윤리적 연대성을 갉아먹고 중립적 부동(neutralist immobility)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며, 결국 진리를 사소하고 상대적인 것으로 뒤바꿔 놓는다. 이로 인해 상대성에 대한 세련된 수사만 남발될 뿐, 실천을 향한 노력은 허무주의 속으로 종말을 고한다.36) 기독교 신학 역시 잘못된 종교 관념에 사로잡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유한하고 상대적인 것으로 비하하며 정의와 해방을 향한 실천적 열정을 억누르거나, 상대주의의 폐색과 짝하여 생명과 평화를 향한 전진을 조롱한다.37) 이로써 기독교 진리 역시 사소한 것이 되고 상대화된다. 오늘날 기독교 진리는 교회제도 안에서 전능할 뿐, 세상의 빛을 쐬자마자 유약하게 시든다.

35) 김영민,『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 (서울: 한겨레출판, 2008), 249. 36)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1970년경), 9:163. 장공은 시대정신의 이러한 병폐에 대해서 민감하였다. 장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각경험에 치우쳐 반지적(反知的)인 방향으로 달리는 가치다원성은 compartmentalism을 조장하여 연대의식을 말살하고, 외적 권위에의 무조건 반발은 자기중심적인 생활에 농성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동시에 자아의 연약성을 절감하여 결국에는 무기력한 안일주의에 귀착하게 된다.”
37) “진리는 도전한다” (1971년경), 9:446. 장공은 모험의 정신을 잃은 교회를 이렇게 비판했다. “기성종교는 기성교회 안에 언제까지나 안주한다. 그리고 바깥 물결은 제 멋대로 흉용한다. 바깥 물결에 도전하지 않는 진리는 편하다. 그러나 사장에는 영예도 창조도 없다.”

왜 그러한가? 장공은 기독교 신앙이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향한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38) 장공은 서구 기독교에 대한 냉철한 문명비판을 통해, 어떻게 기독교가 “번영(prosperity)과 안전을 위한”(4:79) 제국주의적 침략종교로 전락해가며 <하나님 나라>와 <새 하늘 새 땅>의 비전을 상실해갔는지를 지적한다.39) 한국교회 역시 “해방 이후 이상한 병에 걸려... 미국에서 배워온 부잣집 자식의 호화판”(4:494, 9:363) 생활을 즐겼다. 한국교회는 “자기중심적인 심리적 도피성”에 갇혀 “사랑 없는 율법주의적 평화”(3:41)에 탐닉하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분담하면서 그와 함께 인간전선에 나가 상실된 인간들에게 봉사하는 길”을 외면해 온 한국교회에 대해, 장공은 “한국교회의 기독교화”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38)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또는 “범우주적 속량(의 공동체)”라는 용어는 장공의 글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라. “문명인과 문화인” (1953년 11월), “존재현상의 저편” (1954년 5월), “성육신” (1955년 12월), “소망의 이유” (1956년 12월), “그리스도인과 자연” (1957년 8월), “새 하늘 새 땅” (1970년 12월), “범우주적 속량의 공동체” (1983년 1월), “우리가 예수를 보고자 하노라” (1983년 10월), “생명운동” (1983년경), “성령찬가” (1983년 7월), “3대 목사와 서남동의 민중신학” (1984년경), “한국 기독교의 과제와 전망” (1984년 6월), “한국교회와 기독학생의 사명” (1984년 7월),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1986년 10월). 39) “전후의 새 역사를 위한 기독교의 사명” (1960년경), 5:107. 장공의 서구문명비판은 다음의 글에 잘 드러난다. “중세기를 지나 근대문명의 건설과 함께 서구의 소위 기독교 국가들은 전 세계 미개발지역에 홍수같이 범람하여 제국주의적인 식민지정책을 감행하였다.……그 독수를 펴서 식민화에 광분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 감추어진 온갖 보화를 파헤쳐 자기들의 금고를 채우고 그 인간들을 노예화하여 그 고혈을 마셨다. 지금의 흑, 백 등 인종차별 문제도 이 식민정책강행과 함께 생겨난 인류의 암인 것이다.……그리하여 서구의 화려 속에 동양과 아주의 해골이 호곡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백주의 음모요, 호사 속의 저주였던 것이다. 이런 근원적인 범과를 저지른 기독교국가 속에 자라난 제 이세가 현대문명이다.”

“한국교회는 교회라는 조직체를 하나님 나라와 일치시킬 정도로 교회주의가 강하다. 교권에 대한 관심도 노골적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 농성하여 세상에 총을 겨누고 있다. 접근하면 쏜다는 식이다. 그리고 게릴라를 세상에 보내어 단 몇 사람씩이라도 잡아다가 교회 안에 옮기는 것이 전도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가(代價)이고 세상이 하나님의 세계여서, 세상 속에 하나님의 거룩이 감취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40)

40) “한국교회의 기독교화” (1971년 1월), 9:364.

장공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활동의 터전이요, 하나님은 이 세계에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지어가는 분으로 보았다. 이 세계를 닫힌 질서의 공간이 아닌 생명으로 가득 찬 <산 우주>로 본 장공은 그 생명현상이 “사랑의 교통망”(7:4)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본다.41) 하나님과 세계, 하나님과 나, 나와 세계 사이에 놓인 <사랑의 교통망>이 하나님의 속량사업이 진행되는 통로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량사업을 “노아의 방주식 교회관”(7:410)으로 이해했던 한국교회는 그 속량의 방향을 마치 “세상에서 나와서 하늘로”(9:239) 가는 것으로 곡해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왜 굳이 하나님이 이 세상 <속으로> 성육신하며, 그리스도가 이 세상 <속에서> 십자가를 지셨단 말인가? 장공은 하나님의 속량활동의 방향이 이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42) 기독교가 역사에 책임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 책임은 “하나님 나라를 현실화”하는 일이다.43)

41) “교류” (1963년 1월), 7:2. 장공은 일하는 하나님에 의해서 우주가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고 본다. “하느님께서는 영원불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마치 박물관에 잘 보존된 국보가 천년만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같이 고정 불변하는 분인 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셔서 시시각각으로 새 사건들을 요리하고 만들어내고 고치시고 하시는 절대적인 주체성을 가지신 분입니다.” 42) “교회와 세계” (1966년 4월), 7:411.
43) “종교와 역사” (1952년 7월 31일), 2:255. “세상에서 사랑의 사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초미의 급무다.……지금 우리 한국의 현실에서 종교가 이「역사」를 옳게 세워 나가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소여의 사명을 다할 「십자군」이 요청된다. 종교는 천당 도피술이 아니다. 신학은「승방염불」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이「역사」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기독교의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교회의 실제과제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과제를 이루어가는 최우선의 지점을 고통이 집중된 민중현실에서 찾는다. 민중의 현실과 아픔에 대한 장공의 공감은 그의 전체 신학과 삶을 물들이는 색조다. 장공은 20대 초반 성 프란시스의 청빈사상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기독교 신앙을 시작하였다. 39세에 쓴 묵상글에서는 존 웨슬레의 경험을 예로 들며, 화려한 담벼락의 아름다운 그림의 배후가 “가난한 처녀의 피”(1:103)라고 말한다. 56년의 글에서는, 기독교가 “노동의 신학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너무나 광범위하게 이교화했다”(4:279)고 비판한다. 70세에 쓴 글에서는 “교회가 자기 충족감에 배부른 중산층의 교회가 되어 노동자층에게는 완전히 이방이 되었다”고 비판하며 결단을 촉구한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병고에 시달리는 자들, 사회에 버림받은 사람들, 율법을 어긴 범죄자들, 윤락한 여성들, 어부와 농부 등등을 찾아 그들의 친구가 된 나사렛 예수의 그 본 모습을 똑바로 다시 봐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우리 교회가 관심의 방향을 이러한 오늘의 시점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심판 앞에서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44)

44) “말씀을 새긴다(2)” (1970년경), 9:43.

그 해 11월 13일에 있었던 전태일 열사의 분신사건을 추모하는 예배에서 본문을 <취임설교, 눅4:16-19>로 잡고 예수의 비전을 노동현실에 비추며 그린다. 81세의 장공은 “미래역사의 주역은 민중”이라고 말하면서, “민중 속으로” 들어갈 것을 촉구한다 (12:458).

장공의 신학에서, 생명과 평화가 깨진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민중현실을 앞에 둔 기독교 신앙이 외쳐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현실화”할 책임과 의무를 느끼는 신앙인이 등장하고, “선에 대한 정열, 의에 대한 갈구가 그 맘속에서 불타는”(3:253) 신앙인이 등장하여, “인간이 하느님 형상이란 것을 믿기에... 인간이 짓밟히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3:253)는 것을 증거하는 일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신앙이 소유한 이 의무는, 칸트에게서처럼 궁극에 관한 객관적 근거를 상실한 근대인의 심리적 최후 보루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원대한 꿈에서 오는 도덕적 행동의 결정체를 수행하는 것이다. 신앙인은 책임을 위해 “공통된 소신에 용감하여 벌떡 일어서서 점호(點呼)를 받으려는 증거하는 인간”(3:85)으로서 동지운동을 해나가야만 한다.45) 그 운동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에 “종말론적 승리가 확인”된다고 바울이 말했던 “고난에의 친교(fellowship of suffering)”다.46)

45) “同志前線” (1953년 7월 19일), 3:85. 46) “항거의 신학” (1975년 1월 10일), 11:169.

장공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건설을 교회의 의무라고 하였다. 이를 위해 “교회가 전투야영이요, 세상이 무대”(4:403)라고 주장한다. 진리행동을 가능케 하는 이 비전은 기독교가 꿈꿔온 가장 궁극적인 이상이다. 그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자, 초대교회가 꿈꾼 <새 하늘 새 땅>의 비전이다.

“[새 하늘 새 땅은] 하느님ㆍ개인ㆍ사회[자연까지 포함]의 삼각형의 세 점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선으로 이어져서 삼각형이라는 하나의 형태로 되고, 그 속에 한 새 세계가 생겨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요 인간 역사의 이상입니다. 개혁교회는 사회와 역사에 책임지고 참여하여, 역사가 하느님 관계에서 바르게 규정되고 바르게 수립되고 바른 방향으로 향상 전진하기를 촉구했습니다. 하느님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하느님의 삼각관계가 서로서로 생명선으로 연결되고 혈관처럼 핏줄이 흘러 돌아야 한다고 증언합니다. 그래서「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가 땅 위에 건립되고 운영되고 성장돼야 한다고 비전을 말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비전은 낡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신 하느님의 설계도 안에 그려진 완성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골인할 때까지!”47)

47) “새 하늘 새 땅” (1970년 12월), 9:349, 351.

[Ⅵ] 결론

장공이 말한 기독교 진리는 <하나님 나라>와 <새 하늘 새 땅>이라는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전통을 역사적 실재에 관한 충실을 통해 복원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이것은 기독교 신학이 품어야 할 궁극적인 이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공이 말했듯이, 기독교 진리는 하나님의 로고스 자체에 있지 않고 역사 속에서 육화된 말씀에 있다. 또 이 육화된 말씀은 나사렛 예수에게서 그치지 않고 역사의 광맥을 타고 계속 분출된다. 그것이 기독교가 <산 종교>라는 의미이다. 장공은 기독교를 가리켜 “한국에서 아직 더 두고 봐야 할 종교”(5:69)라고 했다. 기독교 사상이 역사적 활력을 잃고 근본주의와 교리주의와 교회주의로 침몰해가던 시기에 신학운동을 했던 장공은 기독교 진리가 공허하게 외쳐지지 않고 역사를 통해 꽃피우며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장공의 이 관심사가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한국교회의 비극에 가깝다. 이제 한국교회는 오직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일에서 스스로를 시험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영민.『동무론: 인문연대의 미래형식』. 서울: 한겨레출판, 2008. 김재준.『김재준전집』18권. 오산: 한신대학교출판부,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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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zo, Joseph. Reason, Relativism and God. New York: St. Martin’s, 1986.
Troeltsch. Ernst. “The Place of Christianity Among the World Religions” (1923). In Attitudes towards Other Religions. Ed. Owen C. Thomas. New York: Harper & Row Publishers, 1969.
Whitehead, Alfred North.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Free Press, 1933.

김 희 헌 박사 ․한신대 신학과와 신대원(M.Div.) 졸업
․클레어몬트 대학원 졸업(조직신학, Ph.D.)
․밸리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
․과정사상연구소(클레어몬트) 연구원
․현 한국민중신학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