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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15회] 장공의 교회론을 다시 생각한다 / 김경재 교수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26 09:10
조회
1326

[제15회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 발제 일시 : 2008년 3월 18일(화) 오전 11시 30분 – 오후 12시 30분

長空사상연구목요강좌-제15회/한신대학교신학대학원채플특강-2008학년도1학기

장공의 교회론을 다시 생각한다. - 개혁교회신앙의 올바른 교회론과 교회혁신의 영성과제 -

김경재 명예교수
(한신대학교)

[1] 들어가는 말

강연의 주제는 장공 김재준 목사(1901~1987)의 교회론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 한국 교회의 선교과제와 교회를 섬기려는 목회자와 목사후보생들이 힘써야 할 영성적 과제를 성찰하려는 것이다.

개신교인 신도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 숫자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도덕적․영적 지도력이나 신뢰도에 있어서 한국사회로부터 신랄한 비판과 자성을 촉구하는 권고를 받고 있다.

이러한 한국 개신교 위기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 한국 근대사 개화기에 큰 공헌을 하였고, 한국사회의 희망의 대상이었던 개신교 교회가, 오늘은 왜 침체․멸시․폄훼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한국 교회의 치유와 갱신과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우리는 양심적 기독교 지성인이요 선각자인 장공의 교회론을 깊이 경청하고, 그 치유와 복원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근본이 바로 서면 길이 생긴다.”(本立而道生)고 장공은 말하곤 했다.

장공에 대한 한국 개신교계의 정당한 평가와 자리매김은 아직도 요원하다. 아직도 보수적 개신교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장공신학 사상은 신신학․이단신학․자유주의 신학․인본주의 신학․성경영감부정 신학․교회선교와 부흥에 부적합한 신학이라고 매도한다. 과연 정말 그러한가? 강연자는 그렇게 장공신학을 오해하거나 폄훼하는 사람들에게 장공의 교회론의 정당성과 개혁교회신앙(the Reformed Church Confession)의 본래적 뿌리를 되찾고자 한다.

장공은 지극히 교회를 사랑한 신학자였다. 그는 교회주의자는 아니지만, 약하고 문제점을 그 안에 보듬고 있는 현실교회를 떠나서 추상적인 기독교를 말하는 관념주의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가 ‘회심’을 경험하고 복음에 접한 계기가 ‘승동교회’에서 있었던 부흥사경회이었으며, 성령으로 거듭나 새 사람된 그 감격을 가지고, 20대 유학의 길에 오르기 전 3년 동안 고향 땅 함북 경흥군 창꼴마을에 소학교를 세우고, 주일학교를 시작하여 예배를 인도하였다.

미국유학 시절 한민족을 교회를 통해 복음으로 살려내자는 ‘도원의 결의’를 한 믿음의 삼총사 송창근․한경직․김재준은 약속대로 각각 바울교회(현.성남교회), 베다니교회(현.영락교회), 야고보교회(현.경동교회)를 개척하여 세우고, 제자 강원룡 목사가 안수 받고 유학에서 돌아올 때까지, 10년 동안이나 경동교회 당회장직을 계속했다.1) 한국신학대학 초창기와 장로교 분열의 와중에서, 주일과 수요일 예배마다 교회강단을 지킨다는 것은 교회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1) 『김재준 전집』, 제9권, 100~101쪽, 이하『전집』으로 표기함.『전집』, 제13권, 337~343쪽. 참조.

군사혁명의 폭거에 의해 졸지에 신학대학 학장직을 물러난 후에도, 전경연 교수와 더불어 서울 쌍문동 거주지역에 ‘성북교회’ 개척재단을 쌓았다. 장공이 국내외에서 참여한 1970~80년대 민주화투쟁․인권투쟁․평화통일 운동도 어디까지나 신앙 양심의 명령에 따라, 교회기반을 근거로, 세계교회 유기체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추진해 나갔다.

장공 김재준 목사는 진보적 신학자요, 역사참여의 신학자로서 공헌을 했더라도 교회론이 약하거나 문제라고 오해하는 장공의 교회사랑을 모르는 기장의 지도자들이 많다. 장공신학을 가지고서는 교회부흥 시키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기장의 목사들도 많다. 과연 그런가? 그들이 말하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장공의 교회론이 도움되지 않는다는 판단은 옳은가? 총 18권으로 편집된 『장공전집』안에 들어있는 교회론에 관한 논문, 강연, 설교들 약 80편을 자료로 하여, 그 진위를 밝혀보고, 교회갱신과 부흥을 가능케 하기 위한 영성적 과제를 결론에서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회는 급성장한 한국교회 모습 속에서, 자본주의적 경쟁사회에서 성공한 ‘기독교 종교단체’를 볼 수 있을 뿐, 그 안에서 약동하는 ‘복음의 생동력’ 그리고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교회본질의 핵심이라고 교리로서 말하는 하나의(Una)․거룩한(Sancta)․보편적(Catolica)․사도성(Apostolica)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항의하기 때문이다.2)

2)『전집』, 제16권, 141~144쪽.

[2] 교회의 본질과 그 영광

유학에서 귀국 후, 본격적인 신학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1930년대 이후 소천하는 1980년대 50여 년 동안 장공의 신학적 기본사상에는 심화확장이 있을 뿐 본질적 변경이 없다. 교회론에 있어서도, 교회의 본질과 그 영광이 무엇이냐고 할 때 항상 그의 관점은 다음 세 가지 명제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그 세 가지 근본명제는 평범한 듯 들리지만 매우 근본적(根本的, Radical)인 관점이기에, 그의 교회론에는 참신한 새로움과 신학지성의 논리적 일관성이 있다.

1) 헤브라임즘의 창조신학 전통 : 교회는 하늘씨앗이 역사의 땅에 심겨져 자라가는 신령한 생명나무요 하늘기관이다.

장공의 교회론은 헤브라이즘의 ‘창조신학 전통’의 바른 이해에서부터 온다. 히브리적 ‘창조신학 전통’이란, (i)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으로 선하고 긍정적으로 보며, (ii)하늘(초자연 영역)과 땅(자연적 영역)이라는 피조세계의 두 차원을 구별하기는 하되 분리시키지 않고 통전적으로 이해하며 그 전 영역을 하나님의 구원계약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1945년 한반도 남과 북에 아직 정부가 설립되기 전 해방정국에서, 장공은「기독교의 건국이념」이라는 중요한 강연을 했다. 장공의 연령 45세 되던 해, 그의 창조적 사유의 절정기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한다.

기독교인의 최고사상은 하나님 나라가 인간사회에 여실(如實)히 건설되는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초세간적(超世間的)인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서 그 전부를 의미하는 것인 줄 알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생활(全生活)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이 전사회에 침투되며 사선(死線)을 넘어 미래세계에까지 생생발전(生生發展)하여 대극(大極)의 대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전모(全貌)일 것이다.3)

3) 『전집』, 제1권, 159쪽.

위 인용문장에서 핵심적 어휘는 하나님의 나라, 초세간적인 것과 현세적 전생활,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감화, 죽음을 넘어선 미래 영생, 생생발전하는 생명세계의 완성 등이다. 왜 단순한 영의 세계, 이데아 세계,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고 창조세계 및 역사현실세계 전체구원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장공은 주장하는가? 장공은 몸 없는 구원을 히브리적 사유세계에서 반대하기 때문이다. 몸은 구체적 현실성, 창조의 세계성, 역사적 현실성을 상징하고 총괄하는 성경적 실재관에서 핵심 어휘다. 장공은 1952년에 이렇게 말한다.

히브리 사상에서는 몸 없이는 생명이 구현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몸으로 하지 않고서는 생명 적인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의 부활’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삼아왔던 것입니다.…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기 위해서는 몸으로 속죄제물을 삼아야 했던 것입 니다. 그리고, 몸으로 부활하여 신자격(神子格)을 증시(證示)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합니다. 기도하고 심방합니다. 그러나 마감 한가지 즉 몸으로 그것을 증거하는 삶 자체 가 증시(證示)되지 않고는 새역사 창건의 전선부대가 될 수 없습니다.4)

4) 『전집』, 제2권, 316쪽.

몸을 중시하는 히브리적 창조영성 전통에 서 있는 장공에게서, 역사현실을 간과하거나 신령성을 추구하노라고 하나님 나라와 역사 현실관계를 이차적 관계로 보려는 일체의 영지주의적 기독교, 헬라철학적 기독교에 맞서 성경적이고 히브리적 기독교 신앙관의 기본 주춧돌을 놓는다. 그 중심은 ‘천당’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신「주기도문」중심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장공의 교회론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 역사를 소재로 하여 창조적으로, 영적으로 변형시켜간다는 것, 그 임무를 전담한 교회는 역사 속에 있으나 역사를 넘어서고 역사에 속하지 않는 ’하늘에 속한 기관‘이라는 자각을 수없이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심어지는 것이요, 땅에서 나와서 하늘로 올라가는 바벨 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자연과 역사 안에 있으나, 자연과 역사에서 난 것은 아닙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땅에 심는 것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씨는 땅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어떤 형태 속에 감춰져, 우리 땅에 속한 인간들에게 심어집니다.…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육체화 한 것이 그리스도이십니다 도성육신(道成肉身)이라는것입니다.5)

5) 『전집』, 제4권, 366~367쪽.

장공은 하나님의 나라의 내재적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이해의 기본 출발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늘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랑의 공동체입니다.6)

6) 『전집』, 제18권, 13쪽.

교회는 신용조합이나 주식회사처럼 사람들이 발기하여 조직한 단체와는 다릅니다. 교회가 개인과 사회를 저변으로 하고 서 있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차원, 즉 하나님이라는 정점과의 관련과 거기서 오는 ‘영’이 교회탄생의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사회와 구별되는 점입 니다. 이 ‘영’의 경험은 인간의 심리구조와 기능 이상의 ‘능력’입니다.7)

7) 『전집』, 제16권, 173~174쪽.

거기에 교회의 영광과 비밀과 권능이 있다. 교회의 영광과 권위는 인간적 종교단체로서의 그 크기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뜻 있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교회당을 짓고, 기독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의미 있는 단체를 구성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종교인들이 모인 곳에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거나 성령이 현존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화되고, 살아 계신 성령이 현존하면서 인간을 불러 모으는 곳에 교회가 있다. 그 순서를 바꾸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장공의 주장이다. 그리하여 장공의 신학체계를 가장 짧게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이 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신학적 실존의 역사참여와 교회개혁의 열정이 거기서부터 나온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역사라는 소재에(가루 서말) 하나님 나라라는 속량역사(누룩)를 심어, 결국은 그 소재인 인간역사 전체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 또는 그 감화 아래 있게 하는 ‘하나님 -사람’ 의 운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8)

8) 『전집』, 제4권, 303쪽.

2) 성육신적 영성신학 전통 : 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서 그 형태를 취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장공 교회론의 몸통에 해당하는 신학적 핵심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라는 바울신학적 이해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이론은 은유이면서도 실재이다. 장공 교회론은 지상에서 보이는 건물 본체에 해당하는 ‘그리스도 몸’론과, 그 건축물의 기초공사로서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부분은 장공의 ‘성육신적 영성론’이다.

핵심을 요약한다면, 장공의 교회론은 그의 성육신 신앙의 기조 위에서 교회란 역사 속에 가시적 존재로서 현존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듣는 일반적 성경지식 같지만, 알고 보면 사실 장공 교회론의 새로움과 혁명성은 거기서부터 모두 연유한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하여는 예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이라는 신적차원이 그 모퉁이 돌로 되었 다고 하겠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리스도가 객관적인 실재(Reality)로 되고, 성령의 강림이 인간 성의 내적변혁을 위한 주관적 활력소(Dynamics)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가 탄생한 것 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간의 고안과 설계에서 만들어진 메카니즘이 아니다. ‘영’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신자가 모여서 교회 를 만들었다기보다는, 교회라는 어머니 품에서 신자가 나고 자라는 것이란 말이다.9)

9) 『전집』, 제2권, 254쪽.

위의 인용문에서 장공의 교회론이 지닌 두 가지 면을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한국에 소개된 정통주의 신학의 반문화적․몰역사적․타계지향적․개인영혼 구원론적 신학구조 전체가 그 기초에서부터 비판된다. “예수 믿고 천당가시요!”라는 전도구호가 중요한 기독교 구원론의 일부를 함의하지만, 그러한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과, 십자가 사건과, 부활 후 성령강림사건과, 그리스도 재림신앙 전체를 부정하는 반기독교적인 신앙론이 되고 마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10)

10) 『전집』, 제4권, 487쪽.

둘째, 다시 한번 더 주목해야 할 장공 교회론의 키워드(key word) ‘몸’이라고 하는 글자에 따옴표를 붙여서 강조하는 점이다. ‘몸’의 강조가 히브리적 실재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앞서서 이미 언급했다. 복음이 전파되어나가는 1~2세기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문화권 속에서, 플라톤적 실재관인 ‘이데아와 현상계’라는 이원론적 사고구조가 성경표현에 자주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적 ‘창조영성’을 이겨본 적은 없다.

다시 말해서 ‘몸’이란 단순한 정신․영혼․이데아․관념․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에 대립되는 총괄적 어휘이다. 몸이란 구체적․현실적․형태적․육체적․가시적인 것의 총괄상징이다. 그래서 장공은 ‘몸’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몸’이었고, 교회는 말씀이 나라를 이루어 가는 ‘몸’이다. ‘몸’은 현실의 보이는 실재(實在)다. 이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소위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 진 유일한 천적(天的)인 객체다.…왜 그는(사도 바울)은 완미(完美)하지 못한 현실교회를 이렇게 까지 소중히 여겼을까? 그것은 그래도 이것 밖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영의 사회적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그래도 복음선포를 맡은 것이 이 교회이며 속량역사의 본류(本流)가 여기 있기 때문이 었다.11)

11) 『전집』, 제3권, 342~343쪽.

거듭 강조하거니와 장공은 교회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교회를 냉소하거나 비판만 하고 불평과 불만과 분노만 터트리면서 현실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신도는 참 신도일 수 없다고 본다. 장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에 관심이 없다. 때 묻고, 인간적 혈육의 찌꺼기 잡물들의 흔적이 섞여 있고, 불완전하고, 때론 부도덕한 교회일지라도 그것을 붙들고 참교회 되도록 개혁하는 ‘사랑의 비판’이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교회주의자이다. 장공은 바울서신에 나타난 초대교회들이 결코 이상적인 완전한 교회들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그러한 구체적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고, 교회를 위해서 죽음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말했음을 상기시킨다.

3) 성령론적 개혁신학 전통 : 교회는 성령의 내주와 ‘인간 혁명’ 사건의 연속으로서, 개혁되었고(Reformed) 항상 개혁해 가는(Reforming)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이다.

장공의 교회론을 그 심층적 차원에까지 파고들어가 이해하려면, 그의 신학적 사고의 바탈이 되어 있는 ‘성령론적 개혁신앙의 전통’을 이해해야만 한다. 흔히 일반적 장공신학 평가에서 잘못되는 점이 있다. 장공의 신학은 비판적 지성이 동반되는 개혁적 신학이기 때문에, 성령론적이라기 보다는 인간 지성적면이 강하다고 잘못 판단한다. 개인 인간 내면의 영적 갱신보다는 사회구조적 역사변혁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신학자라고 오해한다. 장공의 남긴 글들, 특히 교회론에 관한 글들을 정독해 보면 장공이 얼마나 성령의 역사와 인간심령의 거듭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교회론에서도 교회는 본질적으로 영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령의 직접적 현존과 역사 하심이 없이는 교회당․조직과 직제․신학과 교리․그리스도론․선교 열심, 그리고 ‘오직 성경만!’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마저도 모두 헛것이 된다고 말하는 성령을 강조하는 신학자이다. 이러한 강조는 장공의 생애 말년으로 갈수록 더 심화된다. 1983년 장공이 캐나다에서 체류한지 10년, 83세가 된 노옹은 친구 박재훈 박사와 함께, 캐나다 북부 ‘알켄킨 국립공원’을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문득 영감에 사로잡혀 ‘성령 찬가’와 ‘새벽 날개 타고’라는 종교시를 수첩에 메모하여 적어 놓았다.12) 그 중에서 ‘성령 찬가’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12) 『전집』, 제17권, 40~54쪽.

그리스도 아는 지식 그리스도 믿는 심정
그런 것은 나에게
물없는 우물
메마른 와디(乾谷,wadi)외다.

성령님, 당신의 재창조 없이
‘새 사람’ 없나이다.
‘새 역사’도 없나이다.
성령의 능력 없이
교회도 선교도 없나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그것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성령의 폭포였습니다.
인간의 범죄성
백두산 천지보다

더 깊은 심연 - 그 밑바닥까지 뒤집는
성령의 폭포였나이다.

2천년 교회사는 잔잔하게 고요하게
흘러 흘러 억억만 인간들
마음밭 축이는
성령의 수로(水路)였나이다.

오, 성령님 은혜 하늘 어머니 사랑
그 무량애(無量愛) 품속에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영원히 영광스레
살으오리다.13)

13) 위와 같은 전집. 47~48쪽.

위의 종교시에서 확인하는 바처럼, 장공의 성령이해는 자연히 그의 신학적 배경이 되는 개혁파신학의 전통 곧 끊임없이 항상 개혁해 가는 신학과 교회론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 영으로 다시 난 생명,…이것은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교회탄생 을 계기로 구체화․현실화 해가고 있습니다.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곧 천국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회개했다 하더라도 그 뿌리에는 여전히 범죄성 탐욕이 배어 있 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 개혁교회는 한 번 개혁한 것으로 정지할 것이 아니라, 계속 개혁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된 교회(Reformed Church)임과 동시에 개혁해 가는 교회 (Reformig Church)인 것입니다. 진행형의 개혁교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 다. 교회의 본성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14)

14) 『전집』, 제17집, 222~224쪽.

이상에서, 우리는 장공의 교회론의 신학적 근본원리 세 가지를 살펴보았다. 정리하면 첫째, 히브리적 창조영성을 다시 복원하면서,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전피조세계를 새롭게 창조적으로 회복하신다는 교회론이다. 둘째, 히브리적 생명관을 복원하여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신약성경의 성육신론에 입각하여 교회란 역사 속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형체를 취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해이다. 셋째, 그의 개혁신앙전통에 서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빼놓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종말의 궁극적 성취가 이를 때까지 땅 위의 교회는 끊임없는 개혁의 대상이자 진행형 격인 실재이므로, 교회우상론을 경계한다는 점이다.

[3] 교회의 본래적 기능(사명)과 한국교회의 개혁과제

장공의 교회 본질론은 구체적인 교회의 기능 혹은 교회의 사명과 불가분리적 관계 속에 있다. 우리는 이제 장공은 교회의 본래적 기능(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의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개혁과제를 성찰하고자 한다.

1) 교회는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혁명시키는 ‘새 인간 조성’의 탯집이라야 한다.

장공은 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감화에 힘입어 이기적이고 혈육적인 옛 인간성을 변화시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원형적으로 나타나 보인 참사람․새사람․자유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켜내는 근원적 ‘인간혁명 사업’에 있다고 갈파한다. 장공은 교회의 일차적 사명으로서 인간혁명사업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교회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정상관계를 수립하는 것으로 그 첫째 목적을 삼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이든지 선한 일이면 모조리 다 하고 싶고 또 해야 하 겠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죄인과 화목하시 는 복음을 전달하며 이 길을 명시하여야 한다.…교회는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님과 화목케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의 내주(內住)로 말미암아 죄성(罪性)과 죄권(罪權)에서 해방되어, 영의 자유를 얻어 고통과 사망의 공포에서 벗어나 영생의 희열과 평화를 얻게 하는 곳이다.15)

15) 『전집』, 제1권, 305쪽.

장공은 교회의 사회참여나, 역사변혁의 임무도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에로의 변화 받는 인간혁명의 근원적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강조하였다. 선한 나무에서 선한 열매가 맺는 법이기 때문이다. 장공은 80여 평생 그의 주위에 사회운동한다는 사람들, 교회정통 신학자들, 교회부흥과 선교사역한다는 유명한 목사들, 교회정치 행정가들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설혹 한번 성령은혜로 개종하고 목회자가 되고 직분 받은 사람이 되었을지라도, 인간성 저 깊은 마음 바닥에 남아있는 죄성과 죄권을 보고 ‘인간혁명’이 제일차적 사명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 일차적 복종대상 혹은 일차적 순명대상을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에게 하도록 강조하지 않고 교묘하게 ‘문자적 성경말씀’에 복종하거나 ‘조직단체 교권’에게 일차적으로 충성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비판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로 하여금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몸을 몸 되게 하는 두뇌(머리)․심장․그리스도의 영적 현존 자체이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게 일차적 순명을 하기보다는 성경․교회운영․교권․정통신학에 일차적 순종을 명하는 형국이다. “예수를 통하여 교회와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보지 않고, 교회를 통하여 예수를 보고 국가와 사회와 세계를 통하여 예수를 보았기 때문에”16) 거기에서부터 기독교의 잘못이 연유한다고 강조한다. ‘성경중심’을 강조하기보다는 ‘예수 맘’ 중심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16) 『전집』, 제16권, 161쪽.

갈릴리 예수의 일차적 복음운동은 철두철미 ‘인간성 재건’의 종교였다고 장공은 강조한다.17) 2,000년 신학사상사와 교회사를 뒤돌아 볼 때, 지나치게 교리옹호와 교회당 건축 등에 열성을 쏟음으로서 인격적․영적․자유로운 복음신앙을 관념적․율법적․노예적 종교로 전락시키지 않았는가 반성하자고 촉구한다. 교회는 “산 인간들의 아름다운 삶의 건축, 인간성의 ‘그리스도적인 재창조’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장공은 역설한다.

17) 『전집』, 제4권, 3쪽.

2) 교회는 본래적 창조질서에서 이탈하고 변질되어 버린 역사적 현실을, 예수 그리스도로서 조형원리(造型原理)로 삼아, 창조적으로 변혁해 가는 역사변혁의 사명을 지닌다.

장공의 교회론에서 역사참여, 역사변혁론은 한국의 신학사 및 교회사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공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유동식은 그의 한국신학사 개관에서, 한국신학의 초석을 놓은 세 사람으로 박형룡, 김재준, 정경옥을 열거했다.18)

18)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한국신학사 서설』, 133~142쪽. 참조.(전망사, 1982)

박형룡을 성서와 복음을 ‘근본주의적 교리적 시각에서 이해’한 분으로 보았고, 정경옥을 ‘자유주의적 실존적 시각에서 이해’한 분으로 평가했으나, 김재준을 ‘진보주의적 역사적 시각에서 이해’한 분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장공의 교회론에서 역사참여적 변혁론은 결코 낙관주의적 역사발전이론이나, 상황윤리적이거나, 세상의 시대정신과의 적절한 타협이나 동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현실 사이의 긴장․대립․갈등․영적 투쟁을 전제한다.

교회와 시대와의 접촉은 부단의 투쟁을 의미한다. 먹느냐 먹히느냐하는 격렬한 싸움이다. 교회가 시대를 정화(淨化)하느냐 시대가 교회를 삼키느냐 하는 투쟁이 계속된다. 그리고 자칫하면 교회 는 그 섭취한 ‘시대’ 때문에 발병(發病)하여 약체화(弱體化)한다.19)

19) 『전집』, 제1권, 307쪽.

위의 인용문장은 오늘의 교회를 성찰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공은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라는 본질적 특성이 근대사회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중산계층을 태반으로 하여 자라났기 때문에, 갈릴리 예수의 복음을 중산계층 중심의 자본주의적 기독교로 변질시킬 태생적 한계와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국가지상주의나 제국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날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적 가치질서에 편승하고 야합하여 덩달아 춤을 추면서 교회의 성공과 실패의 척도로 삼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은 한국교회 안에서, 교회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강변하지만, 갈릴리 예수의 몸을 보지 못하고 힘의 지배․성공지향과 보장․다산과 축복종교․전쟁을 불사하는 제국주의적 정복종교․섬김은커녕 지배종교의 냄새를 맡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공은 성속이원론적 타계주의와 몰역사적 개인구원관에 기초한 소승적 교회관을 극복하고,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형성을 위임받았다는 교회관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교회는 노아 방주나 여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화의 장점인 자유로운 기업정신, 합리적 경영정신, 개인의 자유와 인격의 존엄성, 창의성과 모험정신을 장려하되 물신숭배적 경제제일주의 가치관을 교회는 정화시켜야 한다. ‘수량적 힘 숭배와 업적지상주의적인 공로신앙의 유혹’에서 벗어나 ‘비움과 섬김의 영성’을 근본으로 삼는 하늘 기관이 되도록 교회의 체질을 개선해 가야 한다.

이제는 ‘십자군적 마인드’(the crusading mind)가 아니라 ‘십자가를 짋어지는 마음’(the crusified mind)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교인들이 ‘목적을 이끄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되, 실적을 쌓고 과시하려는 공로주의 신앙행태와 행동주의적 강박관념에 다시 포로가 되지 않도록,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인 ‘복음의 자유인으로서 자발적인 사랑과 봉사의 삶’이라는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한마디 부연할 점은, 교회의 존재 이유로서 세상 나라를 하나님 나라에로 변혁시켜 가는 사명에 대하여 낙관주의는 금물이려니와 패배주의나 비관주의도 금물이다. 특히 요즘 세상에서, 세계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거대한 ‘타이탄니즘’ 곧 정치, 군사․경제․과학․메스컴 등 거대한 현실적 힘들에 압도당하여, 교회가 세상을 변혁시켜간다는 것은 ‘소박한 공상’이 아닌가 의기소침할 수 있다. 그러나, 장공은 이 하나님의 변혁사업은 전우주적 스케일과 긴 시간을 가지고, 나무가 자라듯 서서히 그러나 끈질기게 이루어져 가고야 말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점이다.

3) 개교회주의․교파주의․제도적 교권주의를 탈피하고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교회의 하나됨’과 ‘범우주적 공동체로서’의 넓고 높은 마음을 회복할 것.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장공의 교회론은 철저하게 교회를 ‘하늘기관’, ‘영적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내주(內住)를 경험한 산돌들의 집합체’ 등이 강조되는 초대교회의 원형을 지켜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순절교회의 원형적 교회 모습대로 교회란 “영의 충만한 자유․사랑의 교류․인격의 개방성”을 담보하는 근본모습을 항상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다.20)

20) 『전집』, 제2권, 362쪽.

교회가 공동체로서 존재하고 증언하려면, 일정한 조직․제도․규범․질서가 필요함을 장공은 인정한다. 장공은 조직교회로서의 땅 위의 교회가 겪는 유혹은 두 가지라고 본다. 첫째, 개별교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현존에 충성하는 것과 제도적 조직교회에 충성하는 것과를 곧바로 동일시하여 ‘교회주의’에 빠져버리는 유혹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 흔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고, 희생하면서 작은 소자들을 섬기신 예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교회의 위용이 커지고 강해지고 교인 숫자와 예산 규모가 증대하는 것에 비례하여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현존’이 담보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교회가 유혹 받는 둘째 경우는, 교회가 기관들로서 당회, 노회, 총회 등 치리기관을 구성하여 ‘객관적 권위’를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행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소위 말하는 ‘교권주의’의 유혹이 고개를 들고 만연한다. 동방정교회의 교리중심의 교권주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중심의 교권주의, 개신교의 성경중심의 교권주의가 모두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신하려는 유혹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장공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의 지도원리의 중점은 어떤데 둘 것인가? 교리도 교권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의 주인이시고, 교회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그리스도 자신 을 최고의 권위로 뫼셔야 한다. 그는 죽은 이가 아니다. 살아 계신 ‘인격’이시다. 그의 심정은 똑 똑히 알려져 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분”이시다.21)

21) 『전집』, 제2권, 41쪽.

장공 자신이 경동교회의 당회장을 지내셨고, 기장교단의 총회장을 지내셨기에 조직교회와 기관들의 필요성과 그 탈선유혹을 잘 알고 있었다. 장공은 반성을 촉구하는 신학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당회, 노회, 총회는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를 도맡은 권위기관이라기보다는 사무처리의 행정기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를 더 효과적으로 소통시키고 그리스도인들의 친교와 연대를 강화하게 하는 도움이로서 기능이 본임무라는 것이다.

장로교의 총회와 노회는 교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모이는 것이 아니다. 사무처리와 친교를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리쟁론과 교리재판을 위한 모임이란 것은 역사적으로 보아 진정 한 의미에서 ‘은혜’를 희생시킨데 불과하였으며 따라서 ‘진리’ 자체까지도 상실하였던 것이다.22)

22) 『전집』, 제2권, 42쪽.

한국교회는 교파주의를 극복하여 진정한 교회의 ‘하나임’을 회복해야 하겠다. 장공은 10년 동안 해외 캐나다에서 민주평화운동을 지도하시고, 1984년 귀국하셨다. 귀국길에 오르기 위해 토론토 공항으로 나아가시는 길에서, 장공의 차남 김경용 장로는 아버지께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제 한국에 들어가시면 무슨 일을 제일 하고 싶으세요?” 장공은 즉답을 하셨다. “교회가 하나되게 하는 일에 봉사하고 싶다.” 생애 후반기 근 20년 가까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및 평화통일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오신 부친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아드님으로서는 다소 뜻밖의 말씀이었다고 술회하는 것을 나는 들은바 있다. 그만큼, 장공은 교회일치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강조하였다. 장공은 평생 기독교란 ‘범우주적(汎宇宙的) 사랑의 공동체’라고 강조하였다.

기독교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교회당 수, 교인 수 등의 증가도 축복이겠습니다만, 그리스도 성격의 신도, 그리스도의 씨가 알맹이로 영근 하나 하나 의 신도가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역사는 소수의 창조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합니다.23)

23) 『전집』, 제17권, 280쪽.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합니다만, 그것이 우리의 죄를 심판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속량사업의 완성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결론은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건설이 그래 도 하늘나라가 땅에 임하는 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범우주적이란 말은 모든 자연계까지 기념하는 것입니다.…생명존중, 인간존중, 세계평화가 모두 한 보자기에 싸여 있습니다.24)

24) 『전집』, 제17권, 379쪽.

교회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지향하여 열린세계 속에 새로움을 창조해 가면서, 그리고 역사와 자연을 소재로 하여 옛 것을 변혁해 가면서 현실 한 복판에 있는 초월의 능력으로서 현존한다. 그런데, 세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가치들로 가득차 있다. 특히 다양한 종교들을 교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4)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념들․제도들․문화전통들을 화해시키고 더 높은 차원에서 온전하게 하는 ‘하나님 어머니’의 품인즉, 토착화된 한국교회 형성에 노력할 것.

장공은 칼빈의 말을 자주 인용하면서 교회의 모성적 성격, 양육적 성격, 그리고 포용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칼빈)는 말을 인용하면서 신도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기능을 강조한다.

장공은 유가의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유교적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이며 집안 어른들의 올곧고 지조 있는 선비적 삶의 모습도 보아왔다. 그리고, 장손 집안으로서 조상제사도 모시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그 결과 장공은 유교의 가치관이나 제사제도가 미신이거나 악마의 소산이라고 도저히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장공은 성령의 감동감화를 받아 복음을 받아드리고 기독교 신앙의 영적차원의 깊이와 높이가 얼마나 귀중한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와 무한사랑을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교가 전파해 오기 전에 종교는 모두 악마적 미신종교라고 가르치는 ‘배타주의적 선교신학’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장공은 세계천주교의 20세기 최대 사건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가 타종교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여 배타주의에서 포용주의로 일대전환을 하던 같은 시기에(1965)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기독교 사상지’에 실었는데,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매우 중요한 역사적 문헌이 된다.

동양고전에도 “天生萬民 作之君 作之師”라 하여 어진 임금, 고명한 스승들이 다 하늘의 명을 받들 어 만민을 교도하기 위하여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타종교가 악마의 소산이라는 것보다는 자유하시는 성령의 역사(役事)에 의한 하나님의 단편적인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 각한다. 받는 인간의 정황(情況)이 어스름 달빛처럼 희미한데서 그 나타남이 흐리고 또 단편적인 것으로 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함을 이루었다.25)

25) 『전집』, 제7권, 342쪽.

위와 같은 장공의 타종교(이웃종교)에 대한 신학적 태도를 현대 종교신학자들은 ‘포용주의적 태도’(Inclusive attitude)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를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다 온전한 계시가 드러났다고 보는 입장이다.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과정에서 배타주의적 태도는 금물이다. 동시에 종교혼합주의적 태도도 또한 금물이다. 장공은 기독교 신앙이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우주적 보편종교로서의 더 넓은 포용력과 전통문화를 대하되 겸손․존경․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생활신앙을 통한 복음증언 할 것을 강조하였다.

[4] 맺는 말

에필로그에서 다시 장공의 교회론을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장공의 교회론을 우리 현실교회에 비춰볼 때, 영성수행의 세 가지 면만은 강조되어야 한다. 장공의 교회론은 철저한 삼위일체적 유일신 신앙에 입각하여,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라!”는 20세기 한국 교회의 예언자 정신의 폭발이었다.

첫째, 장공의 교회론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려면, 성경의 창조신앙이 말하는 “내면적 진리의 빛, 생명의 빛과 은혜의 빛 체험”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태초 하나님의 말씀(로고스) 안에는 본래 생명과 진리의 빛이 있었고, 그 말씀이 화육하신 예수 그리스도 독생자 생명 안에도 은혜와 진리와 생명의 빛으로서 충만했다(요 1:3~5, 14).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 8:12)고 하셨다. 이 빛은 물리적 태양 빛도 아니고, 인간의 윤리적 예술적 정신의 빛도 아니다. 물리적 태양 빛이 지어지기도 전에, 하나님이 어둠 속에서 존재를 불러내시고 분리하셨을 때, 맨 처음 생겨난 빛이다.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말하시는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 11:35)는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 한국 기독교는 깊은 산중에 사는 장님 손에 들리운 등불 빛이 꺼진 줄도 모르고, 산길을 걷다가 자기에게 부딪히는 한 사람을 호통 치는 격이다. “멀쩡하게 눈뜬 사람이 장님 손에 들린 등불 빛도 보지 못한단 말이요!”, 어두운 밤 산길에서 부딪힌 사람이 응답하여 말한다: “당신 손에 들리운 등불의 빛이 꺼진지 오랜데 누굴 탓하고 있는거요?”

한국 기독교, 아니 기독교 장로교의 제1차적 선교과제는 밖을 향할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지성소에로 향해야 한다. 그리하면 밖을 향한 선교의 열매가 저절로 이뤄진다. 바울 사도에 의하면 그것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는 것”(고후 4:6), 지금도 여전히 성령을 통하여 비추이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고 돕는데 목회의 최고 비밀과 영광이 있다.

교회의 부흥이 어디에서 오는가? 신도의 마음 중심에, 심령에 이 ‘내면의 빛’을 다시 되찾아 켜도록 하는데서 부터 진정한 부흥이 시작된다. 그 빛이 비취면, 사람의 심령에는 기쁨과 자유와 생명의 충만감이 느껴진다. 삶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창조적 에너지로 그의 생명은 생기를 띄게 된다. 예배는 축제가 되어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고, 성도의 교제는 ‘하늘의 신령한 빛을 다같이 경험한 자들의 동질감’으로 밝고 맑아진다.  

둘째,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지 못하게 하고, 새로운 영성운동을 가로막고 병들게 하는 가장 근본적 원인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단순성과 순일(純一)한 청빈의 영성을 상실하고, 복잡성과 탐심에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저 유명한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비유’(눅 10:38~42)에서 핵심은 마르다는 이 세상에 속한 속된 일에 관심을 가졌고, 마리아는 신령한 영적 일에 관심을 가졌다는 잘못된 성·속 이분법적 해석을 ‘마이스터 엑하르트’는 올바르게 지적하고 바로 해석해 주었다. 그 비유의 본질은 관심하고 종사하는 일의 성스럽고 속된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어떤 주제에 대하여 갖는 잡다성과 단순성에 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신앙에서 하나님은 우리들의 심령이 단순해지고 순수해져서, 잡것이 섞이지 않기를 원하신다.

현대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많은 일들을 수행함으로서 구원을 담보 받으려는 ‘현대판 공로주의 신앙’에 은연중 물들어 있다. 심령의 단순성과 잡것이 섞이지 않는 순일성(純一性)을 잃어버렸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설교를 듣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이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니라”(행 17:25).

탐심 중에 가장 교묘하고 무서운 탐심은 ‘영적 탐심’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하여 사실은 자기의 탐심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 사업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마이스터 엑하르트(1260~1327)는 사람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경험하려면 초탈(超脫, Abgeschiedenheit)과 초연(超然, Gelassenheit)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잡다한 인위적인 소유욕, 권력욕, 명예욕에서 벗어나서 순수한 맨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빈손 들고 겸손하게 기다림으로서 혈육적 인간성을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것과 같은 뜻이다. 한국 기독교가 죽고 사는 문제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문둥병처럼 그 영혼이 탐욕과 권력욕과 명예욕으로 가득한 지도계층(장로, 목사, 신학자 등)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첨 부름 받을 때의 ‘첫 사랑’으로 돌아가서 무의도인(無衣道人), 무위진인(無位眞人)의 맨 사람, 씨알로 되돌아갈 수 있겠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셋째, 새 시대에 교회를 개혁해 갈 영성가는 생명의 지속과 연대성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소외된 생명체들에 대한 깊은 동체감, 책임감을 느끼면서, 생태학적 윤리의식을 지녀야 한다.

지구라고 부르는 ‘온 생명체 한 몸’ 안에서 생물학적인 분류상의 인류 종은 ‘중추신경계’ 기능을 감당하는 위치에 도달했다.(장회익-온생명론).

앙리 베르그송의 말대로, 생명은 물리적 기계가 아니다. 생명은 긴 생명의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 이르고 있으며, 문화-역사적 선인들의 피와 땀을 힘입어 생존하고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대리적 삶’이다. 각자의 생명은 각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전체의 것이요, 가문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 생명 속에 그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거짓 없는 믿음의 유산’이 이어져 내려가고 있음을 보았다. 인류는 혈연적, 정신적, 영성적으로 관계에서 ‘하나의 몸’(오메가 그리스도)을 형성해 가고 있음을 떼이야르 샤르뎅은 본다.

생명은 반복하면서도 그 정신에서 그리고 영성에서 자라고 있으며(함석헌), 나선형의 운동을 하면서 창조적 전진을 ‘점진적이고도 누적적으로’ 하고 있다. 한 사람의 개체 생명이 영원과 무한의 시공 속에서 결정적 ‘이어 달리기’의 바통을 손에 쥐고 달리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그렇게 ‘생명 바통 터치’를 바르게 잘 감당하면서 밀가루 반죽 속에 창조적 효모가 들어가 밀가루 반죽 전체를 서서히 변화시켜 가듯이, 세계는 그리스도의 맘을 조형원리(김재준:造型原理)로 하여 변화되어 가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괘도이외 다른 길이 없음을 우리 스스로 확신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열매는 당장 성취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그 열매를 거두지 못할지라도, 복음의 알곡을 역사 밭과 사람 심령 밭에 바르게 뿌리면 반드시 그 열매를 맺고 말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시골교회나 빈민가에서 교인 십여 명을 모시며 목회를 할지라도, 그 믿음 놓지 않으면 우리 일생은 아무 후회 없는 값진 삶이 될 것이고, 그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는 비참한 직업종교인으로 전락 할 것이다.

김경재 교수  

학력
[1964] 한국신학대학 신학과 졸업(신학사)

[1969]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
[1975] 미국 University of Dubuque 신대원 졸업(S.T.M)
[1981]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문학석사)
[1987] 미국 Claremont Graduate School 박사과정 수료
[1994] 화란 Utrecht University 박사학위 취득(Ph.D)

경력
[1970~2005] 한신대전임교원근무·조교(1970),전임강사(1971), 조교수(1973), 부교수(1977), 정교수(1983)

[1992~1999] 경동교회 협동목사
[1998~1999] 한국문화신학회 회장
[1999~2004] (사)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이사
[1999~2004] (사)함석헌 기념사업회 이사,『씨의 소리』편집위원
[2000~2004] (재)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비상근)
[2003~2005]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 소장 겸 학술원장
[2006~현재] 삭개오 작은 교회 전도목사
[2006~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저서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2005)

『울타리를 넘어서』(2005)
『이름없는 하느님』(2002)
『김재준 평전 - 성육신 신앙과 대승기독교』(2001)
『숨밭 김경재의 이야기 신학-영과 진리 안에서』(1999)
『그리스도교 신앙과 영성』(1997)
『문화신학 담론』(1997)
『그리스도교와 문화』김경재外 13인 (1994)
ChristianityandtheEncounterofAsianReligions (1994)
『해석학과 종교신학-복음과 한국종교와의 만남』(1994)
『중심에 서 있는 생명나무』(1994) 그 외 다수

상벌
[2004] 교육공로 대통령 표창

[2005] 교육공로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

공적사항
학술진흥재단 연구프로젝트(KRE-2002-073-AM1029) -

「한국 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3년간 연구 책임자로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