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인수봉로 159
02-2125-0162
changgong@hs.ac.kr

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9회] 장공 김재준 신학사상의 유교적 요소 / 한문덕 전도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8 11:17
조회
1504

[제9 長空사상연구 목요강좌발제
일시 : 2006년 4월 6(오후 5-7

장공 김재준 신학사상의 유교적 요소
- 사서 인용을 중심으로

한문덕 전도사
(향린교회)

[1] 들어가는 말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기며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긴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나 바울의 신학을 연구할 때 과연 바울의 이러한 자기 고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그리스도를 인하여 모든 것을 오물로 여긴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 안에는 유대인으로서의 율법 이해와 또 헬라 철학에 대한 지식이 활용되고 녹아 있다.

장공 김재준은 어린 시절 가정종교로서 유교인으로 살다가1), 21세에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다.2) 그리고 이후로 자신의 그리스도인됨을 스스로 단 한번도 포기함 없이 인생을 살았으며3)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한 글에서 자신의 종교체험에 대해 바로 위의 바울의 빌립보서 3장 8절의 한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4) 그러나 김재준 목사가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스도인으로 삼고 있다고 해서 21세 이전의 삶이 사라질 수는 없다. 우선 김재준 목사는 스스로 그의 전집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교적 성향에 대해 언급한다.5) 그의 제자들은 그의 신학과 삶에서 유교적 요소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6) 또한 해석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삶 자체는 해석학적 이해과정 속에 있고 장공의 그리스도교 이해도 그 이전의 장공의 삶을 구성하던 전이해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 이전의 유교적 삶은 장공의 신학과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1) 전집 16권 288. 2) 전집 13권 48. 전집 12권 245.
3) 전집 12권 226.
4) 전집 12권 246. "나는 서울 승동교회에서 열린 김익두 목사님 부흥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결단했다. 그 순간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경험했다. 지금까지의 유교적인 윤리와 규례에서 해방했다. "분토 같이 버렸노라" 한 "바울"의 말이 영락 없는 "내" 말로 된다."
5) 전집 13권 1-2.
6) 김경재 외, "장공 김재준의 생애와 신학" 『신학사상 50호』(1981/가을), 533-536에서 주재용, 유동식, 장일조, 김경재 등은 장공 김재준의 여러 면모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동양경전을 읽고 배운 것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밝힌다; 이밖에 김경재, 『김재준 평전』, 15-18. 참조.

따라서 본 논문은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에 녹아 들어있는 유교적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김재준의 저작에 인용되는 유교경전-특히 유교의 四書三經을 중심으로-을 분석하여 그가 동양 종교인 유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2] 김재준의 유교 이해

2. 1. 전통종교를 바라보는 시각

장공 김재준은 종교를 인류의 정신운동의 왕좌를 점령하는 것7)으로 인간문명을 이끌어가는 최고 중요한 가치8)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고상한 인간은 고등종교에 무심할 수 없으며 한 국가의 隆廢尊卑도 종교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생각했다.9) 따라서 古神道, 유교, 불교,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를 축복받은 나라라고 생각했으며10), 종교와 문화면에서 종주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11) 그는 또한 한국의 전통종교가 이미 한국인의 체질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전형을 조성하고 있음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12) 따라서 김재준은 한국재래 종교들과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었으며 전통종교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하여도 대체로 일관되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7) 『전집』 제1권, 237. 8) 『전집』 제12권, 248.
9) 『전집』 제1권, 152.
10) 『전집』 제18권, 474.
11) 『전집』 제17권, 291.
12) 『전집』 제7권, 341.

종교간의 대화 문제에 있어서 각기 다른 입장들을 분류하면 크게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13) 장공 김재준의 입장은 크게 볼 때 포괄주의적 입장14)에 가깝다. 장공은 타종교를 악마의 소산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하나님의 단편적인 말씀으로 보고 있다.15) 동양의 하늘 개념과 신의 개념에 대해서도 배타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희미하고 몽롱하여 명시적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리스도교와는 다름을 말한다.16) 이렇게 희미하고 몽롱한 하나님 인식을 가진 동양은 그리스도교의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고 장공은 생각한다. 왜냐하면 흐리고 단편적인 동양의 하나님 이해는 그리스도에게서만이 완전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준은 유교의 핵심 교리와 불교의 핵심 교리도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17) 즉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이 유교의 인을 완성하고, 예수의 영생이 불교의 생로병사의 인생고를 해결한다18)고 보고 있는 것이다.

13) 종교전통간의 대화의 유형에 대한 개괄적 소개로는 한인철, 『종교다원주의의 유형』 (서울: 한국기독교연구소, 2000), 18-57을 참조하라. 14) 장공 자신은 이 포괄주의적 입장을 “포괄과 성취”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包括과 成就라고 보는 태도다. 이것은 排他(exclusiveness)가 아니라 包攝(inclusiveness)을 중심으로 하고 생각하려는 자세다. 他宗敎에도 많은 斷片的인 眞理가 있다. 그러나 완전한 것이 못되며 最善의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것을 완성한다. 그들이 기독교에 들어 오는 때 「斷絶」이 아니라 「成就」를 體顯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내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알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노라」(마 4:17)한 것을 舊約에 뿐만 아니라 모든 他宗敎에도 適用하려는 것이다. 이런 立場에서라면 他宗敎와 마음 놓고 對話할 수 있을 것이며 서로 全的인 對立 意識을 止揚하고 平心坦懷로 토론을 전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점, 공통되는 점 등을 있는 그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전집』 제7권, 338.
15) 『전집』 제7권, 341-342.
16) 『전집』 제8권, 266, 『전집』 제5권, 244.
17) 『전집』 제18권, 437.
18) 『전집』 제3권, 90.

김경재는 장공 김재준이 리챠드 니버의 문화변혁설의 입장에서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 모델을 그의 문화신학의 입장으로 천명하였다고 보면서 그러한 그의 종교-문화신학에 대한 입장을 발효모델로 설정한다.19) 발효모델이란 복음서의 “밀가루 반죽 비유”(마 13:33; 눅 13:20-21)를 성서적 전거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효모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는 피선교국의 문화적 사회적 현실이라는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김재준은 역사의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인간역사라는 소재에(가루서말)에 하나님 나라라는 속량역사(누룩)을 심어 결국은 그 소재인 인간역사 전체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 또는 그 감화 아래 있게 하는 “하나님-사람”의 운동이라고 말하면서 한국의 역사를 그리스교의 소재로 받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한국 역사 안에 그리스도의 속량역사를 조성하며, 한국역사를 그리스도의 천국역사로 변질시키는 업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기에 주어진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각 부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 조형이념이 되며 “魂”이 되게 하는 데 책임적으로 진력해야 한다고20) 말한다.

19)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신학』(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41, 19972), 200-209. 20) 『전집』 제4권, 303-304.

이러한 김재준의 문화변혁설의 입장은 밀가루로 대변되는 존재하는 모든 현실과 피조물, 문명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 긍정적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역사현실과 하나님 나라를 동일시 할 수는 없으나 폐기해야할 것이 아닌 구원하고 완성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김경재는 말한다.21)

21) 김경재, op. cit., 205.

장공 김재준의 타종교에 대한 입장은 대체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타종교와 한국의 재래종교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으나, 또 다른 곳에서는 그의 입장이 좀 더 개방적이고 상호변혁의 가능성까지도 생각하는 모습이 나타난다.22) 이러한 개방적인 이해로의 변화는 우선 인간의 언어의 한계를 명확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無”라는 짤막한 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22) 『전집』 제12권 243에서 김재준은 유동식 교수의 글 “민속종교와 한국문화”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외래종교인 불교, 유교, 도교, 또는 토산 종교인 동학도 “무교”란 토양에 뿌려진 “씨”기 때문에 그 흙의 영향에서 온전히 탈피할 수 없었다는 것과 기독교에서도 그 영양소를 건설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선교의 지혜라는 방향에서 많은 시사를 던지고 있다.” 즉 기독교도 샤머니즘를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샤머니즘의 장점(영양소)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상호변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무”는 깊고 크다. “무”가 깊다, 크다 하는 것 자체가 “언어”의 모순일 것이로되, “상대”로 밖에 나타내지 못하는 “말”의 결함과 모순을 넘어 뛰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종교성”이 이런 표현을 불가피하게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무”에서 출발했고 “노자”도 “무”가 만유의 근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수(數)의 계산을 넘은 “절대”기 때문에 Define할 수 없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를 하나님으로 대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객관화 할 수 없고 Define할 수 없다.23)(밑줄은 필자의 것임)

23) 『전집』 제15권 20.

김재준은 인간의 언어가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을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하나님도 결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은 아니며 그런 차원에서 이성적인 계산을 넘어서는 절대에 대한 여러 언어와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장공이 “수(數)의 계산”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각기 다른 종교전통의 의례와 교리, 경전 등도 포함가능하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궁극적 실재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어떤 의례와 교리와 경전도 무의 깊이와 넓이, 혹은 하나님의 깊이와 넓이와 동일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 종교전통들의 역사와 의례와 교리와 경전들은 하나의 실재를 가리키는 여러 손가락이라고 볼 수 있고 그 손가락들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궁극적 실재를 이해함에 있어서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것은 포괄주의를 넘어서 종교 다원주의적 사유에까지 이르게 한다. 장공 김재준은 또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의 상호변혁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에서 굳어진 유일신론은 다채로운 자연을 사막화했다. 그와 아울러 자기자신도 경화한다. 동양 시인들에게서 자연의 산 맥박을 몸으로 받아누릴 아름다운 “시정”이 아쉽달까?24)

24) Ibid., 116.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라는 고시조가 있지만 산도 물도 절로 되어 절로 있고 절로 살다 오랜후에는 절로 죽는다는 뜻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건 “자연”이고 “인공”이 아니라는 것도 되고 자연 자체가 자존물이란 뜻도 된다. 어쨌든 동양인으로서는 기독교신학의 창조주 신앙에까지 밀고 올라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런데까지 “신학”을 들고 좌충우돌할 “동키호테”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건 “시”의 세계기 때문이다.25)

25) 『전집』 제15권, 118.

위의 글에서 김재준은 서양그리스도교 신학의 완고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예술적 감성 가득한 동양의 흥취가 그리스도교에 없음을 아쉬워하고 언어적 표현으로 신을 드러내는 방식보다 몸으로 자연의 산 맥박을 바로 경험하는 동양의 풍류와 시의 세계를 긍정하고 있다. 이리하여 김재준은 도교와 그리스도교, 동과 서의 문화형, 그리스도교와 동양의 도의 풍류를 한 몸에 통전시키는 진인(眞人)을 기대하기도 한다.

도교와 기독교를 배합시켜 아들을 낳는다면 어떤 “형”의 합성자가 생길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26)

26) Ibid., 125.

그러니까 뭔가 “동”과 “서” 모든 문화형을 한 “몸”에 화신(化身)시킨 종합된 인간형인 “진인”(眞人)이 형성될 수는 없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27)

27) Ibid., 132.

기독교신앙과 동양의 도와 풍류가 그 몸에 하나되신 사기 없는 인격이 그립습니다.28)

28) Ibid., 167.

이러한 사유는 김경재가 말하고 있는 여러 모델 중에서 발효모델보다는 오히려 접목모델29)이나 합류모델30)에 가깝다. 접목모델은 살아 있는 두 생명체간의 유기체적 결합을 통하여 두 생명체가 지닌 일정한 특성과 공헌을 통전하여 새로운 생명현상을 산출한다는 것이고, 합류모델은 흐르고 있는 두 개의 강줄기가 어느 지점에서 합해져서 더 풍성한 물세를 가지고 흐르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들은 모두 기독교와 타종교, 동과 서라고 하는 각각 주체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고 단점을 보완하는 더 성숙하고 위대한 새로운 탄생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한쪽을 변혁의 주체로 보고, 다른 한쪽을 변혁의 객체로 보았던 발효모델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9) 김경재, op. cit., 209-216. 30) 김경재, ibid., 216-223.

한인철은 다원주의를 크게 공통기반의 중심을 둔 다원주의와 차이에 기반을 둔 다원주의로 나누고 공통기반의 중심을 둔 다원주의를 신 중심주의와 구원중심주의의 다원주의로 분류한다.31) 구원중심주의적 다원주의의 대표자인 폴 니터는 신 중심주의적 다원주의가 유신론적 종교인 그리스도교 편향적 성격과 부르주아적이라는 맹점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즉 신이라는 공통기반을 말하는 것 자체가 유신론적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교적 사유라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신을 공통기반으로 전제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이고 이론적으로 흐르기에 현실문제의 해결보다 부르주아적인 탁상공론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폴 니터는 공통기반을 내세우기보다 가난한 자와 비인간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공통목표를 내세우면서, 이론 중심의 신 중심적 다원주의가 실천 중심이면서 구원중심적인 다원주의로 변화해야함을 역설하였다.32) 아래의 김재준의 글은 이러한 구원중심주의적 다원주의의 성향을 보인다.

31) 한인철, op. cit., 13. 32) 한인철, ibid., 135-160.

종교는 각기 그 형성 과정에서 특이한 전통과 예식과 건물 양식과 율례(律例)를 갖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별스럽게 보이지만, 그 원점은 하나입니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인(), 천도교의 인내천 모두가 인간 존중과 인간 사랑과 인간 구원과 진리 탐구 등입니다. 소위 고등 종교에는 높은 윤리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그 높은 윤리를 생활화하는 길에는 다소 다른 데가 있지만, 그것 때문에 종교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과민한 시대는 지났습니다. 한국은 종교적으로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무아 해탈의 불교, 높은 윤리의 유교, 사랑의 기독교, 인내천의 천도교, 그 밖에 원시 종교의 형태를 가진 여러 유사 종교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넓은 사랑만 생동한다면 모두가 한 몸으로 통할 것입니다. 모두가 별스럽게 보이지 않고 사랑스럽게 보일 것입니다.33)(밑줄은 필자의 것임)

33) 『전집』 제18권, 474.

김재준은 위의 글에서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 유교의 인, 천도교의 인내천이라는 각 종교의 핵심적인 교리가 모두 인간 존중, 인간 사랑, 인간 구원과 진리 탐구라는 하나의 원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각 종교는 인간을 구원하는 데에 공통 목표가 있고 그 실천방안이 서로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서로 만나 사랑스럽게 보일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위 글에서는 기독교의 사랑만으로 인간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유교나 불교, 천도교의 핵심 교리들이 불완전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2. 2. 유교를 바라보는 시각

타종교에 대한 장공의 이해가 포괄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때때로 종교간 상호변혁과 성숙을 인정하는 종교다원적 모습이 드러남을 위에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타종교에 대한 이해는 유교에 대한 장공에 시각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장공이 유교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장공은 1968년 3월 정동교회에서 “한국 기독교인의 인간상”이라는 제목으로 감리교 선교 83주년 기념강연을 한다. 그 강연은 이조말의 한국인의 일반의 인간상으로부터 한국 신교 초기의 기독교의 인간상, 해방 후 현재까지의 인간상을 다루는데 거기에 유교의 일반적 요소와 그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그의 강연의 일부이다.

유교는 원래 중국 고대의 민족적 종교의 전승이었다. 天에 제사하고 조상에 제사하고 하는 종교적 제사 행위가 주조였다. 후에도 天神, 地神, 人鬼라 하여 神靈의 세계를 상대로 한 제사행위를 주관으로 했다. 그러나 공자는 이것을 世俗化했다. 말하자면 모든 人間들의 日常生活에 침투시켜 윤리 도덕의 생활행위로 하게 한 것이었다. 이 유교가 宋朝에 와서 이른바 「新儒敎」로 再興하여 그것이 우리 한국에 들어와 李朝의 국교가 되었다. 원시유교에서는 종교적 정열로 을 공경하고 도덕으로 모든 생활을 갱신하는데 전력을 기울였었으나 신유교에서는, 哲學的으로 풀이하여 性理의 테두리안에 유폐시키고 도덕도 번쇄한 예절과 형식주의를 중심으로 다루려했다. 이런 일종의 「유교적 바리새이즘」이 우리 나라의 국교로 된 것이었다. 그런 이것이 철저하게 世俗化한 것으로는 우리 나라가 제일이라 한다.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것으로서는 孔子와 그 문도에 대한 춘추제전과 각 가정에서의 조상에 대한 제사행위 정도였으나 정치에 있어서도 철저한 유교주의가 시행되었고 교육이 그러했고 민족의 풍습과 예절이 또한 유교인의 지도하에 있었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의 안팎 생활 전부에 속속들이 침투한 것이 유교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의 「세속화」란 말에 놀랄 것이 없다. 우리는 이미 유교시대에 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가 결국 나라에 쇠망을 가져온 것은 그것이 문자주의, 고정주의, 말하자면 朱夫子 정통주의로 化石이 되어 생명의 가변성과 성장공작을 폐쇄시켜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질식사」를 가져 온 것이었다.34)(밑줄은 필자의 것임)

34) 『전집』 제8권, 216.

위의 인용에서 장공의 유교이해를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유교를 하나의 종교로 보는 점이다. 장공은 유교를 원래 중국 고대의 민족적 종교의 전승이라고 보면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고, 조상에 제사하는 종교적 제사 행위가 그 주조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곳에서도 유교는 중국에서의 “제전”을 기반으로 삼고 그 위에 인․의․예․지․신 등 윤리교훈을 짜 넣은 것이며 공자의 “예”도 주로 제전적인 바탕이었다35)고 말한다. 이러한 종교적 특징은 한국의 유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공자와 그의 문도들에 대한 제사와 각 가정에서의 조상에 대한 제사행위가 시행되었다. 유교의 이러한 종교적 특성을 무시하고 흔히 유교를 인간의 윤리만을 다루는 도덕체계요 철학체계라고 보는 것은 단견일 것이다. 가지노부유키(加地伸行)는 유교의 심층에는 조상제사라는 종교성이 도사리고 있고 그 표층에 도덕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종교성이 도덕성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종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생관이며 유교도 선조 제사와 선조 공양, 장례문화의 초혼 등에서 보여주는 사생관은 명백하게 종교적임을 말하고 있다. 즉 죽음의 문제를 불교는 윤회와 해탈로, 기독교는 구원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유교도 제사행위를 통하여 혼을 불러내고 효를 통하여 생명이 끝나지 않고 연속된다는 자각을 함으로써 해결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효”의 문제도 단순한 도덕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지지 않는다. 즉 생명의 연속성의 자각을 통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적인 차원에까지 닿아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의 삼국에서 오늘까지 유교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현실사회를 지배하는 도덕성의 밑바탕에 종교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36)

35) 『전집』 제16권, 128. 36) 가지노부유키 지음, 이근우 옮김, 『침묵의 종교 유교』(서울: 도서출판경당, 2003), 115-137.

둘째, 유교의 종교성을 인간의 일상생활에 침투시켜 윤리 도덕의 생활행위로 化 하게 한 공자의 역할이다. 공자는 기이한 것들을 말하지 않았고37) 죽음보다는 삶에 귀신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보다는 인간현실이라고 하는 세상의 문제에 더 관심을 두었다.38) 장공은 공자로 인해 유교는 인간 대 인간 관계의 윤리를 기준으로 삼았으며39) 현세에서의 道德生活의 완성으로 죽음을 무의미화하려 한다40)고 보았다. 공자와 맹자만큼 도덕적으로 뛰어나게 고상한 원칙을 제공한 사람도 없다고 보고 있다.41)

37) “子不語 怪, 力, 亂, 神.” 『論語』, 「述而」20. 38) “季路問 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論語』, 「季路」11.
39) 『전집』 제10권, 1.
40) 『전집』 제5권, 373.
41) 『전집』 제1권, 317.

셋째, 장공 김재준은 원시유교와 신유교를 구별하고 있으며 원시유교는 좀 더 종교적 정열이 있었고, 신유교는 철학적이었음을 파악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유입된 유교는 원시유교보다 신유교이었음을 알고 있다. 신유교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개념을 性理라는 철학적 개념 안에 유폐시키고 번쇄한 예절과 형식주의가 화석이 되어 생명의 활발한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이었다. 신유교는 형이상학적 이론에 대한 논쟁과 내재된 리의 참된 발현을 위한 예의 학습과 실행에 있어서 번쇄한 논쟁과 논의로 인해 허무주의와 형식주의에 물들기 쉬운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약점이 조선후기의 유학자들의 권력욕과 맞물리면서 공리공론을 일삼고 파쟁을 형성하여 소모적 논쟁으로 흘러갔다고 보는 것이 장공의 입장이다.42)

42) 『전집』 제11권, 135; 『전집』 제12권, 220; 『전집』 제12권, 341; 『전집』 제12권, 468.

장공이 생각하는 유교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복고사상이다. 장공은 “한국의 재래종교와 그리스도”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儒敎는 中國人의 기질을 말하는 現世的인 生活正路를 가르치려는 敎訓集이다. 그것은 철저한 「復古」思想이어서 孔子의 소위 「好古敏而求之者」로라는 것이 그것을 잘 말하고 있다. 그것은 堯舜禹湯 文武 周公의 「德治」를 유토피아로 여기고 언제나 그 秩序에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과거의 「스탠다드」로 현재를 심판한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그것은 옛 道에서 떠났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다시 옛 道에 돌이켜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儒敎의 治下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創造」라든가 革命이란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43)

43) 『전집』 제4권, 505.

위의 인용에서 김재준이 말하는 핵심은 현세적인 생활의 정로를 가르치는 유교는 그 기준을 과거에 두고 그것으로 현재를 심판하기 때문에 유교의 치하에서는 창조나 혁명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유교가 과거에 기준을 두고 있다는 김재준의 평가는 정당하다. 공자가 “주는 두 대(代)를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문화가 찬란하다. 나는 주를 따르겠다”44)고 말한 것이나 꿈에서 주공을 보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 모습45) 등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나라를 본으로 삼아 과거부터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친숙한 전통문화를 복원하는 한편 시대가 변함에 따라 요구되는 새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늘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때 고전을 인용하면서도 모든 경우를 해석하고 변형시키며 재구성했던 것이다. 특별히 하나라나 상나라가 아니라 주나라가 그의 모델이 된 것은 공자가 두 왕조의 법도와 제도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46) 전통이 와해된 상황에서 주나라를 잇는 노나라 출신인 공자는 주나라 문물에 대한 자신의 경험적 기억과 『書經』과 『詩經』을 정리하면서 얻은 좋은 사회, 정치, 문화적 질서에 대한 개념들이 혼합하여 과거를 이상화한 것이다.47) 경험에 근거한 좋은 기억들과 경전에서 발견된 이미 성취를 맛본 규범적 질서의 관념이 결합될 때, 이것이 모든 것에 대한 전포괄적 이상화로 귀결되는 것은 예상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공자는 “옛 것을 전할 뿐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는다”48)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44)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論語』, 「八佾」14. 45) “子曰 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論語』, 「述而」5.
46) “子曰 吾說夏禮, 杞不足徵也. 吾學殷禮, 有宋存焉. 吾學周禮, 今用之, 吾從周.” 『中庸』28.
47) 벤자민 슈워츠 지음, 나성 옮김,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서울: 살림, 2004), 102.
48) “述而不作.” 『論語』, 「述而」1.

김재준은 이러한 복고주의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나 혁명은 있을 수 없다고 평가하지만 전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석과 적용의 새로움은 얼마든지 이전 것보다 나은 것을 창조하거나 현실을 변혁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실제적으로 공자가 구제도 속에서 발견한 것을 가지고 구질서의 부흥과 현실의 개혁을 꾀하였을 때 많은 평민들에게 유용했고 그것으로 중국의 사회는 변혁을 이루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49) 그러나 김재준이 말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나 변혁은 더 깊게 논의 될 필요성이 있다. 아래의 글에서 김재준은 이런 창조와 변혁을 역사와 연결시키면서 역사는 인격적이어야 하고 인격적인 역사는 미래의 소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49) 소공권 지음, 최명․손문호 역, 『중국정치사상사』(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85-86.

우선 동양에 있어서 중국본래의 사상인 유교로 볼지라도 그것이 몹시 현세적 인륜적이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적」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이들은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야 朝聞道 夕死可也」라고 할 만치 「道」를 존중하였다.

그 「도」란 것은 인간생활의 표준이요 또 힘이었다. 천자는 이 「도」를 하늘에서 받아 인간에 준행시킬 책임자, 혹은 중보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도」는 영원 불변하여 세파를 초월한 것이니만치 역사도 초월해 있다. 「도」는 역사의 현실에서 그것을 소재로 생생창조해 나가는 적극적인 존재가 아니라, 과거에 일단 제시된 전형으로써 요, 순, 우, 탕, 문무, 주공에 의하여 구현된 것이라 하였다. 공자도 그런 의미에서 「생이지지자」가 아니라 「好古 敏而 求之者」라고 고백하고 있다. 유교가 역사와 관계하고 있다면 그 역사는 과거를 영화한 역사로써 언제나 옛날을 회고하는 기록이요 현재의 미래를 활발하게 창조하기 위한 엄연한 인격적인 결단과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다. 그러나 미래의 소망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요 미래의 창조는 아니다. 중국의 교육사도 역시 이런 전형의 유지이거나 기성질서의 회복 혹은 안정에만 집중되었으며 많은 왕조가 흥망을 거듭하였으나 그것은 언제나 기성 질서 재정돈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 성립될 수 없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격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50)(밑줄은 필자의 것임)

50) 『전집』 제2권, 246-247.

김재준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는 인격적인 결단과 그 결단에 따른 행동에서 오는 것이며 그 행동과 결단이 미래를 활발하게 창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김재준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진 것에 대한 회고와 그것의 회복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재정돈을 넘어설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김재준이 이해하는 유교의 면모 중 살펴야 할 또 하나는 유교의 가족윤리에 대한 강조이다. 유교는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를 근본으로 하는 종교51)라고 김재준은 말한다. 유교에서 孝는 仁을 행하는 또는 仁 그 자체의 근본이 된다.52) 공자는 덕을 닦는 일은 가족 안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진정한 배움이란 먼저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고 말은 신중히 하여 신용이 있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특히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문자적 혹은 지식적인 습득은 그 다음에 할 일이라고 공자는 말한다.53) 仁을 행하는 일이 인간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처음의 인간관계는 가족일 수밖에 없다. 즉 효로부터 시작해서 점차 형제와 이웃 모든 관계로 확대되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의 효는 가족윤리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윤리와 관련을 맺게 된다. 대학의 팔조목이라든가, 증자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에 정성을 다하고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해진다는 말이54) 그 예이다. 또한 유교의 효는 부모가 생존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공자는 죽음 후에 세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면서도 부모 사후 삼년상을 치를 때는 부모가 세워놓은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효라고55) 말한다.

51) 『전집』 제16권, 20. 52)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論語』, 「學而」2. 이 구절에서 ‘爲’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 ‘爲’는 ‘행하다’ 와 ‘되다’라는 두 뜻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석하든지간에 仁과 孝의 밀접한 관련성은 부정될 수 없다.
53) “子曰 弟子立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論語』, 「學而」6.
54)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 歸厚矣.” 『論語』, 「學而」9.
55) “子曰 父在, 觀其志, 父沒, 觀其行. 三年 無改於父之道, 可謂孝矣.” 『論語』, 「學而」11.

유교의 孝는 忠과 연결되고 생활윤리의 근본으로 장례와 죽음 이후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한 개념이다. 김재준은 이러한 유교의 효나 충이 맹목적인 복종이나 무조건적인 추종이 아님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56) 더 나아가 일본의 저명한 유교인인 나가에 도쥬(中江藤樹)의 효에 대한 해석을 인용57)하면서 효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측면이 있음을 말한다. 나가에 도쥬는 효의 중심을 입신행도(立身行道) 즉 몸을 세우고 도를 행하는 것에 두었다. 도를 행하는 일은 육신의 부모의 몸만을 섬기는 것을 뛰어 넘는다. 그리하여 인류의 부모이자 도의 근원인 태허황상제(太虛皇上帝)를 섬기는 것이 효도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56) 『전집』 제12권, 318. 57) 『전집』 제3권, 111.

유교의 가족 윤리에서 김재준이 비판하는 바는 여성의 권리와 관련하여서이다. 김재준은 유교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 권위의 폐해를 정확히 인식하고 여성이 종속적인 위치에 점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58) 그리하여 남존여비와 가부장적 권위를 해소하기 위해 오륜 중에 붕유유신의 횡적인 평등성을 나머지 윤리인 군신유의,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에 집어넣으면 유교의 계급적이고 권위적인 측면이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59) 유교는 치자들을 위한 도덕적 기준을 마련해 주고자 했기에 여성의 사회활동이 억제된 시대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論語』에도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전무하며 유일한 예 하나도 여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60)

58) 『전집』 제8권, 53. 59) 『전집』 제1권, 257-258.
60) “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陽貨」 25.

마지막으로 김재준이 이해하고 있는 유교의 특징인 爲己之學의 자기 수양론에 대하여 논의를 해보자. 김재준은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라는 글에서 인간회복과 인간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 구원의 문제는 각 종교의 핵심적인 것으로 유교에서는 공자가,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담당하게 된다.

“누가 이 일을 하느냐? 유교에서는 공자님이 하신다고 믿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한다고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 공자님은 「배우고 수양하고 나라의 지배자인 임금이 善政을 하면 근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61)

61) 『전집』 제8권, 233.

현실 윤리를 강조하는 유교에서는 인간 구원과 회복의 문제는 배우고 수양하고 정치적 지위를 가진 임금을 비롯한 정치가들의 善政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그런 정치적 지위를 가진 이들의 자기 수양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자기수양을 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성선설에 근거하고 있다.62) 즉 수양을 통해 본래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교에 있어서 “學”을 한다는 것은 지식의 습득보다도 덕을 닦는 것이었고, 공자도 인과 의와 예와 지를 제자 훈련의 요강으로 삼았다.63) 또한 공자 자신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며 칠십 세가 되어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해도 법규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64)라고 고백을 함으로써 제자들의 본이 되었다.

62) 『전집』 제18권, 529. 63) Ibid., 529.
64)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論語』, 「爲政」4.

장공 김재준의 유교 이해를 요약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래 유교는 하늘에 제사하는 국가적인 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종교였으나 공자 이후 종교성은 퇴색하고 합리적이며 현세적이며 윤리적인 도덕철학으로 변모하였다. 그리하여 유교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조절하는 것- 인의 발현과 인치의 실현-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仁의 완성은 가족 관계 특히 부자관계로부터 시작한다고 보았다. 즉 효는 인을 이루어가는 첫 걸음이 된다. 가족간의 사랑을 이웃과 국가사회로 확대하여 좋은 정치체제와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유교의 중요한 목표이다. 그 목표를 이루는데 가장 좋은 본보기로 주나라의 문화를 상정한다. 그런 면에서 유교는 복고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복고주의적 성격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움을 창출하거나 인간으로 하여금 미래를 향한 결단과 행위를 도출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좋은 정치제도의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가이며 정치가의 선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배움과 자기 수양의 과정이 절실히 요청된다. 배움과 수양은 인간의 성품은 본래 선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현실적 도덕철학은 수당 시대를 거쳐 불교와 만나면서 이론적 사변적 철학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것을 신유교라고 부른다. 신유교는 불교의 거대한 형이상학에 맞서 유교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번쇄한 의례와 형이상학적이고 허무한 논쟁으로 변질되기 쉬웠고 그 변질의 모습이 조선의 유학자들의 권력욕과 만나 더 왜곡되게 된다. 유교가 가지고 있는 계층적 질서와 남존여비 사상, 권위주의는 신유교의 형식주의와 맞물려 조선후기에 와서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도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러한 상실을 경험한 조선의 유학자들이 새롭게 유교의 부흥을 꿈꾸는데 그것은 실생활에 가까운 유교로 다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고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운동을 실학이라고 부르고 김재준은 생활유교라고 부른다.65) 이러한 생활유교를 모색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기독교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또 기독교와 많은 대화를 통해 조선말기의 기독교 수용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65) 『전집』제18권, 302.

김재준은 앞서 본대로 타종교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만큼 유교에서도 그러하다. 우선 장공 김재준은 원시유교에서부터 신유교 그리고 한국유교에 대해 상당한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공의 유교이해에 있어 특이한 점 중에 하나는 유교의 종교성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유교가 과연 종교인가 아닌가 하는 논쟁이 있을 만큼 유교는 사상적 측면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장공은 유교의 종교적 측면을 분명히 자각하여 유교인들이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 天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있다. 이러한 장공의 유교 이해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유교의 天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게 한다. 이러한 이해는 유교는 종교가 아니고 단순히 인륜도덕에 불과하다고 보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과는 차별적인 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효”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나가에 도쥬의 설을 인용하는 김재준은 효가 단순히 부모자식간의 인간 윤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인 하나님과 관련이 있음을 부각시킨다. 장공은 공자의 도덕적 교훈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실생활에 가깝게 접근한 실학파에게도 호의적이다. 유교의 위기지학과 수양론도 아주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특히 학문이 단순히 지식의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히 연관되고 동시에 윤리적인 것도 포함하는 덕을 쌓은 것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리하면 장공은 내면에 감춰진 유교의 종교성을 부각시키면서 그리스도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유도하고, 유교의 높은 도덕성을 깊이 긍정하며 자신의 삶의 하나의 기준과 모델로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의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유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성과 높은 윤리성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받아들이고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의 부정적 요소를 타파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왔다. 유교적 가풍에서 자라 그리스도인이 된 김재준도 동일한 과정을 겪는데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속에는 유교적 긍정적 요소가 깊게 녹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공 김재준이 유교에서 다소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하는 것은 복고주의와 권위주의, 그리고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여성의 권리문제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입장에 하나님은 <오시는 하나님>으로 미래에서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이신 반면 유교의 입장은 과거에 기준을 두고 있다고 보고 그러한 사유는 진정한 역사를 창출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리스도교적 가치는 유교의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리하여 장공 또한 권위주의와 여성의 권리가 무시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위의 일반적 논의보다 더 세부적으로 장공 김재준의 전집에서 인용하고 있는 유교 경전의 구절들을 그리스도인인 김재준이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 3. 김재준의 유교 경전 이해

장공 김재준은 그의 전집에서 사서를 비롯하여 명심보감, 소학, 서경, 제자백가의 글들, 역사서, 한시들을 여러 군데에서 인용하고 있다.66) 그가 동양철학이나 동양사상에 대해서 체계적인 논문을 쓰거나, 직접적인 논평과 해석을 한 경우는 거의 없으나 그의 동양고전들의 인용을 통해서 그의 번뜩이는 생각이나 사상의 편린들을 살펴볼 수는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글은 대다수가 짧은 단상이거나 강연문, 설교, 수필, 일기에 가깝다. 그가 말했듯이 이런 종류의 글들은 체계를 무시하고 일정한 型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글들은 먹구름을 뚫고 반짝 섬광을 던지고 사라지는 생각을 낚은 글이고 삶의 핵심을 찌르는 바늘과 같은 것이기에67) 그가 인용하는 유교경전의 짧은 구절들을 살펴보는 것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 자서전 『범용기』를 쓸 때도 그날그날의 사건을 적고 되새기는 일기체의 형식으로 쓰지만 이어지는 큰 맥락이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이68) 그의 다양한 유교경전의 인용구들도 일관된 흐름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인 김재준이 유교경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무엇을 수용하고 비판하는지 유교경전 인용에서 발견되는 일관적 사유의 흐름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66) 『大學』의 經에서 2구절, 傳에서 2 구절(2장과 7장)을 인용하고, 『中庸』에서는 1장, 13장, 19장을 인용한다. 『論語』에서는 「學而」의 1, 2, 3, 8, 9장, 「爲政」의 1, 3, 4, 5, 15장, 「里仁」의 8, 15, 25장, 「公冶長」의 8, 12, 14, 16장, 「雍也」의 2, 9, 10, 21장, 「述而」의 15, 19, 20, 21, 34장, 「泰伯」의 4, 7, 9, 13, 14장, 「子罕」의 22, 24, 25, 27장, 「鄕黨」의 7, 16장, 「先進」의 8, 11, 25장, 「顔淵」의 17, 19장, 「子路」의 17장, 「憲問」의 11장, 「衛靈公」의 5, 8장, 「季氏」의 7장, 「陽貨」의 3, 19, 25장, 「子張」의 21장 등 「八佾」, 「微子」, 「堯曰」세편을 제외한 17편에서 51장의 구절을 인용한다. 『孟子』에서는 「梁惠王」上의 1, 2, 3, 4, 5, 7장과 「梁惠王」下의 1, 5, 12장, 「公孫丑」上의 2, 3장, 「公孫丑」下의 1, 2장, 「滕文公」下의 2장, 「離婁」上의 7, 8, 10장, 「離婁」下의 18장, 「萬章」下의 1장, 「告子」上의 16장, 「告子」下의 4장, 「盡心」上의 20, 25, 26, 36장 등 11편에서 25장의 구절을 인용한다. 『書經』에서 1구절, 『明心寶鑑』, 『小學』에서 1구절, 『禮記』「玉藻」편에서 1구절 인용한다. 이밖에 『道德經』과 『莊子』와 같은 도가류의 책들, 『史記』, 『漢書』와 같은 역사서들, 그리고 많은 한시들도 인용하고 있다. 67) 『전집』 제15권, 3.
68) 『전집』 제15권, 365.

김재준은 그의 전집에서 많은 동양고전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유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서에 대한 인용구들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그 밖에 경전도 필요하다면 분석할 것이다. 그 인용구들을 유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기초적인 개념들을 중심으로 선별하여 다룰 것이다.

장공 김재준은 ‘仁’이 유교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며 최고의 가치임을 잘 알고 있다.69) 仁은 모든 윤리생활의 근본이며 동시에 그 완성이고70) 오상(五常:仁義禮智信)중에 으뜸이다.71) 그리하여 仁은 사람이 편안하게 거처해야 할 곳이다.72) 김재준은 인을 신유교 학자들의 주석에 따라 사랑의 이치요, 마음의 덕73)으로 보고 있는데 특히 사랑의 이치부분을 강조하여 기독교의 사랑과 연관 짓는다.74) 그 사랑은 진지한 자기수양을 요구하는 것이며 말을 미끈하게 잘한다든지 얼굴표정만 아리땁게 꾸민다든지 하는 것은 오히려 인과 거리가 멀다.75) 그러나 유교에서 말하는 인이 부모자식간의 사랑에서 연역하여 그 이상의 비약이 없음을 비판하기도 한다.76)

69) 『전집』 제12권, 454. 70) 『전집』 제9권, 20.
71) 『전집』 제16권, 293.
72) “仁, 人之安宅也.” 『孟子』, 「離婁」上 10. 『전집』 제4권, 463.
73) 주자는 『論語集註』에서 인을 일관되게 “愛之理, 心之德”로 해석하고 있다.
74) 『전집』제12권, 454에서는 예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바울의 고전 13장의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과 에베소서의 사랑 속에 뿌리를 박으라는 말과 연결해서 말한다. 『전집』제9권, 19에서는 하나님의 긍휼(헷세드)를 공자의 인과 연결시킨다. 이밖에 『전집』제3권, 75; 『전집』제8권, 297; 『전집』제16권, 293 등을 참조.
75) 『전집』제18권, 529;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論語』, 「學而」 3.
76) 『전집』제18권, 529.

그런데 김재준은 특히 인을 忠과 恕와 연결시켜 여러 번 말하고 있다.77) 공자가 증자에게 자기의 도는 하나로 통했다고 말했는데 그의 제자가 증자에게 묻자 증자가 그것은 충과 서라고 말한 것78)을 인용하면서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자기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것을 인의 실현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기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것은 충과 서에 대한 주자의 주이다.79) 김재준은 인이 이 두 글자로 요약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論語』에 나타난 ‘仁’의 개념은 아주 복잡하다. 공자 자신이 특별히 인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으며, 공자가 상황에 따라 말한 ‘인’의 내용도 일관성이 없다. 그 다양한 인의 논의 중에 특히 장공 김재준이 인을 충과 서와 연결시킨 이 부분을 여러 차례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장공 김재준이 유교의 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볼 수가 있는 것이다.

77) 『전집』 제8권, 332; 『전집』 제16권, 195; 『전집』 제17권, 452. 78)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論語』, 「里仁」15.
79)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

忠은 위의 주자 주에서 살핀 대로 자기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이고 恕는 자기를 미루어 남을 생각함 곧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함”(己所不欲, 勿施於人. 『論語』, 「顔淵」2.)이다. 이런 두 가지가 어떻게 하나로 꿰뚫어 지는가? 주자는 忠恕를 가지고서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두 단계로 나눠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충과 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통할 수가 있다. 왜냐면 자기 몸과 마음을 다함은 남을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 함몰에 빠지고, 남에게 미루어 가려면 자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一以貫之’의 一을 恕라고 보았다.(一者, 恕也.)80) 충과 서는 나뉠 수 없는 것으로 보면서 서가 근본이 되고 그것을 행하는 까닭이 충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것을 보고 난 뒤에 진실하다(충)라는 명성을 얻기에 혼자 있을 때 충이란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는 비록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 해도 드러나는 바가 없다고 정약용은 보고 있기에 사람들이 공자의 도를 먼저 충을 행하고 그 후에 남에게 베푼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본다. 충을 행할 때 이미 서는 오래된 것이라고 말한다.81) 즉 정약용은 충과 서의 문제는 먼저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주자의 주장에 따르든지 정약용의 주장에 따르든지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仁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행동으로 나타나야한다는 사실에 있다. 즉 인은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에 머무르는 것에서는 성취될 수 없고 나아가 사회생활과 정치생활에서 실제로 행해지는 객관적인 행동에서 완성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恕)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함”(己所不欲, 勿施於人)이 소극적 서(恕)의 측면이라면 “인이란 제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주고, 제가 알고 싶으면 남도 깨우쳐주는 것이다”(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論語』「雍也」28.)와 같은 구절은 恕의 적극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장공 김재준이 인을 사랑과 연결지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독교의 사랑은 결국 자기 사랑을 넘어 남에게 베풀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장공 김재준은 인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을 깊게 살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仁)이 가족 윤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때 그것을 비판한 것이다.

80) 『論語古今注』, 『與猶堂全書』5. 經集, (아름출판사, 2001). 148. 81) 盡己之謂忠, 推己之謂恕也. 然忠恕非對待之物, 恕爲之本, 而所以行之者, 忠也. 以人事人而後, 有忠之名, 獨我無忠, 雖欲先自盡己, 無以著手, 今人皆認吾道爲先忠而後恕, 失之遠矣. 方其忠時, 恕已久矣. 『論語古今注』, 『與猶堂全書』5. 經集, (아름출판사, 2001). 150.

마지막으로 김재준의 인의 대한 생각을 살펴볼 수 있는 구절은 바로 殺身成仁(몸을 죽여 사랑을 이룬다)이다. 김재준은 논어에 나오는 구절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이는 목숨을 구하려고 남을 해치지 않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子曰 志士, 仁人, 無求生以害人, 有殺身以成仁. 「衛靈公」8)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불교의 해탈무아와 기독교의 사랑과 비교하고 있다.82) 더 나아가 인의 실현의 문제를 죽음의 극복과 관련지어 말한다. 즉 인간의 죽음이란 육체 이상의 다른 차원, 즉 도덕적․정신적 관계에서 설명되어야 하며 살신성인의 경지는 인간에게 있어서 숭고한 도덕적․정신적 성실성(integrity)이 육체적 죽음 이상으로 평가되어야 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육체적 죽음이 그의 정신성을 구현할 최선의 봉사자로 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83) 즉 김재준은 유교의 인의 개념이 단순히 내면적 자기 수양과 더 나아가 사회와 정치에서 발현되는 현세적 윤리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불교의 해탈무아와 비견할 수 있는 종교적 차원과 관련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의 완성의 문제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육체를 과감하게 던질 수 있는 자기초월적 차원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한 이에게 맞설 상대는 없다.84) 죽음도 극복하기 때문이다.

82) 『전집』 제8권, 297. 83) 『전집』제7권, 287-288.
84) “仁者無敵.” 『孟子』, 「梁惠王」上 5. 『전집』 제3권, 75.

“禮”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인을 구체화한 것이다. 인을 忠恕로 풀어 설명할 때 이미 인은 그 자체에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공자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떠나서 자신의 철학을 논의하지 않기 때문에 인의 구체적 실현화의 문제가 반드시 제기되고 그 때 사용되는 개념이 바로 예이다. 따라서 『論語』에서는 ‘예’라는 낱말이 수도 없이 반복되고,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85)고 하여 ‘예’를 모르면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한다.86) 인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양식으로서의 예의 중요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장공 김재준의 전집 속에서는 ‘예’가 들어간 구절을 단 한 차례도 인용하지 않는다. 다만 제사문제를 다루면서 그것이 예와 관련된 것이라고만 말한다.87) 대체적으로 장공 김재준에게 있어서 ‘예’의 문제는 빡빡한 교훈과 계율, 부자유, 허례허식으로 다가온다.88) 김재준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김재준이 살았던 시대적 한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조 말기는 유교의 활력이 쇠진하여 허례허식만 남아 노쇠한 상태였기89) 때문이다.

85)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論語』, 「顔淵」1. 86) “不知禮, 無以立也.” 『論語』, 「堯曰」3.
87) 『전집』 제13권, 136.
88) 『전집』 제9권, 144; 『전집』 제3권, 326.
89) 『전집』 제12권, 220.

그러나 공자가 말하려고 했던 예의 본래적 의미는 인의 도덕적 완성을 위해 우리 삶과 행동양식을 인에 맞도록 하는 방편이었다. 도덕적으로 선하고 옳은 행동이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실천하려면 그것은 마치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어서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90) 따라서 인위적인 행동양식으로서의 예는 오히려 부자유나 빡빡한 교훈과 계율이 아니라 인의 자연스런 발로를 위한 수신과 교양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는 동양적 인격완성으로서의 君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실현 방식이었던 것이다. 장공 김재준은 개인적 환경과 시대적 제약으로 인해 이러한 예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 논의를 하지 않고 왜곡된 예의 현상을 비판하고 있으나 그의 삶 속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수신과 교양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의 전집에서 그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동양고전의 구절도 바로 자기 수양과 배움에 관한 것임을 볼 때 더욱 여실히 드러나는 바이다.

90) 박이문, 『논어의 논리: 철학적 재구성』,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5), 163-167.

君子

장공 김재준은 강연과 설교를 하면서 늘 배움의 자세를 강조하였다.91) 배움을 강조할 때 마다 공자의 배움의 자세와 노력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그처럼 배울 것을 강조하였다. 논어의 시작이 배운다는 말로 시작하는 것92)과 주역을 읽다가 세 번 끈이 끊어졌다는 이야기93)나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94)는 예를 들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배움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 또는 정보의 습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식보다도 덕을 닦는 것이다.95) 배움의 내용은 堯, 舜, 禹, 湯, 文, 武, 周公을 통해 나타난 하늘의 도이며96) 하늘의 도를 배워 인격의 수양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안연이 화를 남에게 옮기지 않았을 때 그를 好學者라고 불렀던 것이며97) 공자는 배움과 수양으로 “나이 칠십에 이르러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법규에 어긋나지 않았다”98)고 말했던 것이다. 또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99)는 말을 인용하여 학습이 학습자의 피동적 수용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배우고 생각하는 변증법적 과정임을 말하고 있다.

91) 『전집』 제3권, 81; 『전집』 제7권, 309; 『전집』 제9권, 347-348; 『전집』 제12권, 434; 『전집』 제15권, 40; 『전집』 제16권, 286; 『전집』 제18권, 2. 92)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論語』, 「學而」1. 『전집』 제18권, 427.
93) “孔子晩而喜易讀易……韋編三絶.” 『史記』, 「孔子世家」. 『전집』 제18권, 2, 63.
94) “不恥下問.” 『論語』, 「公冶長」14. 『전집』 제18권, 63.
95) 『전집』 제18권, 529.
96) 『전집』 제3권, 8.
97) “哀公問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論語』, 「雍也」2. 『전집』 제5권, 218.
98)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論語』, 「爲政」4. 『전집』 제3권, 100; 『전집』 제15권, 369; 『전집』 제18권, 2, 10)
99)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論語』, 「爲政」15. 『전집』 제18권, 427.

이러한 배움이 지향하는 바는 지식의 습득을 넘어 참다운 인간 즉 君子라고 표현되는 도덕적 인격의 완성으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유교의 배움은 군자가 되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장공은 이러한 유교의 학문의 목표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가 있었으며 유교가 말하고 있는 참된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하고 그러한 인간의 모습이 장공에게 있어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된다. 그러면 장공이 이해하는 유교의 군자에 대해서 알아보자.

김재준이 이해한 군자는 자기 주체성을 확립한 인간100)으로 경제적 조건이나 정치적 권력, 세상의 여론에 의해 흔들림이 없는 인격이다. 따라서 의로움에 맞지 않는 부귀는 흘러가는 뜬 구름으로 여기고101) 한 그릇 밥과 물을 먹으며 누추한 곳에 있어도 자신의 도를 잃지 않고 그 도에서 만족을 느끼며102) 남이 욕해도 칭찬해도 치켜 올려도 깎아 내려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나 감정에 동요가 생기지 않는다.103) 이러한 군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려고 하기 때문에 늘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여 남의 선행과 실수 모두를 스승으로 삼는다.104) 사물의 핵심과 주변, 일에 있어서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별하여 근본에 힘쓰고105) 말에 있어서는 진실하고 믿음직하고 행동에 있어서는 돈독하고 진지하며106) 젊어서는 성적인 것을 조심하고 장년에는 싸움을 조심하고 늙어서는 욕심을 조심한다.107) 이런 부단한 자기수양 속에서도 실수가 생기면 바로 고쳐108) 매일 새롭게 자신을 가꾼다.109) 군자는 천하에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에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길을 걸어 뜻을 이루면 백성들과 나누고 뜻을 못 얻으면 홀로 그 도를 행하여 부귀가 그를 음란하게 못하며 빈천이 그를 옮기지 못하며 위무(威武 즉 폭력)가 그를 굽히지 못하는 대장부110)의 삶을 살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고 사람을 굽어보아서 사심이 없는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111) 천지에 통하여 전혀 구김새 없는 浩然之氣를112) 지니고 위에서 열거한 덕을 실천하며 살기 때문에 군자는 외롭지 않으며 이웃이 그의 곁에 있다.113) 군자는 이러한 삶의 자세를 자신의 임무로 여기고 죽기까지 노력하는 인간인 것이다.114)

100) “三十而立.” 『論語』, 「爲政」4. 『전집』 제12권, 369. 101)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論語』, 「述而」15. 『전집』 제13권, 312; 『전집』 제18권, 436.
102) “子曰 賢哉. 回也! 一單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論語』, 「雍也」9. 『전집』 제1권, 127; 『전집』 제18권, 529.
103) “六十而耳順” 『論語』, 「爲政」4. 『전집』 제8권, 70;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전집』 제4권, 535.
104)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論語』, 「述而」21. 『전집』 제2권, 319.
105)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大學』;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論語』, 「學而」2. 『전집』 제1권, 284.
106) “子張問行. 子曰 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邦, 行矣.” 『論語』, 「衛靈公」5. 『전집』 제10권, 240.
107) “孔子曰 君子有三戒. 少之時, 血氣未定, 戒之在色, 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 及其老也, 血氣旣衰, 戒之在得.” 『論語』, 「季氏」7. 『전집』 제5권, 302; 『전집』 제13권 341.
108)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人皆見之, 更也人皆仰之.” 『論語』, 「子張」21.『전집』 제14권, 448.
109) “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大學』傳 2. 『전집』 제11권, 9.
110) “居天下之廣居,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 得志, 與民由之. 不得志, 獨行其道. 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 此之謂大丈夫.” 『孟子』, 「滕文公」下 2. 『전집』 제18권, 10.
111)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孟子』, 「盡心」上 20. 『전집』 제5권, 18; 『전집』 제7권, 373; 『전집』 제12권, 35.
112) 『전집』 제8권, 70. “我善養吾浩然之氣. 敢問何謂浩然之氣. 曰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於天地之間,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則餒矣.” 『孟子』, 「公孫丑」上 2.
113) “子曰 德不孤, 必有隣.” 『論語』, 「里仁」25. 『전집』 제11권, 240.
114)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論語』, 「泰伯」7. 『전집』 제1권, 117; 『전집』 제15권, 36.

『論語』에서 말하는 道는 예의에 맞는 가족 및 사회․정치적 역할, 신분,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정치적 규범질서의 총화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할들 간의 관계를 지배하는 예의에 맞는 행위-제의적, 의식적, 윤리적-의 “객관적" 규정들을 가리키면서 동시에 개인의 “내면적”인 도덕적 삶을 포괄하는 개념이다.115) 즉 道는 전포괄적인 규범적 인간질서를 가리킨다.

115) 벤자민 슈워츠 지음, 나성 옮김, 『중국고대 사상의 세계』, (서울: 살림, 2004), 99.

김재준이 이해하는 유교의 道는 사람의 본성을 찾고 하늘의 근본을 더듬는 것이며116) 인간 생활의 표준이요, 힘이며,117) 인간이 걸어야 할 진리의 길이다.118) 인간 생활의 표준이요, 힘이 되는 도를 공자는 주나라 문화제도에서 발견하였음은 이미 상론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김재준도 이미 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도와 관련하여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도를 하늘의 근본을 더듬는 것으로 본 점이다. 장공 김재준은 중용 1장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 즉 “하늘이 명령한 것을 본성이라 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그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119)는 구절을 근거로 도의 문제를 하늘과 연결 짓고 있다.120) 도의 근원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공자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121)고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116) 『전집』 제1권, 115-116. 117) 『전집』 제2권, 246.
118) 『전집』 제1권, 284.
119)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120) 『전집』 제1권, 115-116.
121) “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論語』, 「里仁」8. 『전집』 제1권, 116; 『전집』 제2권, 246; 『전집』 제3권, 97.

그렇다면 도와 연결되어 있는 하늘은 어떤 하늘인가? 인격적인 신인가? 아니면 비인격적 질서인가? 장공 김재준은 유교에서 말하는 하늘(天)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첫째 그는 공자의 말을 빌어 하늘이 마치 인격적 대상인 듯 말한다. 아래의 인용을 보자.

공자의 경우에 있어서 은 상당히 인격적 존재로 다루어진 것 같다. “환퇴”라는 권력자가 공자를 암살하려고 벼르고 있으니 그의 영토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충고하는 제자에게 “하늘이 내게 덕을 내셨으니 환퇴가 내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단연 그리고 갔다는 이야기는 “하늘”에 대한 그의 종교적 신념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폭풍우가 심할 때에는 밤중에라도 반드시 일어나 의관을 바로하고 꿇어 앉았다는 기록도 있다. 꿇어 앉아 하늘의 노함을 물려는 것이었다. 그가 오래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제자들이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을 물어본 일이 있다. 그의 대답은 “내가 이미 기도한지 오래다”(余禱之久矣)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천”은 한 주격(Subject)이요 단순한 Object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자서적인 담화에서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고 한 “천명” 즉 “하늘의 명령”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지만 “명”이란 것을 어떤 “예정된 운명”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자기에게 대한 하늘의 사명”으로 보는 것이 더 자서전적인 맛이 난다고 하겠다. 명령이란 것은 명령자라는 어떤 인격적인 존재를 상정한다.122)(밑줄은 필자의 것임)

122) 『전집』 제11권, 134-135. 인용문에 나오는 논어의 원문들은 다음과 같다. 「述而」22: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
「鄕黨」16: 迅雷風烈, 必變.
朱子注 中에서 “若有疾風 迅雷甚雨 則必變 雖夜必興 衣腹冠而坐.”
「述而」34: 子疾病, 子路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祇.’ 子曰 丘之禱, 久矣.
「爲政」4: 五十而知天命.

위의 인용에 의하면 하늘은 단순한 사물이나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는 주재자요, 인간의 행위에 대한 판단자요, 인간의 기도를 듣는 절대적 인격이다. 그러나 장공은 다른 여러 곳에서 비인격적 질서로서 하늘을 나타내는 듯한 논어의 구절을 인용한다.123) 논어에 하늘이 자연 질서와 연결되어 나오는 부분은 딱 한 군데 있다.

123) 『전집』 제4권 115; 『전집』 제4권 248; 『전집』 제5권 243; 『전집』 제11권 249; 『전집』 제15권 97.

공자가 말하기를 나, 이제 말하지 않으련다. 자공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는 무엇을 전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계절을 움직이고, 만물을 낳아도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124)

124) 「陽貨」19: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이 말로 보면 하늘은 어떤 인격적인 신이 아니며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행위에 대하여 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의 주기적 변화와 생명의 발현 현상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장공은 이 구절을 비인격적인 하늘을 묘사하는 것 보다는 없는 것 같이 있는 하늘의 존재방식으로 이해하면서 인격적인 하늘이 침묵하는 것으로125) 또 인격적이고 신성한 하늘이 일상에로 침투한 것으로 보고 있다.126) 그렇기 때문에 “역천” 즉 의식적으로 하늘을 반역한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고 한다.127)

125) 『전집』 제5권, 243. 126) 『전집』 제4권, 248.
127) 『전집』 제12권, 373.

장공 김재준은 유교의 天을 종교적이고 인격적인 개념이 녹아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종교적인 개념을 탈색한 것이 신유교의 성리학이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128)

128) 『전집』 제11권, 135.

政治

‘仁’, ‘學’, ‘君子’, ‘道’, ‘天’과 더불어 장공이 유교경전에서 많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은 바로 정치와 관련된 것이다. 장공 김재준이 이해하는 유교에서 말하는 정치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論語에서 발견되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다.’ 라는 것129)과 孟子에서 주장하는 왕도정치130)이다.

129)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論語』, 「顔淵」17. 『전집』 제9권, 305; 『전집』 제16권, 217. 130) 『전집』 제13권, 20.

바르게 함으로써의 정치의 핵심은 형법과 규율로써가 아니라 예와 도로서 다스리는 것이다.131) 왕도정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왕도라는 말은 패도에 반대되는 말로써 패도는 힘으로써 인을 가장하여 다스리는 것이고 왕도는 덕으로써 인을 행하는 정치를 말한다.132) 왕도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과 함께 하고133)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34) 학정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는 맹자의 아래와 같은 말은 백성을 위하지 못하고 백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정치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 보여주고 있다.

131)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論語』, 「爲政」3. 『전집』 제1권, 157; 『전집』 제11권, 407; 『전집』 제17권, 426; 『전집』 제18권 530. 132) “孟子曰 以力仮仁者覇, 覇必有大國, 以德行仁者王.” 『孟子』, 「公孫丑」上 3. 『전집』 제12권, 28.
133) 『전집』 제1권, 169. “極히 自然스러운 歡呼를 받는 指導者 언제나 與民同樂하는 政治, 이것은 大衆本位의 社會施設을 極力推進하는 데서만 얻을 수 있는 것 뿐이다.”
134) 『전집』 제10권, 329. “동양의 전체주의 체제는 관료조직에 의한 절대주의적 정치기는 했지만 ‘전제주의’는 아니었다. 집권층 밖에 있는 인간들의 인권을 존중했으며 정치의 이상으로 생각한 요, 순, 우, 탕과 주의 문왕, 무왕 등 성군의 사적은 어디까지나 위민정치여서 서민이 아무 압박감도 느끼지 않고 자연과 어울려 자유롭게 사는 것을 목표를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농경시대의 정치는 치산치수에 주요한 관심을 기우렸고 법치나 군정이 아니라 덕치에 의한 무위이화를 목표로 했던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와 같은 난세에도 이 원리는 맹자에 의하여 강조되었으며 백성의 자유와 복지를 위한 정치가 평천하의 원리임을 말했다. 이것을 왕도라 불렀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데 몽둥이로 때려 죽이나 칼로 베어 죽이나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데 칼로 베어 죽이나 학정으로, 즉 권력의 악용, 남용, 오용으로 죽이나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푸주간에 기름진 살코기가 가득 차고 마구간에는 말이 살쪄 있는데,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늘어져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짐승이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이 싫어하거늘, 백성의 어버이가 되어 가지고 정치를 한다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는 것을 면치 못하면서 어찌 백성의 어버이라 할 수 있습니까?”135)

135) 전집』 제18권, 448. 원문은 다음과 같다.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敎. 孟子對曰 殺人以政與刃, 有以異乎? 曰無以異也. 以刃與政, 有以異乎? 曰無以異也. 曰庖有肥肉, 廐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莩, 此率獸而食人也. 獸相食, 且人惡之. 爲民父母, 行政, 不免於率獸而食人, 惡在其爲民父母也.” 『孟子』, 「梁惠王」上 4.

또한 맹자는 우선적으로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가 없도록 해야 하고 있어도 정부에서 그들을 우선하여 돌볼 것을 말한다.136) 즉 爲民정치라는 것은 백성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이들에 대한 관심부터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장공 김재준은 맹자의 왕도정치는 이렇게 백성들의 공공복리137)와 자유와 복지를 위한 정치이기에 민심을 얻는 정치라고 말한다.138)

136) 『전집』 제15권, 200.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孟子』, 「梁惠王」下 5. 137) 『전집』 제3권, 215.
138) 『전집』 제4권, 114.

기타

이 밖에 장공이 인용하는 동양고전은 진실한 교우관계를 말하는 것도 있고139) 인간의 사상적 자유는 그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음을 말하기도 한다.140) 인간사이의 협동의 중요성141)과 자포자기하지 말 것과142)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과감하게 시도해야 할 것143) 진리는 반드시 드러나는 법144)이라고 말한다. 진리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발견해야 하며145), 교육에 있어서는 시간을 가지고 서둘지 말 것146)과, 스스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할 것147)에 대해 말하면서도 동양고전을 인용한다.

139) 『전집』 제18권, 493. “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論語』, 「公冶長」16. 140)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論語』, 「子罕」25. 『전집』 제2권, 293; 『전집』 제5권, 230; 『전집』 제9권, 269; 『전집』 제10권, 164; 『전집』 제16권, 124; 『전집』 제17권, 363; 『전집』 제18권, 351.
141)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三里之城, 七里之郭, 環而攻之而不勝, 夫環而攻之, 必有得天時者矣. 然而不勝者, 是天時不如地利也. 城非不高也, 池非不深也, 兵革非不堅利也, 米粟非不多也, 委而去之, 是地利不如人和也. 故曰域民不以封疆之界, 固國不以山谿之險, 威天下不以兵革之利, 得道者多助, 失道者寡助. 寡助之至, 親戚畔之. 多助之至, 天下順之. 以天下之所順, 攻親戚之所畔, 故君子有不戰, 戰必勝矣.” 『孟子』, 「公孫丑」下 1. 『전집』 제11권, 290, 475; 『전집』 제16권, 147; 『전집』 제17권, 80.
142)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孟子』, 「離婁」上 10. 『전집』 제4권 463.
143) “挾太山以超北海, 語人曰 我不能. 是誠不能也. 爲長者折枝, 語人曰 我不能, 是不爲也, 非不能也. 故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 『孟子』, 「梁惠王」上 7. 『전집』 제18권, 17.
144) “莫見乎隱, 幕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中庸』1. 『전집』 제14권, 226; 『전집』 제15권, 2.
145) “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 『漢書』, 「董仲舒傳」. 『전집』 제5권, 100; 『전집』 제7권, 189. “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以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中庸』13. 『전집』 제5권, 195.
146) “宋人,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 病矣. 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天下之不助苗長者, 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而又害之.” 『孟子』, 「公孫丑」上 2. 『전집』 제14권, 199.
147) “夫人必自侮然後, 人侮之. 家必自毁而後, 人毁之. 國必自伐而後, 人伐之. 太甲曰 天作孼猶可違, 自作孼不可活, 此之謂也.” 『孟子』, 「離婁」上 8. 『전집』 제1권, 201; 『전집』 제4권, 449.

지금까지 그가 인용한 동양고전들 특히 사서를 중심으로 인용한 구절들을 주 재료로 하여 유교에서 말하는 핵심적 사항들인 인, 예, 도, 천, 학문, 군자, 정치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장공 김재준은 그의 저작들에서 상황상황에 따라 동양고전들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사상 내지 철학에 대해 체계적인 해석이나 비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방대한 저작 속에서 인용하는 구절들은 유교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으며, 유교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우관계와 같은 윤리적인 격언들을 제외하면 장공의 유교경전 이해는 유교의 핵심인 仁과 인을 실현한 君子 그리고 君子가 仁을 실현하는 무대인 政治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인을 해석함에 있어서 인의 사회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仁에 대한 인용 외에 장공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유교의 핵심적 주제는 바로 배움과 군자에 대한 내용이다. 장공 김재준은 이 내용을 많이 인용하는 만큼 삶에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즉 자신이 바로 배움의 사람이었고 죽는 순간까지 ‘군자’가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글과 내가 하나 되는 경지이며 이것이야말로 곧 동양정신의 핵심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하는 김재준은 동양의 하나님 개념을 담고 있는 天에 대해서도 많은 인용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장공의 유교 경전의 인용과 이해는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고 역사 참여에 투신하며,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의 관심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김재준의 역사 참여적 신학과 유교의 관계

위에서 살핀 대로 장공의 유교와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는 주로 현실적인 문제해결과 관련되어 있다. 현세의 인간관계들을 조절하여 자신과 나라와 천하를 잘 다스리는가가 유교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수양도 하늘의 존재도 인간 세계의 조화로운 삶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유교의 핵심적 특징인 것이다. 이러한 유교의 특징은 공자와 맹자의 정치사상에 잘 나타나고 있으며, 공맹의 정치사상은 장공 김재준의 역사 참여적 신학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본 장에서는 공맹의 정치사상과 장공 김재준의 역사 참여적 신학의 각각의 특징들을 살펴보고 유교의 정치사상 특히 공맹의 정치사상과 장공의 역사 참여적 신학의 관계성을 살필 것이다.

공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현실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현실이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에게 정치의 참여로 나타났는데 공자의 정치학은 개인에서 사회에까지 포괄적인 범위 속에서 바른 삶과 정당한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정당성의 문제는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과 더 낳은 정치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는데 더 낳은 정치는 이미 주나라 문화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 핵심에는 자신의 수양과 더불어 남을 배려하는 인의 실현이 있으며 인의 실현의 방법은 본을 보이는 교육과 설득에 의한 자발적 동의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백성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서 군주는 스스로 군자가 되거나 군자를 등용하여 협의 체제를 만들어 다스려야 하며 그런 면에서 제도보다도 인격적인 인간의 필요성이 더욱 절감된다.

맹자는 공자의 仁의 사상을 확대하여 사람은 본래부터 선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위에서 선한 정치를 구상한다. 선한 정치 곧 인의 정치란 백성을 위하는 爲民정치요, 백성과 함께 하는 與民정치이다. 위민정치와 여민정치는 백성들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전 영역에 걸쳐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정치이며 이런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는 군주는 갈아 치울 수 있다는 민귀론으로 심화된다. 그렇다고 해서 맹자가 백성에 의한 직접 참여 정치를 꿈꾼 것은 아니다. 위민정치와 여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역시 이상적 군주가 필요한데 모든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으므로 단계적 노력에 의해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성인에 의한 정치를 베풀 때 맹자가 원하는 궁극적인 이상정치가 실현된다.

장공은 유년시절 역사서들을 읽으며 역사에 흥미를 가졌고, 3.1운동과 8.15 해방을 거치면서 역사참여와 민족문제를 함께 관련지어 생각하였다. 이러한 장공의 역사참여에 대한 관심은 4.19의거, 5.16쿠데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자신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면서 역사 참여적 신학과 신앙의 고백으로 심화되었다. 개개인의 정치참여에서 개인과 교회의 참여까지 인정하였고 사회, 문화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책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신학적 근거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신앙, 예언자의 운동,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이웃사랑으로서의 사회선교에 있다. 역사 참여적 신학의 실내용은 바로 인간화와 사회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으로 참된 인간의 회복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장공은 인간의 모든 한계와 고통의 상황을 극복하려 하고 현실적인 정치체제로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옹호한다. 이러한 장공의 역사 참여적 신학의 핵심에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놓여 있으며 결국 장공의 역사 참여적 신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의 전적인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적 교육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장공 김재준의 역사참여적 신학과 공맹의 정치사상이 어떤 상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공맹의 정치사상과 역사 참여적 신학의 방향이다. 이 둘은 모두 현실 역사를 변혁하는데 관심을 갖는다. 공맹의 사상은 춘추와 전국 시대에 전쟁으로 어지러워진 중국 전체를 잘 다스리고자 하는 데서 발생한 사상이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문제나 종교적 신앙의 문제보다는 현실적인 정치와 경제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장공은 공맹의 이러한 정치적 변혁을 위한 노력을 잘 알고 있었다. 공자가 위험한 나라에 상주하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으면서도 춘추전국 시절에 6국을 편력하며 왕도를 유세하고 암살계획이 있으면서도 그 나라를 찾은 사실을 김재준은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극복한 이야기와 더불어 말한다.148) 장공은 어릴 때 당판(唐板)으로 된 맹자를 다 외우고 느낀 것은 한마디로 왕도정치였다149)는 데에서 장공이 맹자를 읽을 때도 정치적 측면이 강하게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한국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그 역사를 옹호하고 형성하고 발전시킨 데는 유교의 전통이 컸다고 말하면서 유교는 사람이 사람 되는 윤리도덕의 법칙을 배우는 그 목표가 치국평천하에 있으며 그들의 경전이 곧 정치철학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공자의 유세가 단순히 불교의 설법을 행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전도처럼 개인의 종교적 변화를 꾀하는 것이 아닌 역사 운전의 핸들이 맡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한다.150) 이러한 공맹의 정치사상과 그들의 삶은 바로 장공 김재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공자가 역사의 핸들을 돌리려고 한 것처럼 장공은 전통적인 정교분리의 원칙보다 더 나아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역사변혁을 꿈꾸는 역사 참여 신학을 형성한 것이다. 공맹의 정치사상과 장공의 역사참여적 신학의 관련성은 선후의 문제보다 상호영향 속에서 장공의 신학을 더욱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전공으로 하느님의 대언자로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구약의 예언자를 연구한 것이나 초월적 하느님에 대한 관심보다 역사 속에 내려온 하느님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은 바로 유교경전의 현실 참여적 성격이 장공 김재준 속에 이미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장공의 현실참여적 삶과 신학은 다시 유교 경전의 현실 참여적 부분을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즉 장공의 신학과 삶 속에서 공맹의 정치사상과 신학사상은 해석학적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상승작용을 한 것이다. 이러한 상승작용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초월적 신앙이나 내세적 성향은 장공에게 형성될 수 없었던 것이다.

148) 『전집』 제12권, 68. 149) 『전집』 제13권, 20.
150) 『전집』 제4권, 485-486.

둘째, 공맹의 정치사상과 역사 참여적 신학의 핵심에는 인간 회복과 민본의 정신이 함께 녹아 있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기본적으로 군자를 만드는 것에 핵심이 있으며 군자란 자기 수양을 하여 남도 이롭게 하는 仁을 실현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이 지위를 얻어 군주의 자리에 가면 백성으로 하여금 자발적 동의를 얻도록 仁治와 德治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의 정치사상은 이것보다 한발 더 나아가 백성의 자발적 동의뿐만 아니라 백성과 함께 하지 않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가 아니라면 뒤엎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공맹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인간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장공이 이해한 유교의 정치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나라의 근본은 국민이며 유교에서의 정치이념은 민본주의였다고 말하면서151) 비록 동양의 전체주의 체제가 관료조직에 의한 절대주의적 정치이긴 했으나 집권층 밖의 인간을 존중하고 백성을 위하는 위민정치였다고 말한다. 맹자의 왕도정치도 바로 이것을 이은 것이라고 한다.152) 장공 김재준의 역사 참여적 신학은 현 상황에서 가장 알맞은 정치체제로 민주주의를 선호하며 그러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며, 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의 잘못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장공의 민주주의 옹호는 근본적 원리에서 공맹의 정치사상과 통한다. 특히 백성과 함께 하지 못하고 백성을 위하지 못하며 오히려 백성을 어렵게 만드는 정치가는 바꿔야 한다는 맹자의 민귀론은 바로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통치를 겪는 장공 김재준에게 깊은 영향을 준 것이다.

151) 『전집』 제17권, 418. 152) 『전집』 제10권, 329.

셋째, 공맹의 정치사상과 역사 참여적 신학의 중요한 핵심 중에 하나는 바로 교육에 있다. 공맹의 정치사상은 위에서 밝힌 대로 덕으로써 다스릴 군자의 양성이고 군자란 끊임없는 배움과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학문은 곧 바르게 다스리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맹자에서 군주의 교육은 호연지기의 昻揚과 대장부와 같은 자세, 그리고 하늘로부터 받은 사단의 확충으로 나타난다. 이러하듯이 장공은 교육자로서 한국사회변혁을 위해 끝없이 배워야 할 것을 강조하였으며153) 개개인의 삶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삶을 사는 생활신학, 생활신앙을 강조하였다. 생활신학과 생활신앙이 정치, 사회, 문화현실에 들어가면 그것이 곧 역사 참여요 역사변혁이 된다고 보았다.154)

153) 『전집』 제9권, 347-348; 『전집』 제12권, 434. 154) 『전집』 제18권, 452에서 김재준은 진리를 생활로 살 것을 말하며 진리를 생활로 산 간디가 대영제국과 맞서 싸웠음을 이야기한다; 『전집』 제7권, 405.

넷째는 공맹의 정치사상에서 나타난 인간관과 장공의 역사 참여 신학에서의 인간의 문제이다. 공맹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통치라는 것에 있다. 공자와 맹자 모두 인간은 하늘로부터 받은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고 그 본성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한 본성을 잘 닦아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면 훌륭한 군자가 될 수 있고 그러한 군자만이 군주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한계 상황 때문에 누구나 군주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군주는 최소한 군자를 등용해 군주-군자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었다. 맹자는 성선에 바탕을 두고 군주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어 군주를 설득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 군주가 변화하지 못하면 갈아 치우고 거기에 합당한 군주를 세우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었다. 즉 공자나 맹자 모두 정치의 가능성을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장공 김재준의 역사 참여적 신학에 나타난 인간관은 피조물로서의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피조물의 한계 때문에 자신을 우상화 할 때 악이 발생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났기에 모두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행사하려면 국가와 정부가 필요하다. 그 국가와 정부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형상인 백성들을 잘 돌보아야 하는 것이며, 국가 권력을 쥐고 있는 집권층은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달아 자신을 우상숭배 하는 실수와 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억압하고 짓누르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겸손히 하나님의 청지기로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바로 맹자의 정치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장공 김재준이 공맹이 처한 상황의 유사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와 맹자는 춘추와 전국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周遊天下하며 자신의 덕치와 왕도정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장공 김재준도 일제시대, 해방, 전쟁, 산업화, 군사독재시절로 이어지는 한국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인권회복과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가 자신의 巡講을 공자의 주유천하와 연결시킨 것은 절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공자가 환퇴의 위협을 받았듯이 김재준도 교권주의자들과 독재정권의 위협을 당하였다. 이러한 장공의 삶의 여정과 공맹의 삶의 유사성은 공맹의 정치사상을 그의 신학 안에 포함시키는데 유효하였다.

이렇게 장공의 역사 참여적 신학은 공맹의 정치사상과 그 구조와 방향과 방법론에서 많은 공통점을 보인다. 스무살 이전에 공맹의 책들을 모두 섭렵한 김재준에게 있어 이러한 공맹의 정치사상은 몸에 익숙한 것이었고,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된 김재준에게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어우러져 장공의 역사 참여적 신학을 형성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4] 결 론

인간은 타고난 본능대로 사는 생물들과 다른 문화적 존재이다. 문화적 존재란 말은 인간은 문화와 문명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문화와 문명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문화는 인간의 존재양식이기에 한 인간의 삶과 그 시대의 문화는 떨어질 수 없다. 문화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깊숙한 내면세계와 외면적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장공 김재준은 스무 살 이전에는 유교, 그 이후에는 그리스도교에 푹 젖어서 산 인물이다. 따라서 장공의 삶과 사상에는 유교적 요소와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함께 들어 있다. 이 두 종교의 요소들 가운데 비슷한 것은 합쳐지고, 차이가 있는 것은 배제되거나 재해석되거나 다른 한 요소로 흡수되었다. 장공은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유교를 받아들이면서도 한편으로 유교에 젖었던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의 수용과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유교적 영향을 받기도 한다. 동시에 두 종교의 경험은 각 종교의 장점과 단점들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는 눈을 갖게 해 주었다. 장공의 삶과 신학의 여러 장점과 위대한 점들은 바로 이러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깊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나 더 큰 화음과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지점은 바로 인간회복과 현실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유교는 만물 중에 인간을 가장 고귀한 존재로 보며 본래 선한 인간성의 회복과 인간의 참된 삶을 위한 현실 세계의 변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을 위한 섬김과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사랑을 기억하며 현실 세계를 하나님 나라로 이루는데 인간이 참여할 것을 부단히 가르친다. 이 두 종교는 불교처럼 현실을 가현적 세계로 보면서 현실에서 떠나는 도피적 행각을 보이거나, 도교처럼 인간의 문명의 세계의 문제를 자연의 문제로 환원시켜 내버려 두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현실참여적 특징이 장공 김재준의 역사 참여적 신학과 삶과 신학과 신앙이 분리되지 않는 생활신학 또는 생활신앙을 낳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에는 신비적 요소와 이 세계를 초월하는 사상이 녹아 있기에 현실을 무시하고 신비적 체험 속에 자신을 안주시키거나 현실을 떠나 내세만을 지향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신비체험과 내세 지향적 성향은 현실의 삶이 극도로 어려울 때 더 심해진다. 장공 김재준이 살아온 시대의 한국은 극심한 사회변동을 겪은 시기였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식민지 백성으로 살다가, 해방을 맞았으나 준비가 없던 탓에 극심한 혼란을 겪었고, 결국 외국군에 의해 분할 통치되다가 약 300만이라는 사상자를 낸 전쟁을 치렀다. 전쟁 후에는 극도로 빈곤한 상황에서, 무리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권은 상실되고, 자연이 파괴되고, 도덕적 가치와 기준들이 전도되었다. 지역간, 도시․농촌 간 경제적 사회문화적 불평등이 생겨났고, 군인들에 의한 독재정치로 국민들의 고통은 더욱 극심하였다. 이런 시대 속에서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대다수는 현실의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내세 지향적 삶과 신비주의적 성향으로 흐르거나 자본주의의 흐름에 영합하여 참된 그리스도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제 몸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시대상황과 그리스도교의 성향 속에서 장공 김재준이 역사 참여적인 삶과 신학을 올곧게 지켜내고, 세상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핵심가치인 현실세계에 대한 변혁과 치유가 그에게 온전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유교의 핵심적인 요소가 장공 속에서 열매 맺은 또 하나의 예는 바로 자기 수양론이다.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고 인간의 공로는 아무 소용없다는 이신칭의론의 곡해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행함이 따르지 못하는 믿음을 양산하였다. 믿음은 행함을 동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한국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수단으로 믿음을 이용했을 뿐 그 믿음에 따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위를 보여 주지 못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부정부패와 범죄행위는 일반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월등하게 높은 도덕적 윤리적 삶을 보여주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 그리스도교는 이 사회에서 점차 신뢰성을 잃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장공 김재준의 삶은 그러하지 않았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았으며, 가난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등 끝까지 그리스도인의 지조를 지켰다. 이러한 김재준의 삶은 유교가 내세우는 군자와 군자를 닮았던 조선시대의 꼿꼿한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장공이 각종 어려움에 처하고 신중한 판단이 요구될 때마다 그가 동양고전을 떠올리며 그 위기상황을 해결해 나간 것을 볼 때, 그의 삶에 녹아든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유교적 자기 수양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유교적 선비정신과 기질은 김재준이 흠모해 마지않았던 톨스토이나 성 프랜시스, 또 많은 순교자들과 같은 그리스도교의 성인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장공의 삶과 행동을 지배했던 것이다.

장공은 그리스도교를 만나면서 유교에서 어렴풋하게 가리켜왔던 하늘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장공의 신앙체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장공이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교에서 말하는 天을 뛰어 넘는 존재이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인격적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기계시, 창조주 개념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등등은 유교에는 없는 개념이다. 장공은 도덕적 근거나 우주의 보편적 원리로서의 天보다는 인간에게 친밀하게 다가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에게서 진정한 안식을 찾는다. 인간과 함께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발견은 교리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하나님을 그려왔던 서양그리스도교와도 다르다. 장공 자신의 신앙체험과 장공의 연하고 풍류적이고 시적인 동양적 감수성은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삼위일체론적 하나님을 고대 히브리인이 만났던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처럼 만나게 한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교리적으로 읽지 않고 가슴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다. 가슴으로 만나는 하나님과 원리로서 만나는 天은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유교의 天개념은 장공 김재준에게 있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 개념에 흡수되어 버린다.

그리스도인이 된 장공 김재준은 유교의 仁이나 孝, 道와 같은 개념들을 새롭게 재해석한다. 인에 대한 다양한 논의 중에 忠恕로 해석하는 부분과 殺身成仁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장공에게 유난히 강조되는 것은 위에서도 살핀 바와 같이 유교의 인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랑은 몸을 죽여 인을 이룬 것이며 자신의 인격 완성의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수용과 사랑이 더 앞선 것이기 때문이다. 孝도 장공에게는 단순히 부모 자식간의 윤리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의 부모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논의된다. 장공은 유교가 말하는 道는 하늘을 더듬어 찾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道라고 명시한다.

장공이 배제하고 비판하려는 유교의 특성은 고정화된 계층적 질서유지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에서 비롯한 女權의 제한이다. 오륜에서 평등적 질서를 말한 붕유유신을 긍정적으로 말하면서 나머지 관계에서도 평등을 실현하고 믿음을 넣으라는 장공의 제안은 유교에서 깊게 들어야 할 말이다. 자기의 자리가 아니면 그 정치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라든가 밑에 있는 사람은 입이 있어도 말을 말라는 유교의 명제들은 기득권을 지닌 권력자만을 옹호하는 말이 되기 쉽기에 상황에 따른 유연한 재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유교의 시대적 한계로 인한 여성 권리에 대한 제한과 무시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장공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종교를 함부로 폄하하지 않았다. 그것은 타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처의 가부좌 자세가 가장 아름다운 포즈라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은 오랜 정신문화를 지녀온 나라이다. 유교, 불교, 천도교, 기타 민속종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음으로 양으로 역할들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도 한국의 종교 중에 하나이며 한국의 국민들은 다양한 종교들을 보고 어느 종교가 참 진리를 드러내는지를 매섭게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그리스도교와 한국의 교회는 타종교와 세속의 문화에 대해 배타주의적 성향이 강하였다. 이런 배타주의적 성향은 타종교를 이해하는 것조차 가로 막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적 종교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도교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현상이다. 한국의 전래 종교들과 한국의 문화 상황에 대한 바르고도 깊은 이해는 그리스도교의 선교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이해 없이 자신만의 독백을 되풀이하는 것은 소음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배타적일 뿐 아니라 아직도 내세 지향적이고, 현실 도피적이거나 자본주의와 타락한 세속주의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현실에서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은 동양의 풍토에서 자란 그리스도교의 아름다운 열매이다. 특히 유교라는 양분을 많이 섭취한 그리스도교의 한 가지요, 꽃이요, 열매인 것이다. 서양 그리스도교의 형이상학적 철학적 이론적인 신학은 현실과 괴리될 때 쓸모없는 것이 된다. 우리 삶을 말하지 못하는 신학의 결과도 그러할 것이다. 내세 지향적이고 현실 도피적이고, 자본주의에 영합하는 신학 또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생활과 삶과 현실에 뿌리박고 우리 정신과 문화에 뿌리박은 신학과 신앙과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교는 참 하나님 백성으로 예수의 제자로 거듭날 것이다.

새로운 그리스도교로 거듭나려고 할 때 장공의 신학과 삶과 신앙은 깊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장공의 삶과 신학이야말로 이 땅의 토양에 예수 그리스도의 원복음 즉 사도들이 전해 받은 복음을 심어 피어난 소중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6천년 문화전통 속에 뛰어든 한국 그리스도교도 20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는 이제 이 땅에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의 유교적 요소를 다루는 것이 본 논문의 목표였기에 장공 김재준의 신학과 삶이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자세하게 살피지 못한 것이 본 연구의 한계로 남는다. 또한 사서 삼경이외의 다양한 동양경전들의 인용들을 모두 살피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연구는 장공의 신학 속에 나타난 유교적 요소를 살핀 첫 논문이다. 같은 주제로 이어지는 장공 연구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