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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및 강연

[목요강좌 제1회] 장공의 이데올로기 이해 / 손규태 박사

목요강좌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3 18:46
조회
947

[長空사상 연구 목요강좌] - 1

장공의 이데올로기 이해

일시 : 2003년 10월 30일
장소 : 경동교회 선교관 4층 장공기념채플

손규태 박사
(성공회대학교 교수)

1. 들어가는 말

장공 김재준의 삶과 사상을 바로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칼빈주의의 하나님 이해의 빛에서 봐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주요, 역사의 섭리자요, 완성자라는 하나님 이해, 즉 하나님의 절대성이 바로 장공신학의 시작이고 목표였다. 따라서 인간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이 하나님이 계시해 준 진리의 길을 따라서 그에게 복종하고 그의 뜻을 실천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은 영광의 자리에만 있지 않고 친히 인간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서(임마누엘)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사건, 즉 그리스도 사건이다.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 즉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과 죽음은 바로 이 하나님만이 우리 인간의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유일한 사건임을 우리에게 입증해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고 따를 수 있고 마침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뜻은 구약성서에서는 율법, 특히 사회법을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되었다. 이 율법을 요약하자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며, 여기서 이웃이란 구체적으로 가난하고 억눌리고 약한 자들을 대변하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구약성서의 사회법은 예언자들, 특히 8세기의 사회적 예언자들, 아모스와 미가 등을 통해서 계승되었다. 나아가서 이러한 사회법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더욱 “철저화” 되었다. 예수는 성전과 안식일, 그리고 할례 등 제사법에 안주해서 성전에 농성하고 안식일을 이용해서 종교적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과 대결함으로써 사회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함으로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서기관들의 “의”를 뛰어넘고 있다.

이러한 성서의 정신에서 우선 장공은,

1. 성서를 교리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학문의 자유). 2. 교회를 성직계급의 특권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켰다(교회의 자유).
3. 사회를 온갖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켰다(정치적 해방).
4. 인간을 온갖 이데올로기, 즉 “허위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켰다(이데올로기적 해방).

이러한 일련의 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장공은 일차적으로 성서를 교권주의(카톨릭 교회)와 교리주의(개신교 정통주의)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성서의 진리를 왜곡과 암흑으로부터 밝히 드러내는 학문적 투쟁을 전개했다. 이것이 바로 박형룡 등 일단의 교리주의자들과 투쟁을 전개하게 만든 사건이다.

나아가서 장공은 이러한 학문의 자유를 위한 투쟁과정에서 성직계급, 특히 교권주의자들과의 투쟁과정에서 그들로부터 추방당하고 나서 그를 따르는 일단의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다. 이것이 곧 한국기독교장로회의 탄생이었다.

장공은 이러한 종교개혁 혹은 교회개혁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1960년대 초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등장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고 모든 자유를 압살할 때 그는 성직자로서 종교적 영역에 농성하지 않고 밖을 향해서 예언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는 인권과 민주화뿐만 아니라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투쟁했다.

해방 직후 남한과 북한이 새롭게 등장한 이념국가들, 즉 강대국들에 의해서 분단되었을 때 장공은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족쇄를 향해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투쟁했다. 그는 한국에서나 해외에서 활동할 때나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서, 남북한의 통일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이러한 투쟁으로 점철된 장공의 삶과 사상의 근저에 흐르는 맥락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한마디로 하나님의 절대성과 함께 인간의 상대성이라는 도식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성은 개혁교회 전통에서의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과 인간의 타락과 죄성에 근거한 상대성이 장공의 삶과 사상에서 결정적 준거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학적 경향에서 장공은 교리주의, 교권주의, 독재주의, 이데올로기 등과 일관되고 끊임없는 대결을 한 것이다.

필자는 교회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지대한 악영향과 해악을 끼치고 있는 의사종교적 교리체계인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대해서 장공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려 했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2.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

장공은 해방 이후 그의 생을 마칠 때까지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분단시대를 살아가며 지성인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의 경험이기도 하다. 장공이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관심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 기독교인들의 모임인 선린회에서 발표한 논문 “기독교와 건국이념”이라는 글에서부터라고 생각된다. 해방 직후 나라의 건국의 이념적 방향을 놓고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대립 투쟁할 때 이 글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다시 찾은 조선에서 독립투쟁을 하던 세력들, 특히 좌우익 세력들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서 장공처럼 이데올로기 문제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입장을 밝힌 사람은 없었다.

1)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우리가 서론적 고찰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장공 선생은 하나님의 절대성이라는 개혁교회 전통에 따라서 인간의 “自由”에 대한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일차적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은 시민적 자유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일단 장공을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로 규정할 수 있다. 그는 해방 직후, 즉 1945년 8월에 쓴 글 “기독교와 건국이념”에서 그리스도교적 이상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최상의 가능성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기독교적 영향력이나 국민의 민도가 낮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서 일단 인간의 기본적 자유들이 보장되는 국가형성을 희망했다. 당시 해방정국에서 좌우익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그들이 목표하는 체제의 국가를 형성하려는 상황에서 장공은 다음과 같은 그의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신앙과 예배의 자유, 사상, 언론, 집회, 출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부만 수립되면 감사할 것이다. 이런 자유가 호상 충돌되는 때 각개의 경계선에 대한 호상 경의를 강제하는 것은 정부의 할 일이다.”1) 장공은 무엇보다도 신앙과 예배의 자유를 중요시했으며, 그 다음으로 일반적으로 헌법에서 보장되는 자유의 항목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그리스도교 지도자로서의 희망과 함께 당시 북한에서 전개되는 종교의 박해를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세력의 등장으로 이미 종교의 자유가 위협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 “기독교와 건국이념”, 장공 김재준 저작전집 제2권, p.29.

그러나 장공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대립, 즉 사회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상호 충돌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이들 사이에 경계선을 그어주고 동시에 서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책무를 가진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면서도 다른 이념, 즉 사회주의에 대해서 무조건 적대시하거나 배격하지 않고 있다. 다음 항목 “사회주의”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장공 선생은 이데올로기의 다양성을 긍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사상을 부정하는 극우적 자유주의자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장공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한국전쟁 이후 1953년 5월 <思想界>에 기고한 글 “民主主義論”에서 더욱 상세하게 밝혀지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로 (1) 개개인의 인격의 존엄성 보장, (2) 개인의 자유의 보장, (3) 인간성에 대한 신뢰, (4) 사회적 연대성, (5) 권위의 내재 등을 들고 있다.2) 여기서 장공은 더 이상 종교의 자유에 관한 것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에 의하면 이 종교의 자유는 이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는 오히려 인격의 존엄성과 자유의 보장,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신뢰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장공 선생이 이미 민주주의의 원리를 종교적 신앙에서보다는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장공의 사상의 깊이와 넓이를 보게 된다. 즉 장공은 기독교의 기본원리들과 휴머니즘의 원리들이 서로 대립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을 그의 민주주의론에서 밝히고 있다.

2) 상게서, pp.284-289.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장공은 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로서 “사회적 연대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 원리가 가진 핵심적 내용을 간파한 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의하면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개인적 자유가 사회적 연대성을 거부하고 사리획득의 원리로만 사용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공에 의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개개인들의 사회적 연대성을 견지하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이라고 이해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공은 같은 글에서 (자유)민주주의의 “缺陷”에 대해 비판도 가한다. 그는 우선 (자유)민주주의의 결함으로서 “經濟的 不均衡”을 들고 있다. 그는 개인적 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를 소유하게 되는데, 이 자본주의가 오늘날 인류를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모순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부의 偏在와 그에 따르는 실직 무직자의 증대, 식민지의 상실과 그에 따르는 생산품의 덤핑(축적), 주기적으로 오는 恐慌, 이런 것을 다소 인위적으로 시정하며 가봉한다 해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통제경제정책을 강화하면 민심의 해이와 함께 독재와 강박을 강화하여 종당은 공산주의 정책과 다름없이 될 것이다. 그러노라면 인간성의 연한 촉수는 저절로 시들어버린다.”3) 그는 일단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 반대로 통제경제정책을 쓰고 있는 사회주의의 모순점도 지적하고 있다.

3) 상게서, p.290.

특히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矛盾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기주의를 근거로 하고 자본을 萬能의 武器로 하여 인격을 機械化, 奴隸化 하며 불의의 策謀와 掠奪과 戰爭으로 시장을 獨占하여서 각자의 貪慾을 채우려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것이다.4) 자본주의는 극단적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인간을 경쟁의 도구로 삼아 그 인격을 파괴하고, 나아가서 국제간에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와 같은 것을 추구함으로써 그 수단으로서 전쟁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맑스와 레닌 등이 간파했던 제국주의론과 같은 맥락에서 장공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설파하고 있다.

4) 상게서, p.30.

그리고 장공은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결함으로서 여기에 참여해야 할 민중들의 無知, 無能 無關心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국민의 정부’가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장공에 의하면 제3세계의 나라들에서와 같이 민중들이 의식화되지 못한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결함은 그들의 무지와 무능, 그리고 무관심으로 인해서 제대로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지배 엘리트들에 의해서 이용당하고 자기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그것의 주체가 되는 시민들이 자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결함은 그것이 종교를 떠나서 세속주의와 결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장공이 세속화와 세속주의에 대한 철저한 구별을 하지 않은데서 오는 약간의 오해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종교적 산물이 아니라 엄격하게 말하면 계몽주의에 기초한 유럽 사회의 세속화 과정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 유럽 사회를 통합하고 있던 제단과 왕좌(종교와 정치)의 해체는 강력한 휴머니즘 운동에 뿌리를 둔 계몽주의와 그에 따른 세속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세속화 과정에서 왕권신수설과 같은 전통적 이데올로기가 깨어지고 국가 정치의 신성성이 물러나서 통치관계는 “계약”에 의해서만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세속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순이 가득 찬 자본주의를 교회는 그 동안 무조건적으로 지원했던 것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인간성을 파괴하고 나아가서 이윤추구를 위해서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마다하지 않고 전쟁까지도 불사했던 자본주의를 교회가 지원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2) 사회주의 문제

社會主義 혹은 共産主義 문제는 장공에게서나 우리 모두에게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장공은 이미 1920년대 중반 청산학원 유학시절 일본, 특히 일본대학들 안에서의 공산주의 운동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곳 대학 내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서회”와 같은 사회주의 학생단체들에 잠시 참여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 자기가 믿고 있던 기독교 신앙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탈퇴하고 만다.

장공이 사회주의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된 이후부터이다. 그는 1945년에 쓴 글 “基督敎의 建國理念”이란 글에서 사회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여기서 사회주의에 대해서 매우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선 공산주의 자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회과학적으로 경제기구의 실상을 검토하며 그 더 좋은 재건을 기도하는 점에 있어서 존경할 것이며 그것이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객관적 사실을 드러낸 것인 한 우리는 그것을 수락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신앙과 예배의 자유, 사상 및 언론, 출판의 자유, 개인양심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공산주의나 기타 여하한 정부라도 조선의 현실에 비추어 우선 감사히 수락한다는 말이다.”5) 그리고 장공은 또 이렇게 말한다. “착취당하는 대중의 생활향상과 인간적 존엄을 위하여 경제와 정치기구의 가장 과학적인 개혁을 행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전연 비기독교적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6)

5) 상게서, p.29. 6) 상게서, p.30.

그러나 장공은 공산주의의 문제점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정신적 사상적 방면에 있어서 唯物論, 無神論的 견해를 전체에 강요하는 때 우리는 신앙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개인의 존엄을 위하여 감연히 거부할 것을 각오하여야 한다.”7) 그러나 장공이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공산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유물론, 무신론에 두고 있는 것에서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실천적 적대행위에서 찾고 있다. “이 이론 방면보다도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沒理解한 敵對行動을 취하여 神을 冒瀆하며 聖域을 蹂躪하고 신자를 冒瀆殺害하여 悖倫의 道를 敢行하는 등 심히 불쾌한 인상을 남긴 것이 그 가장 큰 원인인줄 안다.”8)

7) 상게서, p.30. 8) 상게서, p.30.

장공이 공산주의에 대해서 본격적인 논문을 쓴 것은 1953년도에 <사상계> 8월호에서였다. 그는 이 글에서 아놀드 토인비와 사회학자 소로킨(Sorokin)의 이론을 들어서 서양문명의 발달사를 개괄하고 나서 서구 문화의 세기말적 상황에 등장한 공산주의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그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현대문명의 死前에 생긴 최종의 발악으로서 자기 몰락을 재촉하는 것이요, 결코 새 시대 창건의 역군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단언한다.” 장공은 공산주의를 이렇게 규정한다. “전투적 무신론, 절대 현세적 과학만능 신봉, 유물적 인생관의 강화, 힘의 철학의 무자비한 응용, 철저한 전쟁윤리, 도덕의 상대성 등을 거쳐 광신적이라 할 만치 신봉하고 있다.”9)

9) “공산주의론”, 상게서, p.295.

그가 1945년의 입장과는 달리 이렇게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그 동안의 한국전쟁의 경험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공산주의가 제시하고 있는 피압박자들의 해방, 식민지 국가들의 해방, 같은 이념하의 국제적 연대성, 경제정의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것들이 과도한 선전물에 속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장공이 관심하는 것은 공산주의가 가진 이런 경제정책이나 사회정책의 문제성보다 그것이 가진 종교적 성격을 더 문제 삼고 있다. 장공은 공산주의 철학이 가진 메시아주의의 고양, 공산주의 사상의 절대화, 그들의 사상서의 경전화, 레닌 묘의 참배, 지도자의 신격화 등을 문제 삼고 있다.10) 그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경험적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것이다. “공포, 숙청과 전연 자유가 거부된 그들 밑에서 자유인으로 어찌어찌 살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이다. 우리가 만일 인간이라는 의식이 있다면 무엇을 위하기 전에 벌써 질식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고장이 그들의 傘下인 까닭이다.”11)

10) 상게서, p.301. 11) 상게서, p.302.

이러한 장공의 철저한 반공적 입장은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소 변화를 보인다. 그러나 그가 반공주의자가 됨으로써 무조건적으로 맹목적 자본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왕권통치라고 하는 관점에서 세상의 이데올로기들을 상대화하고 있다. 이렇게 장공은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가 상대적 이데올로기로서 각기 모순들을 가지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했고, 여기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존하는 이데올로기적 체제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간화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영합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하에서 이것들을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과제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장공은 1966년 8월 “공군”지에 기고한 “基督敎와 共産主義의 理論的 對決”이란 글에서 세계적인 신학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스위스의 신학자 에밀 부른너(Emil Brunner)의 전체주의 이론에 입각한 반공주의와 체코의 신학자 로마드카의 자본주의 비판 등을 소개하면서 기독교인들 사이의 다양한 입장들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장공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 추세에서 이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프로파간다에 기초한 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나 모두 자신들의 국가 이익에 집중함으로써 이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추세에서 기독교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산주의는 세계혁명, 새 세기의 탄생을 위한 메시야적 정열보다도 자국민 생활향상의 도구 또는 방편으로 전락했다. 그러므로 미래 세기는 역시 기독교적 인간혁명에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화하고 있다.”12)

12)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이론적 대결”, 상게서, p.192.

이러한 장공의 입장 변화는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기독교와 사회주의 사이의 대화라고 하는 새로운 차원이 등장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공은 개혁교적 전통에 서서 모든 이념들을 상대화하려는 입장이 그를 특정 이데올로기의 맹목적 추종이나 맹목적 저주로 떨어지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의 글 “공산주의의 후진국 침투와 교회의 책임”이란 글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13)

13) 상게서, p.230-237.

3) 기독교와 민주주의

장공은 민주주의 원리와 실천의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논문을 집필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 그리고 교회의 민주적 사회참여에 관한 글들도 여러 편 썼다. 그는 우선 “민주주의 운동과 한국교회”라고 하는 글에서 이 양자간의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다.14) 장공에 의하면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일정한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동시에 어떠한 환경에도 굴복당하지 않는 진리를 내포한 종교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기독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민주주의라고 하는 체제를 지지하고 수호해야 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14) 상게서, pp.462-466.

여기에서 기독교가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수호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기독교의 그것과 같은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15) 장공에 의하면 민주주의에서만 인간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평등이 보장되는데, 이것은 인간의 자유를 통해서 실현된다는 것이다.

15) 상게서, p.462.

우선 장공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이러한 자유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서 보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은 누구에게도 노예나 종이 될 수 없으며 서로 친구이며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고, 이러한 동등성에서 인간의 고귀한 존엄성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엄성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 신학적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이러한 자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타락함으로써 상실되고, 인간은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죄악과 노예의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희생당하고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을 속량하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는 그리스도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킴으로써 궁극적 자유를 허락했다는 그리스도론적 이해에서 인간의 자유의 근거가 주어진다는 말이다. 사실상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다양한 사상들을 통해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자유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장공의 사상이다. 이렇게 장공 선생이 인간의 자유를 그리스도론에서 도출해 내는 것은 마치 바르트가 관계의 유비를 통해서 정치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것의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16)

16) K. Barth, Christengemeinde und Bürgergemeinde, Theologischen Studien 104, Theologischer Verlag Zürich, 1946.

그 다음으로 장공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근원을 자유에서 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에서 보고 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란 자유라는 수레바퀴와 정의라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를 통해서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또 하나의 근간이 되는 정의는 물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에서도 도출될 수 있지만 장공 선생은 그 근거를 예수의 가르침, 즉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서 보고 있다.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는 그 속성상 자유를 포함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정의, 즉 하나님의 정의가 더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마태복음 20장).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창조된 인간들이 모두 형제와 자매로서 한 식탁에서 같이 먹고 마시며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나라, 즉 하나님 나라는 율법과 예언자의 전통을 통해서 전수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룬 정의가 없이는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장공은 이러한 자유와 정의를 기반으로 하고 성립된 민주주의야말로 성서의 가르침과 일치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민주주의를 찬성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이러한 민주주의 실현과 수호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장공 선생님은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의 민주참여와 사명”17)이란 글에서 한국 초기 한국의 진보적이고 깨어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참여의 역사를 높이 평가한 다음, 그러나 이러한 참여운동이 1930년대 중반 신사참배거부운동을 통해서 변질된 것을 비판하고 있다. “日帝末期 神社參拜가 强要되던 때 朱基澈 牧師를 爲始하여 수십 명의 獄死者를 낸 것은 當時의 韓國敎會가 다만 屈從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함이겠지만, 敎會 全體로서의 決議는 역시 屈從의 表現이었다. 주기철 목사 등의 抗拒도 그것이 歷史參與라는 基督敎 倫理意識에서라기보다 ‘偶像에게 절하지 말라’는 宗敎的 戒律遵守라는데 그 一念이 傾注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안티오커스 시대에 그리시아 군대에 응모된 유대인들이 安息日에 軍隊訓練이나, 出戰하려는 것을 拒否하고 死刑을 받은 것과 서로 통하는 심경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8) 장공에 의하면 해방과 더불어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물려받은 것이란 고작 정통신학에 의한 사상의 동결, 부흥운동에 의한 감정의 승화, 일제강압에 의한 굴종의 관습과 같은 일종의 악습이었다는 것이다.

17) 상게서, p.109. 18) 상게서, p.113.

이러한 민주주의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장공은 민주주의를 오늘날의 정치체제에서 가장 유효한 체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를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현실적 차원에서 요청된다고 보고 그 당위성과 실천을 강조하는 다수의 글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한국 敎會와 民主參與”, “한국 가정의 전통과 民主主義”, “民主主義는 피할 수 없다”, “民主主義는 가정에서부터”, “한국 民主主義를 위하여”, “民主한국을 위하여”, “民主主義 운동과 한국교회”, “民主原則은 준수되어야 한다” 등19)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와 그것의 실현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글들은 주로 한국의 권위주의적 현실과 여기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19) 이 글들은 모두 장공 김재준 저작전집 제2권에 실려 있다.

장공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모순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민주주의를 제창하면서도 그것이 가진 모순들을 시정하는 길을 늘 모색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길의 모색을 사회주의에서 찾기보다는 기독교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민중전통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