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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사숙(私淑)

사숙(私淑) : 뛰어난 인물을 마음속으로 사모하며 그 사람의 저서나 작품 등을 통해 본받아 배우는 것

더더욱 스승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 김수배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11-27 16:55
조회
1120

더더욱 스승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김수배 목사(증경총회장)

우문현답

장공 김재준 목사님의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어른의 생전에 남기신 말씀과 교훈이 나의 뇌리에 각인된 것이 되살아나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6ㆍ25 전쟁으로 인하여 부산 남부민동 천마산 기슭에서 피난살이 하던 때 가교사에서 김목사님의 강의 시간에 우문현답(愚問賢答)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 두 사람을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 속에 숨겨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여리고 왕이 보낸 관헌이 수색하러 왔을 때 라합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내 집에 왔었으나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면 그들에게 미치리이다’ 하였으니 그것은 거짓말이 아닙니까?” 하였더니 김 목사님은 “내가 전쟁 중에 임자의 집에 가서 숨어 있었다면 잡으러 온 사람에게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였겠느냐”고 반문하셔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고 옹졸한 생각이었는지 고소를 자아냅니다.

믿음은 그 목표가 영원한 데 있습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목에 입대하여 교육을 마치고 휴전되기 2개월 전에 전방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피아간 공방이 가열된 백병전을 두 번이나 치렀으나 그 생사의 기로에서도 위험 지대를 방문하며 군목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아서 휴전이 되어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휴전 후에 나에게는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보병 제12사단에 근무할 때 부활주일 새벽 예배를 양구침례교회에서 군민 합동으로 드리기로 하고 병력을 동원하여서 세 대의 트럭에 태우고 가는데 안개가 짙어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탄 세 번째 트럭이 그만 바퀴가 도랑에 빠지면서 전복이 되어 10여 명의 병사가 중경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나는 큰 상처는 입지 않았으나 이로 인하여 번민과 실의에 빠져 의욕을 잃고 책임감에 짓눌려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은사이신 김 목사님께 저의 참담한 심정을 서신으로 올렸더니 바로 위로와 격려의 친서를 보내 주셔서 재삼 봉독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새 힘을 얻어 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서신은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보관하고 있는 바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수배 군목 혜감(金修培軍牧惠鑑) 귀함(貴函)을 승견(承見)하고 그 동안의 노고를 상찬(賞讚)하오며 주께서 주를 위한 수고를 무(無)에 돌리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신앙 생활의 성장에는 반드시 시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을 이기어 가는 때 신앙은 더욱 자라나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에 예배에 나가다가 차 사고가 생겼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으로 축복이나 신앙 문제에 결부시킬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3:1-5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 사람들이 무슨 죄가 더 있었다거나 신자가 축복을 못 받아 그렇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사건을 계기로라도 다들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나아올 기회를 삼을 것뿐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은 어떤 지상적인 세속적 영달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원리요 본질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욕심대로 무엇이고 하려니까 서로 충돌하고 스스로도 멸망에 들어가는 것이외다.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초목이 태양을 떠나는 것과 같은 것인 까닭이외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 세상에서 오래 살든 잠깐 살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벌써 영생에 참예해 있기 때문이외다.
요한복음 9:1 이하에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행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면 그 자체가 벌써 해결된 것입니다. 그 사람과 같이 눈이 떠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눈먼 문제 자체가 벌써 그 근본에서 해결을 본 것이기 때문에 그는 초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은 그 목표가 영원한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련을 당할 때 오히려 그 영원한 문제를 제시하여 일시적인 행불행과 안일이나 곤고에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네 죄가 사해졌느냐?”, “네가 영생에 참예했느냐?” 이것을 살피고 이 일에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부디 그런 일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오. 그것이 열등감을 가져올 까닭이 없습니다. 군대에서 그런 사고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오.
그것은 고의로 된 것이 아니니까 도덕적으로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외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통하여 오히려 믿음에 단련을 주시는 것이므로 오직 주님을 더욱 쳐다보고 영생과 거룩한 평화를 얻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불비례(餘不備禮). 주은(主恩)이 해재(偕在)하소서.
6월 14일 김재준(金在俊)

이 서신을 받고 너무나 감격스러워 두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큰 위안과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자를 사랑하고 아끼는 자애스러운 참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목회자의 금도를 보여주신 스승

나는 7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예편한 후에 충남노회 서천교회에 부임하여 목회하고 있을 때 김 목사님께서 당시 총회장이신 고 정규태 목사님의 초청으로 판교교회에 오셔서 집회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뵌 일이 있습니다. 판교에는 변변한 여관도 없는 곳인지라 역전에 있는 하숙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너무도 송구스러워서 “목사님 큰 고생을 하십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이만하면 됐지 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고 했듯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시고 원망과 시비가 없으신 금도(襟度)를 보여주셨습니다.

1968년 3월에 내가 서울노회 동원교회에 부임하여 담임목사 취임식을 가졌는데 김 목사님께서 오셔서 설교를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분부”(마 28:16-20)라는 제목으로 감명 깊은 말씀을 주셔서 오늘까지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올해로 장공 선생님의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고, 서거하신 지 14주년에 즈음하여 기념사업회가 발족된 것을 환영합니다. 기념사업이 알차게 이루어져서 목사님의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열정과 한국 사회에 끼치신 큰 뜻을 길이 전승하도록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선생님의 풍모, 학덕, 교훈, 생활을 어떻게 필설로 다 헤아릴 수 없으나 더더욱 스승을 흠모하는 마음으로 졸필이나마 이만 그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