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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 사숙(私淑)

사숙(私淑) : 뛰어난 인물을 마음속으로 사모하며 그 사람의 저서나 작품 등을 통해 본받아 배우는 것

광주민주화 운동과 김재준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9-03-04 21:23
조회
1375

"광주사태와 국무성 앞에 모인 민주인사들"(1980. 5. 23)


1980년... 광주시간으로는 5월 24일 새벽은 광주시가 피바다가 되는 날이었다. 70여 명의 회원들은 준비한 현수막과 picket을 들고 국무성 정문을 둘러싸고 데모를 시작하였다.

(중략)

사실 국무성 정문 앞은 데모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금지구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광주시가 불바다가 된다는 뉴스를 들은 우리 일행은 생사를 호소하며 탄원하는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에, 국무성 앞이 아니라 국무성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온 세계 기자들이 모여들 것으로 생각하고, 위법인줄 알면서도 국무성 정문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데모를 하였다. 국무성 문턱을 들어서면 무조건 경찰이 연행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외치기는 하지만 picket을 들고 국무성 문턱을 뛰어 넘어서는 일은 주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 팔십이 된 김재준 목사는 picket을 하나는 목에 걸고 또 하나는 손에 들고 국무성 문턱을 넘어 들어가서 "미국은 한국백성을 학살하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때 경찰관 한 사람이 "저 노인은 누구냐?"하고 물어서 어떤 분이 "저 사람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민주인사 김재준 박사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경찰관은 미국에 널리 알려져 있는 "김대중"으로 착각을 하고 국무성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한국의 민주인사 김대중 씨가 지금 정문에 서서 미국정부를 비난하고 있다"고 말을 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국무성에 대기하고 있던 외국기자들이 마치 구름 떼 같이 몰려와서 시위하는 김 목사의 사진을 찍어대며 야단법석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 순간 한국 문제를 전담하고 있는 워싱턴 특파원 문명자 기자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지금 국무성 안에는 한국의 민주인사 김대중 씨가 데모를 한다고 광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무성의 창문들이 죄다 열리고 밑에서 데모하고 있는 김대중을 보려고 아우성들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어쨌든 그 순간부터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온 세계 언론이 광주사건을 톱기사로 보도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미국에서 펼친 한국 민주화 운동], 김영철 지음, 성광문화사, 203-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