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空 회보

[회보 제29호] 장공생활신앙 깊이읽기 - 제19강. 장공의 기이한 꿈 이야기 / 김경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3 13:07
조회
713

[제29호] 장공 생활신앙 깊이 읽기


제9강. 장공의 기이한 꿈 이야기



【장공의 글 읽기】


꿈1 : 동경 유학 여부로 고민하던 때


1925년 아니면 26년 무렵이었다. 하루는 꿈도 생시도 아닌 일종의 비전vison 상태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다. 큰 호랑이가 내 뒤에서 앞발을 내 어깨에 걸고 나를 뒤로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다. 네가 떠나는 건 하나님의 뜻이다!” 그 순간 호랑이는 어디론가 물러가고 나는 ‘비전’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장맛비 개듯 맑았다. 더 우물쭈물할 것도 없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대로 간다는 신념이 생겼다. - 동경에로, 「전집」 제13권, 77쪽


꿈2 : 일제강점기 말기 도농에서 지낼 때


큰소리 치던 일본이 발악하며 몸부림치던 초기였다. 꿈에 나는 내가 산 1,500평 감자밭 가운데 호미를 놓고 서 있었다. 갑작스레 일본 천황 소화昭和와 독일의 히틀러가 내가 사는 고장에 오더니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우리와 우리나라는 이제 어쩌란 말이요!”하며 통곡했다. 나는 그들을 껴안고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일본도 독일도 그리 낙심하지 마시오….”하며 그들을 격려해 보냈다. 소화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고 히틀러는 훨씬 아래다. - 몽견선친, 「전집」 제15권, 142쪽


꿈3 : 육이오전쟁 일어나기 몇 달 전


나는 전농동 어느 언덕바지 높은 곳에서 서 있었다. 서울 시내를 바라봤다. 갑작스레 밀려든 시뻘건 진흙탕물이 서울을 흙탕물 호수로 만들었다. 남산 꼭대기가 머리를 약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서 있는 동안에 흙탕물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개천, 논두렁 할 것이 없이 물이 흐를 수 있는 물고에서는 어디서나 흙탕물이 곤두박질하며 빠져나갔다. 길이 나타나고 논, 밭도 집도 물속에서 얼굴을 들고 나왔다. 나는 나타난 길을 걸어 서울에 들어갔다. 목이 말랐다. 간 데마다 흙탕물이 고여 ‘물’은 한량없이 많았다. 그러나 마실 물은 없었다. 더러운 ‘죽음’의 ‘시즙屍汁’이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은 역시 남산 약수터 바위틈에서 한 방울씩 졸졸 흘러내리는 맑고 단 약수였다. 이것이 ‘생명샘’이었다. - 몽견선친, 「전집」 제15권, 142쪽


꿈4 : 육이오전쟁 직후


육이오전쟁이 끝난 직후, 교수 사택을 짓기 전에 나는 학교 구내에 헐리다 남은 오막살이 초가집에 먼저 와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의 고질인 이질痢疾이 심해져서 배가 걸레 짜듯 뒤틀렸다.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그 도수가 점점 잦아졌다.


하루는 역시 비전vision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집 앞 행길 복판에 사람 키 절반만한 높이 의 거지상여 같은 담가擔架가 놓여 있고, 그 위에 내가 누워 있었다. 그런데 어떤 여인이 내 옆을 지나 골짜기 절로 갔다. 그의 낯은 아주 무표정하고, 시체같이 검푸르렀다. 그는 내 얼굴에 지극히 의례적인 키스를 하고서는 나를 떠나 제 갈대로 갔다. 나는 “아, 저것이 죽음의 여신이구나!”하고 직감했다. “죽음의 여신이 ‘작별 키스’하고 갔으니 나는 그의 포로가 아니다. 그의 길동무도 아니다.”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것도 잊지 못할 예표豫表로서의 꿈이었다. - 몽견선친, 「전집」 제15권, 143쪽


꿈5 : 꿈에 선친을 뵙다


내가 자라난 창꼴집 앞 시냇물이 불어서 어지간한 강같이 됐는데, 저쪽 언덕에 선친先親께서 서 계셨다. 나는 큰 바위 밑이 물에 패여서 새파랗게 깊은 ‘물함정’같이 된 그 가장자리 얕은 여울을 돌멩이에서 돌멩이로 조심조심 건너뛰어 저쪽 언덕 선친이 계신 고장에까지 갔다. 선친의 안색은 그리 ‘해피happy’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말씀하셨다.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 이제 너를 봤으니 나는 간다!” 그러고는 훨훨 옷자락을 날리면서 어디론가 가셨다. 급성간염으로 누워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런 꿈이 내게는 예표적豫表的인 인상을 남겼다. 죽지는 않을 거란 예표라고 해두자. - 몽견선친, 「전집」 제15권, 141쪽


【19강 내용 새김】


장공의 기이한 꿈 이야기는 듣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단순히 흥미 있는 꿈 이야기, 그래서 한 번 듣고 잊어버리고 말 에피소드로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장공이 개인의 꿈을 문자로 남겨둔 것은 그 꿈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고, 후학들의 신앙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 남아 있는 다섯 가지 꿈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느 것은 꿈같기도 하고 비전(환상) 같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거나 예언적으로 알려주는 ‘예표豫表’라고 스스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장공의 꿈 이야기가 내포한 신앙적, 신학적 의미를 논하기 전에 간략하게나마 20세기 심층심리학계의 두 거인이요 개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1856-1939)와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1875-1961) 의 꿈 해석의 태도, 인간 무의식과 의식과의 관계성에 대한 관점 차이를 간략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계에서는 프로이드 심층심리학을 정신분석학(Analytical Psychology)이라 부르고 융의 심층심리학을 분석심리학(Psychoanalysis)이라고 구별하여 부른다.


두 학자의 생몰연대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거의 동시대에 살았으며 프로이드는 초기에 융을 후계자로 삼을 만큼 그에 대한 기대가 컸고, 융도 인간 무의식 영역이 존재함을 발견하고 그 정신적, 심리적 병리현상을 경험론적 과학방법을 통해 밝히려고 한 프로이드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인간의 의식에 대한 기능과 관계에서 무의식에 관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꿈, 환상,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는 태도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지나치게 생물학적 관점, 기계론적 관점에서 보았고 무의식 세계를 의식에 의해서 억압된 에너지 덩어리로만 보았다. 꿈이란 억압된 의식이 꿈의 상태라고 부르는, 의식이 졸고 있는 상태에서, 평소 의식 상태에서 가졌던 욕구, 충동, 원한 감정을 위장하여 표출하고 충족시키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프로이드는 참으로 위대한 정신과 의사였지만 무신론자요 생물학적 인간 관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 환상이나 의미 있는 비전을 부정하였다. 그는 “종교란 인류 미래에는 극복되어야 할 신경증세적 환상(illusion)이다”라고 말했다. 프로이드는 심층심리학에서 보면 장공의 다섯 가지 꿈 이야기는 장공 의식 상태에서 억압되거나 희구하던 정신적 에너지가 꿈 속 드라마로 표출된 것에 불과하다.


카를 융은 인간의 무의식이 억압된 상태에의 가스에너지 층이거나 위험한 충동의 도가니라고 보지 않았다. 그렇게 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서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지만, 창조적 샘이기도 하고 온갖 지혜와 종교의 원천이 된다고 보았다. 무의식은 인간의 의식에게 건강한 생명 상태를 회복하도록 촉구하고 정신적 삶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지향성과 목적성을 예표하기도 한다고 보았다. 융에게 있어서 프로이드와 달리 “종교는 환상이거나 신경증의 증상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심성의 원천源泉에서 나오는 것이다.” 칼 융을 평생 깊이 연구한 한국의 분석 심리학자 이부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꿈은 감추는 것이 아니고 가리킨다”고 한 융의 말은 바로 꿈속에서 감추어야 할 것, 이를테면 프로이드가 말하는 억압된 성적 욕구나 과거의 상처보다도 우리의 의식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알려주며 가리켜주고자 하는 지향성志向性, 또는 지향적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향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꿈을 인과론적因果論的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목적론적目的論的으로도 보아야 한다. 이것은 꿈에서 뿐 아니라 모든 정신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태도이다. 이부영, 「분석심리학」, 181쪽


꿈의 해석에 관한 심층심리학자들의 견해 소개는 이쯤 해두고 우리는 장공의 꿈 이야기를 카를 융의 꿈 이론에 입각하여 조명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소개한 장공의 첫 번째 꿈은 장공이 유교적 가정과 사회 분위기에 얽매여 살다가 하나님의 소명으로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아브라함의 하란 탈출처럼 신앙의 길을 떠날 때 꾼 꿈이다. 온갖 고민과 주저함이 많았을 것이다. 장공은 첫 번째 꿈을 꾼 직후 말하기를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은 장맛비 개듯 맑았다. 더 우물쭈물할 것도 없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대로 간다는 신념이 생겼다”라고 회상한다.


장공의 두 번째 꿈 이야기는 일본 천황 소화와 유럽에서 제 3제국의 야망을 가지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감자밭에서 호미를 가지고 서 있는 장공에게 나타나 그들의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장공을 부둥켜안고 우는 꿈이었다. 꿈에서 장공은 그들의 등을 두드리며 도리어 위로했다는 내용이다. 장공은 청년기, 평안 숭인중학교 교무시절, 그리고 조선신학원 창립 시절 내내 말로 다할 수 없는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에 줄곧 시달려왔다. 철없는 한국 보수기독교 인사 중에는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 폐교를 선언하고 신학교가 문 닫고 있을 때, 조선신학원을 설립하고 강의하는 것 자체가 친일 행위가 아니냐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일경의 감시를 받으며, 굶주림을 청빈으로 이겨내며, 한국교회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희생 봉사한 장공을 두고 ‘친일행각 운운’하는 것은 무서운 형제 살인죄를 범한 것과 다름없다. 장공의 두 번째 꿈은 막바지에 다다라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일본과 독일이 곧 패망한다는 것을 장공에게 알리는 예언적 꿈이었다고 해석된다.


장공의 세 번째 꿈은 매우 중요한 꿈이다. 꿈이 지닌 예언적 기능, 목적 지향적 기능이 나타나 있다. 이 꿈은 육이오전쟁이 발발하기 몇 달 전에 꾼 꿈이다. 서울이 흙탕물로 덮였다는 것, 흙탕물은 사라지고 시체가 썩은 ‘시즙屍汁’이 넘쳤다는 것, 그런데 마실 물은 남산 약수터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뿐이었다는 것이 꿈의 주요 내용이다. 이 꿈은 예시적, 예언적 꿈의 전형이다. 육이오전쟁이 발발할 것이고, 동족상쟁하는 어리석음에 수많은 시상자가 넘쳐날 것임을 예시한다. 거짓 종교 부흥사들과 꽉 막힌 보수 신학자들이 ‘생명수’라고 선전하고 팔지만, 그것은 마실 수 없다. 맑은 물은 오직 남산 약수터 작은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다. 남산 약수터는 장공이 자주 찾아 물마시던 곳이었다. 그것은 남산에 자리 잡은 조선 신학교의 복음적 사명을 예시한다. 그것은 작고 바위틈에 숨겨 있으나 다음 시대 한국 기독교를 살릴 ‘생명샘’이라는 예표이다. 장공은 굳이 꿈 해석을 아니 했으나 맘속으로 하나님의 격려를 느끼고 동자동에서의 신학 교육의 사명을 더욱 다짐했을 것이다.


네 번째 꿈 이야기는 심한 병으로 고통당할 때 꾼 꿈이다. 가난과 외로움을 견디며 신학 교육의 사명을 다하던 장공은 심한 질병에 걸려 죽음의 위협도 느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증언을 그보다 훗날 하게 되는데, 적십자병원에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기다리던 시기에 같은 성격의 꿈을 꾼다. 죽음의 사자가 병상까지 찾아왔으나, 아직 땅 위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기에 죽음의 사자가 데려가지 못한다는 확신을 보이는 꿈이다. 장공은 평생 당신 자신의 건강에는 무심하리만큼 대범했다. 다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신앙이 평생 그를 지켰다. 생애 말년 장공은 「범용기」에서 고백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스도께서 평생 나와 동행해주셨다.”


마지막 꿈은 장공의 아버지 함자가 김호병이었는데, 그분이 장공을 만나러 왔고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 이제 너를 봤으니 나는 간다!”하시고 훨훨 옷자락을 날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지셨다는 꿈이다. 창꼴마을이 꿈의 배경이었지만 시냇물이 불어 강같이 된 상태란 ‘이곳과 저곳’, ‘시간과 영원’의 경계선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꿈 내용은 두 가지를 암시한다. 첫째, 대체로 사람의 임종 시점에는 일가친척이나 지인이 죽게 될 사람을 인도하려고 나타나는 꿈을 꾼다. 장공은 그 무렵 급성간염을 앓던 시기였는데 아버지가 꿈에 다녀가신 일을 “죽지는 않을 거라는 예표”로 받아들인다. 둘째 의미는 장공은 평생 아버지를 복음에 순명하도록 전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아버지도 당신이 사랑하고 믿는 아들이 목숨 바쳐 일하는 복음세계에 입문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김호병 씨의 높은 유교적 지혜, 윤리, 삶의 철학을 당시 시골에 온 전도자들의 설교로는 압도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피차 가졌던 평생의 회한을 이 꿈은 ‘화해의 사랑’으로 극복해주는 꿈이다. 장공은 죽음 이후 영생하는 천국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는 신앙인이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9호] 2016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