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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9호] 시 - 촛불 앞에서 / 고은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3 09:45
조회
2239

[제29호] 시

촛불 앞에서

고은

얼마나 영광인가
살아서
위대한 오늘밤을 맞는다

하나하나의 촛불이
묵은 제단을 떠나
이 거리
저 거리의 찬 바람 속 모여들어
마침내
뜨거운 뜨거운
광장의 몇백만 심장으로 타오르는 밤을 맞는다

가장 사악한 권좌와
가장 흉측하게 썩은 무엇을 에워싸고
촛불의 함성으로 꽉찬
가장 웅혼한 촛불 밀묾의 밤을 맞는다

이제
영웅은 하나의 봉우리가 아닌
몇백만의 파도소리가 아니고 무엇이냐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소년의 나라가
이곳
저곳의 조롱거리가 되고만 나라가
여섯 번이나 아홉 번이나
지칠 줄 모르는
가장 아름다운 혁명의 나라로 솟아오르는
활짝 열린 산야의 밤을 맞는다

이토록 놀라며 온 누리가 깨닫는 역사 앞에서
촛불의 선남 선녀는
새로운 전체
새로운 개체의 뜻을 맞는다
새로운 삶과 죽음을 맞는다
천년의 것 백년의 것 파묻어버린
새롭고 또 새로운 벌판의 밤을 맞는다

얼마나 서릿발 같은 끓는 물 같은 꿈인가
죽기 전 살아서
오늘밤과 내일을 맞는다
반드시 올 개벽의 흰 밤을 맞는다

[2016 전승일]

☞ 이 시 <촛불 앞에서>는 시인 고은 선생이 2016년 11월 광화문과 전국에서 불타올랐던 민주 시민혁명의 촛불집회를 노래한 시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표결을 앞두고 한겨레신문에 기고해 발표된 시이다 (2016.12.9. 한겨레신문)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9호] 2016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