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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9호] 권두언 - 장공의 신음과 성령찬가 / 김경재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3 09:36
조회
1493

[제29호] 권두언

장공의 신음과 성령찬가

김경재 목사
(본회 이사장)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필요성

“정의를 위하는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고, 불의를 향한 인간의 경향성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20세기 미국의 저명한 라인홀드 니버교수의 명언이다.

2016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박근헤대통령 탄핵소추 결의안’이 기권 1명, 찬성 234명, 반대 56명, 무효 7명으로 통과됨으로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국민의 80% 이상 지지의 촛불시민항쟁은 이제 그 제1막이 끝났다. 한국민이 영원히 잊지말라는 하늘의 뜻인지 암기하기 쉽도록 기권, 찬성, 반대, 무효의 국회위원 숫자가 기이하게도 1234567이었다.

대통령의 탄핵소추결의로 제1막을 내린 지난 가을 50일간, 여러차례 100만명-200만명 민중의 촛불시위 후에 대통령 탄핵결정은 한국현대 정치사회사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단순히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주위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충견들의 탈선이나, 건강한 자아형성에 실패한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무능력과 범죄를 징벌하는 정치적 벌칙행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 놀라운 사건은 특히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테타 이후, 한국민 절반 이상의 머리와 가슴을 55년동안 지배해온 거짓환상과 신화 곧 ‘근대산업화를 영도했다는 박정희 아우라(aura)’를 벗겨내는 힘든 진통이라고 본다.

한민족은 특히 일반서민들은 조선조 500년, 일본식민지배 36년, 민족분단과 냉전시대 15년 동안 너무도 배고프고 가난하고 헐벗었다.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은 민정이양의 약속을 어기고 한번 권력맛을 본후에 군부정권을 장기화 했다. 백성에게 인권, 자유, 비판정신, 민주주의 대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구호를 내걸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최면을 걸어 인간존엄성을 깡그리 무시했다. “돌로서 떡을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다. 전태일이 분신자살 하게 하고, 조작한 민청련사건과 인혁당사건으로 젊은이들을 파리목숨처럼 죽이고, 5.18 광주민주항쟁에서 시민을 대검으로 도륙해도 국가 경제성장, 국가안보, 무역수출액 증가라면 모든 것이 합리화되고 정당화 되었다.

민주주의 제도는 형식과 겉치례 조직구조만 그럴사하게 갖추었을 뿐 제대로 민주주의는 살아서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었다. 삼권의 분립, 대의제도, 사법권의 독립, 선거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검찰수사권의 중립, 시장경제의 공정한 경쟁은 말뿐이었다. 여전히 국가권력은 그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면서 주권자요 모든 권력의 궁극적 담지자인 국민을 우롱하고 왜소하게 만들고 비겁한 겁쟁이들로 순치시켜 갔다. 언론기관과 대학의 지성을 지배조종하고, 제도종교 지도층을 가신집단으로 회유하여 아첨자 부역자들로 만들었다.

그 모든 납득하기 어려운 최면술 뒤에는 “박정희가 정치는 독재를 했으나, 근대화 산업화를 이끌어 우리를 경제적으로 잘살게 해준 영도자였다”는 진실과 거리가 먼 성공신화 아우라(aura)가 뒷받침 했던 것이다. 박근혜는 그 ‘아우라’의 후광 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제 그 진상이 노출되어 한동안 최면술에 걸렸던 국민 과반수가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정치도 인간의 행위인데, 인간성이 지닌 양면성 곧 하나님 형상을 지닌 자유인으로서 정의를 갈망하는 선한 의지와 함께 상존하는 자기중심적 이기심과 오만심 그리고 권력욕과 명예욕 때문에 쉽게 불의에 빠지는 죄짓는 경향성에 주목했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가능하지만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권을 분립시켜 상호견제하고 감시함으로서 죄성에 기울어지는 인간의 약한 본성을 ‘깨어있는 눈’으로 서로 감시하고 지켜가면서 함께살자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제도이다. 민주주의 제도란 인간성 속에 있는 신성과 죄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기독교의 현실적 인간이해 위에 서 있는 어찌보면 서글픈 궁여지책의 정치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여왕의식에 도취되어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하려 했다.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봉건시대 절대군주처럼 그의 정치의식은 시대 착오를 넘어 유신군사정권 시대에 고착되어 있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자기기만 의식에 빠졌고, 북한의 최고수령처럼 다양하고 전문적인 21세기 공동체 삶의 모든 가치와 정책을 지시하고 영도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나 교육 분야는 자발성, 다양성, 창의성, 창조성, 독립성을 요청하는 분야인데 전지전능한 군주처럼 행동했다.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문화예술과 신성한 평화통일을 돈벌이와 연결시켰다. 박정권의 핵심정책 트레이드마크가 소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것이다. 대통령후보 때 국민과 약속한 경제민주화와 국민통합 정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등장한 이 허황한 정책변신은,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따먹고 신처럼 될려고 하는 유혹에 빠진 표징이었다. 자격미달 정치가의 월권의식, 교만심과 죄의식의 부재가 탄핵정국의 본질이다.

플라톤의 동굴비유와 사울의 눈을 덮었던 인식론적 비늘

이번 깨어난 시민들의 촛불든 명예혁명과 대통령 탄핵결의를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또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란 가치판단, 세계관, 인생관에 있어서 자기가 그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굴과 자연인의 눈에 덮힌 인식론적 ‘비늘 같은 것’(행 9:18)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쉽지않는 존재라는 점이다.

박정희 군사구테타 이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의 ‘참여정부’ 시절이 연속되어 10년정도 있었건만, 한 번 형성된 어느 개인과 집단의 ‘세상과 진실을 보는 눈’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에 우린 놀라고 두려워 진다. 흔히말하는 보수와 진보, 대구 경북 경상도와 광주 전주 중심 호남인들의 정치의식, 서울 강남지역 사람들과 강북지역 사람들의 정치평론, 이명박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인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와 한국교회협의회(KNCC) 두 캠프의 서로 다른 역사의식, 예로든 양편 사이에 쉽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장벽을 느낄 때가 많다. 그 사람 자체가 본래 악하거나 심성이 나쁜 것이 아니다. 같은 기독교 신자들 중에도 시민의 촛불집회와 대통령탄핵에 적대감과 증오심마저 갖는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학문적으로는 세상을 읽고 보고 판단하는 ‘관점’의 차이의 발생원인은 결국은 그 사람이나 집단이 갖는 사회경제적 이해관련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일컬어 ‘사유의 존재제약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스데반을 돌로쳐 죽이는 일에 참여했던 젊은 사울은 순수한 유대교적 신념과 종교적 순수열정으로 스데반 살인에 동참한 듯이 겉으로는 보이지만(행 7:54-60), 더 깊이 보면 그가 로마식민지 치하의 유대국일지라도 그가 바리새파 지식인으로서 누리는 사회적 안정과 특권을 예수도당들이 혼란하게 만들고 위협하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동굴 속의 노예들’은 동굴 밖의 진실과 진리의 세계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율법체계와 성전국가를 지켜간다는 자기 나름의 사명의식이 젊은 사울을 광신자로 만든 것이다.

종교인들 특히 한국 기독교의 ‘보수정통과 성경적이고 복음적임을 자랑하는 지도자들과 집단무리들’중에 치명적인 영적 치매자들이 많다는 것은 두렵고 슬픈 일이다. 장공은 캐나다 채류 10년째되던 1983년에 ‘장공의 신음’이라는 제목아래 종교시 5편을 영감 중에 썼고 「범용기」에 남겨 놓았다. 그중에 <성령찬가>라는 제목의 종교시 안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

“그리스도 아는 지식, 그리스도 믿는 심정 / 그런것은 나에게 물없는 우물이요 매마른 와디(wadi)입니다 / 성령님, 당신의 재창조 없이는 / 새 사람 없나이다. 새 역사도 없나이다 / 성령님 능력없이는 교회도 선교도 없나이다 / 오, 성령님 은혜 하늘 어머니 사랑 / 그 무량애의 품 속에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로 / 영원히 영광스레 살으오리다.”

부족한 사람 필자가 (사)장공기념사업회 이사장직을 맡은지 어느덧 3년이 되어 중책을 내려놓고 물러난다. 지난 3년동안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면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2015) 간행과 ‘장공 기념유품 전시실’(2017년 1월 23일)을 다시 개관하게 된 일이다. 대과없이 직무를 마칠수 있도록 도와주신 회원 여러분들께 감사한다. 2017년 2월부터 새로 출발하는 김상근 신임이사장을 비롯한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가 장공기념사업의 질량적 발전을 이루도록, 기장교회와 한신대학교, 그리고 회원들의 깊은 관심과 기도 그리고 물심양면 협조를 당부하고 싶다.

회원 여러분들의 성탄맞이와 복된 새해를 축하드리면서, 권두언의 시작을 라인홀드 니버의 명언으로 시작했으니 끝맺음도 그의 유명한 <고요함의 기도>( Serenity Prayer)로서 마친다 :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고요함을 우리에게 주소서. 바꾸어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소서.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9호] 2016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