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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9호] 권두언 - “ 우주와 역사를 품은 가이없는 빈 하늘, 장공(長空) 목사님” / 김성재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7 14:15
조회
847

[제19호] 권두언

“ 우주와 역사를 품은 가이없는 빈 하늘, 장공(長空) 목사님”

김성재 목사
(연세대 석좌교수/본회 이사)


장공 김재준목사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려니 목사님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새삼 진한 감동으로 느껴진다.

내가 1967년 한신대에 입학했을 때 김재준목사님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종교와 신앙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설교말씀을 했는데, 이때의 설교말씀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가르침이 되었다.

김재준목사님은 성서를 종교적 교리로부터 해방시켜 역사로, 삶으로 해석했다. 역사비판학적 방법으로 성서를 읽은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성서를 가장 올바르게 아는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성서는 다른 종교들의 경전과 달리 무시간, 무공간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서는 이스라엘민족이 3000여년의 긴 역사동안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산 역사적 증언이다. 인간이 이해하고 전승해서 기록한 말씀이다. 따라서 이 말씀을 전승하고 기록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고, 어떤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인가를 알아야 하나님과 예수님이 왜, 그렇게 말씀했을까를 알 수 있다. 그래서 한신에서는 성서연구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필수로 가르쳤다. 이스라엘 역사를 모르면 성서를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를 종교의 울타리 안에 가두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성서를 마구 편집해서 읽으면서도 성령론적으로 성서를 해석한다는 독선적이고 바리새적인 교권주의자들이 김재준 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예수님 당시였으면 김재준 목사님을 십자가 처형했을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성서를 종교적으로만 해석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간이 만든 종교의 산물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종교행위가 곧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교적 개념으로 만든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 행위이고, 신앙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종교행위 강화가 신앙의 길이고, 구원이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알아야 성서를 바로 알 수 있듯이, 한국역사와 사회를 알아야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역사하는지 알 수 있다. 장공목사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군사독재에 저항해서 민주화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싸웠다. 1969년 장공 목사님은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나는 한신대 학생회 임원 대표로 김재준 목사님을 도와서 3선 개헌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이때 이 위원회에 김대중 의원이 참여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대중 대통령과 40년간 일하게 되었다. 김재준 목사님은, 김대중 의원은 훌륭한 정치인이니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도와드리라고 말씀했다. 이후 김재준 목사님이 캐나다에 가셨는데, 이때 김대중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내 이름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김대중 의원은 대통령이 된 후 나에게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다.

장공목사님은 내게 휘호를 많이 써 주셨다. 8폭 병풍, 2폭 가리개, 긴 액자 6개를 받았는데, 이중에서 한신대, 선교교육원, 그리고 동료목사에게 액자 하나씩 주었고, 나머지는 지금도 내 서재와 안방에 소중이 간직해서 보고 있다.

내가 1982년 한신대 종합화를 책임진 기획처장이 되어 인사드리려고 갔을 때, 장공목사님은 누가복음 14장 24-31절 말씀과 중국 춘추전국시대 도(道)와 법(法)과 사상, 자연의 이치를 집대성한 관자(管子)에 있는 글을 써주셨다.


장공목사님이 누가복음 말씀으로 한신 종합화를 추진하는 내게 주시는 가르침은 “과거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사람, 부모,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새로운 사람을 위한 한신 종합화, 기초만 쌓고 이루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는 참으로 엄중한 말씀이었다.

그리고 관자의 글은, “곡식을 심는 일는 1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는 일은 10년을 내다보고, 사람을 심는 일은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1986년 한신대에서 학생들이 교수들을 감금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신학생들이 선도 투쟁한다고 나와 박종화 교수의 연구실을 부수고 집기들을 불살랐는데, 이 때 관자의 휘호액자가 소실되었다.

장공목사님은 내게 이 두 휘호를 써주시고 묵산(默山, 墨山)이란 호를 지어주셨다. “침묵의 산, 묵산이란 내 이름이 거룩이 임재한 성재(聖在)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마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빈 마음, 모든 소리를 전부 받아들이는 관용과 포용,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며 세상과 교통하는 것을 뜻 한다.”고 했다. 또한 “검은 산, 묵산이란 모든 생명이 썩어 검은 흙이 된 생명의 산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 수많은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다. 붓글씨를 쓸 때 검은 먹을 사용하는 것은, 서예는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생명을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장공목사님이 호를 지어준다는 말에 기쁘고 흥분했는데, 묵산이란 호를 받고 그 뜻을 들으며 숨이 콱 막히는 전율을 느끼고 한참을 아무 말도 못했다. 얼마간 침묵 후에, 나는 호를 주셔서 너무도 감사하지만 이 호는 제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다. 장공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그냥 마음 편히 사용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호를 감히 쓰지 못했다. 60이 되어서 내 삶을 돌이켜 보며 장공목사님이 주신 호를 다시 생각하고, 앞으로 조심스레 이 호를 쓰면서 묵산다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장공목사님에 대한 글을 쓰면서 문득, 목사님의 <인간이기에>라는 수필집에 있는 ‘인간이기에’라는 짧은 수필이 떠올랐다.

“어느 따뜻한 봄날, 주인이 대문을 열고 나서려는데, 대문 옆에 염소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집 주인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도 없자, 얼른 염소새끼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이 웬 횡재냐 하며. 그런데 염소새끼가 아니라 어린 아기가 있었다면 그래도 이렇게 했을까. 왜 인간이기에. ...”

이 글을 쓰면서 더욱 장공 김재준목사님이 그리워진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9호] 2014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