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空 회보

[회보 제21호] 권두언 - 성탄, 우리 맘 안에 아기 예수가 탄생하는 계절 / 김경재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0 10:14
조회
509

[제21호] 권두언


성탄, 우리 맘 안에 아기 예수가 탄생하는 계절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본회 이사장)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문다. 장공기념사업회 년초 사업계획중에서 가장 역점두었던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간행과 탄신 113주년 기념강연도 뜻깊게 마무리 되었다.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였던 하나님의 은혜와 회원들의 성의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특히 장공탄신 113주년 기념강연자 한완상 박사의 깊이있는 말씀과 솔직하고 사랑에 찬 조언,충고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박사는 강연 중에서 이런 말씀을 하였다 : “장공 김재준 목사의 인격과 사상과 그 높고 광활한 신앙, 그 것을 담기엔 솔직히 말해서 한신대학교나 기독교장로회 총회는 너무 작은 그릇이 아닐런지요?” 장공 선생의 인격과 사상의 크기를 강조하려는 화법이지만, 우리들을 숙연케 한 직언이었다.


부끄럽고 죄송한 심정이지만 한완상 박사의 돌직구 말씀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공 선생의 믿음, 사상, 청빈의 삶, 학교사랑, 복음과 교회에 헌신의 생애를 깊이 알아가면 갈수록 우리 제자들과 후학들의 그릇이 너무 작고 정성이 부족함을 절감하게 된다. 진실로 장공 선생의 말년의 삶은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신학적 총괄 에세이를 통해서 피력하신 대로 하늘과 땅, 자연과 역사,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생태, 등등 그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빛이 침투, 순환되고 있음을 눈떠서 보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그런데, 우리들의 그릇이 작고 옅어서 장공의 “삶과 신학”을 도리어 가리우고 제한시키고 있지 않았던가 반성한다. 우리들의 모습은 어느 한 구석과 한쪽 당파성에 사로잡혀 있다. 근본문제를 해결하려 하지않고 지엽말단적 수단방법만 구하려 든다. 과거의 영광스러웠던 교단역사의 노스탈자에 젖어서 역사와 현실의 새로운 과제에 창조적 새로움으로 응답하지 못한다. 내 안에 있는 등불의 빛이 이미 꺼진지 오랜데,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곧잘 지적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 바리새이즘에 빠져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네 마음속에 있다” 하셨는데 자꾸 밖에서 찾으려 든다. 복음적 동지애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기 어렵고 차거운 냉기가 감지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부족함을 반성하는 건 당연하지만, 계속 좌절과 자기비하에만 빠져있다면 그것 또한 자기변명, 책임회피, 불성실일 수 있다. 이번 『장공 김재준의 삶과 신학』 간행과정에서 필자는 많은 은혜 체험을 했다. 홍보기간도 짧았고 널리 알리거나 도움을 청하는 안내를 충분히 못해서 뜻있는 분들의 보다 많은 동참기회를 드리지 못해 죄송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과 세계에 흩어져있는 장공의 제자들과 그리스도 형제자매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주셨다. 금액이 많던 적던 성의를 다해서 뜻있는 선한 일을 하자는데 한 맘으로 정성을 모은 결과, 모금 예상액을 훨씬 초과한 결실을 거두었다. “맘이 있는 곳에 재물이 있고, 재물이 가는 곳에 맘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1970년대, 어두웠던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회복을 위해서 장공과 함께, 우리사회 재야 두 기둥 중 한분 어른으로서 일하셨던 함석헌(1901-1989) 선생의 종교시 <비유>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드러내 놓으면서 숨김 / 숨기면서 드러내 놓음 /
가리움으로 보여줌 / 보여줌으로 가리움.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들어있음 / 옅은 것 속에 깊은 것이 들어있음 /
껍질 속에 들어있는 알 / 거짓 속에 들어있는 참.


시간 속에 영원이 깃들었다 / 땅 위에 하늘이 내려와 앉았다 /
성령이 마리아의 뱃속에 드셨다 / 말씀이 육(肉)이 되셨다.


그것은 꽃송이요 / 그것은 흐르는 시내요 /
그것은 비치는 호심(湖心)이요 / 그것은 음악이다.


시란 감상하면서 자기 자신의 시를 짓는 것이기에, 굳이 어줍잖는 해설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장공선생의 꿈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비전으로 갖는 우리들로서는 함석헌 옹의 <비유>가 전하는 역설과 은유의 시심(詩心)을 우리 모두 늘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이 글 처음에서 소개한 한완상 박사의 우정어린 돌직구성 충고에로 되돌아 간다 : “진실로 한신대학교와 기장교단이 장공이라는 큰 인물을 담을 만한 그릇으로 넉넉한가요?”


우리 대답은 이렇다. 중세기 신비신학자 마이스터 엑하르트의 말씀대로 “성탄절이란, 우리들의 부족하고 작은 마음의 베들레헴 말구유 속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험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받아드리고 경험한다면, 우리도 장공의 삶과 신학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대답이다. 회원 여러분들의 즐거운 성탄과 주님의 평화와 복된 새해를 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1호] 2014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