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空 회보

[회보 제25호] 권두언 - 다시 성탄절의 평화와 생명의 빛을 향하여 / 오영석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1 16:30
조회
409

[제25호] 권두언


다시 성탄절의 평화와 생명의 빛을 향하여


오영석 목사
(한신대 명예교수)



사랑의 불덩어리가 인류의 심장 속으로 돌입한 성탄절 사건


새로운 희망과 뿌듯한 기대를 안고 시작하였던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한해의 살림살이를 되돌아보면 밝음과 어둠이, 웃음과 울음이, 희망과 안타까움이 날줄과 씨줄처럼 우리의 삶과 역사를 촘촘히 엮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영원한 은혜의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새로운 능력과 빛을 받으면서 생명들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목회를 해왔고, 성령의 입김이 서린 거룩한 선교의 비단 한 필들을 열심히 짜오고 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대림절을 지키면서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밝히고,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구주 예수님을 맞아들일 성탄절을 희망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해가 마감되는 냉혹한 길목에서 치열하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덩어리가 얼어붙은 인류의 심장 속으로 돌입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이 성탄절 사건이다. 그 불덩어리는 날카로운 성령의 검으로써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심장을 찢고 하늘의 불을 붙인다. 그 불덩이의 분화구에 접한 것은 위태롭다. 그것은 생명을 태워 제물로서 거룩한 제단에 바쳐지기 때문이다. 그 불덩어리에 접하는 자는 본회퍼가 말하는 값비싼 은혜를 누리면서 제자직을 수행하는 자이다.


계시의 빛 속에 기대하고 희망하기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소크라테스가 인류 안에 존재하였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그 의미가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과 본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전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있다. 성탄절의 성육신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로를 통하여 일어난 구원과 화해의 사건이다. 피와 생명의 희생으로 성취된 이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부족하다. 니체는 “피로써 쓰는 글만을 신뢰할 수 있다, 피로써 써라”고 말하였다. 이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증언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진동시키려면 피와 땀과 눈물로써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증언자와 순교자는 같은 어원이 아니던가!


바르트가 밝힌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빛은 다른 빛과 비교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고, 여러 빛들 중에서 한 빛이 아니고, 다른 빛과 나란히 있는 빛이 아니다. 그 빛은 모든 다른 빛을 상대화하고 그 빛의 기준에 따라서 다른 빛들을 평가하고 처리한다. 성서에서 증언되는 하나님의 계시는 불가시적이고, 손으로 포착할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지만 인간 전체를 요구하면서, 때로는 번개처럼 돌입하기도 한다. “너희는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존하였다”(신 4:33).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의 그의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있다“(합 3:3).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새로운 엑스도스가 일어난다. 우리는 그러한 금시초문의 사건을 만들 수 없으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면서 기대할 수 있고 희망할 수 있다.


그러나 초라한 마구간의 구유 안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원광체, 번개와 같은 계시의 영광과 위엄은 감추어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원계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계시록 1:13-20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십자가에 사명을 성취하시고 부활승천하실 때까지 사람들에게 군림하고 영광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권위와 특권을 내려놓았다. 그는 권력자들과 실력자들이 무시한 사회에 변두리로 밀려난 모든 소외된 자들을 깊은 차원에서 돕고 해방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그 모든 병자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료하고 구원하는 완벽한 치료자였다. 그는 매국노로 불린 세리와 율법학자들과 에세네파들이 극단적으로 혐오한 창녀들과 각종 죄인들과 한 상에서 먹고 마시고 교제하였다. 그는 그들의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을 영광스러운 천국 시민권을 지닌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켰다. 그런 점에서 그는 근본적인 인간혁명가였다. 마침내 그는 세상의 죄와 불의와 저주를 자신의 몸에 모두 걸머지고 인류를 저주와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인류와 만물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이루었다.


오실 주님과 기다리는 우리


그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의 삶과 역사, 그의 말씀과 업적은 저주스러운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새롭게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계속하여 인류역사를 변혁시키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어왔고 지금도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그의 생명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부활하고, 그 자신이 영광 중에 승천하고, 온 인류와 만물의 주로서 다스리고 만물을 완성하시려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류의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이것을 희망하는 우리의 교회는 인간의 모든 한계를 넘어서, 모든 이념과 종교들을 상대화하고 그것들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현재적으로 증거하고 나타내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사역을 수행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으로서 인류역사라는 원의 중심에 들어와서 현재하고 빛을 발하고 있다. 원주는 원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인류는 그리스도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비록 그를 부인하고 간과할지라도 모든 인류와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구원의 빛을 중심으로 돌고 그 빛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가 바로 인류의 중심과 세계의 중심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희망 속에서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중심에만 계신 것이 아니고, 분열하고 갈등 속에 있는 우리의 사회의 중심에 계신다. 그는 싸움과 테러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사의 중심에 계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자유와 정의, 생명과 평화의 역사를 일구어 나가도록 부르신다.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은 새롭게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이시다. 그는 역사의 완성자로서 오실 주님 자신이다.


그는 잠든 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불으시고 하늘의 평화의 나팔수로 세우시려고 한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혼돈의 역사 속에서 하늘의 생명의 음성이 들려지고, 불의와 착취, 불평등이 창궐한 세상 속으로 하늘의 의로운 빛이 비쳐지고, 싸움과 테러가 만연한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평화와 사랑의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 교회들은 잠을 자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일 수 없고, 역사의 파수꾼으로서 다시 오실 평화와 생명의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하한 기대와 설렘을 갖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등불을 더 환히 밝히면서 깨어서 기다려야 한다.


성탄, 세계의 모든 생명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래서 성탄의 추리들과 전등들이 빛나는 한국의 교회들과 세계의 교회들을 통하여, 성탄의 종소리를 통하여 높은데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기를! 전 인류에게 특히 온갖 풍상고초를 겪고 신음하는 난민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평화의 주님으로 오신 어린 아이 주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굶주린 난민의 어린이들을 안아주시고 그들에게 평안한 잠자리와 삶의 보금자리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희망한다. 동시에 성탄절에 모든 짐승을 대표하여 참여한 말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과 물고기들과 모든 초목들에게도 평화! 가 충만해지기를 희망한다.


Hanna Varghese, God is with us(malaysia, 2006)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5호] 2015년 1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