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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6호] 권두언 - “장공 앞에 부끄럽지 않은 오늘의 도전을” / 서재일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1 17:47
조회
725

[제26호] 권두언

“장공 앞에 부끄럽지 않은 오늘의 도전을”

서재일 목사
(원주영강교회, 만우 송창근 박사 기념사업회장)

세계적인 눈을 뜨게 하심

반세기 전에 우리는 동네 지도나 한국지도를 보며 한신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는 세계지도를 보여 주며 세계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지구촌의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세계적인 언어인 영어를 하며, 신학의 출발지인 독일어를 하며, 성서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희랍어를 하라고 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이런 어학 훈련에 시달리면서 드는 느낌은 신학이 아닌 무슨 언어학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하는 조건이 학교가 요구하는 어학시험에 합격이 되어야 하였으니 신학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학 공부를 했는지 모릅니다. 또 대학원 입학자격도 어학이 기본이었으며 석사논문을 향한 모든 대학원 과정은 원서 특히 영어원서 읽기가 기본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학생들 중에는 탁월하게 실력이 좋거나 어학을 잘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시골에서 상경한 학생들 이어서 대체적으로 공부를 잘 못했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에 비해서 정말 잘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학교의 독한 어학훈련에 순응해 가며 학생들은 점차 어느 정도 어학의 기본 그 이상을 익혀 가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교를 세운 만우 송창근 박사나 장공 김재준 박사께서 세계적인 신학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한신 신학을 꿈꾸며 이렇게 어학을 강조하는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장공은 그 나라와 그 문화를 알고 이해하자면 그 나라 그 문화의 언어를 먼저 이해해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무심코 이 방향을 따라 살아왔는데 타신학 출신이나 다른 교파 목회자들과 세계적인 마당에 섰을 때 우리가 신학이나 교회서적을 영어로 보고 이해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부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는 세계인이 되기 위해 영어나 어학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인을 구원하기 위해 세계적인 신학을 하라는 뜻으로 세계적인 언어를 강조 했습니다. 당시 세계적인 신학은 2차대전 이후의 진보적 신정통주의 신학 경향이었습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신학은 2차대전 이전의 보수적 정통주의나 진보적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한 신학이었습니다.

정통주의는 성서의 내용을 생각나게 하는 사도신경적 정통 신앙 그대로를 고수하나, 당시 전쟁 때는 히틀러의 정치와 종교분리의 유혹에 말려들어가 독재자에게 유럽전역에 전쟁의 불을 지른 것을 허용하는 독일적 교회 방향이었습니다. 자유주의는 정통주의의 교회들이 발전하는 세상을 끌어안지 못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문예부흥의 바람을 타고 일어나는 예술이나 철학이나 과학 등의 인간 가능성을 끌어안는 신학이었습니다. 정통주의나 자유주의의 이 둘을 버리고 일어난 신정통주의는 세계대전을 치르며 인간의 가능성을 강조한 자유주의를 집어던지고 인간의 죄성을 강조하는 성서적 정통을 이어받되 자유주의의 철학적 과학적 방법을 인정하며 출발했습니다.

도저히 정통주의를 그대로 따를 수 없는 것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므로 정치권력이 세상을 전쟁과 절망으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세상에 대해 무책임성을 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정통주의의 대표적 주자인 바르트(K.Barth 1886-1968)는 히틀러 정권의 광기가 절정에 달할 때 정통주의 독일연방교회에 반기를 든 고백교회 총회의 바르멘 선언 2항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주인들을 섬겨야 하는 삶의 영역, 예수 그리스도의 의인과 성화가 필요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왜곡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선언1항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외에도 선포의 근원으로서 다른 사건들, 권력들 인물들, 진리들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승인할 수 있고 승인해야 한다는 왜곡된 가르침을 배격”하며 정치나 경제 등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영역에 속한다는 그리스도의 왕권통치를 강조했습니다. 이런 신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이 미국 장로교 거점인 프린스턴신학교에 상륙하면서 정통주의는 웨스트민스터로 다른 살림을 차려 나가게 되고, 프린스턴신학교가 바로 유럽의 스위스(칼빈) 그리고 영국(낙스) 등지에서 일어난 청교도적 장로교 본산이 되었습니다.

장공과 만우는 바로 이런 세계적 프린스턴의 신학 입장을 배워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이 신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신학교와 교단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어학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나라 작은 마을 촌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만우와 장공이 제시한 신학의 방향 때문에 세계적 신학의 눈을 뜨게 되었으며, 그 눈으로 세계를 보았으며, 그 세계 신학적 입장에서 한국과 한국교회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위의 진보적 신정통주의신학을 가르치는 일본강점기의 조선신학교(한신대)는 신사참배문제로 문을 닫은 평양신학교의 대안이 될 수가 없을 정도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전자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영향을 받은 세계적 신학의 흐름에 이은 신정통이지만 후자는 프린스턴 신학교의 초기 즉 웨스트민스터 계통의 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평양신학교를 서울에 다시 세운 총신대와 그 신학세력 그리고 교회 교권과 충돌한 우리 신학은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으니 바로 한신대와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다수의 폭거에 의해 물러난 독자적인 외로운 길 같이 보였으나 세계교회가 함께 하는 풍성한 세계적 신학의 길이었습니다. 정통의 길과 신정통의 길이 달라 그냥 그 길을 각자가 잘 걸어가면 될 것이라 여겼지만, 그러나 좁은 보수풍토의 장로교왕국 한국교회 분위기에서는 바로 싸움으로 연결되는 길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친 첫 싸움은 성경을 보는 눈이었습니다. 전자는 일점일획도 흠이 없는 성경을 문자로 보자는 입장이었고 후자는 문맥으로 보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요새 교회 밖의 세상적인 국문학적 상식의 눈으로 보면 문맥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나 당시에는 큰 싸움이 되었습니다.

둘째 싸움은 신학논쟁이었습니다. 전자의 정통신학은 위에서 말했듯이 그냥 성서적 내용과 그 고백과 선포에 강조를 두고 있고 후자는 그 입장을 그대로 따라 성서는 변함이 없으나 그 성서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는 대상의 세상은 달라졌으니 세상을 알고 전하자는 데 강조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 기록 당시의 세상은 삼층천 구조의 지구세상이었다면 오늘의 세상은 둥글고 도는 지구 세상이니 삼층천 세상으로 말고 둥근 지동설 세상으로 알고 전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의 모든 세상이 다 지지하는 이런 후자의 입장은 자동적으로 인류가 발전시킨 철학이나 과학의 이해와 그 비판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곧 지성적 접근이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선교사 주도의 평양신학의 입장은 다분히 비판신학을 제거한 우문정책의 신학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양자는 건전한 신학논쟁 상대가 안될 정도가 되었으니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일방적 진보신학만 있게 되는 신학 마당 상실의 신학적 파국을 맞게 되었습니다.

셋째 싸움은 정교분리의 영육 이원론적 논쟁이었습니다. 이는 이차대전의 전범 히틀러와 그 정권이 제일 좋아하는 논리입니다. 정통교회는 하나님 나라만 책임지고 정치권력은 세상을 책임진다는 그럴듯한 논리입니다. 그러나 신정통교회는 하나님 나라뿐만 아니라 세상 나라도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왕권에 소속되어 있다는 논리입니다. 후자는 이미 영국 국교회와 왕권에 도전한 1642년의 청교도 장로교 혁명에 의해 인간의 모든 영역에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가 충만한 세상을 여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장로교가 그렇게 중요시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로 미래 세상의 방향을 확실히 잡아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네 번째 싸움은 소리 소문 없이 일어난 배타성과 포용성의 경향이었습니다. 정통주의 교회는 정통적인 교리나 신앙고백서를 중요시하고 그 해설과 적용에 신경을 많은 쓰는 반면 신정통주의 신학은 그 교리나 신앙고백서가 중요하되 그 출발점의 근거가 되는 성서적 사상에 힘을 썼습니다. 그 결과로 전자는 편협한 배타적 입장이 되어 끊임없는 이단 논쟁을 일으키며 많은 교파들을 양산하게 되었고 후자는 포용성을 가지고 신학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아직도 3월의 꽃봉오리같이

정현종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나는 가끔 후회 한다/그때 그 일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그때 그 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 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 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도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 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장공과 만우가 제시한 방향은 바로 한국교회가 교회 되며 한국 민족과 나라가 제대로 되게 할 세계적 “노다지”였습니다. 반지성 무신학적 풍토에서 일어난 대형교회 중심의 한국교회가 휘청거리고, 지난 날 유신군사독재를 닮은 정권으로 말미암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준 전시체제분위기로 강대국들의 군수산업 장터가 되고, 자본주의의 부익부 빈익빈 악과 물질주의가 가난한 노동자 서민을 억누르는 지금도, 우리 교회와 민족이 살 하늘 하나님 음성의 “노다지 메시지”입니다.

어찌 지난 3월의 삼일절 독립만세 사건만이 꽃봉오리이며 장차 4ㆍ19, 5ㆍ18, 6ㆍ10민중 혁명만이 희망을 주던 “꽃봉오리”이겠습니까. 만우와 장공이 일본강점기에 심은 나무도 자라나 마침내 오늘에 터뜨려야 할 “꽃봉오리”입니다.

장공과 만우의 제자들이 우리 스승되어 우리를 열성사랑으로 키우고 진보적 신정통주의 입장에서 성경을 문맥으로 보며, 세계신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학사상을 발전시키고, 전체성경을 전 한국과 남북한반도 전 영역에 적용시키며 주님의 좁은 십자가 길을 걷던 그 열정을 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그 뜻을 이어 받아 터뜨려야 할 꽃봉오리 되지 못하면 조상 앞에 반역이며, 교회와 민족 앞에 무책임한 직무유기이며,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6호] 2016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