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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8호] 장공생활신앙 깊이읽기 - 제1강. 생활신앙 / 김경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3 09:07
조회
1343
[제28호] 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


제1강. 생활신앙

[장공의 글 읽기]

우리가 신앙한다 할 때, 그것이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인 것같이 생각하기 쉽다. ‘신앙생활’이라 할 때 경제생활, 정치생활 또는 직장생활 등등이 있는 가운데서, 믿는 사람에게는 신앙생활이란 것이 또 하나 덧붙는다는 것으로 해석하기 쉽단 말이다......
그런 하나의 액세사리로서의 신앙생활이란 아무 위신도 명령권도 없는 것이어서 불편하면 언제나 버림받을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표현이 아니라 ‘생활신앙’이란 표현으로 신앙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에로, 「전집」, 제9권, 152쪽

생활이란 ‘몸’과 같이, 삶 전체로서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산다는 데는 모든 것이 다 걸려든다. 정치, 경제, 문화, 개인, 가정, 사회, 의식주 등 모든 것이 서로 얽혀든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전 존재를 바쳐 하나님을 믿고 전 존재를 이끌어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 신앙과 사랑은 우리 ‘삶’ 전체로서 고백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점이 애매하기 때문에 지금의 크리스챤이 생활에 진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에로, 「전집」, 제9권, 152쪽

“생활로 믿는다. 믿음을 생활화 한다”고 하는 말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쳔 생활이란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여,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생활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목표로 하고 일상생활에서 당하는 사건마다 경영하는 사업마다 그것을 실현시키려는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 어렵다는 말이다. -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에로, 「전집」, 제9권, 152쪽

우리가 신앙에서 관념적인 것을 그렇게 경계하고 실천적인 것을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양자택일을 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몸으로 되어 ‘말씀이 육신이 된’ 것같이, 관념이 생활로 되어 그 증거가 생명책에 기록되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나는 생명책을 역사에 영원히 살아남는 진실의 증거라고 본다. 역사는 하나님의 테이블(table)이다. -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에로, 「전집」, 제9권, 154쪽

나는 한국 크리스챤 신앙에 무언가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절감했다. 관념으로서는 무엇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활결단에서는 불의한 탐욕에 합류하는 것을 오히려 부득이한 것으로 아는 ‘죽은 믿음’의 소유자만을 기른 것이 아닐까? -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에로, 「전집」, 제9권, 155쪽

히브리 사람들은 순수이념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몸이 없으면 생명이 구현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믿음도 ‘몸’으로 하지 않고서는 그 속에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몸’으로 세상에 오셔서 ‘몸’으로 봉사하고 ‘몸’을 드려 속죄제물을 삼으시고 ‘몸’으로 승천하시고 ‘몸’으로 다시 오신다는 데는 큰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리스도가 ‘몸’으로 하신 일과 같은 일들을 교회가 역시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교회의 전선, 「전집」, 제3권, 81쪽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삶의 종교, 생활건설의 종교, 살리는 종교다. 삶이 죽음으로 끝나고, 있는 것이 없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방향을 그대로 시인하고 체념하거나 이원론적 철학으로 자위하는 종교는 아닌 것이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결핍한 것은 창조하고, 좋지 못한 것은 개선하고, 황폐한 것은 재건하고, 죄악으로 허물어진 인간성은 속량의 사랑으로 회복하고, 죽음의 권세아래 있는 삶은 부활로 정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종교가 곧 기독교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러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앙은 그 생활에서 증거 되는 것이다. - 부활신앙과 생활종교, 「전집」, 제9권, 432쪽

[제1강 내용 새김]

이 책 제일 첫 강의 주제를 ‘생활신앙’이라고 정한 것은 책 제목 자체가 「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공선생이 83세가 되시던 해, 캐나다에서 조국의 민주화 평화통일 운동을 10년 하시고 귀국하시기 직전, 장공은 자서전이기도 하고 생활비망록이기도 하는 「범용기」(凡庸記)를 캐나다에서 출판하셨다. 그 「범용기」 제6권의 후기에 다음 같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고 있다.

장공이 글을 많이 쓰는 축에 들것 같습니다만, 책에서는 신학논문을 발표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각주(foot-note)를 준비할 만큼 학문적일 수도 없겠고, 그럴 집념도 없고, 그것이 성미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그래도 글 쓰는 것은 장공의 한 ‘도락’(道樂)이어서, 쓰지 않으면 예레미아의 말마따나 “뼈 속에 숯불 피운 것” 같아서 견뎌낼 수가 없게 됩니다. 학문적인 것이 아닌 글이라면 ‘잡문’(雜文)일 밖에 없겠고, ‘잡문’이라는 어휘가 못 마땅하다면 ‘생활기록’이란 이름의 글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따위 글을 써가노라면 장공에게도 무슨 ‘신학’이 있는 것 같이 느끼어 집니다. 그걸 무어라 부를까? ‘생활신학’이라 하자! 마치 유교의 실학파 마냥 기독교의 ‘실학파’(實學派)구실을 하면 어떨까? [장공전집, 제6권, 354쪽]

필자는 위에 인용한 장공선생의 소탈한 소회의 피력 안에 장공의 신앙과 신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정신의 핵심이 표출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학자로서, 목사로서, 그리고 문필가로서 그가 하고자 한 일은 ‘기독교적 실학정신’의 구현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생활신앙’ 혹은 ‘생활신학’이 그것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유교가 한민족의 사상과 삶을 이념적으로 주도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초창기 생활철학으로서의 생동성은 살아지고 주자학적 형이상학의 공리공론이나 양반특권층의 독점물로 사유화(私有化)되고 민초들은 도탄에 헤매이게 되었다. 조선유교사회에 17-18세기에 이르러 봉건적 사회의 개혁운동이 실학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실학사상의 핵심정신은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그리고 ‘실사구시’(實事求是)였다. 대표적 실학사상가로서 이익,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김정희, 안정복, 이가환, 정약용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바이다.

필자가 실학운동을 언급한 이유는, 장공의 신앙과 신학사상의 형성 밑바탕에 실학파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주목하려는 것이다. 물론 장공의 신앙과 신학의 원점과 샘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예수의 복음씨앗이 떨어져 발아하기 위하여 옥토가 필요하듯이, 장공의 마음의 옥토는 정신사적으로 유가전통이었는데 특히 함북지방에 뿌리내린 실학파적 유교정신 곧 ‘실사구시’ 정신이었다.

조선실학파의 최후를 대표할만한 박제가가 함북 종성에 유배되어 3년 6개월 지내는 동안, 그 사상의 영향을 입어 함북의 회령, 종성, 경원 등지에 실학파 석학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장공의 외가(外家) 혈통으로 말하면, 모친 채씨는 함북 경원군 용계면 함양동에서 출가하여 장공의 아버님 김호병씨와 결혼하셨는데, 경원지방 실학의 대석학 채향곡 선생의 4대 후손이 장공의 모친이었다. 자연히 허례허식 보다는 가풍적 교훈을 받고 자랐던 것이다. 산촌의 시골소년을 고건원보통학교와 회령간이농업학교에로 입학시킨 장본인들은 장공의 외가(外家) 친척들이었다.

“사실에 기초하여 진리를 탐구한다”는 실사구시적 실학정신은 장공의 신앙과 신학형성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교리적 신조로서 굳어져서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성역화된 1930년대 한국 장로교 신학계에 ‘비판적 성서연구 방법’을 수용한다든지, 학문과 경건과 실천을 함께 추구하는 신학교육을 강조한다든지,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이란 삶으로서 생활가운데서 열매 맺는 진리여야 한다는 ‘생활신앙’의 강조가 그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그의 민주주의와 인권운동과 평화통일운동에 몸으로 적극 참여한 것도 ‘기독교적 실학파’정신의 발로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만이 아니라 종교계 일반의 가장 큰 문제가 종교인들이, 특히 종교계 지도자들이 ‘언행일치’가 되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 그 점이 심하여 기독교 전래(1884)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장공은 한국 크리스챤 신앙인에게 근본적 문제점은 생활신앙의 결여라고 본다. 교리수용이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관념적 신앙, 마음이 뜨겁게 감동한다는 부흥회의 감성적 신앙, 주일날 교회 안에서만 착한 교인 노릇하는 교회중심적 신앙은 핵심적인 무엇이 부족하거나 큰 문제라고 본다. 신앙생활에서 교리강조, 부흥집회, 성수주일과 교회봉사, 신학연구 등등이 모두 필요하지만 기독교의 핵심은 아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예수 따름, 예수 닮음, 예수 살기에 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역사가 비록 짧지만(1884-2016), 지난 130여년 기간 동안에 ‘신앙과 삶’을 하나로 통전하여 기독교 신앙을 삶과 생활로서 증거한 수많은 신앙 선배들이 있다. 일제시대 민족지도자 조만식과 안창호, “내 삶이 곧 내 유언이다”라고 선언하신 참 교육자 북간도 김약연과 정주 오산학교 이승훈, 헌신과 봉사의 사람 김교신과 장기려, 농업에 종사하면서 “잘 사는 것 보다 바르게 삶이 중요하다”고 가르친 김용기와 정농회 원경선, 남북의 화해자 문익환과 이우정 등등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이 있다.

기독교대한복음교회(초대목사 최태용) 설립정신의 3가지는 첫째, 신앙은 생명적이어라 ; 둘째, 신학은 학문적이어라 ; 셋째, 교회는 조선인 자신의 것이어라 ; 이었다. 언제 다시 들어도 감동적이고 새롭다. 특히 “신앙은 생명적이어라!”라는 모토가 오늘에는 “신앙은 생활적이어라!”라고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단호한 말씀이 새롭게 들려져야 한다:“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마12:33)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8호] 2016년 9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