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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28호] 권두언 - 장공 선생님께 / 나길동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12 09:45
조회
867

[제28호] 권두언

장공 선생님께(권두언을 대신하여)

나길동 원로목사
(대구 수석교회)

장공 선생님!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제가 해병대 장교 훈련을 죽기 살기로 받고 있을 때 편지 한 장을 받았는데 그게 바로, 선생님의 혜함이었습니다. 그 혜함을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요! 남들은 편지도, 면회도, 돈도 보내왔으나 나는 하늘 아래 유아독존이었습니다. 북에서 알몸으로 왔으니 누가 거들떠나 봅니까? 그 편지를 오래 간직 하려다가 그만 훈련 중 어디에 빠졌는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생님의 그 혜함에 대한 회답을 이제야 드린다고 하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저는 왜정 때 중학생 시절, 친구네 집에서 헌책 한권을 빌려 읽었는데 뚜껑이 없어 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책의 문장이 좋아 읽었습니다. 거기 시를 인용한 걸 지금도 외우고 있습니다. 후에 피난 나와 한신에 입학해서 보니 그 책 이름이 낙수(落穗)였고 저자는 장공 선생님이셨습니다.


제가 한신에 가게 된 것도 6ㆍ25 전쟁 중 일선에서 죽을 뻔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이것이 목사되라는가 보다 해서 서울에 들어와 신학교를 찾았는데 그게 한국신학대학이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신에 다니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홀로 왔으니 재정 문제가 어려웠겠으나 더 어려웠던 것은 제가 만나는 목사님들마다 “너 왜 그 학교엘 다니느냐?” 였습니다.

저도 처음 듣는 소리인데, 신 신학, 처녀잉태부인, 부활 부인 등, 그 학교 다니면 악마가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밤마다 저에게 와서 세뇌교육하면서 당장 남산으로 올라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은 담담했고 남산엔 가기 싫었으며 정말 악마 교육을 하는지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특별히 장공선생님의 설교와 강의 그리고 글들을 집중적으로 듣고 읽었습니다. 내가 결론지은 것은 ‘어쩌면 목사님들이 양심도 없이 허위와 중상모략을 하실까?’ 였습니다. 선생님의 강의와 글들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복음적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은 가셨고 이 소생도 지금 선생님께서 사신 수(壽)를 살면서 이런 불손하고도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것을 용서하옵소서. 선생님의 수(壽)보다 몇 배를 더 산들 선생님을 잡을 수 없고 항상 선생님은 저보다 높은데 계셨습니다. 학문도 지식도 스승이셨지만 장공선생님의 삶이 저의 머리를 숙이게 한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절실하고 외로울 적에 편지 한 장 받아볼 신세도 못되는 상황에서 장공선생님의 한통의 편지가 저에게는 남들이 받는 편지 백장보다 더 값진 위로와 용기를 갖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박형룡의 제자가 아니라 김재준의 제자임을 너무나 떳떳하고 자랑으로 살고 있습니다.

장공께서 저에게 영향을 주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너 생긴 대로 열심히 살아라!”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한 달란트로 만족하지 다섯 달란트 받은 자 쳐다보며 재간부리지 말아라!

1985년 대구 YMCA에서 장공을 모시고 강연회를 했는데 제가 이사장으로 섬기던 때였습니다. 사회를 하면서 강의하시는 것을 옆에서 봤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장공께서 여전히 천장 보시고 방바닥 보시며 강의 하셨습니다. 아마도 장공께서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 목사 같은 부흥사가 되겠다 했더라면 영락없이 실패한 목사가 되지 않았을까요? 선생님의 진실된 모습의 한 부분임을 생각하며 저도 여생을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주신 달란트대로 열심히 살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선생님과 단 둘이 이야기 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요 마지막일 텐데 그 때 말씀하신 것을 두고두고 음미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구지역 교회들의 형편을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대다수의 교회와 목사들까지도 옛날 삼층 구조의 세계관에서 죽으면 하늘꼭대기의 천당을 간다는 일념으로 예수 믿는다는 것, 그리고 교회수가 많은 양적이고 수적, 큰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성공의 목표로 삼고 있음을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광주의 김천배 선생님께서 대구에 오실 때마다 저에게 하신 말씀은 대구는 특별히 크고 작은 교회가 많고 골목마다 십자가가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하시더라 했더니 장공선생님 말씀은 “여하튼간에 우리 한국에 교인을 많이 주신 것은 축복이 아니겠느냐”란 의외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교인들의 텅 빈 머리속에 알맹이를 넣어 줄 사람은 바로 나 목사 같은 사람들이 아니겠느냐?”라 하셨습니다.

저는 그 대답 하신 말씀을 긍정도 해 보지만 솔직히 의문이 더 깊습니다. 의문의 핵심은 나 자신의 무력함이고 장공선생님께서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시지 않으시고 사명감으로 보시는구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석연치 않습니다. 이젠 언젠가는 저도 선생님 계신 곳에 가서 선생님 뵈옵고 확실한 대답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또 여기서 못다 한 사연들까지 다 고백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냥 웃어 주십시오.

2016년 8월 25일 작은 제자 羅吉東 드림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28호] 2016년 9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