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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7호] WCC 부산총회 기념 - 장공의 가르침 다시 읽기, “WCC 맨”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7 10:39
조회
624

[제17호] WCC 부산총회 기념

장공의 가르침 다시 읽기
“WCC 맨”

* 이 글은 『김재준 전집』18권,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384~388쪽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소위 기독교 국가라는 구미 여러 나라들이 제1차와 제2차의 세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하느님께 자기 나라만 도와주고 상대방은 없애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 전쟁이 미국의 참전으로 승패가 결정될 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파리에서 일방적인 강화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전쟁 비용은 모두 독일이 물게 하고 독일 주위에 많은 작은 나라들을 독립시켜, 독일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포위해 버렸습니다. 독일은 헐벗고 굶주려서 저절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민족은 억울했습니다. 전쟁 책임이 왜 독일에만 있느냐, 그것은 너희들이 독일과의 경쟁에 졌으므로 전쟁을 걸어 온 것이 아니냐, 마침내 히틀러라는 오스트리아 출신 청년이 혜성같이 나타나 "우리도 힘으로 대결하자"하고 <나의 투쟁>을 발표했습니다. 그에게는 신비한 카리스마적 매력이 넘쳤습니다. 필자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히틀러와 그 동지들의 공개 연설 광경을 본 일이 있었는데 히틀러의 연설은 마치 사자의 고함같이 한마디 한마디가 뼛속을 휘어잡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게르만 민족의 신이 붙은 것 같았습니다. 전쟁 중의 독일에는 빌헤름 카이사, 힌덴부르크 장군 등 세계를 뒤흔든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연합국 측에는 영국의 귀신 같은 외교와 미국의 무진장의 물자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영웅들은 결국 장기전에 졌습니다.

강화 조약의 주재자는 미국 대통령 윌슨이었는데 그의 회의 과제는 독일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데 그 핵심을 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족 자결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군소 민족 국가를 부활시킴으로써 독일을 포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3·1독립선언도 이 기회를 이용한 궐기였던 것입니다. 3·1선언서에 의하면, "이제부터는 세기가 백팔십도로 전환된다. 국수주의가 민주주의로, 강력주의가 도의주의로, 탄압이 자유로, 전쟁이 평화로 그 궤도를 온전히 바꾼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래적인 욕심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히틀러는 카이사, 힌덴부르크 등 영웅들을 제 발로 물러나게 하고 자기가 독재하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재건하고 군수 공장을 재건 확장하고 독일 청년들의 복수의 애국심을 고취했습니다. "힘"이 폭발합니다. 알자스 로렌스 지방을 프랑스로부터 도로 찾았습니다. 이태리를 자기 편에 넣었습니다. 세계는 다시 도살장이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은 우수 민족이고 다른 민족들, 특히 유대 민족은 열등 민족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다윈의 우승 열패의 원리에 따라 모든 민족은 게르만 민족의 뱃속에서 소화되어 게르만 민족의 피와 살이 됨으로써만 생존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6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했습니다. 자기 민족 중에서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모조리 학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을 석권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미국의 참전 때문에 이기지 못했습니다. 히틀러는 슬라브 민족을 없앤다고 소련에 진군했습니다마는, 키에프에서 눈에 빠져 그 운명이 매몰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최후 승자가 둘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소련 두 나라 말입니다. 두 나라는 초강대국이고 핵무기도 두 나라 다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세임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소련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또 한 번 전쟁이 나면, 중재할만한 제3세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연합(UN)이라는 협의체가 생기고 기독교회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생겨서 우리나라 개신교 중 기독교장로회도 그 창설 멤버 중의 하나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고 지금은 예장에서도 가입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국제 연합 운동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소련은 공산주의화로써, 유물 무신의 길을 추진시키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통 교회는 어용 교회 아니면 카타콤 교회로 되어 갑니다. 동독, 유고,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등 소련 점령 지대의 교회들은 모두 비슷한 운명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 교회들도 독재자의 압력에 눌려 양심적 신앙 고백을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수난을 각오한 극소수만이 감히 모험하는 형편입니다. 세상 권력의 교회에 대한 개별 격파는 용이하게 되어 갑니다. 교회는 세속주의화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속량에 공동체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WCC는 함께 서서, 함께 배우며, 함께 일하자 하는 것을 표어로 합니다. 한국 교회는 공산 위협과 개별 교회 이기주의와, 신학의 빈곤 등 망조를 함께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WCC 방향을 용감하게 걸어야 하며 교파간의 친애와 협동을 의식적으로 강화해야 하며, 군국주의, 군사 독재 반대에 합세해야 합니다. 세속과 교회는 평행선으로 이분된 것이 아닙니다. 세속 사회는 교회 선교의 광장입니다. 본성적으로 교회는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젊은 세대는 WCC 관계에서 기수로 전진했습니다. 그 실적 때문에 제네바의 WCC 본부 직속직원으로도 등용되어 눈부신 업적을 남겼습니다. 다른 단체에서도 그렇습니다만 WCC에서 오래 봉직하던 사람도 WCC 사람이라는 어떤 습성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직책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예를 든다면 WCC 사람은 여행이 잦습니다. 그들의 부인은 WCC 과부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자녀들과 함께 집에 있어야 합니다. 그 자신은 떠돌이같이 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사교적이 됩니다. 자기 서재에서 조용히 공부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전공 분야가 분명찮게 됩니다. 그 대신 귀동냥은 많기 때문에 대화에는 능합니다. 고전 같은 데는 흥미도 없지만,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오다가다 들르는 손님은 많습니다. 자칫하면 그의 가정은 여관 같고 그 자신은 접객업자같이 됩니다. 그의 삶은 마치 바지자락만 정강이까지 걷으면, 건널 수 있는, 얕은 개천같이 됩니다. 외국어, 특히 영어에는 모국어 같이 능숙합니다. 따라서 동양인으로서는 초기에는 인도인, 다음 기간에는 한국인이 출세했습니다. 일본인은 영어 회화력이 약하기 때문에 본무대에 등장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본식 영어 발음으로써는 회원들의 환심을 사기 어려웠고 교세도 약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WCC에서 평생을 바칠 생각은 없다고 하여 어느 대학에서 가르치려는 사람이 거의 전부여서 한국의 대학에 취직한 WCC맨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수재들이고 최고 학부 출신입니다. 그들은 같이 서서 같이 배우고 같이 일하는 데에도 숙련공입니다. 한국 민주화와 자유민주적 통일 운동에도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내에는 WCC 업무를 효능화하는 직책은 NCC가 담당합니다. 독재 정권에게 제일 먼저 시달리는 단체는 NCC입니다. 독재 정권은 자유 언론을 제일 무서워합니다. NCC사업의 중요부문인 기독교 방송국을 폐문시킵니다. 국제적으로 돕는, 기독교 기관들의 송금을 막으려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세계적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한국 내에서 하는 일은 ‘전부’가 자기들 손 안에 걸머쥔 참새 새끼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교만입니다. 하늘에 침 뱉기입니다. 이제부터 WCC맨은 학문과 운동에 차분하게 뿌리를 내려서 한국 6천년 역사의 토양을 깊게 갈아버리는 기초 작업에 일가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국사와 국문학과 동양 고전 등 국학에 조예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적 공동체는 국내 문화 공동체에 심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섣부른 인조 종교, 국수적 애국 단체를 만들자는 말은 아닙니다. 현존하는 기독교는 서구 역사 안에서, 구미 문명을 조성하는데 성공했으며 따라서 자신들의 문명에 사로잡혀 예수 자신의 심정에서는 유리, 또는 배치되어 갔습니다. 군국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 비기독교적, 비인간적인 사이비 기독교를 조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예수의 본모습, 공관복음적인 예수상 회복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토착화는 복원 운동입니다. 교회는 전세계적 사랑의 공동체를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성취하는 것을 가치 기준으로 하고 모든 것을 그 방향에서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WCC의 목표도 그 과정에의 노정이어야 할 것입니다. WCC의 "디다케", "코이노니아" 등은 그리스도의 속량 사랑을 받아들이는 신앙 안에서 그 뜻이 깊어집니다. WCC는 교회 자체가 아닙니다. 전세계 교회가 그리스도 사랑을 전세계적으로 실천하려는 교회의 선한 사업 기관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도 호의와 친교와 동료애를 축으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에서도 망대 자존은 금물입니다. "예"와 "아니오"는 분명해야 하지만, 그 위에 더 높은 차원이 있어 둘을 화해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속량 사랑의 공동체 운동입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7호] 2013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