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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7호] WCC 부산총회 기념 - “생명ㆍ평화ㆍ정의”, 장공의 휘호에 담긴 뜻 / 최형묵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7 10:32
조회
1038

[제17호] WCC 부산총회 기념

“생명ㆍ평화ㆍ정의”, 장공의 휘호에 담긴 뜻

최형묵 목사
(천안살림교회ㆍ한신대 외래교수 / 기독교윤리학)



1. “생명ㆍ평화ㆍ정의” 장공의 휘호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내 방 한 켠에도 그 휘호는 20년 넘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안락한 소파라고 하기에는 그런 그저 쿠션이 있는 낡은 의자의 등받이로 활용되고 있는 수건에 새겨진 채로이다. 수건의 때깔이 바래기는 했지만 그 휘호는 여전히 선명하다. 손님이 찾아와 그 의자에 앉지 않는 한 그 휘호는 언제나 내 시선에 가장 선명하게 들어온다. 그러니 부지불식간 그 의미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장공의 인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장공 선생을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전혀 없었다. 다만 대학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1983년 장공 선생께서 캐나다에서 막 귀국하신 얼마 되지 않아 서울제일교회에서 열린 집회에서 말씀하시던 때 비로소 처음으로 얼굴을 뵐 수 있었다. 말씀의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으나 신군부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던 만큼 민주주의를 힘주어 말씀하신 것 정도로 기억된다. 그 때 나는 다소 놀랐다. 직접 뵙기 전 장공 선생은 ‘거인’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실천의 선두에 서시고 그에 관한 신학적 기초를 다진 장공의 이미지는 갓 신학에 입문한 젊은 학생에게 거인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외적 풍모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히 그 비슷한 외적 풍모를 기대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회중의 뒷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체구는 왜소해보였고, 당시에 이름난 다른 분들처럼 목소리도 높지 않았다.

물론 그 때 그 인상이 거인으로서 장공 선생에 대한 기왕의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더욱 깊게 기억에 남게 되었다. 마치 엘리야가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열왕기상 19:12)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지만, 깊이의 차원에서 성찰하는 신앙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장공 선생으로부터 직접 배우지는 못하였어도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그 인상이 깊게 각인되어 있다.

2.  “생명ㆍ평화ㆍ정의” 휘호를 마주할 때면 항상 그 기억이 겹쳐 떠오른다. 결코 전투적인 투사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교권주의와의 대결에서, 그리고 독재정권과의 대결에서 맨 앞자리에 섰던 선각자의 진정한 용기의 바탕이 무엇이었는지 일깨워 주는 경구처럼 다가온다.

그 휘호는 기장 여신도회전국연합회의 부탁으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여신도들의 주문에 따라 그저 써 주었을 뿐인 휘호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장공 선생께 써 달라고 했던 기장 여신도회의 선구성이 놀랍지만, 그 선구성도 따지고 보면 장공 선생께서 평생에 걸쳐 닦아놓은 그 기초 위에서 성취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장공 선생이 말씀하시고자 한 바로 그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신도들이 부탁을 했을 때 장공 선생은 ‘내 말이 바로 그거다.’ 하는 심정으로 기특하게 여기시지 않았을까 싶다. 장공 선생께서는 당신께서 하고자 한 말을 그렇게 집약하여 건네셨을 것이다.

이번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의 주제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이다. 단지 서술형으로 바뀌었을 뿐 장공 선생께서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던 “생명ㆍ평화ㆍ정의”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과 같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중심적 가치들을 앞서 제시하신 장공 선생의 선구적 혜안에 새삼 놀라며 그 뜻을 다시 새겨본다.

3.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라는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총회 주제가 시사하듯이, 생명ㆍ평화ㆍ정의는 단순한 가치의 병렬이 아니라 어떤 상호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하나 그 자체로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병렬된 세 가지의 가치는 일련의 인과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제시된 세 가지 가치는 각각 그 자체로 관계적 맥락에서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세 가지 가치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비단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바를 일러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적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는 정의와 평화를 단순 병렬함으로써 그 상호관계의 의의를 분명히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생명ㆍ평화ㆍ정의의 순으로 되어 있는 장공 선생의 휘호는 제한적 해설보다 오히려 더 함축적으로 그 상호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먼저 맨 첫머리를 장식하는 ‘생명’은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의미에서 궁극적 지향점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장공 선생은 일찍부터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를 대신한 말로써 사용해 왔다. ‘생명’은 그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단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장공 선생은 떼이야르 드 샤르뎅의 통찰에 힘입어 범우주적 생명 진화의 원동력을 ‘사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생명의 본성을 사랑으로 이해한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관계를 말한다. 서로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당기고 싸안는 힘을 말한다. 그 사랑이 생명의 원동력이라 할 때 그 생명은 한갓 개체의 목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의 총체(온 생명)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은 범우주적 차원에서 온전한 관계를 나타내는 핵심이요 본체라 할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지는 ‘평화’는 온전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사랑의 관계를 한층 구체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밀쳐냄으로써 갈등하는 관계가 아니라 당기고 싸안음으로써 생명이 온전히 존속하도록 하는 조건, 그것이 평화이다. 특별히 그 평화는 다양한 연결망 가운데 있는 집단과 집단의 관계의 온전성을 말하는 것으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장공 선생은 사람은 그 사람의 사랑하는 범위만큼밖에 위대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사랑의 범위를 우주적으로 확대할 것을 역설하였다. 사랑의 범위를 한정된 집단의 범위로 제한함으로써 전쟁과 갈등을 일으키는 삶의 현실을 넘어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의’는 평화로운 생명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을 말한다. 정의는 올바른 인간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집단적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개별적 관계에서도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것으로, 곧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 상대의 몫에 대한 공정한 인정이 정의의 요체이다. 배타적 권력의 독점과 배타적 물질의 독점은 그 기본을 무시한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장공 선생은 그 기본원칙이 무너진 역사적 현실에서 예언자로서 정의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4. “생명ㆍ평화ㆍ정의”는 단순한 병렬이 아니라 의도된 배열로서, 최고의 보편적 가치에서부터 보다 구체화된 가치의 순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그 상호관계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장공 선생의 표현대로, 하늘이 땅에 내려와 땅을 하늘의 영광으로 감싸주는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의 요체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땅에 있는 존재로서 인간의 몫을 그 역순으로 일깨워준다.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오늘 우리가 무엇을 출발점으로 하여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지상의 평화, 궁극적으로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에 이르는 출발점은 곧 이 땅에서 정의를 이루는 것이다. 장공 선생이 이 땅에서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 헌신했던 것은 시대적 소명을 감당하려는 것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 길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정도이기도 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7호] 2013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