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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7호] WCC 부산총회 기념 - “김재준 목사님이 기장 여신도회에 써주신 生命ㆍ平和ㆍ正義 이야기” / 유근숙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7 10:23
조회
910
[제17호] WCC 부산 총회 기념

“김재준 목사님이 기장 여신도회에 써주신 生命ㆍ平和ㆍ正義 이야기”

유근숙 목사
(기장 생태공동체운동본부 지역추진본부장)


생명평화정의는 여성의 힘으로

생명ㆍ평화ㆍ정의가 이번 세계교회협의회의 주제의 핵심어이다. ‘정의ㆍ평화ㆍ창조세계의 보전(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가 서울대회 이후 꾸준히 다뤄져오긴 했지만, 정의와 평화가 전체 총회의 주제어로 떠오르기는 처음이다. 이제 한국과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정의와 평화에 대해 더욱 깊이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생명ㆍ평화ㆍ정의는 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와 아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1980년대 청계천 피복노조에서, 사북탄광촌에서, 농촌에서, 대학에서 활화산처럼 분출되는 민주화의 함성 한가운데서 여신도회는 여신도회가 담당할 선교 과제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 여신도회의 총력을 생명문화 창조운동에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80년대 독재에 항거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 당하는 고통과 인권유린은 참담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법률구조비와 영치금이 필요했다. 생명을 낳고 돌보고 양육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해 온 여신도회는 이 일을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그것이, 생명, 평화,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여신도회는 구속자 가족들에게 사무실을 개방하고 그들의 아픔을 나누며 가족들을 돌보았다. 인권위원회를 따로 두고 구속자 가족과의 기도회도 시작하였다.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요했다. 1977년 인권 후원사업으로 목걸이를 제작해 국내외에 판매하였고, 1982년 9월 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인권위원회 주최 고난 받는 자를 돕는 대바자회”를 실시하여 재정을 마련하고 활동하였다.

그러나 당시 많은 고난 받는 이들이 여신도회의 문을 두드렸고, 활발한 인권활동은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여신도회는 1984년 표어를 “생명·평화·정의는 여성의 힘으로”라고 정하고 “내 땅은 죽어가는가”를 주제로 인권문제협의회를 열고 “우리의 주장”을 발표하며, “생명문화창조운동”을 이론화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들을 경주하였다.

여신도회 전통을 계승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김경희 총무

1985년 부임한 제11대 총무 김경희는 전임총무 나선정이 “생명ㆍ평화ㆍ정의”를 중심으로 일해 온 전통들을 계승하며 창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구속되는 많은 고난받는 이들을 계속 후원하기 위해 많은 재정이 필요한데 인권위원회의 재정은 활발한 활동으로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권활동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김경희 총무는 김재준 목사의 제자였다. 오래 전 김재준 목사님을 찾아뵈었는데 김경희 총무를 위해 시편 1편을 한문으로 써주셨다고 한다. 글을 받고 보니 김재준 목사님의 글씨가 명필이었다. 혼자만 갖는 것이 아쉬웠다.

“김재준 목사님이 캐나다에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목사님을 찾아가 여신도회가 표어로 삼을 주제어를 써 달라고 부탁드렸어요. ‘生命ㆍ平和ㆍ正義’를 주제어로 말씀하시더군요. 기장 여신도회가 추구하는 정신을 압축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며칠 후 자부 이정희 집사 편에 보내주셨어요. 처음에는 탁자에도 깔고 소파 등받이도 할 수 있는 테이블 크로스를 만들었어요. 김재준 목사님 글씨만으로는 빈 공간이 커서 김지하 시인의 난 그림을 받아 글씨와 그림을 함께 넣어 제작했어요. 교단 총회, 여신도회 각 연합회, 해외 교회 등 어디든 가서 테이블 크로스을 팔았어요. 더 욕심이 생겼어요. 행남자기 사장님이 생명ㆍ평화ㆍ정의가 새겨진 장식용 접시 1,000개를 만들어 주셨지요. 이것도 각종 모임에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어요. 당시 자동차가 있나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지고 다녔지요.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접시가 얼마나 무거운지 열 개씩 옮기면서 허리에 무리가 갔었나봐요, 내 몸 아끼지 않고 일했더니 지금은 척추관협착증과 당뇨로 너무 고생하고 있어요. 유 목사도 몸 아껴가면서 일해요. 호호호~ 그래도 건국대에 갇혀 있던 학생들에게 담요 한 장씩하고 만원씩 줄 수 있어서 정말 보람되었다우.”

이렇게 회고하시는 김경희 총무님을 뵈니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1986년 말에 발생한 소위 건국대 사태로 불리는 애학투련(애국학생 투쟁연합) 사건은 이 땅을 한순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86 아시아 경기대회 때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고 있었을 즈음, 전국 25개 대학 학생 1천5백여 명은 1986년 10월 28일 자주·민주·통일을 현단계 운동 목표로 삼고 건국대 민주광장에 모여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 투쟁연합” 발족식을 가졌다. 이어 학생들이 구국행진에 들어갈 무렵, 전쟁을 방불케 하는 전투경찰의 최루탄 난사와 포위공세가 개시되었고 본관 건물로 밀려들어간 학생들은 강력한 저항을 하였다. 경찰은 전원 연행방침을 밝히고 강경태세로 나왔다. 늦가을 추위 속에 건국대 건물에 갇힌 학생들의 농성은 장기화되었고 경찰의 단수, 단전 조치로 학생들은 탈진해 가고 있었다. 1,265명의 학생 중 한신대학 학생 10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기장 여신도회는 당시 “공산폭력혁명 분자들”로 매도된 자식들을 가진 부모들의 불안을 달래주고, 학부형들의 단결된 힘이 중요함을 설득하며 당국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직접 나서 옥바라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기장 여신도회의 활동에 학부모들은 감격하였다.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회도 향린교회에서 열며 이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필자는 1987년 11월에서 1988년 8월까지 캐나다연합교회 초청으로 연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아마 지금 기억으로는) 몇 백 장의 테이블 크로스를 가지고 갔던 기억이 새롭다. 1988년 5월에 캐나다 온타리오 노회 여성들 500여 명이 모이는 모임으로 기억되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그 많은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테이블크로스를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한국의 인권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동참해 준 캐나다 여신도들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 WCC총회로 이어진 생명ㆍ평화ㆍ정의

장공 김재준 목사 기념사업회가 제작한 “생명ㆍ평화ㆍ정의” 휘호 액자와 여신도회가 간직한 테이블 크로스, 장식용 접시도 그 한 켠을 차지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그 휘호가 한 점씩은 문갑이나 벽을 장식한다. 우리 집에도 문갑과 책장에 놓여있다. 이 휘호를 볼 때마다 김재준 목사님이 보여주신 생활신앙이 우리의 삶 속에 각인되어 되살아난다. 볼 때마다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소중히 지키는 공동체가 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생태가 파괴되는 현실 앞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생명의 땅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단식 앞에서, 일자리를 위해 죽어간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 이 모든 이들의 인권을 위해 김재준 목사님의 “생명ㆍ평화ㆍ정의” 휘호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WCC 부산대회를 통해 생명ㆍ평화ㆍ정의의 위기는 전 지구 공동체의 위기라는 점이 공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생명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우리 모두는 부름받았음을 다시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7호] 2013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