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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6호] 추모예배 추모사 - “장공의 신학적 예지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 김용복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6 15:33
조회
736

[제16호] 장공 26주기 추모예배 추모사

“장공의 신학적 예지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김용복 목사
(아시아태평양생명학연구원)

장공 선생님, 생전에 선생님을 몇 차례 뵈었지만 참 선생님으로 제 마음속 깊이 계셔 주시는 것을 감명 깊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후예들에게 남기신 휘호“자유, 정의, 평화, 생명”은 우리 후예들의 흉중에 선생님의 혼과 체취를 항상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프린스톤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셨으니, 제가 선생님의 후배가 된 것입니다. 항상 선생님께서 1930년대 프린스톤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신 것을 생각하여 보곤 합니다.

선생님은 3.1운동 당시 기독교에 입교하시고 아오야마 신학원에서 수학하셨으니 이미 신학자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시 프린스톤 신학대학원에는 학문적 자유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느냐 아니면 축자 영감적 문자주의로 해석하느냐 하는 논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성경학을 연구하셨으니 더욱 예민하게 대응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것이 올바른 성경연구이고 해석인가를 최초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결단을 내려주시고 한국 성경을 교조주의적 올무에서 해방시켜주셨으니 “Let the Bible Be Free!”라는 통쾌한 성경해석의 자유를 우리가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때문에 수난과 고초도 당하신 줄 압니다. 그 값으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자유의 책, 해방의 책, 생명의 경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살아 계셨을 때 여쭈어 보고 싶었던 것이지만 이제라도 아뢰어 보렵니다. 선생님은 유교의 경전을 늘 마음에 새기고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해석할 때 선생님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유학의 경전과 늘 비교하고 대조하고 때로는 섞어서 읽으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아니 맘속의 유학경전과 성경과의 대화가 선생님의 마음속에서 계속되었던 것인가요? 선생님께서는 기독교에 입문하시면서 “모세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것이 기독교라면 믿을 만한 종교라고 하셨다지요.

아니 선생님의 유학은 이미 민족의 학문이었던 것이지요. 이 불초소생이 선생님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사건을 민족을 위하여 기독교성경과 사서오경을 섞어 읽는 사건(Event of Cross Textual Reading)이라고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이미 변혁적 경전 연구방법인 훈고학의 지혜를 체득하신 것이었겠지요!

선생님은 이미 성경을 해방시키셔서 사서오경과 대화시키신 것 이었던가요! 이것도 선생님이 성경을 교조적 교리의 족쇄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결단을 가능하게 하여 줍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성경을 기독교라는 종교적 아성에서 해방시켜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으니까요! 신학함에 있어서 학문의 자유의 초석을 세우신 것이지요.

선생님, 선생님은 구약성경을 특별히 좋아하셨고 그 중에서 아모스서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휘호의 글자, “정의”는 선지자 아모스의 함성이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정의가 강물처럼 삼천리 금수강산에 흐르는 것”을 염원하셨던 것이지요.

선생님은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짓밟혀 있을 때 미국에서 학문을 연구하셨는데 그 당시 미국은 대 공항을 경험하면서 기독교사회운동, 기독교 사회복음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났던 때로 여겨지는데 선생님께서 이 운동을 외면하실 수는 없었을 것이지요. 선생님 생전에 깊이 캐묻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제3일에 쓰신 글들에서 “기독교 사회주의”적 입장을 알 수 있어서 퍽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세계기독교와 한국기독교는 “정의의 담론”을 상실하였습니다. 서구 기독교가 마르크스에게 사회정의의 담론을 빼앗기더니 지금은 아예 기독교 정의의 담론이 혼미한 상황에 빠져 버렸습니다. 선생님, 저희 후배들을 질타도 하여 주시고 격려도 하여 주세요. 선생님의 잔잔한 목소리로 전하여 주시는 보석 같은 지혜의 말씀이 그립습니다.

선생님은 해방직후에 우리 한국에서는 최초로 “국가관”에 관한 글을 발표하셔서 민족의 정치적 미래를 위하여 기독교신학적 기독교윤리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설파하여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근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새로운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새로운 모습으로 경동신앙공동체를 건설하시고 이에 걸맞은 학문과 경건을 토대로 한 기독교 학문과 교육과 훈련공동체의 내용을 채워 주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와 신학교육과 학문공동체의 현실을 들여다 볼 때 선생님의 질책을 면치 못할 것 같아 부끄럽고 죄송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 후학들은 선생님의 유산을 가지고 있기에 행복하기도 합니다만 선생님의 신앙과 학문을 더 잘 보전하고 발전시키도록 분발하려고 깊이 반성합니다.

오늘 선생님의 발자취를 헤아려 보니 선생님은 기독교지성의 정치적 용장이셨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민족해방정치에 투신하시고 군사정권시대에는 자유와 인권을 위한 정치적 투사이셨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개헌하여 정권을 항구적으로 연장하려 했을 때 선생님은 기독교 지식인들을 모으시고 <제3일>동인지를 출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역사의 모순과 민족의 수난을 극복하시기 위하여 기독교 지식인 동인 공동체(Koinonia)를 창립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Christianity and Crisis>라는 잡지를 출간하여 시대의 경종의 역할을 하던 일을 상기하시면서 <제3일>을 출간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 민족사의 상황을 위기의 카이로스 즉 위기의 시운으로 규명하시고 한국 기독교 지식인공동체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의 역사와 동북아의 상황이 기로에 서 있는 데 선생님의 용기와 지혜가 그리워집니다. 선생님께서는 창조적 소수자로서 기독교 지성인동인체를 형성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Arnold Toynbee가 말하던 역사창조의 Creative Minority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동인체가 1970년대 1980년대 아니 오늘의 민주주의 운동의 누룩이 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스승님의 신학이 동양사상과 융합되면서 그 신학적 틀이 우주적 지평을 펼치었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 역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지구적, 전 우주적 지평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선유교의 첨단 최고본인 퇴계선생의 우주적 측은지심을 연상케 하고 불교의 우주적 자비를 연상케 합니다.

최근에 타계하신 중국의 기독교 지도자요 신학자인 정광훈 주교의 그리스도의 우주적 사랑도 선생님의 신학적 궤도를 회상시켜 줍니다. 선생님의 동양사상을 배경으로 한 성경의 연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주적 생명사랑으로 전개하고 오늘 생명신학의 좌표를 설정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신학적 예지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선생님께서 저 훌륭한 기독교 윤리 도덕교과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가장 출중한 번역 아니 역작이었습니다. 이 책은 가장 감명을 많이 주는 도덕서입니다. 여기서도 선생님의 덕의 사상 유학적 배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희들은 성도들의 영적 교제를 깊이 믿습니다.

선생님은 한국적 기독교 사상가, 개혁적 기독교 신학자, 민족 기독교지도자, 교회사역자의 교육가요 창조적 실천가이신데 선생님의 현존이 그립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징조는 암울합니다.

민족의 살림살이나 세계민족들의 살림살이는 경세제민의 도를 상실하고 포악한 탐욕의 세력들이 기아와 빈곤으로 학살적 살생을 감행하고 있으며, 지구적 강대국들은 인류와 생명체를 전멸적인 전쟁과 군사적 패권을 도모하고 있으며, 세계적 과학기술 체제는 개선주의적 무한한 진보를 자랑하면서 모든 생명체와 전 지구우주를 정복하는 경제, 정치, 군사체제를 통합적 지구체제로 구성하여 문명전체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세계각지의 종교적 분쟁과 갈등은 문명의 근원적 차원을 흔들고 있으며 지구적 정보 커뮤니케이션의 질서와 사이버 네트워크의 문화적 헤게모니는 의식과 감성과 영성을 궁극적으로 혼미와 와해의 도가니에 치닫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의 현실도 국내외적으로 지극히 어려운 국면에 치닫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저희들은 예수님의 길을 따라 순명하며 걸어가셨던 선생님의 지혜와 용기와 신앙이 무척 아쉽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삶의 길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 그리고 선생님의 영적 현존을 대하면서 희망과 지혜를 일구어 가렵니다.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6호] 2013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