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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空 회보

[회보 제16호] 권두언 - “보고 싶고, 듣고 싶고, 함께 먹고 마시고 싶은 장공 목사님” / 박종화 목사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7-07-06 14:46
조회
639

[제16호] 권두언

“보고 싶고, 듣고 싶고, 함께 먹고 마시고 싶은 장공 목사님”

박종화 목사
(본회 재정이사 / 경동교회 담임목사)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스승인 장공 선생님은 아무리 보아도 "코끼리"에 비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자마다 각기 감동과 지혜를 선사받은 종류와 성격이 너무도 다양하고 아름답다. 그리고는 장공과의 만남을 적어놓은 것을 읽노라면 읽는 이로 하여금 '그것 참 맛있구나' 하는 고백들을 접하게 된다.

필자는 장공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첫 학기 첫 시간부터 접한 장공의 모습이다. 아마 <기독교 개론> 과목이었을 것이다. 처음 대하는 신학인데, 당시에는 강의의 내용보다 "훌륭하신 그분"의 강의인지라 그냥 "권위 있는 말씀"으로 들었다. 흔한 말로 별로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신학은 백지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신학을 공부하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이 갈수록 명확성과 깊이로 다가옴을 느끼며 살았다. 그 때 주신 학문과 신학함의 좌우명 같은 말씀은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이 작은 제자의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그것은 이러하다.

숲속에 들어가면 나무가 있고 크고 작은 언덕이 있는데, 여기 저기 찔끔찔끔 이 나무 저 나무 타보기도 하고 이 봉우리 저 봉우리 오르락내리락 하고 싶을 터인데 절대로 그러지 말라셨다. 이 학문 저 학문 거죽 맛보느라 헤매지 말란다. 이 과목 저 과목 거죽만 핥으며 읽지 말라셨다.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고 파악할 수 없단다. 오히려 어느 마음에 드는 봉우리를 끈질기게 올라가 정상까지 가면 숲속의 여러 다른 봉우리들이 보인다고 하셨다. 지금 보니 소위 교양과 전공의 관계를 아주 적절한 비유로 하신 말씀이었다. 소위 신학하면서 인접학문의 이론과 광범히 하게 접하며 연구하는 “학제간 노력”(interdisciplinary approach)을 말씀하시면서, 신학을 똑바로 하면서 타학문을 접해야 학문의 포괄성을 제대로 접할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아주 귀한 말씀이셨다. 그렇게 신학도 목회도 선교사업도 해야 하리라고 본다.

장공 목사님은 주로 듣기를 많이 하신다고들 하시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으셨다. 말씀을 시작하시면,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셨겠지만, 쉼이 없으셨다. 장공께서 삼선반대투쟁에 앞장서시면서 1960년대 말 이후로 민주화 운동을 선도하시다가 캐나다로 거처를 옮겨 지내신 때가 있으셨다. 1976년 봄이었다. 필자도 1975년 출국금지가 되어 캐나다를 거쳐 독일교회 선교동역자로 가려던 계획이 막혀 지내다가 그 다음 해에 출국이 해제되어 봄에 캐나다로 떠날 수 있었다. 캐나다에는 아내와 두 자녀가 일 년 전 출국하여 처가댁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정으로는 힘겹게 출국이 되었고, 난생 처음 외국으로 나올 수 있었기에 감개무량도 했었다.

토론토에 머물고 계시던 장공 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며, 한국의 국내 상황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물으시면서 몹시도 궁금해 하셨다. 아는 대로 보고 드리고 다른 계획이 있기에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좀 더 있으라신다. 할 얘기가 있으신단다. 어른 말씀도 들어야겠고, 집안의 다른 약속은 이미 잡혀 있었고... 말씀을 듣기로 했다. 늦은 봄날 오후 2시경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유익한 말씀이셨다. 이미 그 때 다시 고국에 들어가 일하실 준비의 말씀들도 곁들이셨다. 그런데 얼마나 정력이 좋으셨든지 이야기가 끝나고 집에 가야된다면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시간이 저녁 6시경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생명, 평화, 정의" 상론이었다. 그분이 쓰신 플래카드의 글씨가 그 때나 지금이나 그분의 삶의 윤리요, 신학의 근간이요, 사회참여의 혼이요, 후세에게 주는 변치 않는 메시지였었다.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날 오후의 경우는 생각해 보니 주로 목사님이 말씀하셨고, 본인은 졸며 꾸벅거리기도 하며 주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피리어드나 콤마 없는 나지막하나 힘 있는 달변이셨다. 사실 그렇게도 말벗이 즐거우셨던 것임을 알아차렸다. 세상 일이 너무도 궁금하기도 하시고...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장공의 말과 글은 똑같다. 글을 읽으면서 그분의 말씀하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고, 앞에서 또는 옆에서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필사하면 팩이 되어 나오고,.. 그런 분이시다. 절제된 언어, 행간이 풍성한 표현, 진실이 담긴 어휘, 흥분하지 않으나 흥분을 자아내는 매력의 구절들... 그분이 보고 싶다. 그분을 듣고 싶다. 그분의 것들을 함께 먹고 마시고 싶다. 우리들의 선생님, 장공 목사님.


[장공기념사업회 회보 제16호] 2013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