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공의 삶

[장공의 삶] 9장 : 영원의 끝을 살다(1983-1987년) - 국토 순례를 하며 땅과 하늘과 생명을 품다

작성자
장공
작성일
2018-08-21 09:05
조회
231

[장공의 삶] 9장 : 영원의 끝을 살다(1983-1987년)


국토 순례를 하며 땅과 하늘과 생명을 품다


김재준은 귀국을 앞두고 종교음악 박사인 박재훈 장로와 함께 캐나다 단풍구경을 갔다. 한 평생을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살아냈다. 귀국하면 마지막 힘을 다하여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열정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김재준은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하길 원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었다. 이제 남은 여정을 마치면 하나님의 집이 기다린다고 믿었다. 김재준은 귀국과 캐나다의 삶을 마무리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던 중 차 안에서 영감 같은 것이 떠올라서 <메시아 찬가>와 함께 <새벽 날개 타고> 등 다섯 편의 노래를 썼다.


[1]
이 우주는 하나님의 집
하늘 위, 하늘 아래
땅 위, 땅 아래
모두 모두 아버지 집


[2]
이 눈이 하늘 보아
푸름이 몸에 배고
이 마음 밝고 맑아
주님 영광 비취이네


[3]
땅에서 소임받아
주님 나라 섬기다가
주님 오라 하실 때에
주님 품에 옮기나니307)


[후렴]
새벽 날개 햇빛 타고
하늘 저 켠 가더라도
천부님 거기 계셔
내 고향 마련하네


1983년 9월 20일 김재준은 10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공항에서는 법무부에서 나온 법무관이 입국에 불편함 없이 절차를 밟아주었다. 약 200여 명의 인파들이 김재준의 입국을 환영하러 나왔다. 김재준이 귀국하자마자 막내아들 부부가 수유리 집을 팔아 우이동 도선사 계곡 솔 밭 속에 있는 빌라를 마련했다. 눈앞에는 백운대 봉우리가 보이고 꼭대기에는 뭉게구름이 둥실 떠다녔다. 하얀 구름과 푸르른 하늘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빌라 옆으로는 계곡물이 흘렀고 매미소리가 요란했다. 두견새가 울고 언덕 너머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졌다. 온통 푸르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산천인데 나무가 자라서 산과 언덕이 푸르름으로 차고 넘칩니다. 푸름은 생명의 빛입니다. 하나님은 푸른빛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늘도 푸르고, 공기는 색 깔이 없다지만 쌓이고 쌓이면 푸른빛으로 보입니다. 풀도 푸르고 연못도 푸르고 백두산 천지도 검푸르더랍니다. 한국의 산과 언덕이 푸르다는 것은 한국의 자연 생명이 회생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308)


김재준은 백운대 집에 한거하면서 글을 부탁하는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교훈될 만한 고전의 명구를 써주며 소일했다. 김재준은 83세의 나이에도 글쓰기를 통해서 무념무상의 빈 마음이 되기를 원했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 역시 도(道)가 앞서고 기(技)가 따르는 것이라 하겠다. 옛 어른들은 글씨 쓸 때 정좌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빈 마음으로, 다시 말해서 허심(虛心) 상태(狀態)를 첫째로 쳤다.”309)


집에서 소일거리를 하고 있을 때 젊은 교역자들이 찾아왔다. ‘성풍회(聖風會)’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기장이 학문적으로 이성적으로 한국 교회의 어느 교단이나 신학대보다 앞서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메마르고 성령의 거룩한 정열과 기도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장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재준은 과거에 성령의 감동을 회상하면서 이들을 격려하고 끊임없이 신학을 할 것을 당부했다.


“여러분은 ‘한신’ 학원에서 고난을 같이 나눴습니다. …… 여러분은 각기 여러분의 은사(恩賜)에 따라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런데 신학은 신앙의 골격입니다. 뼈대가 없으면 무골충이 됩니다. 신학은 계속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학은 인신학(人神學)입니다. 교리는 이론이요, 소속 조직체는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 감화는 여러분의 거룩한 정열입니다.”310)


1983년 10월 25일 기독교회관에서 범용기 1, 2권 합본 국내판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김영삼, 송건호 등 재야인사와 퇴직교수들도 참석했다. 김재준은 그동안의 해외 민주운동의 내력과 현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국내 수난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앞으로 국내에서의 활동 계획을 얘기 했다.


김재준은 광주민중항쟁 희생자 합동묘지가 있는 망월동에 갔다. 한신 대학 2학년에 재학 중 광주사태 소식을 듣고 자진 뛰어든 류동운 군의 묘가 있다. 김재준은 그 어린 학생의 의로운 죽음 앞에 경의를 표했다.


“원래 광주는 ‘빛의 도시’다. 빛과 어둠은 상극(相剋)이다. ‘빛이 어둠에 비취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요 1:5) 빛이 오면 어둠은 가는 것이다. 아주 가는 것이 아니고 일보 후퇴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결국은 의가 이긴다. 학생들의 의로운 피를 마신 광주의 흙은 운다. ‘주여 언제까지니이까?’ 하며 한(恨)을 호소한다. 이 무덤들에서 부활이 선포될 것이다.”311)


김재준은 망월동을 뒤로 하고 법정 스님을 만나러 송광사에 갔다. 법정은 3선 개헌 반대와 민주수호 국민회의 때 김재준과 함께 일한 동지였다. 김재준은 광주 한빛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돌아왔다.


김재준은 이춘우 장로와 함께 그리웠던 고국 산천 단풍 구경길에 올랐다. 내장산에 갔다. 새빨간 단풍나무와 황금색 숲이 잘 어울어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백양사에서 역사 유적지와 유물들을 보았다. 내장산 고개를 넘어 지리산의 치맛자락에 싸여 있는 조용한 읍인 남원에 갔다. 새로 단장한 광한루와 춘향묘 등을 둘러보았다.


“내 조상들과의 피의 인연이 없다. 내 역사의 맥락이 이 산천에는 돌지 않는다. 그런데 내 나라에 와서는 그렇지 않다. 산천도 아름답지만 간 데 마다 수천 년 우리 역사가 내 마음에 안긴다. 지나간 영혼들이 반겨 맞이한다. ‘네가 왔구나, 어서 와라! 무척 보고 싶었다’ 하는 것 같았다. 내 강 산과 거기 담긴 우리 문화는 나를 젊은 낭만으로 유인한다.”312)


김재준은 귀국해서 후배 제자들이 사역하는 곳에서 설교 또는 각종 모임에서 강연 등이 잦았다.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감사와 격려, 그리고 당부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1984년 12월 2일 김재준은 경동교회 39주년을 맞아 기념 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기념 예배에 ‘반석 위에 세운 교회’ 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구원주시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믿음의 기초요 동시에 크리스찬 됨의 머릿돌입니다. 동시에 교회라는 신자 공동체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 교회가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만, 교회가 곧 역사요, 역사가 곧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가 구원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십니다’는 계시적인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세워진 천국 열쇠의 수탁자입니다. 하늘의 복음생명을 땅의 흙에 심는 기관입니다. 교회가 이 소명에 충실하는 한 교회는 반석 위에 서는 것입니다. 암흑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313)


김재준은 경동교회가 지난날 교회사와 한국사적으로 역사의 화살촉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하늘의 복음 생명을 역사라는 밭에 심는 천국 열쇠의 수탁자가 되기를 원했다. 이듬해 1월 4일은 송창근 기념교회인 성남 교회에서 서울 노회 신년 하례 예배 설교를 했다. 노회 소속 목사들과 장로들이 있는 자리이니만큼 김재준은 이날 어느 누가 더 크냐, 하고 총회에서 임원선거에 혈안이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라고 질책했다. 그리고 교회의 상(象)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바로 반영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이름이 땅에서 거룩하게 불려지고 하나님 나라가 땅에 임하고 하나님 뜻이 하늘 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오셨고 우리도 그 거룩한 사업에 동참하는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었습니다. 땅 위에 세워질 하늘나라란 것은 ‘전 세계적 사랑의 공동체’ 건설을 의미합니다.”314)


김재준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맛을 잃은 소금처럼 세상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밟힌 것을 교회의 세속주의화315)라고 말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바라보며 원로목사로서 후배들에게 기장교회 지도자로서 바르게 살 것을 당부했다.


[각주]


[307] “書라는 것”, 『전집』 제17권, 70.
[308] 김재준, 『고토를 걷다』, 224.
[309] “全州에서 돌아온 후”, 『전집』 제17권, 124.
[310] 김재준, 『귀국 직후』, 선경도서, 1985, 179.
[311] 김재준, 『고토를 걷다』, 14-16.
[312] 위의 책, 38-39.
[313] 위의 책, 39.
[314] 위의 책, 49-50.
[315] 신홍범 정리,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 박형규 회고록』, 창비, 2010, 422-423.